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통화중 / Hanging Up

[안미경 데레사]

(발행일 / 2003년 5월 25일 통권 / 제19호)

지금은 통화중 / Hanging Up

주인공 이브(맥 라이언 분)는 운전 중에도 전화기를 놓을 수가 없다. 행사 준비를 하는 비서의 전화를 끊임없이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그 쪽에서 장소를 바꾸자는 데 어떻게 할까요?”, “이름표를 만들어 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비행기 예약을 해야할까요?”, “비행기가 잘 도착할까요?” 등등. 뿐만이 아니다. 언니 조지아(다이안 키튼 분)가 얼마나 성공을 했는지, 그녀의 성공담을 들어주는 전화도 받아줘야 하는 것이다. 여동생 매디 (리사 쿠드로 분) 역시 탤런트로서의 성공과 실패, 심지어는 애인이나 기르는 강아지 얘기까지 다 들어 줘야 한다. 이런 그녀의 성향은 전형적인 2번 유형으로 보아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치매 끼가 있는 아버지가 가벼운 뇌졸중으로 입원을 하면서 주인공인 이브의 마음은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회사의 사운이 걸려있는 큰 행사를 맡게 되어 정신이 없는데, 아버지는 이브를 볼 때마다 “나를 혼자 남겨 두지 마라”, “너만 있으면 돼”, “너 없으면 난 시체야” 하며 자신의 옆에 있어달라고 애원을 한다. 게다가 밤낮 없이 죤 웨인의 전화가 왔었다는 둥, 중국 음식이 먹고 싶다는 둥, 이혼한 엄마를 불러 달라는 둥 하며 전화를 해댄다. 언니는 자신의 잡지사가 창립 5주년을 맞이한 성공담은 자랑스럽게 늘어놓으면서도 아버지가 계신 병원엔 한 번도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아 놓으라는 둥, 제일 좋은 의사를 붙여주라는 둥, 말만 할 뿐이다. 여동생 역시 자신의 강아지가 아플 것 같으면 새벽에도 전화를 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면서도, 병원엔 나타나지 않는다. 이브는 이혼한 엄마와 다른 자매들을 대신해 매번 아버지를 방문하고, 갈 때마다 장미 꽃다발과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잊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 친절을 베풀지만, 그녀가 힘들 때 아무도 그녀를 도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가 돌봐줄 것을 당연히 여길 뿐이다. 고마워하지도 않고...... 힘에 부치는 선행과 그에 대한 보답이 없을 때 여느 2번 유형의 사람들처럼 이브는 희생당하고 착취당했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엄마가 떠나가 버린 후 아버지를 맡게 되면서, 이브는 아버지가 상처받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아버진 자신의 욕구만을 앞세우며 이브를 괴롭혔다. 심지어는 이브의 아들이 5 번째 생일을 맞던 날, 아들의 친구들과 엄마들까지 다 와 있었는데, 아버지는 술에 취해 나타나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화를 내는 이브에게 “넌 실패작이야, 너희 엄마가 너를 낳고는 내다 버리자고 했지!” 하며 퍼부어 대었다. 지금도 “조지아는 돌도 금으로 만들 아이야” 하며 칭찬을 하지만, 자신에겐 뭔가를 해달라는 요구만 해댈 뿐이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으로 시달릴 때, 차량 접촉사고로 알게된 유태인 아주머니의 충고는 2번 유형에겐 구원으로 가는 첫 걸음을 제시했다. “때론 맺고 끊는 게 필요하다우”

이브의 행사장에서 연설을 하게 된 조지아는 사람들 앞에서 위선적인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우리가 부모를 위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부르짖으며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이브는 드디어 화가 폭발한다. “날 이용하고, 내 공을 가로채고, 입으로만 효녀인 체 하는 너를,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이에 대해 조지아는 “네가 자초한 일이야!” 하며 매몰차게 몰아 부친다.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이브는 두 자매와 함께 있기를 거부한다. 아버지의 침대 옆에서 홀로 밤을 지새우며 이브는 많은 생각을 한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는 것,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것, 다른 사람들 (언니와 동생)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 등등, 자신의 감정과 욕구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언니 말이 맞아, 내 탓이야. 서로 다가서면 상처받기 일쑤지. 엄마가 떠난 후 아빠를 떠맡게 되었을 때 내심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없이 속상했지. 아빠가 너무 미웠거든. 그리고 난 언니가 필요했어” 하고 고백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작업, 이는 2번 유형의 사람들을 커다란 자유로 인도해준다. 다른 이들을 대가 없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죄의식이나 상처를 주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될 때, 그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인 양털 코우트같은 따뜻함과 친절함으로 주위를 덥히게 되는 것이다. 이브의 세 자매가 기쁨에 넘친 추수감사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