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역은 내 삼십대 초반의 역이다. 기장 바닷가에 방을 얻어 심신에 물질하던 그 시절, 내가 가장 많이 드나들던 역이다. 그래서 부전역은 나에겐 언제나 삼십대 초반이고 여전히 삼십대 초반이다. 아깝기는 하지만 헛되지는 않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 추억의 선이다. 추억의 선로다. 내 기억 속의 부전역은 언제나 고색창연하다. 여전히 고색창연하다. 고색창연하면서 시끌벅적하다. 장꾼이 타고 내리고 통학생이 타고 내리고 통기타 젊은이가 타고 내리던, 사람이 붐비던 역이다. 득실거리던 역이다. 떠나고 싶어서 찾던 역이다. 돌아오고 싶어서 찾던 역이다. 어찌 잊을까. 동해남부선 완행열차를 기다리던 대합실과 대합실 밖 광장의 활기를. 그 왁실거림을. 팔다 남은 보따리에 기대어 하루벌이를 세어보는 장꾼, 단발머리를 힐끗거리는 남학생, 통기타와 통기타를 에워싸고 앉은 젊음의 손뼉소리. 부전역은 사람이 그리워서 찾던 역이다. 사람 틈에 섞이고 싶어서 찾던 역이다. 어찌 잊을까. 객차에 오르면 사람보다 먼저 눈에 띄던 물미역냄새. 객실 천정에 달려있던 미역귀다리처럼 생긴 선풍기 세 대. 세 사람이 비집고 앉던 의자. 옆에 누가 앉을까 앞에는 누가 앉을까, 그 설레임. 앉을자리가 없어 객차와 객차 사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내다보던 바깥 풍경. 그리고 완행열차를 완행열차답게 하던 덜컹거림. 2007년 다시 찾은 부전역. 부전역은 그러나 고색창연하던 역이 아니다. 왁실거리던 역이 아니다. 느려터진 비둘기호가 다니고 조금 덜 늘려터진 통일호가 다니던 추억의 역이 아니다. 고속철도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동해남부선도 여기서 시작하고 끝나고 경전선도 여기서 시작하고 끝나지만 부전역은 이전의 부전역이 이미 아니다. "서생에서, 월내에서, 그리고 각지에서 농수산물이 부전역에 도착하지 않으면 부전시장에 장에 서지 못할 지경이었지요." 김기만 부전역장의 회고다. 부전역 전성시대라고 할 1970년대에 철도인생을 시작한 역장이기에 감회가 깊다. "당시엔 부전역에서 기장까지 비둘기호 요금이 60원인가 70원인가 했는데 그땐 승객이 넘쳐났지요." 넘쳐나던 승객은 90년대 접어들면서 흩어진다. 버스로 흩어지고 지하철로 흩어지고 자가용으로 흩어진다. 승객이 흩어지면서 철도에는 비상이 걸린다. 경쟁에 밀리지 않으려고 변하고 살아남으려고 변한다. 적자생존이다. 기차가 변하고 기차가 다니는 길이 변하고 기차가 멈추는 역이 변한다. 급기야는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변한다. 부전역이라고 다를까. 부전역 역시 변한다. 추억에만 몰입하기엔 밀려오는 물살이 거칠다. 몰아치는 바람살이 따갑다. 1965년 지은 고색창연한 역사(驛舍)는 직원들 숙사(宿舍)로 물러앉고 뒷방차지가 되고 물살에도 바람살에도 당당하게 버틸 수 있는 역이 들어선다. 역은 말끔하고 훤칠하다. 보기에도 그렇고 속도 그렇다. 지나가는 역에서 시작하는 역으로 끝나는 역으로 적응한 지도 오래다. 기차 시간표를 훑어본다. 반가운 지명이 나온다. 청량리다. 기장 바닷가를 거쳐 충청도 내륙을 거쳐 다다르던 비둘기호 종착역. 비둘기가 되고 싶던 학생시절, 밤새워 갔다가 밤새워 되돌아온 그 노선이다.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하나쯤 있단 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가.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하나. 그 하나가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리라. 그 하나가 하나하나 모여서 추억의 숲이 되고 역사가 되리라. 그러리라. 부산 중심에 있어 접근하기가 좋다는 부전역의 자랑이랄지 가능성이랄지를 마지막으로 듣고 일어서려는데 역장이 이 말은 꼭 덧붙여 달란다. "아침 10시 동해남부선 타면 좌천 달음산 갔다 오기에 딱 좋다"고.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