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과거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시대를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정표를 찾고
미래 진로방향을 설정하고자 함이다. 성당 건축도 이전 작품을 돌아봄으로써 현재와 미래 방향 설정을
위한 지침이자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현대는 정보화 시대로 다양성과
다변화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성당 건축도 이러한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수많은 정보 수집과 정리로부터 시작돼야 하는데,
이러한 과제를 이루는 데는 최소한
교구 차원 지원과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향후 성당 건축은 최근 소공동체 운동에 발맞춰 시스템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신자 수나 규모를 불려 나가기보다는 '작지만 내실을 기한 소규모 성당'의 출현이 요구된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지난번 새천년기 프로젝트에 따라 소공동체를 위한 수많은
성당 건축 계획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제도적 변화는 시대적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며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건축적 내용으로 접근해 보자면, 우선 성당 건축 형태는 다양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기능주의가 아직은 무게를 갖고 있으나, 다양한 형태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한계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물론 성당 건축에서는 전례의 기본적 기능이 충족돼야 하나 형태나 양식의 과거회귀적 답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건축은 시대정신을 담는 그릇이며, 다분히 미래지향적 성격을 지닌다. 최근
유럽 성당에서 보이는 현상들이 이런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형태 표현도
과감하고 자유스러워졌으며, 재료 사용도 구태의연한 벽돌이나 콘크리트에서
벗어나 경량 철골이나 알루미늄과 같은 신소재 사용이 빈번해짐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무조건적 변화 수용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시대적·문화적·환경적·정서적인 모든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는 디지털 시대이며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건축에서도 디지털로의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디지털로의 변화는 생활 변화를 뜻하며, 생활 변화는 그 생활을 담는
그릇인 건축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건축을 조형물이 아닌 문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성립되는 것이다.
성당 건축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속성상 당연히 기념비적 건축물이다. 이는
형태의 특별함이나 규모의 크고 작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 '정체성(Identity)'에 의한 것이다. 신성한 성소이며 그 백성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의미만으로도 성당은 기념비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성당 건축은 이런 상징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상징은 그 대상에 대한 신비와 경이로움을 자극한다. 상징은 문자나 부호, 또는 숫자뿐 아니라 빛과 같은 무형물로도
표현된다.
우리는 훌륭한 종교 건축일수록 많은 상징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더군다나 소공동체로 규모가 작아지는 경우 이런 상징성은 더욱 절실히
요구될 것이다. 지역사회를 이끌어 갈 공동체인 성당 건축이 아름답게 세워져
있는 모습을 그려보며 연재를 마친다.
윤성호(자카리아)
한서대 건축공학과 교수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설명)
지난 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선수촌 내에 세워진 '아브라함 경당'. 평면으로 보자면, 유선형의 물고기 형상인 이 성당은 기호적 상징성이 적극 반영된 성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스마엘과 이사악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성전의 이름으로 씀으로써 그리스도교는 물론 유다교, 이슬람교까지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성전으로 활용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