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규일 지음
- 출판사
- 리북 | 2012-06-10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한시의 현대적 활용, 그 수준 높은 경지를 만나다!중국의 한시외...
조선 시대에 관리가 되는 일은 아주 어려웠는데 조상의 위패 대부분이 학생부군신위라고 되어 있는 것은 크게 신기할 일도 아니었다. 관리가 되는 소수를 뽑는 방법은 과거였는데 이 과거라는 시험은 놀랍게도 관리가 되는데 실무적인 소양을 점검하는 것이 아니고 제목을 내걸고 시를 짓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었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감정이 크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없겠지만 실제로 조선의 시스템은 동시대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비록 현대적인 개념의 발전 속도가 느린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의 만족도는 서양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아주 뒤쳐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라는 것이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임에 틀림없다면 시를 짓는 것은 공감능력이 특별해야 가능하다. 실제 목민관은 백성들을 다스릴 때 법이나 제도보다는 공감능력이 더 필요할 때가 많다. 그래서 과거에 시를 잘 지어서 급제한 목민관들이 백성들을 아주 잘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실제적으로 시가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시를 잘 지어서 좋은 대학교에 갈 수도 없고, 좋은 직장을 얻을 수도 없다. 그리고 시를 잘 지어서 좋은(?) 삶을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차라리 우리나라의 전통이 시와 거리가 멀고 감수성이 메마른 민족이라서 그런다면 부족함을 인정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인정하기에는 답답한 마음이 가슴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자라난다. 정지상의 ‘송인’이나 최치원의 ‘추야우중’ 같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시들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말이 아닌 한시로도 최고의 작품을 만들 능력이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조선시대 인사들 중에서 명시라고 일컬을 만한 시 한 편 쓰지 않은 인물이 없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한시는커녕 우리말로 된 시 하나 짓지 못하고 예전의 명시들을 외우고 있는 사람조차 드물다. 어쩌다 술자리에서 두보의 시 한 수를 멋들어지게 읊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그윽하다. 그러나 그런 술자리는 평생에 한 번 만나기 힘들다. 심지어 내가 그런 시를 외우고 있더라도 그런 시를 읊을 만한 분위기를 만나기 힘들다. 이 문제의 원인이 교육에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긴 하지만 왠지 우리나라 교육에 모든 문제를 넘기기에는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든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인물들, 특히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과 교사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을 지도 모르겠고 혹은 그런 고리타분하고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의 향연(?)을 우습게 생각하는 지금의 학생들 탓이 없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은유와 암시가 넘쳐나는 고차원의 운문을 독해할 능력이 없어진 사회가 더 큰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산문으로 말하고 그 앞과 뒤가 정확한 말을 해도 사람들이 자기 위주로 독해하거나 의도적으로 곡해하여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말만을 들으려고 하는 분위기와 그에 편승해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했던 말조차 부정하며 자신은 일관성과 도덕성, 정의감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뽑아주는 사람들, 그런 선택에 대해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언술조차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 시라는 언술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유치한 순간에야 필요해진다. 아이들도 비가 내린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알지만 비가 내릴 때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산문으로 혹은 평상시에 말하듯 비가 내린다고 표현하면 뭔가 부족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이 시이고 그런 시라야 제대로 된 시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럴 여유가 전혀 없다. 시가 실종된 것이다. 너무 명확한 사건마저도 애매한 말로 비트는 사회에서는 시가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다.
이 책은 중국이나 대만의 정객들이 다른 나라와의 외교 무대에서 한시나 중국의 고전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전후맥락에 맞춰 설명하고 있다. 더욱 좋은 것은 그런 짧은 구절의 전체 원문을 수록하여 원문의 전체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중국의 고전이나 한시에 대해 문외한이거나 한문이나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쉽게 번역해 놓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중국의 정치상황이나 한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가 우리나라의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김득신은 본인이 우둔했기 때문에 가장 뛰어난 『사기』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었고 황상은 스스로 우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약용의 제자가 되어 문재가 빛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메이저 대학 출신이 아닌 경우 공부를 나중에 열심히 해서 관련분야에 정통한 경우 누구나 쉽게 그 분야를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람이 다시 메이저 대학의 교수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메이저 대학의 가장 문제점은 절대로 6두품이나 서얼들은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이저 대학을 가지 못한 학생들의 문제점은 공부란 고 3에서 끝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메이저 대학에 진출하지 못한 열정과 능력을 갖춘 교수는 자존감이 낮고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낮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거의 아무도 그런 고충을 몰라준다. 우리나라의 대학 서열화의 문제는 단지 국가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에 있는 교수들과 학생들 모두를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는데 있다.
이 책은 재생종이로 만들어졌는데 연예인의 가십거리나 몸짱을 만드는 비결 따위를 싣고 있는 잡지들은 최고급 종이로 만들고 두 번, 세 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이런 책들은 재생종이로 만든다는 것은 왠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백 번 이해하지만 이런 책들은 보다 깨끗하고 밝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도록 재생종이로 만들지 않고 ‘그냥’ 종이로 만든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첫댓글 와 ! 기막힌 서평입니다.
이런 것이 서평이구나 ~ 감동입니다.
결코 아무나 쓸수 없는 장르입니다.
한시미학산책을 읽다 읽다 몇 페이지도 못읽고 덮어논 상태입니다.
서평을 쓸려면 책 한권을 다읽어야 하고 또 연구를 해야하고, 에고 무척 고된 작업입니다.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번 통화 이후로 해 주신 좋은 말씀들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 분 책은 번역도 잘 되어 있고 한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있으시기에 읽으면서
독서의 참맛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한시를 연구하고 공부하고 몸과 마음으로 익힌 흔적들이 책 행간에 묻어나더군요.
앞으로는 자주 이 공간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네 서평은 정독을 하면서 읽어야 하지만 또 그만큼 보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처럼 삶이 숙성되어 무르익어야 할 텐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