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도 및 대덕도를 가다
-관광휴양섬으로 변모된 이수도, 해안둘레길 3.7km
-무인도인 대덕도 해안절벽 장관
남도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멀고 먼 길을 봄길 따라 남으로 간다. 남녘에는 봄소식이 완연하다고 한다.
섬여행동호임들과 함께 1박2일 일정으로 남녘 섬들을 찾아 떠났다. 남부터미널에서 6시 40분 출발, 거의 6시간 가까이 걸려 거제도 장목항에 도착했다. 장목항에서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집으로 유명한 이생진 시인, 통영인뉴스 김상현 기자 등과 합류했다.
장목항 선창식당에서 참가자미, 키조개무침, 개조개탕 등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여행 다닐 때 마다 느끼지만 남도음식들은 참으로 맛깔스럽고 푸짐하다. 식당 앞 위판장에 가득한 개조개 및 키조개들이 여행객들의 호주머니를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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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후 먼저 이수도로 향했다. 이수도(利水島)는 거제도 북동쪽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이다. 김영삼 대통령 생가 및 기록전시관이 가깝고 흥남해수욕장 인근 시방마을에서 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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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마을 근처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인 ‘매미성(城)’이 있다. 바닷가에 세워진 우람한 성벽. 마치 중세유럽의 어느 고성을 연상시키는 성벽이다. 처음엔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벽이 아닌가 착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장목면 복항마을 해안에 자리한 ‘매미성’이 만들어진 배경은 2003년 거제지역을 할퀴고 간 태풍 ‘매미’다. 이 성을 쌓은 성주(城主)는 백순삼씨. 그는 10여 년째 지금도 주말과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장목면 복항마을 해안가를 찾아 홀로 성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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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거제신문 2013년 9월 12일자 기사에 의하면, 백 씨는 처음부터 성을 쌓을 생각은 아니었단다. 자신이 가꾸던 텃밭이 2003년 추석날 불어 닥친 태풍 ‘매미’로 인해 폐허가 된 뒤부터 텃밭을 보호하는 축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문득 성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축성을 시작했고 태풍 ‘매미’로 인해 만들어진 탓에 성 이름도 ‘매미성’이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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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도움도 없이 10여 년 동안 쌓은 성은 높이 8m에 길이는 110m가 넘는다. 50kg이 넘는 화강암을 매주 30개 가까이 쌓아 올려 지금은 1만개가 훨씬 넘는 화강암이 성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겨 축성엔 ‘달인 수준’이 된 백 씨지만 처음에는 주말마다 되풀이 된 힘든 노동에 주말 밤이면 ‘몸살’을 앓는 일이 많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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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성 바로 앞바다에는 이수도가 지척이다. 시방선착장에서 불과 7분 정도면 건너간다. 한 송이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운 섬 이수도. 면적 0.384㎢, 해안선 길이 3.7km, 인구는 43세대 78명 정도이다.
진해에 살고 있다는 이수도 출신 향우회장 윤찬식 씨가 직접 내려와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다. 윤씨는 해군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간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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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도는 이물도(利勿島) 또는 학섬이라고도 부른다. 멸치잡이 권혁망(權現網)이 들어와 마을이 부유해지자 바닷물이 이롭다 하여 ‘이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섬의 형태가 학을 닮았으며, 구릉이 많고 평지는 1% 정도에 불과하다. 물이 풍부하여 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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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이루어진 지역 나머지 해안은 모두 암석해안으로 곳곳에 해식애가 발달되어 있다. 해식애는 큰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해안가에 나타나는 급경사의 해안절벽을 말한다. 이곳에서 갯바위 낚시를 많이 한다. 섬 내에서 고려시대 토기편 다수와 신석기 시대 토기편 1점이 발굴되었고, 8.15광복 직전에 앞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일본의 보물 수송선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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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도에서는 특히 ‘방시만노순석(防矢萬弩循石)’ 전설이 유명하다.
이수도와 마주해 있는 언덕 마을은 시방(矢方) 흔히 살방이라고 부르는 데 마치 활을 쏘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수도와 시방은 학과 활의 모양을 하고 있어 풍수지리로 볼 때 서로 겨누고, 막아야만 하는 운명 속에 놓여 있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두 곳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비석에 얽힌 사연부터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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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다녀보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그 섬 만의 고유한 말씨나 지명이름들을 만날 수 있다. 이수도 역시 마찬가지. 이수도 출신 윤찬식 씨는 '방시순석' 사진과 함께 이수도의 옛이름들을 재정리한 지도를 보여줬다. 도시화와 현대화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섬 사람들 만의 토박이 말씨와 이름들. 후손들이 소중히 보존해나가야 할 값진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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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 짐을 풀고 이수도 섬 산책에 나선다. 섬마을답게 골목길이 아기자기하고 이쁘다. 벽 곳곳에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운치를 더 한다.
골목길을 따라 좌측으로 조금 가면 이수도분교터를 만난다. 이곳은 과거 총 568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였는데 지금은 학생이 없어 어촌체험마을로 이용되고 있다. 자망체험, 문어잡이체험, 선상낚시 등 어업체험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에서 유일한 초등학생은 남학생 한 명 뿐인데 매일 배를 타고 시방마을 쪽 학교로 건너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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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공터에서는 마을사람들이 그물손질하기에 바쁘다. 주변해역은 대구의 산란해역으로 겨울철 대구잡이와 도다리, 전어, 병어, 오도리, 문어, 장어, 멸치 등 사계절 다양한 어종이 잡힌다. 겨울철 돔낚시로 낚시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않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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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길을 돌다 보면 좌측으로 거가대교가 가까이 보이고 그 중간에 대통령 별장인 저도 역시 눈에 들어온다. 다랭이논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섬에 물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논두렁 사이로 물이 솟아내린다. 농사지을 노동력이 부족해서인지 지금은 풀밭으로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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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위에서 갑자기 수십마리의 사슴 떼들이 달려내려온다. 방사된 사슴들이라고 한다. 목가적인 풍경이다. 해안산책길이 참으로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하다.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다. 어제의 육지생활이 까마득하다. 선경(仙景)에 들어온 듯 아름다운 바다풍경에 취한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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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전망데크도 세 개나 세워져 있어 잠시 쉬면서 경관을 즐기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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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거제도 대우조선소 건물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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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망데크에서 우측으로 비탈길을 오르면 3층 전망대가 있는 섬 최고봉에 이른다. 최고봉이라고 해도 불과 77.8m 높이.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트이면서 주변 바다와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자리가 좋아서인지 이곳은 마을공동묘지로 조성되어 있다. 최고의 명당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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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길 및 마을 뒷산 산책로 약 4km 내외 걷는데 천천히 즐기면서 걷다보니 소요시간은 약 1시간 반 정도. 그러나 이런 산책에서는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주변 경치에 취하다 보면 몇시간이면 어떠랴. 쉬면서 걷고 걸으면서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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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다시 산책에 나선다. 바다 야경을 보기 위해서다. 이 섬에서는 특히 거가대교 야경이 절경이다. 다리 위 점멸하는 불빛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책로 전망데크나 뒷산 정상까지 가면 좋지만 어두운 밤길이라 가깝게 마을 뒤 새로 조성된 펜션단지 쪽으로 올라가 본다. 펜션 마당 데크에서 거가대교 야경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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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뒷산은 일출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다음 날 아침 6시경 일어나 뒷산을 오른다. 오늘 일출시간은 6시 40분 경. 바다 위에서 솟아오르는 해가 장관이다. 떠오르는 해를 가슴에 가득 안고 이수도에서 또 하루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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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도는 그동안 산책로 및 등산로 정비, 출렁다리 및 해안전망대 설치, 사슴먹이체험장, 마을벽화작업, 해안 낚시터 조성 등 ‘찾아가고싶은 섬 가꾸기 사업’을 추진해왔다. 행안부의 2013년 테마섬 발굴사업계획에 따라 전국의 19개 시·군·구 186개 도서 중 시·도에서 추천한 9개 섬 중에서 핵심테마의 독창성, 지역경제 파급효과 등을 심사해 총 5개소를 선정했는데 이중 경남에서는 거제시 이수도와 통영시 추도(楸島)가 '찾아가고 싶은 5개 섬' 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됐기 때문이다. 이들 2개섬은 사업기간중 국비 40억 원 등 53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기간은 2017년 4월 10일까지였다. 또, 2019년에는 ‘어촌 뉴딜300사업’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수도는 이를 계기로 마을 및 해안둘레길을 정비하는 등 관광휴양섬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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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박2일 일정의 마지막 코스는 무인도인 대덕도. 거제도 대포항에서 낚싯배로 10여 분 정도 가면 장사도를 지나 대덕도에 이른다. 대덕도는 무인도로 특정 개인의 사유지다. 대덕도에 입도하기 위해서는 섬 소유주로부터 입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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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 모양의 섬에 도착하면 우측으로 먼저 동굴 모양의 해벽이 보이고, 비탈길을 조금 오르면 섬 중앙에 아담한 관리건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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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건물 뒤쪽은 까마득한 절벽. 좌측으로 매물도와 소매물도, 갈매기섬 홍도, 중앙에는 자사리도, 국도, 소지도 등도 눈에 들어온다. 또, 뒤로 돌아보면 필자 일행이 들어온 대포항 방향으로 대소병대도, 가왕도도 시야에 잡힌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갯바위낚시를 즐기는 낚싯꾼의 모습도 보인다. 참 여유로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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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좌우 비탈언덕을 올라가 본다. 섬 모양이 웅장하다. 절벽 중간에 우람한 선돌바위도 보인다. 능선 곳곳에는 동백숲이 늘어서 있고 억새밭도 장관이다. 정상 부근에는 소나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다. 아무도 없이 홀로 풍파를 견디며 떠 있는 섬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 하다. 섬 비탈에는 묘지도 눈에 띈다. ‘학생경주이공지묘’라고 쓰여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살다 간 분의 묘지인가? 아뭇튼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다. 통영인뉴스 김상현 기자는 대덕도를 ‘별 기대없이 갔던 섬, 그러나 마음을 빼앗긴 섬’이라고 표현한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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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정도 아름다운 대덕도를 둘러본 후 다시 육지로 돌아가면서 혼자 생각해본다. 섬에 가면 왜 마음이 설레고 그리움이 깊어질까? 이렇게 멀고 먼 고도(孤島)를 왜 그토록 가고싶어하는 것일까?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 싶어 섬에 가는 건 아닐까?
*이수도 가는 방법은...
거제도 시방선착장에서 08시부터 19시까지(6-8월의 경우) 거의 2시간 마다 출항한다. 주말에는 승객이 있을 경우 수시 출항하기도 한다.(여객선 전화 010-7441-8085). 이수도의 숙박 및 식당은 1박3식을 원칙으로 하며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1박3식 가격은 주말은 1인당 8만원, 주중은 1인당 7만원이다. 가고파민박(010-4480-1197), 어부의 반찬(010-4397-00814), 학섬펜션(010-4433-5933) 등 민박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