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3장 13~15절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고 하여라."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출애굽기 3장 13~15절, 새번역>
여호와! 야훼! “나는 곧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처음으로 밝히고 계십니다. 사실 당시에 이 말을 듣고 있던 모세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이런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창조된 존재가 아닌 스스로 있는 자, 그래서 자신이 곧 자신이라고 하는 신을 우리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이면서 동시에 나중이시고, 시작이면서 동시에 끝이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이라고 하는 영역에 사시는 존재입니다. ‘유한’을 사는 인간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범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하나님이었던 분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삭만의, 야곱만의 하나님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실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구약의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구약도 신약도 조금도 묵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지금도 동일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과거에 그 때도, 지금 이 순간도, 먼 훗날에도 동일하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결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전능자’이신 것입니다. 사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자체가 오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바로에게 갈 수 있었고, 출애굽의 여정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계속해서 이해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계속해서 관계가 어그러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절대적 영역에 대한 경외입니다. 섣불리 상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의 상상이라는 창고에 가두어 지는 개념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기 이 전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우선의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지금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그 약속을 믿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 주신 이유일 것입니다. 분명한 관계를 설정하신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과 예배자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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