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 6 장 : 절제 없는 감정에 대하여
1. 사람은 무엇이든 절제 없이 탐할 때마다, 내심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 교만하고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은 결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언제나 평화롭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간다. 스스로의 감정을 철저하게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쉽사리 유혹에 빠지며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극기를 하지 못한다. 마음이 약한 사람, 그리고 육욕과 감각적 쾌락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사람은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세속적 욕망에서 어쩌다 벗어나게 되면 괴로와하기 일쑤이며, 누가 자신의 언행에 반대하면 분통을 터뜨리기 마련이다.
2.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자신의 육욕과 쾌락에 실제로 탐닉한다 해도 양심의 가책으로 금방 마음이 편치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신이 진심으로 추구하는 바, 마음의 평화를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욕정에 휘말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우리의 욕정을 절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그러한 욕정에 굴복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평화는, 육욕에 빠져 있는 사람이나 주변의 사물에 탐닉해 있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으며, 영적인 생활을 하는 믿음이 깊은 사람에게만 있다.
(자료 출처 :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 조항래, 예찬사, 1988년 11판)
토마스 아 켐피스의 새롭게 쓰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절제된 마음에 임하는 참된 평안
우리는 흔히 ‘감정’을 나를 표현하는 가장 솔직한 수단이라 믿으며, 그것을 분출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토마스 아 켐피스는 “절제 없는 탐욕은 반드시 불안을 낳는다.”고 경고합니다.
감정의 주도권을 욕망에 내어준 사람은 자신의 영혼에 성벽을 허무는 것과 같습니다. 사소한 반대에도 분노하고, 작은 유혹에도 쉽게 무너지는 이유는 우리가 ‘자기 절제’라는 영적 훈련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우리의 욕정을 절제함으로써 얻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도 괴롭지만, 막상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도 평안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더 많은 인정, 더 좋은 환경, 더 큰 성공, 더 편안한 삶을 바라며 달려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종종 메마르고 지쳐 있습니다. 현대인은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지만, 동시에 가장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인간의 불안의 뿌리를 “절제되지 않은 욕망”에서 찾습니다. 이것은 단지 육체적인 욕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 비교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 사람을 지배하려는 자아, 끊임없이 소비하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포함됩니다. 죄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더 가지라”고 속삭이지만, 하나님은 “족한 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무언가를 만들어 냅니다. 돈일 수도 있고, 성공일 수도 있으며, 사람의 칭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길 때, 마음은 반드시 흔들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결코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평화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소유와 쾌락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존 오웬은 “거룩한 평화는 죄와 욕망을 죽임으로써만 얻어지는 전리품”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평안은 환경의 안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욕망이 정돈될 때 찾아옵니다. 세상은 욕망을 채우라고 말하지만, 성령은 욕망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고 절제하는 영혼 위에 깊은 평강을 부어 주십니다.
청교도 토머스 왓슨은 “절제는 영혼의 울타리”라고 말했습니다. 울타리가 없는 정원은 쉽게 망가지듯이, 절제가 없는 삶은 결국 죄와 후회의 발자국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자극 속에 살아갑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켜도 비교와 욕망과 분노와 탐심이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현대의 영성은 더욱 “내면의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소비는 많아졌지만 묵상은 사라졌습니다. 너무 빨리 반응하고, 너무 쉽게 분노하며, 너무 즉각적으로 만족하려는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다시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마다 욕망보다 말씀을 선택하셨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참으셨고, 세상의 영광을 즉시 얻을 수도 있었지만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절제는 단순한 금욕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위해 덜 좋은 것을 내려놓는 믿음의 선택입니다.
절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도구입니다. 감정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복종시킬 때, 비로소 우리는 외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인격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에 가장 쉽게 흔들립니까?
무엇이 내 평안을 빼앗아 갑니까?
나는 정말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있습니까?
진정한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데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절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갈 5:23). 절제된 영혼은 메마른 영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가장 깊은 기쁨을 누리는 영혼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욕망의 소리에 끌려다니지 말고, 성령의 음성에 이끌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제된 마음 위에 하늘의 평안을 부어 주십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요즘 내 마음의 평안을 가장 흔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나는 무엇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까?
3.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은 없습니까?
4. 오늘 내가 절제해야 할 말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분주한 세상 속에서 제 마음이 너무 쉽게 흔들리고 요동치는 것을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탐하고, 사람의 인정에 민감하며,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하고 불안해하는 연약한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제 안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들을 다스려 주십시오.
세상이 주는 순간적인 만족보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평안을 더 사모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욕망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시고,
충동보다 말씀을, 분노보다 사랑을, 탐심보다 자족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처럼 조용히 하나님 앞에 머무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영혼이 세상의 소리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성령님, 제 안에 절제의 열매를 맺어 주시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거룩한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참된 평안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고,
욕망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