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왜곡한 산청과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포항시 비교
필자가 생각나는 포항의 유명한 장소는
① 포항제철,
② 보경사,
③ 영일만,
④ 송나라 왕안석의 청묘법(靑苗法)을 반대하다가 고려로 오신 시조 할아버님이 처음 기거하신 장소 기계이다.
또한, 포항하면 산업화의 상징 철강의 도시이다.
이러한 포항에서
의학 인물을 조명하여
인문학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그 인문학의 중심에는
석곡 이규준 선생이 있으며,
포항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석곡 선생을 잘 모른다.
필자처럼 의학을 공부하고,
의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석곡 이규준 선생을 알고 있다.
필자는 박사과정에서 석곡 선생에 대하여 공부했다.
석곡 선생은 조선 말기의 의학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기록된 석곡 선생 설명문을 살펴 보자.
자는 숙현(叔玄), 호는 석곡(石谷). 경상북도 영일 출생. 원래 유학자로서 경사자집(經史子集)에 능통하였다. 그러나 송유(宋儒)들의 『경서』 소주(疏注)를 그대로 지키려 하지 않고, 주로 한당고유들의 주석을 존중하여 스스로 『육경소주』를 산정(刪定: 쓸데없는 글귀를 다듬음)한 『육경주』를 편술하였다. 그밖에도 『경수』·『전례』·『논어』·『효경』·『당송고시』·『후천자』 등을 산정하였다.
명말 청초에 중국에 와 있던 야소회사들이 편술한 한역서 등을 읽고 서양의 역법(曆法)을 논한 『포상기문』, 수학(數學)을 논한 『구장요결』을 발표하였으며, 그밖에도 『신교술세문』·『석곡산고』들을 세상에 전하였다.
후년에는 의학연구에 전념하여 『황제소문절요』·『본초』와 『동의보감』을 다시 연마한다는 뜻에서 『의감중마』 발표.
의학의 연구에 있어서도 송의(宋醫)들의 전통을 이어온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의 한 사람인 주단계(朱丹溪)가 주창한 “양은 항상 남음이 있으나, 음은 항상 부족하다(陽常有餘 陰常不足).”는 설에 반하여 “양은 항상 부족한 것을 걱정하고, 음은 항상 남음을 걱정한다(陽常患不足 陰常患有餘).”라고 하여 주단계가 주장하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음을 보하여 허화를 내리는 방법)의 법을 배척하고 양을 도와야 된다는 부양론(扶陽論)을 제창하였다.
포항시는 석곡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
가장 먼저 고증된 문헌을 바탕으로
① 그의 생애를 조명하여,
② 포항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그 후
③ 석곡도서관
④ 석곡테마공원을 건립하였다.
향토 문학인이
⑤ 석곡 일대기를 간행하여
⑥ 석곡 일대기 출판기념회를 개최하였다.
뿐만아니라
⑦ 연극,
⑧ 무술대회,
⑨ 가장 행열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하였다.
필자의 고향은 산청이다.
천혜의 자연 환경 지리산이 있으며,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 내려와
경호강이 되어 남강으로 내려가고,
골짜기마다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산청군청은
산청을
한의학 성지라고 주창하고 있다.
그런데 산청군수와 담당자들은
태어나지도 않은 류의태를
산청의 의학인물로 만들어
神醫로 널리 알리고 있고,
산청에 온적 없는 허준 선생이 산청에 와서
류의태로부터 의학을 배웠고,
산청이 배출한 인물이라며
한의학성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억지 주장의 한의학성지이다.
이것은 한의학 성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필자는 주장하는
한방성지 조건과
거짓을 바탕으로 하는
산청군청의 한방성지 조건과 다르다.
의사학을 공부한
필자가 주장하는
한의학성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명의가 탄생하여 의술 활동한 지역,
• 명의가 의학 분야의 태두(泰斗),
• 명의의 의학사상
• 명의의 의학정신
• 명의의 치법이나 건강관리방법 기록
• 명의의 전설 채록되어 전해져야 한다,
• 주변에 많은 약초 자생
산청은 이러한 조건에 매우 부합하다.
명의가 활동했고, 그 명의가 하나의 질병 태두이며, 의학사상과 의학정신이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유의(儒醫) 전범(典範)을 제시하여 참된 의사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조선의 의술 윤리 도덕을 확립한 인물로 그의 치법과 간강관리법,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또한, 남한에서 가장 많은 약초가 자생하는 지리산이 있다.
필자가 이 글에서 포항을 언급하는 것은
포항시 시장 및 공무원과 내고향 산청 군수와 문화관광을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비교하기 위함이다.
먼저 산청의 인물을 살펴보자,
산청에는
① 우리나라의 의복 혁명을 가져온 문익점 선생,
② 누란의 위기에 나라를 지키기
수많은 의병장을 배출시킨 남명 조식 선생,
③ 질병 예방을 주창했고,
전염병 홍역이 창궐하자
국민들을 지키키 위하여
홍역치료의 태두(泰斗) 유이태 선생
④ 빨치산이 준동(蠢動)했을 때
산청을 지킨 강삼수 경위가 있다.
산청군청은 문익점 선생이나 남명 선생은 잘 알리고 있다.
의학사를 공부한 필자가 보는
산청의 의학 인물은
홍역학 태두 유이태(劉以泰)이다.
그런데 한의학성지를 표방하는
산청군청은
산청을 대표하는 의학 인물로는
유의태(류의태,柳義泰)라는
인물을 알리고 있다.
류의태(柳義泰)는 누구일까?
류의태(柳義泰)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동의보감 편찬자 허준 선생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유의태(류의태,柳義泰)가 실존인물이까?
산청 출신으로 의술 활동을 했던 인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柳義泰는 실존 인물 산청의 전설적인 유이태의 이름을 전해 듣은 노정우(경희대학교 한방병원장 역임) 박사가 진주 근처의 대성 ‘진주유(柳)’, ‘의로울 의(義)’, ‘클 태(泰)’로 허준 약전에 발표한 이름이다. 이글을 읽은 드라마 작가 이은성이 드라마와 소설에 허준 선생의 스승으로 발표하여 알려진 허구 인물이다.
산청 동의보감촌에 가면
허구의 인물의 유의태(류의태,柳義泰)를 기리는
① 가묘를 조성하고,
② 행적을 기록한 묘비를 세웠다.
뿐만아니라
③ 동상과
④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것도 모자라 박물관에
⑤ 영정을 전시하기도 하였고,
⑥ 산청의 의학인물로 선정하여
⑦ 홈페이지 게시,
⑧ 홍보 카다록에 표기,
⑨ 설화집을 간행하였다.
⑩ 실존인물 전설이 전해지는 약수터를
柳義泰약수터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방축제 때에는
⑪ 류의태를 기리는 숭모제를 지내고 있다.
산청군청은 드라마와 소설로
류의태가 널리 알려졌다고
① 출생지,
② 생몰연도,
③ 의술 활동지를 지어내고,
④ 세미나를 개최하여
⑤ 유적지를 만들고,
⑥ 설화이야기 책을 간행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⑦ 실존 인물의 사적(백과사전 내용, 유적지, 설화)을
류의태 사적으로 바꾼 책까지 간행했다.
이것 뿐만 아니다.
① 산청에 온적도 없는 허준 선생이
② 산청에 와서 류의태로부터 의학을 배웠고,
③ 산청에서 의술을 수련했다고 알리고 있다.
④ 허준 선생의 할머니 친정이
경기도 시흥군 서면인데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정태라고 알리고 있다.
이와 같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전현직 산청군수에게
① 면담 요청 편지,
② 왝곡된 역사 바로잡자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산청군수는 만나자는 답변이 없었다.
역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화관광을 담당하는 부서장에게 군수 면담을 요청했다. 그들은 답변이 없다..
담당부서인 문화관광과장, 항노화국장, 항노화과장, 산림녹지과장에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자고
①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② 편지를 보내고,
③ 전화로 말을 했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잡지 못하겠다.”라고 했다.
문화관광분야를 관장하는 산청군청 공무원, 문화해설사, 문화관련 관계자들에게 무료강의를 해 주겠다는 제안 편지를 두번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다.
산청군청의 상급 기관 경상남도, 행정안전부에 민원 편지를 보냈다.
그들은 이 민원 편지를 산청군청에 보냈다.
산청군청은 이 민원 편지를 받고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았다.
이것이 내 고향 산청군수와 담당부서 공무원들의 행태이다.
산청군은 역사를 왜곡하였고,
포항시는 사실을 기반으로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였다.
먼저포항시청과 산청군청을 표로 비교하여 보자.
구 분 | 포항시 | 산청군 |
의학인물 | 이규준 | 류의태 | 유이태 |
실존 여부 | 실존 | 허구 | 실존 |
출생지 | 포항 | 소설 | 산청 |
조명 세미나 | 개최 | 개최 | 배제 |
유적지 조성 | 조성 | 조성 | 배제 |
지방자치단체 홍보 | 홍보 | 적극 홍보 | 배제 |
지방자치단체 지원 | 지원 | 적극 지원 | 배제 |
독지가 지원 | ? | 허락 | 불허 |
발전안 제시 | ? | 허락 | 반대 |
역사 왜곡 | 없다 | 적극 개입 | 없다 |
전현직 군수와 실무를 담당했던 전현직 문화관광과장, 동의보감사업소장, 항노화국장, 항노화과장, 산림녹지과장들 이 왜곡하여 만든 허구인물 류의태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했던 몇가지 일들을 증거 사진으로 보자.
• 류의태 영정(동의보감촌 한의학박물관 전시)
• 류의태 가묘와 류의태 묘비(동의보감촌 소재)
• 류의태 동상(동의보감촌 소재)과 류의태 숭모제
• 류의태 기념비(동의보감촌 소재)
• 류의태 해부동굴(동의보감촌 소재)
• 류의태 신의정(동의보감촌 소재)
• 류의태 동의보감촌 안내판(동의보감촌 소재)
• 동의보감촌둘레길 류의태약수터 표기
• 류의태 약수터(왕산 소재)
• 류의태 약수터 안내판(왕산 소재)
• 류의태 약수터 이정표(생초IC입구)
포항시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했던 일들을 사진으로 보자.
이 사진들은 불로거에 포스팅된 석곡 선생 사진들이다.
• 석곡 생애 조명 세미나
• 석곡 초상화 전시
• 석곡 이규준 탄생의 고장 이정표
• 석곡 도서관
• 석곡 테마 공원 안내판
• 석곡 묘소가는 이정표
• 석곡 안내판
• 석곡일대기 발표회
• 석곡 인문학 어울림 행사
• 석곡 연극제
• 석곡 축제
• 석곡 가장행열
• 석곡도서관과 테마공원 지도
산청군수와 담당 과장들은 적반하장이다.
그들은 왜곡된 내용들을 절대로 바로잡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유이태(劉以泰)가 입신양명의 뜻을 접고 의학에 입문하여 의원이 되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귀천, 친소, 빈부, 민관을 차별하지 않으며 인술(仁術)을 펼친 산청군에는 많은 유적지가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산청군 어디에도 유이태 유적지 표지석은 고사하고 안내판이나 찾아가는 이정표 하나 없다. 코로나 19와 같은 공포와 죽음을 동반하는 전염병 홍역치료발상지 안내판을 설치하겠다는 독지가가 공문을 보냈더니, 산청군수는 홍역치료발상지 안내판 설치 불가 공문을 보내왔다. 독지가가 실존인물 약수터 표지석과 안내판 설치를 요청하는 산청군청에 공문을 보냈다. 산청군수는 이것 마져도 불가 공문을 보냈다. 필자가 산림녹지과장에게 전화하여 약수터 이름 변경 안내판을 설치하자고 하니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다. 또, 항노화과장에게 전화하여 동의보감촌에 있는 왜곡된 조형물을 철거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니 절대로 안된다고 말했다.
왜곡된 것을 널리 알리는 산청군청 담당 공무원들과
올바른 역사를 알리고 선양하는 포항시 공무원과 차이다.
산청군의 전현직 군수와 실무를 담당했던 전현직 문화관광과장, 동의보감사업소장, 항노화국장, 항노화과장, 산림녹지과장은 자신들이 지어낸 거짓이 영원히 묻힐 것을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왜곡한다고 왜곡되어질 수 없다.
누군가에 의하여 반드시 밝혀짐을 몰랐을까?
1995년부터 2020년에 산청군청에 재직했던 산청군수와 실무를 담당했던 문화관광과장, 동의보감사업소장, 항노화국장, 항노화과장, 산림녹지과장은 역사를 왜곡한 장본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갈
미래의 후손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알려주기 위하여 이글을 썼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올바른 공직자가 아닐까?
그리고 국민을 위한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