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수자천·낭중지추·인인성사 毛遂自薦·囊中之錐·因人成事
平原君 趙勝은 중국 전국시대 趙나라의 公子이며 四君(齊의 孟嘗君, 楚의 春申君, 魏의 信陵君과 함께)의 한 사람이다.
勝은 賓客을 좋아하여 집에는 食客 수천인이 들끓었으며, 친형 惠文王과 孝成王을 도와 首相을 세 번씩이나 역임하였다.
평원군 승의 집 樓閣은 높다랗게 지어져 民家를 俯瞰할 수 있었다. 어느 民家에 다리를 저는 사람이 살고 있어 절둑거리며 물을 길었다.
평원군의 아름다운 小妾이 누각에 올랐다가 절둑거리며 물을 긷는 사람을 보고 철없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다음날 그 절둑거리는 사람은 평원군을 찾아 " 저는 평원군께서 빈객을 좋아하여 빈객들이 천리를 멀다 아니하고 찾아온다 들었습니다. 이는 평원군께서 빈객을 존경하고 妾을 천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다리를 절어 평원군의 소실에게 누각에서 내려다보고 깔깔거리며 웃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저를 비웃은 그 美女의 머리를 얻고자 요청드립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평원군은 웃음을 띠고 " 생각해 보지!" 라고 하였다. 절둑거리는 사람이 돌아가자 평원군은 "이친구, 한번 웃은 까닭으로 하여 나의 미인을 죽이겠다는 말인가. 지나치지 않은가!"하고 웃었다.
그러한 일이 있은지 1년여에, 평원군 집 빈객들은 차차 흩어져 반수 이상이 돌아갔다. 평원군은 이상스레 생각했다. 빈객들에게 소홀히 접대한 점이 없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감히 실례를 범하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 하고 물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 평원군께서 절둑거리는 사람을 비웃은 그 미인을 그냥 둠으로써 평원군은 女色을 사랑하여 빈객을 천하게 여긴다 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평원군은 大我를 위하여 小我를 희생하는 심정으로, 절둑거리는 사람을 비웃은(실은 비웃은 것이 아니지만) 미인의 머리를 들고 그 사람의 집에 찾아가 사과하였다. 이 소식이 널리 전하여 지자 돌아갔던 빈객들은 다시 평원군을 찾아 모이기 시작했다. 이때 齊나라에는 孟嘗君, 魏나라에는 信陵君, 楚나라에는 春申君이 서로 다투어 빈객들을 맞아들여 食客들을 길렀다.
趙惠文王 9년(B.C.292), 秦昭王은 趙나라를 침공하여 邯鄲(한단)을 포위했다. 당시 秦나라는 막강한 국력을 앞세워 여러 諸侯國을 병탄하려고 압박을 가하였으며 齊·楚·燕·魏·趙 등은 끊임없이 괴롭히는 秦에 대항하여 연합전선을 펴서 自衛를 꾀했다.
趙나라는 평원군에게 楚나라와 연합전선을 펴 秦軍을 물리칠 방법을 모색하도록 했다. 평원군은 食客 가운데에는 文武를 겸하고, 용기 있는 자 20인을 선발하여 楚에 동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적임자로 선정된 사람은 19인 뿐으로서 한 사람이 모자랐다.
이때 식객 가운데에는 毛遂란 사람이 있었다. 모수는 평원군 앞에 나가서 "초나라에 가실 때 食客 20인을 데리고 가신다 들었습니다. 지금 한 사람이 모자란다 하니 제가 그 가운데 끼이기를 원합니다" 라고 自薦하였다.
평원군은 의외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선생께서 우리 집에 오신지가 얼마나 되었읍니까 " 하고 물었다. 모수는 "3년입니다"하였다. 평원군은 "賢士는 아무리 隱遁해 있어도 마치 송곳(錐)이 주머니 속(囊中)에 있으면 곧 그 끝이 드러남과 같아서 그 才能은 곧 알려지게 됩니다. 선생이 나의 집에 3년씩이나 계셨으나 나는 선생에 대한 말씀은 한번 듣지 못했습니다. 이는 선생에게 特長이 없다는 것으로서 무능한 것입니다. 그대로 계십시오" 하고 잘라 말하였다.
모수는 구김없이 "저는 오늘에야 비로소 주머니에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만약 일찍이 주머니속에 들었더라면 도리어 삐져 나갔을 것이요, 끝만이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하고 당당히 말하였다.
평원군은 모수의 물흐르듯 하는 자신감 넘치는 豪言을 듣고 마침내 일행에 끼이게 하였고, 모수외의 19인은 서로 눈으로 웃음은 보냈으나 그를 따돌리지는 못하였다.
일행이 楚나라에 도착하는 동안 모수는 19인과 談論을 벌여 19인 모두 모수의 높은 식견과 탁월한 재능에 감복되었다.
평원군이 楚나라 君臣을 상대로 하여 利害를 들어 설명하며 연합전선을 펴기 위한 說得은 이른 아침부터 점심 때까지 계속되었으나 결말이 나지 아니 했다.
19인이 모수에게 "선생이 올라가 보십시오"하고 권하였다. 모수는 劍을 끼고 올라가 평원군에게 "연합전선이 害냐, 利냐 두 마디면 결정될 일입니다. 오늘 아침부터 연합전선을 펴자고 말하였으나 낮이 되도록 결말이 나지 않음은 웬일입니까 " 하고 물었다.
楚王은 중간에 끼여드는 모수를 불쾌히 여겨 평원군에게 "저 자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하고 물었다. 평원군이 "저의 비서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초왕은 낯을 붉히며 모수에게" 물러가라, 나는 네 상사와 말하는데 네 어찌 감히 끼여든단 말인가 "하고 꾸짖었다.
모수는 劍을 앞에 하고 "대왕께서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 大衆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대왕의 目前에 서 있습니다. 대왕 께서는 현재 초나라의 대중을 믿을 수 없읍니다. 대왕의 목숨이 저의 손에 달려 있읍니다. 우리 주인이 계신 앞에서 꾸짖은 들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저는 들었습니다. 湯王은 70리의 領土로 천하의 왕이 되었고, 文王은 백리의 영토로 諸侯들을 臣服시켰습니다. 이는 어찌 士卒이 많아 그런 것입니까 契機를 잘 포착하여 분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초나라는 지역이 5천리나 되고 군사가 백만이나 됩니다. 이는 覇王이 될 바탕입니다. 초나라의 국력은 천하가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秦나라 장수 白起는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楚나라와 싸워 세 번 모두 이겼습니다. 이는 초나라의 한이요, 趙나라의 수치입니다. 그럼에도 대왕께서는 증오할 줄을 모릅니다. 연합전선을 펴자는 것은 초나라를 위한 것인지, 조나라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대어들 듯 말하였다.
楚王은 할 말이 없었다. "선생의 말씀과 같다면 우리의 總力을 기울여 선생을 따르겠다!"하였다. 모수가 "연합전선을 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다지니 楚王은 "그렇다"하였다.
모수는 곧 楚王의 側近에게 "犧牲의 피를 올리라"하여 그 피를 초왕 앞에 올리고 서약의 表徵으로 삽혈(피를 마시거나 입에 바르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다음은 평원군이, 다음은 모수 자신이 하여 趙·楚의 연합전선은 이루어졌다.
모수는 그런 다음 그 피를 19인에게 내어주며 "당신들도 돌려가며 삽혈하라"하고 "당신들은 녹록한 인물이라 사람의 힘을 빌어 일을 이루는 사람(因人成事)"이라고 말하였다.
평원군이 모수의 힘을 입어 조·초상호지원동맹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가자 초나라는 春申君에게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지원하도록 하였고, 魏나라의 信陵君도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를 지원하므로 秦軍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포기하고 回軍하여 돌아갔다.
○ 毛遂自薦: 자기가 자기 자신을 추천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囊中之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세상에 나서지 아니하고 숨어 살아도 자연히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비유.
○ 因人成事: 자력으로 일을 해내지 못하고 남의 힘을 빌어 일을 성사시킴의 일컬음 [史記平原君傳]
〈法制處專門委員 洪 奕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