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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 최씨(淑嬪 崔氏, 1670년~1718년) 조선의 19대 왕 숙종(肅宗)의 후궁이자, 21대 왕 영조(英祖)의 생모이다.
[편집] 생애
본관은 해주(海州). 후일 영의정으로 추증된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현종 때에 궁중에서 가장 천하다는 무수리로 입궐하여, 숙종 때 성은을 입고 내명부 종4품 숙원(淑媛)의 후궁 첩지를 받았다. 이후 숙의(淑儀), 귀인(貴人) 등을 거쳐 마침내 그 품계가 정1품 빈(嬪)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 출신 성분이 미천한 무수리라, 본인은 물론 아들인 영조에게까지 매우 큰 콤플렉스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다른 역사 서적에서는 그녀가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의 교접비로 궐로 들었다가 우연히 만났다는 설도 있다.[출처 필요]
숙종의 제1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는 친분이 두터웠으며, 희빈 장씨(禧嬪 張氏)가 중전일 때는 그녀에게 모진 박해를 받다가 인현왕후가 갑술환국으로 복위되자 평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숙종이 장희빈의 일이 재발할까 염려되어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현왕후가 죽은 뒤에도 숙빈 최씨는 왕후가 될 수 없었다.
1694년, 왕자 금(昑)을 낳으니 이가 바로 후일의 영조(英祖)이다. 1718년, 병으로 49세로 졸하여 이후 연잉군(영조)은 이후 숙종의 또 다른 후궁인 영빈 김씨(寧嬪金氏)가 양육하였다고 한다. 선원록(선원계보기략)에 의하면 영조의 위 아래로 각각 아들이 한 명씩 있었다고 한다.
[편집] 사후
그녀의 아들 연잉군은 왕세제를 거쳐 마침내 왕으로 등극하니, 바로 조선의 제 21대 왕 영조대왕(英祖大王)이다. 그는 즉위 원년, 어머니 최씨의 사당을 지어 숙빈묘(淑嬪廟)라 하였고, 이것이 후일 육상묘(毓祥廟)를 거쳐 현재의 육상궁(毓祥宮)이 되었다.
숙빈의 묘소 또한 소령원(昭寧園)으로 승격되었으며, 영조가 그녀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니 그 정성이 지극하여 백관이 모두 흐느꼈다고 한다. 또한, 영조가 그녀에게 화경(和敬)의 시호를 올려 화경숙빈(和敬淑嬪)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후일 여러차례에 걸쳐 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의 존호가 올려졌다.
[편집] 가족관계
- 아버지: 증영의정 최효원
- 남편: 조선 왕조 제 19대 왕 숙종
- 장남: 영수(永壽)
- 차남: 조선 왕조 제 21대 왕 영조
- 삼남: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