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모든 정(丁)씨의 시조 정덕성(丁德盛)은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그는 신라 문성왕 때 우리나라 서해 남부에 있는 압해도에 유배된 후 신라에 귀화했다. 그 뒤 정(丁)씨는 한 뿌리에서 태어났으나 지금은 영성. 나주. 선창원. 후창원 등 여러 본관으로 갈라졌다.
시조의 큰 아들 정열도가 신라 헌안왕 때 오성(지금의 영광)군에 봉해지고, 그 후손 정찬이 고려 때 영성(지금의 영광)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영성(영광)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둘째 아들 정응도는 신라 헌안왕 때 금성(지금의 나주)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정윤종을 파조로 하고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영광정씨에서 선창원파가, 나주정씨에서 후창원파가 각각 갈라진다.
2000년 현재 나주정씨가 82,863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 영광정씨…21,774명, 창원정씨…16,141명, 영성정씨…10,429명 순이다. 한편 영광정씨와 영성정씨는 본관이 같다. 일부 후손들이 영광의 옛 이름인 영성을 그대로 쓸 따름이다.
나주정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 정약종 형제들이다. 정약용은 1762년(영조38년) 경기도 광주에서 진주목사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천주교 신봉과 관련된 무고로 1801년(순조1년) 전남 강진에 세 번째 유배되어 19년간의 귀양살이를 한다. 그는 유배지에서 실의와 울분의 세월을 학문과 저술로 불사른다. 그의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은 우리나라 문화 사상 불후의 명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