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慶尙道의 경주(慶州) 상주(尙州)의
慶과 尙은 무슨 뜻이었을까?
- 尙은 가죽배 마상이(馬尙船) 카약을 慶은 대왕고래를 의미 -
- 조선왕조 태종 이방원은 신라의 태종 김춘추의 혈통을 강조 -
- 慶會樓(경회루) 돌기둥들은 신라 문무대왕 해중대룡 구들고래인
감은사(感恩寺) 금당(金堂)의 용구(龍溝)를 계승 -
신라와 가야 지역의 중심지 경상도 '慶尙道'는 낙동강을 좌우로 경주(慶州)와 상주(尙州) 두 고을의 慶과 尙을 따온 명칭이다. 상주(尙州)는 왜 尙자 칭호가 들어가 있으며 경주(慶州)는 왜 慶자가 들어가 있을까? 그것은 각각 신라와 가야의 특징을 드러내는 글자로 해석될 수 있다.
가야연맹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물길 나라의 연대였다면 신라는 동해안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동북아 태평양의 고래토템의 나라였다. 삼한과 백제 고구려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뒤에 고려말 조선초 문신 권근(權近, 1352~1409)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그곳 황제 앞에 신라(新羅)를 의미하는 '馬韓'을 주제로 시를 지을 때에 신라의 뜻으로 '고래 노는 바닷가'를 의미하는 '경해빈(鯨海濱)'으로 표현했다.
<馬韓(마한)>
渺渺馬韓地, 區區鯨海濱。 三方初割據, 一統竟和親。
작다란 마한(馬朝) 땅은 곳곳이 고래 노는 바닷가(鯨海濱)라오.
처음엔 세 방면으로 분할되었더니 통일하여 끝내는 화친하였소.
<조선왕조실록> 태조편, 권근(權近)의 시 마조[馬朝].
신라를 '고래 바닷가' 즉 '경해빈(鯨海濱)'이라고 한 것은 고래나루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 의미는 문무대왕의 비문에 나오는 고래나루를 의미하는 '경진(鯨津)'과 이어져 있다.
백제가 곰나루로 도읍을 옮겼지만, 백제에도 신라처럼 고래나루 숭상이 있었다. <고려사>에서 송나라에 소개된 삼국시대 백제 또한 '고래나루'가 왕실의 종교적으로 숭배되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필자의 앞선 글 <1만년 고래나라> 신라의 '고래나루' 경진(鯨津)과 백제의 '곰나루' 웅진(熊津) 에서 밝힌대로 <고려사 > 성종(成宗) 2年(983년)에 송나라에서 사신이 왕을 책봉하는 일로 고려 땅에 와서 고려왕에게 조서를 올릴 때 '고래나루'가 옛 백제 왕실의 숭상을 받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其有三韓舊域, 百濟遺封, 地控鯨津, 誠尊象闕
옛 삼한 땅 백제에 고래나루가 있어
대궐의 숭상을 받고 있었다. <高麗史>
고래나루라는 말은 문무대왕이 분골하여 동해바다 해중대룡이 되겠다는 바로 그 수중능이다. 백제에도 고래나루가 있었듯이 모든 강과 바다의 나룻터는 고래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고래나루와 관련된 가죽배의 역사에서 상주(尙州)의 尙자는 가야를 의미하고 경주(慶州)는 신라를 대변한 慶자로 대표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들 두 글자 慶과 尙은 각각 '고래'와 '카약'에 관련이 있다는 풀이를 할 수 있다.
가죽배 역사에서 흔히 통나무배로 알려진 마상이(馬尙船)는 낙동강 유역에서 많이 이용되었던 것임을 고고학적 유물들에서도 드러난다. 그러한 마상이는 광의적인 의미에서 통나무배 뿐만이 아니라 가죽배 종류도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상이(馬尙船)는 같은 한자지만 마상선(馬尙船)으로도 발음하고 이어 마상선(麻尙船), 마상선(亇尙船)이라고 한자가 조금씩 다르게 표기되기도 했다.
마상선(麻尙船)이라고 할 때의 麻는 대마 즉 삼줄기 마른 대공들로 엮어 만든 배라는 의미가 된다. 마상선(麻尙船)은 남미 잉카문명 지역의 티티카카 호수(Titicaca Lake) 인근 우로스(Uros) 부족의 토토로(totora) 갈대로 만든 갈대배(reed raft)와 같은 일종의 '삼줄기'로 엮어 만든 띠배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