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섬의 기적-
14시간의 사투 그리고 인고의 어머니이야기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은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성 질환으로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며, 감염 후에는 인후통,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거쳐 폐렴으로 발전한다. 발생 초기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기 전염병으로만 알려졌으나 코로나바이러스의 신종인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이 질환은 초기 '우한 폐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등으로 통용되었으나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2019년도에 발생했다고 하여 'Corona Virus Disease 2019'라하고 줄여서 'COVID-19'로 명명했으며, 한국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약칭 '코로나19')'로 정하였다.
점차 전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으며, 감염자가 1만 명을 넘어서자 주민이동제한령을 발령하였으며, 많은 나라에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경을 봉쇄하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였으나 결국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감염되어 '코로나19'바이러스는 세계적 대유행 전염병(팬데믹)이라고 선언하였다. 한국에서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이 최초의 감염자로 확진된 이후, 급격하게 지역 감염 상황으로 발전함에 따라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격상했으며, 일부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
이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의 큰 재앙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신앙인답게 실천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충북 단양 느림보 강물 길에 있는 ‘시루섬의 기적-14시간의 사투 그리고 인고의 어머니’라는 비석에 쓰여 있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1972년 8월 19일 오후 3시 남한강의 갑작스런 범람으로 시루섬이 고립되었을 때 이야기다. 44가구 250여명 주민들은 불어나는 물을 피해 가장 높은 곳까지 피신해야했고, 그곳에서 높이 7미터 지름 4미터의 물탱크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시 사다리 2개를 엮어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며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청년들은 바깥에서 서로의 팔을 걸어 안전띠를 만들었고 안으로 노약자를 밀어 넣었다. 콩나물시루보다도 더 빽빽한 밀도를 견디면서 몸이 점차 감각을 잃어갈 때 누군가 외쳤다. “움직이면 다 죽는다. 숨을 못 쉬더라도 꼼짝하지 마라!” 물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흘렀고 사람들은 한 점으로 엉켜서 밤을 견뎠다. 새벽 1시경 한 여인의 품속에서 돌지난 아기가 압박을 못 이겨 숨졌다. 어머니는 내색하지 않았다. ‘동요가 일면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만 슬픔을 삼켰다. 물은 물탱크 6미터까지 차올랐다. 새벽 5시에 구조대가 왔고, 14시간 사투는 끝이 났다.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아기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으면서 세계적 대유행 전염병이라는 큰 재앙을 겪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묵상하게 되었다. 시루섬이 물의 범람으로 고립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죽음에 이를 수 있었듯이, 세계적 대유행 전염병(팬데믹)의 전염으로 인하여 갑자기 많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1347년에 유럽에서만 약 2,500만 명이 사망했다는 흑사병이나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독감으로 2,000만 명이 죽었다는 스페인독감보다는 작은 재앙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하여 갑자기 급속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도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은 이런 재앙의 상황을 우연하게 생긴 불행한 사고를 뜻하는 재앙이라는 말을 쓰기보다 겪어내기 힘든 어려움을 뜻하는 시련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마치 높은 시루섬의 사람들이 범람한 물이 차오르자 물탱크에 들어가 콩나물시루보다도 더 빽빽한 밀도를 견디면서 움직이지 않고 죽을힘을 다하여 어려움을 극복하였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어려운 시련을 당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죽을힘을 다하여 어려운 시련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루섬의 청년들이 바깥에서 서로의 팔을 걸어 안전띠를 만들어 14시간의 사투를 넘어 영원히 함께 살 수있는 삶의 희망이 되었듯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때, 할 수 있는한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팔을 걸어 안전띠를 만들어 간다면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이 시련도 서로간의 사랑으로 만든 안전띠 덕분으로 삶의 희망이 될 것이다.
특히 돌 지난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압박을 못 이겨 숨졌을 때, '동요가 일면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는 생각에 내색하지 않고 죽은 아들을 손에 들고 속으로만 슬픔을 삼키고 있다가 모든 사투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아기의 죽음을 알린 어머니의 삶이 있었기에 시루섬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 났듯이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우리 신앙인은 개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어머니의 삶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묵상해 본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어려운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전 세계의 이가 똘똘 뭉쳐서 끝까지 잘 극복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도바오로의 말씀으로 이글을 마감하고자 한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 (1코린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