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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주제와 두번째 주제의 문제점들이, 현대 사회의 권력자인 자본가와 기업들을
만나면서 거의 모든 사회 문제들에 대한 근본 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현대사회의 리더인 기업에 영향을 받으며, 기업의 생리를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며
자라나고 있다. 우리 사회 모든 공동체들이 기업의 생리를 따라하기때문에,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그 관념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진 우리는 우리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유도 모른채, 내 인생은 '나의 의지'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런 개인들이 모인 우리사회는 서로의 목적이 서로 충돌할때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겨난다.
개인간 범죄에서 부터, 사회와 개인간의 갈등, 그리고 국가들간의 전쟁까지도 말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잘못 평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 이다.
우리는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군사적 독재 세력들로 부터 치열하게 맞서 싸워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자평하면서 살고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정치 권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정치적 사회가 전부는 아니다.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이 있고, 주된 활동무대인 직장과 학교가 있다. 이 것외에도 여러 사회
공동체가 있을 수 있지만, 현대 사회의 가장 핵심인 기업에서의 민주주의는 이룩하지 못했다.
기업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대통령도 우리가 직접 뽑고, 국회의원, 시의원, 구청장과 구의원까지도
우리가 직접 선거를 통해서 선택을 하지만, 기업에서의 CEO 를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선택권이
우리에겐 없다. 기업 단위의 사회에서는 주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기업에서의 주권은 대주주에게 있다.
즉 돈이 많은 사람이 기업의 모든 권력을 독점할수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은 나의 생존에 큰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군사력을 가진 왕이 나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수 있는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를 말도 안되는 독재사회라고 비판하며, 현대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저급한 정치 체제와 국민들이라고 비난 한다. 김일성으로부터 시작해서,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권력이 독재자와 그 후손에 의해 지배당하는, 민주주의가 닿지 않는
마지막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권력을 세습하는게 북한 뿐일까?
우리는 북한이 권력을 세습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을 아끼지 않지만, 우리 기업들이 회사를
자신들의 자녀에게 물려주는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기업뿐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공동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일정 세금을 낸다면 합법적인 일이고, 비난할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 재벌들이 자녀에게 상속하는 방법은, 가능한한 세금을 내지 않고, 불법과 비논리적
비이성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권력을 세습하게 된다.
복잡한 지배구조, 순환출자, 지주회사 전환, 일감 몰아주기, 분식회계, 합병등등 이루 말할수
없이 모든 탈루 방법을 동원하여 알게 모르게 이루어진다. 이를 국민과 정부는 방관하거나
도와주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는 국민과 주주들 그리고 직원들이 입게 된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 그리고 때로는 불법을 저지르지만,
자녀들의 진급도 역시나 비이성적이다. 우리는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입사후 7년만에 전무로 진급하지는 못한다.
(재벌 3세의 평균 임원 진급 기간이 7년이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방식도 그렇고, 직급이 높아지는 방식도 마찬가지이고, 어느것 하나
논리적, 상식적, 합법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고
문제삼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의 세습체제를 몰상식하고 비이성적인 나라라고 이해를 못하듯이,
북한 사람들도 우리 나라의 기업을 비이성적이고 이상한 사회라고 비난하는게 당연한
이치가 될것이다. 사실상 독재 국가와 다를바 없는 모습이다.
일개 기업의 체제를 한 국가의 정치 체제와 비교하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국가 단위의 정치 사회라기보다는 기업 중심 사회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미 기업들은 한 국가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끼치는 시대가 되었다.
애플의 시가 총액은 지난 2022년 4000조원을 돌파해, 세계 8위 경제규모의 이탈리아 GDP 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세계6위 영국의 총리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미 수많은 기업의
멘토이자 배워야할 인물로 꾸준히 회자되고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GDP 는 약 2600조원이고, 한국증시 기업들의 시가 총액 총합은 5000조원 정도이다.)
* 미국 증시 1위기업 엔비디아의 시가 총액은 7000조원,
** 세계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운영자금은 1경 9000조원
기업이 현대 권력의 핵심이라는 예는 아주 쉽게 찾아볼수 있다. 지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의 모습을 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린 아이들까지 가족 단위로,
가벼운 마음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물러나라는 의미의,
어떻게 보면 '반역'의 행동을 하는 집회라고는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즐겁고 평화로운
분위기 였었다. 집회 참석자들에게서 두려움이나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었다.
권력자로부터 나의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생각을 했었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집회 현장을 생각해보자,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었다. 그 당시 참가자들은 독특한 마스크를 쓰고
나왔었는데, 영화 V for Vendetta 에서의 '가이 포크스' 마스크였었다.
부당한 독재 권력에 저항하기 위한 의미의 마스크이자, 더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였었다. 대한 항공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들은, 두려웠기 때문에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나왔었던 것이다. 자신이 집회 참석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회사 관계자를
통해 알려진다면, 나의 회사생활이 더이상 어려워질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나의 생존을 위협할수 있는, '권력자'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누가 진정한 '권력자' 인지 서열 1위의 리더인지 본능적으로 알수 있다.
어린 아기들도 가족들간 모임에서 누가 서열 1위인지 금방 알아챈다는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리더 중심의 승자 독식체제를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정치 권력자를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반대집회에 참석할수 있어도, 기업의
오너일가 갑질에 대한 반대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존을 걸어야 하는 것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현대 사회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민주주의 시초라 불리는 프랑스 혁명은 처음으로 민중이 독재 권력을 무너트리고, 민주주의를
달성한 위대한 사건이라고 우리는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배경과 흐름을 본다면,
권력의 중심축이 기존 군사력에서 '자본력'으로 이동한 사건이라고도 볼수 있다.
산업 혁명이후, 자라나기 시작한, 상업, 금융업, 산업 자본들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반면에,
왕 중심의 기존 권력은 제자리 걸음이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권력은 점점 커지고,
이 자본가들의 커진 정치적 욕구가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게 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여자와 노예의 인권은 없었다. 혁명기간에 여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계몽사상가들조차 여전히 여자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군사력에 의한 독재가 자본에 의한 독재시대로 변모하는 과정. 그나마 중산층의 등장으로
전보다는 살기 나은 세상으로 생각하지만, 하위 50% (무자산)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세상이었다.
(프랑스 혁명 전, 후 부의 분배 비율은 변함이 없었음. 상위 10% 가 전체 부의 90%를 차지,
다만 부의 구성이 기존 농지 위주에서 부동산, 산업자본, 금융자본으로 구성이 변화되는 과정.
토마피케티, 21세기 자본)
현대 사회는 자본력을 가진 자본가가 다스리는 사회이다. 과거 군사력을 가진 군주제의
왕이나 황제가 다스렸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인 리더중심 승자 독식체제의
세계관이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다만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그리고 세계 역사에서 가장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면서
우리의 생각은 많이 바뀌게 된다. 예전 군주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라고 말이다. .
이에 더해서 현대의 기술 발전은 우리의 눈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현대 사회는 '기술 도취 사회'라고 일컫어도 과언이 아니다. AI, 자율주행, 우주여행 등등
혁신이라고 불리는 첨단 기술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흥분시키게 만든다. 우리는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고, 과거와는 분명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믿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 기술이 우리의 삶을 당연히 과거의 삶보다 나은곳으로 데려다줄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불행하게도 모두 다 헛된 착각일 뿐이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부 격차가 더 커지면서 공동체가 사라지고 사회적 갈등이 커진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사람이 누구이고, 우리 삶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의 '마녀 사냥' 과 현대 사회의 '혐오 범죄' 모두 같은 맥락의 사회적 갈등이다.)
리더 중심 승자 독식체제의 세계관을 가진 인간은, 현대 사회 리더인 기업과 자본가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고 배우며, 자라나게 된다. (첫번째 주제)
직접적으로 배우는것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생리에 영향을 받은 우리 사회 모든 공동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몸에 익히게 된다. 가정과 학교 교육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업과 자본가들이 하는 행동들을 그대로 따라하며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부동산, 주식 투자, 끊임없는 혁신과 성장, 자기계발, 인생 경영 등등 우리가
추구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기업이 처음 시작했고, 계속 추구하는 것들이다.
더 불행한 것은 우리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도 모른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은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 (관념)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주제)
이렇게 자연스럽게 기업주의적 사고 방식을 몸에 밴채로 자라난 개인들은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살아가며, 개인과 개인들간의 충돌(범죄), 개인과 사회와의 갈등 더 나아가서는 국가간 전쟁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 거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형성하게 된다.
기업주의적 사고 방식이란, 기업의 생리를 그대로 배우게 된 인간에게 나타나는 생각들이다.
기업의 첫번째 조건이자 0법칙은 '이윤 추구' 이다. 어떠한 기업도 '이윤 추구' 라는 대전제를
벗아날수 없다. 여러 기업들의 광고에서, '사람이 먼저다', '꿈이 미래를 만듭니다',
'Green tommorow' 등의 문구를 볼수 있다. 또는 기업의 비전이 "인재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것" 이라고 하는것들도 흔히 볼수 있는
문구이다. 하지만 모두 '돈을 먼저 벌고, 그 다음에 사람이 먼저다' 라고 생각하는게 맞다.
문제는 이러한 이윤추구의 목표가 기업에게서만 머물지 않고, 우리 모든 사회에 지배적인
생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이윤 추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은 당연히,
결과 중심주의, 실용성, 생산성, 경제성을 모든 행동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들도 그렇다.
실용적이지 못하거나 가성비가 없다면 쓸모 없는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일의
과정보다는결과를 더 중요시 여기게 되고, 경쟁과 능력을 중시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원래 본성은 이것과는 다르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실용성, 가성비 보다는 가치와 생명이 더 중요하다.
사실 기업주의적 사고 방식은 우리 생활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가장 기본인 가정부터 생각해보자. 현대의 일반적인 가족상은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둘의
4인가족이다. 하지만 이렇게 핵가족화 된것은 인간역사에서 불과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생산성이 없는 노인을 부양하지 않는 가장 효율적인 가족형태라고 만들어진 모습일 뿐이다.
현재는 4인가족 마저 줄어들고 있다. 가장 많은 가구수를 차지하고 있는것은 1인 가구이다.
'일하기 바쁜데, 무슨 연애냐', '회사가 내 연애에 1도 도움이 안되는구나'. 회사를 다녀본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일이다. 우리의 직장은 우리가 직장에서 모든것을
쏟아붓기를 바란다. 다른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리고 또 이렇게 키워졌다.
'꿈을 가져라', '비젼을 이뤄라' 등등,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꿈과 비전을 이루면서,
'그래서 결혼은 언제할건데?' '그래서 애기는 언제 낳을건데?' 라는 질문이 되돌아 온다.
불과 30년전만해도, 한가정에서 남편만 일을해도 먹고 살수 있었다. 그리고 남는돈을
저축하면 집을 장만할수도 있었다. (1980~90년대 은행이자는 적어도 10% ~ 40% 까지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맞벌이를 하더라도 집을 못산다. 맞벌이에 은행 대출까지 받고서야 한 가정이
생활하면서 집을 장만할수 있는 현실이다. 이런 경제적 상황은 육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경제적 상황 역시도, 우리가 묵인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기업과 정부가 만들어낸
현실이고, 이를 우리는 역시 용인해준다. 우리 사회 리더들이 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애기를 낳자마자 일로 복귀해야 하는 현실이다 보니, 아기는 태어난후 빠르면
6개월만에, 늦어도 1년후에는 엄마와 떨어져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엄마를 빠르게 직장으로 보내야하는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현대 사회 모습이다.
물론 동물들의 사회에서도 엄마의 부재중에는 이모와 고모가 육아를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은 가족, 즉 같은 운명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다.
업무적으로 아기를 대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사람의 감정을
잘 읽어낸다. 자기를 대하는 사람이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쉽게 알아낸다.
(내 아들은 2년간 베이비시터에게 키워졌는데, 그 분을 보고 싶어하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아기들은 적응력이 뛰어나서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키우는데 뭐가 문제야' 라고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키워낸 아이들이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성장하게 되는지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다하니까 괜찮다라는
말의 현실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소아 청소년 정신질환자수는 매년 늘어가고 있고, 그 연령대는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
아기로부터 가족을 뺏어간 우리 사회는 아기의 본성마저도 무시한다.
원래 아기는 먹고싶을때 먹고 자고싶을때 자야한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서 우리가 배운
육아상식은, 3시간마다 수유 그리고 먹놀잠, 먹놀잠이다. (먹고 놀고 잔다는 뜻이다.)
아기가 덜먹고 싶어해도, 산후조리원 선생님들은 젖병을 흔들어 아이의 모로반사를 일으켜,
억지로 적정 수유량을 다 먹인다. 적정 수유랑이 어떤 과학적 근거가 있는것일까? 전혀 아니다.
TV 나 유튜브에 육아 전문가들로 넘쳐나고 온갖 육아 지식과 육아 방법 그리고 육아템이 존재한다.
('역시 육아는 템빨이야'라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아무런 과학적, 실험적 근거가 없는 것들이
태반이고,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현대 산업 사회의 불과 30년도 안된, 그리고 극히 일부 국가, 유럽이나
미국 사회의 시험 결과가 있을뿐이다. 이 짧은 기간동안 사람의 본성이 무시되는 현대 특정 사회에서의
시험결과들을 기준으로 우리 아기들을 키워내고 있는것이다.
이런 모든 결과들로부터 '독박육아', '힘든 육아' 그리고 '육퇴' 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우리가 겪지 말아야할 것들을 겪고 있는 것이고, 이는 인간역사에서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은것이다.
전혀 당연하거나 올바르지도 않은 것이다.
아이들의 육아템이라고 말하는 수많은 육아 장비들과 장난감 그리고 책들도 역시
현대 산업 사회, 기업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결과물일 뿐이다.
(육아 문제에 대한 내용은 다른 글을 통해 더 다뤄볼 예정이다.)
효율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육아 방식에 대해서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거나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 적응하고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이렇게 해야만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수 있기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기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리더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어떻게든 쫓아서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야한다. 그 리더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 리더들의 결정이 올바른 것인지, 우리 사회의 리더들을 의심해야한다.
(이 부분이 나의 첫번째 글이 될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때문에, 리더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권위를 만들어준다.
그리고 리더의 한마디에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관심과 시선은 항상 리더를
향해있다. 불평등을 혐오하고, 사회적 협동을 중시하는 우리의 본성과는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우리 인간 종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때문에, 우리에게 남아있는 본성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리더는 당연히 가장 많이 가진 자들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고,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다. 현대 사회의 모든 전쟁과 분쟁,
사회적 갈등속에는 경제적 우위를 가져가려는 내막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이 인간의 생존, 자유, 권력을 의미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거 군사력이
생존, 자유, 권력을 의미하는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과거와는 다른 첨단 과학의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은 자신들의 꿈과 비젼이 인류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들은 거기에 공감하며 그것들을 쫓아 살고자 한다. 나의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는것이고,
내 인생의 성공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모든 개인은 우리 사회의 결과물로서, 시대적 배경의 관념들로부터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이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결정들을 내리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리더들 역시 한 인간에 불과하고, 인간은 한 개체로서는 연약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불완전한 존재일뿐이다. 우리 사회 리더들중에 자기들이 하는 결정과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온갖 TV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가르침을 설파한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만들어져 있고, 그 DNA 는 우리 스스로 바꿀수가 없다.
하지만 자본가가 다스리는 현대 사회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쪽으로 우리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자본가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결정이 이 세상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어리석은 리더들을 우리는 거의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본성이
시키는대로 살고있는것이다. 이것을 인식하는게 가장 중요하다.
(인간은 한 개체로서는 보잘것 없고, 나약하고 어리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