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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선영과 같이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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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 답사 스크랩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및 서울성곽 답사기
박선영 추천 0 조회 50 12.06.02 16: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및 서울성곽 답사기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근현대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하였던 서대문 형무소를 보존.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독재정권기에는 민주화를 이루고자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희생당했던 현장이다.

 

1908년에 경성감옥으로 개소를 하여 1923년에 서대문 형무소로 변경, 1988년 국가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개관되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내에는 3.1운동 직후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등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사와 고문실로 쓰이던 역사전시관에는 영상실, 형무소 역사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 독방 등의 옥중 생활실이 있다.

 

이밖에 사형장 옆에 시신을 내보내기 위해 만든 시구문이 있다.

 

둘러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도록 암울하였다. 독립 운동가들의 흩뿌려진 피와 고통으로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먼저가신 그분들께 죄송할 따름이었다. 모든 역사들이 다 그렇겠지만, 줄 세워 눈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아픈 곳이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서울 성곽을 가기 위하여 인왕산 인왕사 방향으로 올라갔다.

고생길 일거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첫발부터 삐거덕 거리는 내 다리.

 

서울성곽은 조선왕조가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둘레는 약 17Km, 조선왕조가 139411월 한양으로 천도하여 궁궐.종묘.사직을 건설하기 시작해서 13959월에 건설을 끝내고 수도를 방어.수호하기 위해 성곽을 쌓기로 해서, 공사는 13961월부터 시작하여 49일간 지속되었다.

 

이때 동원된 인부는 118,000명이었다. 이 공사는 그해 9월에 종료되었지만, 그후에도 부분적인 보수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서울성곽이 도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422년에 와서야 가능했으며, 서울성곽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성을 모두 돌로 완벽하게 쌓았다.

둘째, 성가퀴를 높게 하여 방어에 만전을 기했다.

셋째, 수문을 증설했다.

넷째, 성문을 개수하거나 옮겨서 설치하여 도성 출입문으로서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다섯째, 성 주위 안팎에 큰 길을 내었는데, 이는 순찰과 유사시의 대비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였다.

여섯째, 성 주위를 확장했다. 한편 도성문으로는 숭례문(남대문흥인지문(동대문돈의문(서대문숙청문·창의문·혜화문·광희문·소덕문의 이른바 8대문이 있었다. 도성을 보수하는 책임관청으로는 성문도감을 설치했다. 그리고 도성의 수호와 경비를 위한 기구로 병조 예하에 도성위·도성경수소 등이 있었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멋있다, 웅장하다, 주변이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기 보다 이렇게 큰 성곽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사람들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결국 인부로 동원된 그 사람들 역시 그역사에 있었던 약자였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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