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건축기행/프랑스
조형언어, 빛과 공간이 통합된
라뚜렛뜨 수도원
1965년 9월 2일 루부루 궁에서 거행된 르 꼬르뷔제의 장례식에서 당시 문화담당 대신은 조사에서 미 합중국 대통령의 조의를 다음과 같이 전달하였다. “그의 영향은 세계적이며 그의 작품은 역사 속의 예술가에도 희귀에 달한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그리고 그는 세계건축을 바꾸었노라고 하였다. 이어 말로는 각국에서 도달한 깊은 애도를 전하며 이것이어야 말로 영원한 복수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말은 그의 생전에 그가 격어야 했던 소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건축기행으로서 라 뚜렛뜨 수도원을 선택한 것은 르 꼬르뷔제의 건축생애와 사상의 전개를 살펴볼 때 그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라 뚜렛뜨 수도원은 리용의 서쪽 26km지점이 있는 시골도시인 에브 슈르 아르브르셀 지역에 있다. 내가 그 곳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이었다. 나는 건축을 처음 시작할 때 르 꼬르뷔제를 알게 되었고 그의 건축세계에 매료되어 언젠가 그의 생애를 답사할 마음을 갖었었다. 당시에도 이 작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1992년 여름 나는 르 꼬르뷔제에 생에 답사 단계의 하나로 그자신이 여행하며 큰 영향을 받았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지중해안의 백색 건축을 답사한 후 그의 대표작이라 일컬어지는 롱샹과 라 뚜렜트 그리고 인도의 챤디가르등을 답사하는 여행을 혼자 떠났었다.
계기와 창조
라 뚜렛뜨 수도원은 1952년 이전에 그에게 성당 건물을 의뢰한 적이 있는 크튜리에(Couturier) 신부의 제안에 따라 리용의 도미니크 참사회가 의뢰를 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후 수도원은 1957년에 착공하여 1960년 10월 19일에 봉헌되었다. 그의 사랑하는 부인 이본느 르 꼬르뷔제가 사망한 2주 후였다.
도미니코 수도회가 왜 르 꼬르뷔제에게 일을 맡겼는가 하는 질분에 대해 불로(Belud) 신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왜라니 …… 르 꼬르뷔제의 작품이나 재능을 알고 우리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인간적인 표정, 상황을 건축가로서 이해한다는 점이었다.」라고 대답했다.
르 꼬르뷔제는 이 수도원 이전에 지어진 롱샹 성당의 준공식 날 열쇠를 건네주며 말했다. 「 예하 나는 이 교회를 건설함에 있어서 침묵의 장, 기도의 장, 평화의 장, 그리고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장을 창조하고자 원했습니다. …」라고 말했었다.
입지와 개념
이 건물은 발길이 뜸하고 앞이 넓게 트인 자연 겨아지 위에 세워져 있다. 건물 전후에 2개층의 표고차가 있는 이건물은 진입구 쪽의 후면에서 보면 3층이고 전면에서 보면 5층이다.
건물은 원래의 자연 경사지를 다치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레 발을 디디고 떠 있듯이 있으며 자연 지형과 인공의 의지가 서로의 힘을 북돋아 주고 있다.
건물 배치는 -자형의 예배당과 ㄷ자 형태의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생활관이 a자형으로 폐합을 이루고 가운데 마당이 형서오딘다. 이러한 배치는 전통적인 도미니카파의 규범적 평면 배치 방법이다.
건물과 마당
이 건물은 진정 종교의 경건함이 그 안의 모든 곳에서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종교적 장소의 힘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하는 것은 안쪽의 마당이다.
여기 수도원이 다른 수도원과 다른 특별한 점은 마당의 중앙을 가로지르는+자로 난 통로이며 이것이 건축가의 탁월한 감각이다. 그 통로가 이 수도원의 건물들과 마당이 하나로 통합된 생활양상을 결정지으며 독특한 신앙생활의 질서의 힘을 불러 일으킨다. 그 통로는 이야기를 구성하듯 연결되어 있고 마당을 향해 시선은 열려 있으나 이동중에 바깓으로 나갈수는 없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나가 웅성거리지 않고 단지 보고 지나며 빈 장소의 고요함을 느끼게 한 것이다. 이 통로의 매스는 마당을 조형적으로 적당히 채워 공허하지 않게 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건물 높이는 외벽 정상부에서 수평을 이루고 있는데 한 층을 오를때마다 건물과 대비되는 부피 감각을 느끼며 어디서나 마당을 바라보며 조용히 명상에 들 수 있게 한다. 위요된 마당공간은 건물벽 사이에 부피의 장력이 미치어 힘을 갖으며 건물과 일체된 힘을 지니고 있다.
직각의 시
이 건물의 조형은 기하학적 질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내.외부 마감은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데, 건소한 신앙생활의 성격과 부합되어 건조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기본적인 배치가 정해진 다음 건물의 세부는 그야말로 위대한 건축가의 재능이 유감없이 나타나 있다.
각 부분의 기능적 성격이 밖으로 드러난 조형 요소들이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엄격한 구성과 연관에 의해 만들어진 비례와 리듬에 의해 시정을 불러 일으키는 오브제로 탈바꿈된다.
또한 조형 자체만이 아닌 그안에 생활하는 인간의 행위와 심리에 일치된 세심히 조절된 공간의 정서가 함께 발산되고 있다.
공간의 드라마
수도원의 입구에서 한층 내려가면 중앙통로와 연결되고 통로의 한 변을 비나면 예배당 입구로 향하는 통로와 직각으로 만나게 된다. 그 결절점에서 조금 좌측으로 식당과 연결된 홀이 있다.
식당은 그 전면부분의 2층에 해당되고 멀리 시야가 트여 있어 좋은 전망을 갖고 있다.
그 홀에서 우측 통로를 따라가면 육중한 철문이 가로막고 서 있는데 그 안이 예배당이다. 예배당 안은 아무런 치장도 없이 비워진 직육면체의 부피로 된 공간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절제의 힘이 오히려 가난한 마음을 지닌 자들에 정신을 고양시켜 준다. 예배당 죄측에는 다시 한층 더 낮은 곳에 굴같은 지하실이 내려다 보인다. 그 곳에 가려면 예배당 입구에서 지하로 연결된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그 과정은 고난의 길을 상징하는 듯 하다. 3층은 사무실 도서관등 공공기능의 실이 배치되어 있고 4층과 5층은 수도사들의 방이 있다. 수도사의 방은 폭이 183cm이고 실의 높이는 226cm이다. 이 공간은 한 사람의 수도사가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다. 그러나 실의 깊이에 의해 수면과 공부 그리고 수납 공간이 독립되어 있다. 이 건물의
이 건물의 구성적 특징은 각 부분이 전체안에 통합된 세계에서 동선에 따라 움직일 때 느껴지는 긴장과 이완의 드라마이다. 모든 동선은 작가의 세밀한 의도에 따라 짜여져 있고 그 움직임 상에서 각기다른 위치와 빛과 조형처리에 따른 풍부하고 다양한 정서적 체험을 하게 된다.
예배와 기도 그리고 조용한 빛의 스밈
라 뚜렛뜨 수도원은 빛을 다루는 천재인 르 꼬르뷔제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이 곳 예배당과 기도실은 모두다 어두운 편이다. 그 어둠을 가르며 스며 들어온 빛이 신자들의 마음을 파고들 듯 비추고 있다. 예배당에는 기능이 다른 다솟 종류의 빛이 유입된다. 제단 우측 모서리에 수직으로 틈을 갈라 만든 창의 빛, 죄측에 돌출된 달팽이의 촉수 현상을 한 천창에서 번져오는 빛, 후변의 사각형의 천창의 빛, 그리고 후변벽 상부의 띠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있다. 그리고 그 빛들이 우직스럽도록 단순한 공간에 신비한 기운을 드리워 극적인 감동을 자아낸다. 예배당 아래에는 동굴을 파들어가듯 지하를 파서 만든 기도굴이 있다. 이 곳은 대롱같은 3개의 천창을 통해 깊숙이 스며 들어온 빛이 숨죽이는 곡면벽에 반사되며 기도의 마음을 자아내게 하는 공간이며 여기 수도원에서 빛에 의한 최고의 감동을 느끼게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르 꼬르뷔제 말기의 건축
그의 건축에는 초기와후기의 건축표현상의 변화가 있다. 초기의 건축이 기계미학의 엄격함 속에 이루어졌다면 후기 건축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축이 조화된 세계를 이루려 했다. 이 수도원 건물도 그 바탕은 초기 신정신에 입각한 단순한 윤곽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초기 건축의 매끈한 표피와달리 여기서 표현된 거친 노출 콘크리트의 투박함은 큰 건물의 몸집이 들뜨지 않고 안정감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윤곽을 깨뜨리지 않은채 모든 부분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율적 표성을 표출하며 공간에 유입된 빛의 조절에 따라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또한 여기에 기능으로서의 신앙생활이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이 건축은 그가 일생동안 갈고 닦은 시정을 불러일으키는 조형언어와 빛과 공간이 통합되어 이룩된 훌륭한 작품이다.
1992. 7. 19, 1994년 7월 답사
(1998. 7 현대주택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