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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블로그 broadway4u ・ 2020. 2. 13. 7:55
설 연휴기간 EBS 싱어즈 프로그램에 한대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1948년생이니 일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호탕하게 박수치며 "와하하하"하고 웃는 것이 아직 소년의 감수성을 갖고 있는 둣 보였습니다.
한대수의 노래를 몇차례 포스팅하며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나 싱어즈에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잠깐 그의 삶을 되돌아 보기로 합니다.
한대수는 엄청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부인 한영교는 신학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고 1930년대에 미국 유학을 가서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언더우드와 함께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주역으로 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부산에서 유일한 피아니스트였고, 18세에 핵물리학자인 아버지 한창석과 결혼을 하여 한대수를 낳습니다. 한대수의 옴악에 대한 열정은 할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합니다.
한대수가 한살때 부친인 한창석은 핵물리학분야에 최고 권위가 있는 코넬대학교로 유학을 갑니다. 한대수가 7살 되던 해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나타났는데, 가족과 나라의 자랑이라던 부친 한창석이 갑자기 실종되었습니다.(한창석의 실종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다.)
19살에 한대수를 낳고 과부아닌 과부생활을 하던 모친은 개가를 하게되고, 한대수는 조부모 아래에서 자랍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들을 찾는다고 한대수의 손을 잡고 미국길에 올랐습니다. 서울-도쿄-하와이-LA-New York까지 며칠에 걸쳐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합니다. 그러나 향수병에 걸려 다시 귀국하여 경남중학교에 입학합니다. 뉴욕과 부산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17살에 기적적으로 부친의 생존소식을 듣고 다시 뉴욕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한글을 잊은 부친과 백인 새어머니 아래에서 고등학교시절을 보냅니다. 이때 한대수는 엄청난 외로움 속에서 생활하게 되며, "행복의 나라로" 등 그의 상당수 노래들이 이 시절에 작곡되었습니다. "행복의 나라로"는 불햄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1966년 뉴햄퍼셔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하나 적성이 안맞아 그만 두고, 뉴욕사진학교에 입학했다가 1968년 생활고로 귀국합니다.
1969년 세시봉 무대를 통해 데뷔합니다. 그런데 앨범은 군복무를 마친 1974년 발매되는데, 대표곡으로 "물좀주소", "행복의 나라로"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제2집을 발매합니다. 제2집의 앨범자켓을 보면(노래 배경에 나오는 사진) 담장위 철조망에 하얀고무신이 걸린 사진이 나옵니다. 이 시기에는 개가한 엄마의 집에 얹허 살았는데 집에서 연애를 하다가 걸려 쫒겨났다고 합니다. 무일푼 신세에 달동네로 가서 방을 얻었는데 그 동네에 녹슨 철조망 담장이 있었습니다. 녹슨 철조망에 하얀고무신을 걸어놓고 사진을 찍으니 묘하게 마음에 끌려 앨범자켓 사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하얀고무신은 정치범들이 주로 신던 것으로, 2집 앨범은 어느 정도 의도성을 가졌다고 말하더군요.
때는 서슬 퍼른 유신독재 시절이었습니당 한대수의 제2집은 당연 판매금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팔린 앨범도 수거하여 불태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혼을 했으나 부인의 외도로 이혼하고, 약20년가량의 한국생활 후 그는 다시 뉴욕으로 갑니다.
뉴욕생활 중 그는 20세 연하의 몽골계 러시아인 옥사나와 결혼하고, 나이 60세에 딸을 얻습니다. 그는 연대를 BC와 AC로 나누듯, 그의 인생도 BY(Before Yang Ho)와 AY(After Yang Ho)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양호가 태어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추어 마음대로 살았답니다. 그런데 양호가 태어난 이후 그의 삶은 오로지 양호에게 맞취져 있습니다.
양호가 태어나기 전에 일본에서 초청공연을 한 후 한대수는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그리고 수입(그의 표현으로는 화폐수입)도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양호가 10세가 되던해 다시 뉴욕으로 이주합니다.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양호를 살펴보니 한국에서의 아이의 삶이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수입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가는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양호에게 행복한 삶을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보탭니다.
"아이들이 공부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에서 그느 참으로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자료. EBS 싱어즈, 웹사이트 story-casa.com>
한대수 이야기를 쓰며, 교육을 생각해 봅니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수차례 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이 주목받은 적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단점이 있을까요.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제가 생각하는 가장 근 강점은 상위권 친구들은 팔방미인 정말로 잘 합니다.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하위권 친구들은 한글을 읽고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할 정도로 기초학습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부모의 부의 차이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공교육이 철저히 무너진 탓이 더 크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평가는 상급학교에 얼마나 잘 진학시키는가로 이루어집니다. S대 몇명을 입학시켰는지가 고등학교 평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초중고 성장하면서 궤도에서 조금이라도 이탈을 하게 되면 그 학생은 버려지고 잊혀집니다. 상위권 대학을 진학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이 주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구도인 셈이지요.
공교육은 수월성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낙오자가 없는 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작년 어떤 특강 수강 자리에서 전직 교육부장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강의후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강의가 끝난 후 기초학습 부족사태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 분의 답변요지는 첨단을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이 기초학습능력을 갖추게 하는게 방법이다, 오히려 기초학습이란 패러다임에서 교육자들이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을 하시던군요.
이론적으로는 일부 동의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안된 학생들에게는 첨단을 보여주어도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글자를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첨단을 보여줄 것이며, 1/2 + 1/3 = 2/5 라고 답하는 아이들이 무슨 방식으로 첨단을 공부하겠습니까.
최근 교육부의 일각에서, 서울시교육청에서, 그리고 EBS에서 기초학습능력 부족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는 것같아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는 기초학습능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교육에서 조금 더 방향을 전환한다면, 미래에 이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주제는 조금 무거웠습니다. 교육계에 종사하시는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고, 또 화이팅을 부탁드립니다.
(2020.02.13)
첫댓글 한대수님의 대한 저의 사고는 어떤 이상이 아니라 말 하고 싶습니다. 어코스틱 음악은 더 뛰어난 자가 많다봐요!
그럼.. 이 게시판에서 어떤 어쿠스틱 가수들을 다루어 드리면 좋겠습니까?
주시는 의견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발전적인 의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깨알 같은 글씨는 피곤함을 유발할 것 같아요 ㅋ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많은 분량의 본문을 게시할 때에는 어떤 식으로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고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영화 탓자에서 한대수님의 암울한 음악의 정체성은 나름 인정받는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저는 그런 음악가로 생각합니다!
암울한가요? 저는 <행복의 나라>에서 밝은 기운을 느꼈었는데..
위 글을 보니 암울한 가운데 만들어진 천재 소년의 노래 맞네요. 그런데 뚱이님은 그걸 느낌으로 이미 알고 계셨던 거에여? 혹시 뚱이님 천재?? 왠지.. 댓글에서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꼈따니깐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