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가 앨범을 냈을 때, 언론들은 유난히도 그녀의 앨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오늘만 밥도 못 먹고 이게 7번째 인터뷰에요” 박선주는 당당하지만 조금은 지친 기색으로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11년 동안의 공백 기간을 가졌기 때문에 10대와 20대 초반의 음악 팬들은 그녀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음악 관련 기사에선 단연 톱 위치를 차지했다. 어디를 가도 박선주 얘기였다. 아마도 박선주의 앨범 발표는 간만에 찾아온 ('연예' 특종이 아닌) '음악' 특종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이런 환대는 그녀의 경력 때문이다. 보컬 트레이너로서 김범수, 유진, 디바 같은 가수들을 훈련시켰고, 얼마 전엔 나얼의 리메이크로 그녀의 히트 곡 '귀로'가 다시금 세상에 알려졌다. 2005년 리메이크 붐의 특징인 '7080 세대 아티스트 트리뷰트' 성격이 더해지면서 박선주의 이름은 '잊혀질 뻔한 보석 같은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더했다. 숭실대학교, 서울예술종합원, 명지대의 실용음악과 또는 재즈학과 보컬 교수로서의 명성은 그녀의 실력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지만 박선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줄곧 불안하기만 했다고 한다. 선생님의 위치로서 제자들이 어떻게 내 앨범을 평가할까 많이 두려웠고, 또한 음악 관계자나 평론가들의 비평도 매우 궁금했다고 한다. 박선주는 인터뷰를 오는 내내 역시 “임진모씨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다”고 한다. 그러나 겉으로의 그런 불안과는 달리 박선주는 일단 말을 시작하면 막힘없이 뱉어내고 당당했다. 너무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탈이라고 할 만큼 거침없고 시원시원한 답변을 쏟아냈다.
앨범을 발표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긴 공백기간과 '선생님'이라는 예전과는 달라진 위치가 부담이 많이 되었을 텐데요.
사실 앨범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대부분의 생각처럼 안 낼 거라는 마음도 있었고, 그러면 또 내고 싶고, 복잡하게 왔다갔다했어요. 나중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편히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고, 작업 중에 괜찮은 곡들이 나오면서 더욱 더 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곡들이었습니까.
'마음을 베이다', '넌 적어도 나빴다' 두 곡이요. 선생은 아티스트가 되기 힘들다는 생각을 깨고, 대중적인 보컬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어요. 그 밖에도 다이어리를 쓰길 좋아하는데, 글을 쓰다 보면서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어요. 어쩌면 그 글들이 앨범을 발표하게 된 가장 큰 동인일지도 몰라요. 그 글들을 속지에 곡마다 붙여 놓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사를 형체로 풀어내는데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얼이 리메이크한 '귀로'의 히트가 앨범 출반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웃음). 나얼의 '귀로'가 나왔을 때든 생각은 오히려 "이제 거의 잊혀질 만 했는데"였어요. 사실 앨범 발매가 늦어진 것도 그 때문이에요. 원래는 2005년 3월으로 음반 발매를 계획했거든요. 나얼의 리메이크는 출반의 계기가 된 게 아니라 오히려 지연의 이유가 된 거죠.
타이틀 곡 '남과 여'는 김범수와의 듀엣 곡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많았을 텐데, 굳이 김범수와 불러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김범수는 음색에 관한 한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가수에요.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제가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가 왠지 대중적인 가수로만 비쳐지는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제가 키우고, 제가 기획사에 던져준 제자여서 그런지 김범수가 '아티스트'가 아닌 '대중적'인 이미지로 비쳐지는 것이 가슴 속 짐이 되었나 봐요. 선생님으로서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할까요. 아마도 '남과 여'는 김범수와 같이 노래를 하면서 화해를 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몰라요.
박선주 씨는 가창력을 엄밀히 따지는 노래 선생님이시죠. 그래서 그런지 이번 앨범 발표는 '가창력 있는 가수 부재에 대한 선생님의 경고장' 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주변에 “앨범을 내겠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와 “앨범을 계약했다”고 했을 때, 그리고 “앨범이 나왔다”라고 했을 때의 기분이 달랐습니다. “문화 고갈이구나”, “가수의 부재가 진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맞아요. 솔직히 이 정도는 1980년대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너무나 흔한 앨범인데, 이게 각광을 받는 것을 보고 기쁜 게 아니라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앨범은 노래를 너무 잘한 것이 단점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어느 정도 대중적 수위를 맞추고자 하는 게 이 앨범의 지향이라면, 보컬을 지금보다 더 순수하게 포장했을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제대로 못 속였나 봐요? (웃음) 말씀하신대로 순수하지 못하게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이 부분은 앨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이기도 했는데, 프로듀서는 “음악은 집중적으로, 보컬은 순수하게”를 원한 반면에 저는 “음악은 쉽게, 보컬은 나대로”를 원했어요.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합의점을 찾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곡으로 그 갈등 양상을 듣고 싶습니다.
처음 앨범 작업을 다 마쳤을 때 최종적인 수록 곡에 “마음을 베이다”와 “여3”은 없었어요. 전 그 결과물에 대해서 2% 부족했죠. 대중가수 앨범으로서 대중적 높이를 가진 곡인 “마음을 베이다”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영주씨는 반대했습니다. 결국 제 의견이 반영되었고, 나중에 프로듀서도 인정하더군요.
이번 앨범에서 '이런 것을 담고 싶었다' 하는 컨셉은 무엇이었나요.
일단 다양한 음악 장르를 담고 싶었고, 다양한 보컬 색깔을 다 보여줄 수 있다는 저의 장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사 전달에 있어 단어의 사용에 매우 세심함을 기울였고,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잘 포장할 수 있는 이미지 구축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세그먼트(Segment)를 만드는 것도 많은 고생을 들였어요. 다양한 장르를 펼치려면 곡마다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보컬 선생님으로서, 제자를 가르치는 나름의 방법론이 있나요?
저는 일단 그 가수의 단점이 무엇인지를 먼저 봐요. 그리곤 그것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를 빨리 판단합니다. 그 다음엔 장점을 보고요, 마지막엔 장점과 단점을 어떻게 섞을지 판단합니다. 장점과 단점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어차피 버릴 순 없는 거예요. '조화'시키는 것이 최선이죠. 그리고 저는 노래의 85%는 리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댄스건 팝이건 록이건 어떤 장르의 가수가 배우러 와도 저의 리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발성이고 뭐고 아무 것도 안 가르쳐줍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실제로 겪어본 요즘 가수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후배들은 너무 음악을 안 듣고 들어도 편협하게 듣습니다. 그래서 잘 '표현'할 줄을 몰라요.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원해서 음악을 하고 싶은지, 왜 가수가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목표도 없어 보여요. 노래가 사람이 하는 일이란 개념도 없고요. 누구나 천재적인 기질이 한 가지는 있다고 저는 믿어요. 그것을 살리면 되는 거죠.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다분히 기계적이에요. 좋은 작곡가를 만나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막연히 생각해요. 가수를 하면 앞에 설 수 있다는 생각, 즉 가수가 모든 답이라고 여긴다는 겁니다. 강하고 자극적이고 남들이 안 한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솔직히 보컬 선생이 있어야 할 당위성은 없어요. 다만 자기 철학을 가져야 할 교육이 필요하죠.
박선주가 생각하는 박선주의 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나의 단점을 평가한다면?
(질문이 끝나자 빠른 속도로 마치 쏟아내듯이) 일단 너무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얽매이는 것이 단점이에요. 선생으로서 다른 평가의 눈을 많이 의식한다는 것도 그렇고, 또 너무 싱어송라이터임을 주장하려는 듯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