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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등장인물>
이보안 - 42세. 4차원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 건망증이 심하고 상황파악이 둔해
예측불허의 행동을 자주 한다.
안팀장 - 44세. 알코올중독자. 직선적이고 다혈질이다. 트럭운전기사 시절
인사사고로 면허가 정지되어 경비일을 시작함.
박실장 - 53세. 인자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어 사람을 잘 다룬다.
정팀장 - 34세. 운전학원 강사 출신. 꼼꼼하여 일처리를 치밀하게 하는 성격.
전보안 - 47세. 소설가를 꿈꾸는 독신 남.
김반장 - 44세. 관리실 기전반장. 알코올중독자.
슈퍼사장 - 41세. 다혈질이지만 사교적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관리소장, 부녀회장
중년여인1,2,3
<무대설명>
무대 오른쪽으로 경비실과 차량출입구가 있고 왼쪽에 슈퍼마켓이 있다. 경비실 안엔 여러 개의 모니터가 있고 각각의 모니터엔 곳곳에 설치된 CCTV의 화면이 분할되어 표시된다. 경비실 전면은 투명유리로 되어 있으나 편의상 유리 없이 트인 공간으로 대체한다.
보안실은 경비실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보안원 또한 경비원과 특별한 구분 없이
혼용하기로 한다.
1.안팀장 VS 이보안
경비실에 이보안이 앉아 있다가 박실장이 무대로 걸어 나오면 밖으로 뛰어나와 인사를 한다.
박실장 : 이보안, 자동차차단봉이 왜 저래?
이보안 : 제가 안 그랬습니다.
박실장 : 자네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왜 저리 됐는지 묻는 거야.
이보안 : 잘 모릅니다. 전, 안 그랬습니다.
박실장 : (모니터를 보여주며) 자, 잘 보라구. 택시가 들어올 땐 차단봉이 열렸는 데, 청소차량이 들어올 땐 차단봉이 트럭 윗부분에 걸려 튀쳐올라 갔 지?
이보안 : 제가 세대전화를 받느라 못 봤습니다.
박실장 : 그럼, 처음부터 실장님 제가 세대전화를 받느라 청소차량을 보지 못해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야지. 무전기로 안팀장 오라 그래.
이보안 : 팀장님, 호출이요. 안팀장, 나와라 오버.
박실장 : 안 받아? 그리고 니, 안팀장 나와라 오버가 뭐야. 장난하나?
이보안 : 죄송합니다. 재밌으라고 그랬습니다.
박실장 : 니는 재밌드나. 난, 재미없다. 놔두고 차단봉 올려. 니 올릴 줄 아나?
이보안 : 이론상으론 할 줄 압니다.
박실장 : 하면 하는 거고 못하면 못하는 거지. 이론상으로 하는 건 뭐 꼬.
이보안, 박실장 차량출입구로 이동. 출입구는 방문자입차, 입주민입차,
출차전용의 세 개로 구분되어 있다.
박실장 : 박스 문을 열어.
이보안, 열지 못해 안절부절하면
박실장 : 아니, 문도 못 열면서 어떻게 수동으로 차단봉을 올리느냐고. 알았어. 잘 봐. 문은 이렇게 손잡이를 누르고 돌려 여는 거야. 그 다음엔?
이보안 : 스위치를 끄고 차단봉을 올립니다.
박실장 : 이론상으로 그렇단 말이지?
이보안 : 네.
박실장 : 그럼, 스위치를 꺼 봐.
이보안, 스위치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면
박실장 : 이게 미쳤나. 무슨 스위치를 바닥에서 찾아. 이보안, 여기 있잖아. 이걸 내려서 off시키란 말야. 니말은 믿지를 못하겠어. 안팀장한테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달라고 해.
이보안 : 네.
박실장이 방문자입차, 입주민입차, 출차전용 세 개의 차단봉을 올리 고 경비실로 이동하면, 이보안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채 따라간다.
안팀장 등장
박실장 : 안팀장! 이보안 차단기 다루는 방법 교육시켰나?
안팀장 : 네. 실장님. 저도 교육시키고 정팀장도 시켰습니다.
박실장 : 시켰다면 시켰겠지. 근데, 중요한 건 이보안이 할 줄 모른다는 거야.
다시 교육시켜. 무전기는 왜 안 받나?
안팀장 : 네. 소장님하고 잔설 치우느라 못 받았습니다.
박실장 : 나, 화장실에 갔다 올 동안 이보안 교육 좀 시켜.
안팀장 : 차단기 다루는 방법 말입니까?
박실장 : 다 뿌셨는데 교육시키면 뭐하나. 그건 내가 시범을 보여줬으니까 됐고...
근무 전반에 대해서...
안팀장 : 잘 알겠습니다. 꼭 성공하고 돌아오십시오.
박실장 : 고마워. 이놈의 변비 때문에...
박실장 퇴장
안팀장 : 이봉원이, 너 근무한지 몇 달 됐는지 알아?
이보안 : 육 개월 됐습니다.
안팀장 : 그럼, 다 알겠네. 더 뭘 가르쳐.
이보안 : 그래도 실장님이 가르치라니까 가르쳐야죠.
안팀장 : 난, 너한테 가르칠 거 없으니까 실장님이 물으면 그냥 배웠다구 그래.
이보안 : 뭘 배웠냐구 물으면요?
안팀장 : 그래두 니가 아는 게 있을 거 아냐. 주방에 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 떻게 하구 세대 현관문이 약이 다 돼서 열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지, 그런 건 알지?
이보안 : 네. 아는데요.
안팀장 : 그걸 배웠다 그래.
이보안 : 안 배웠는데두요.
안팀장 : 너, 그거 어떻게 아니?
이보안 : 뭘요?
안팀장 : 이 자식이 계속 말 시키네. 주방에 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 지, 세대 현관문이 약이 다 돼서 열리지 않을 땐 어떻게 하는지...아휴, 숨 차.
이보안 : 운동을 하셔야겠어요.
안팀장 : 매일 산에 가잖아.
이보안 : 술을 끊으시든가...
안팀장 : 그건 보약이다. 약 없으면 못 살고...
이보안 : 그럼, 약을 줄이시든가...
안팀장 : 이 자슥이...
이보안 : 저두 마흔이 넘었는데...
안팀장 : 오십이면 뭐하니, 꼴이 그 모양인 걸...
이보안 : 팀장님도 안 좋을 때 있잖아요.
안팀장 : 그땐 약을 과하게 먹은 거고... 이 자식, 진짜 열 받네. 너 그거 어디서 배웠냐구?
이보안 : 뭘요?
안팀장 : 귀신 뭐하나 몰라. 저런 놈 데려가잖고. 세대 주방에 가스가... 됐다. 니 맘대루 대답해.
박실장 등장
이보안 : 저 실장님, 순찰 돌고 오겠습니다.
박실장 : 그래.
이보안 퇴장
박실장 : 안팀장, 이보안 쟤 어떡했으면 좋겠나.
안팀장 : 저거 생각하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돕니다.
박실장 : 니도 그렇나. 나도 전에는 재밌는 놈이다 그랬는데 요즘은 솔직히 무서 워.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안팀장 : 나이가 한두 살이 아니고 잘못했으면 잘못했습니다 하면 될 일을 끝까 지 안했다고 우겨놓고 본다니까요.
박실장 : 일은 착실히 잘 하는데, 저 놈은 말만 하면 꼭 실수를 한다니까.
안팀장 : 말만 안하면 진국이죠.
이보안 등장
박실장 : 니는 집에 누가 있나?
이보안 : 아버지가 계십니다.
(방백) 아버지가 밥이나 잘 먹었나 걱정이네. 자꾸 집을 못 찾아서 목에 이름표를 달아주고 내 핸드폰번호를 적었는데... 건망증이 심하시니 어쩔 수 없잖아요. . 그래서 아파트 밖으로 나오지 말고 집에만 계시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답답한가 봐요. 자주 밖으로 나와서 집을 못 찾아 경비원한테 툭하면 전화와요. 근무중인데 전화오면 짜증나죠. 이젠 제 아파트 경비들이 우리 집을 다 알아요. 얼마나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면... 이런, 또 경비원 전화에요. 이젠, 제 번호는 기억 못해도 경비원번호는 기억할 정도죠.
이보안, 핸드폰을 들고 퇴장
박실장 : 이보안, 니 얘기하다 말고 어딜 가나? 저거 완전 또라이네.
안팀장 : 실장님, 오랜만에 라면이나 먹죠.
박실장 : 그렇잖아도 시원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2.고백
(경비실 안)
박실장과 이보안이 나란히 앉아 있다. 등장 인물 각자 메모가 적힌 클립보드를 하 나씩 들고 있다. 이들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이보안 : 실장님, 고백할 게 있습니다. 며칠 전인데요.
(사이)
정팀장(목소리) : 그쪽으로 어떤 아줌마가 지나갈 거예요. 불법광고물 부착했는데 붙잡으세요.
이보안 : (중년여인을 끌어안으며) 잡았습니다. 팀장님.
중년여인1 : 왜 그러세요?
이보안 : 팀장님이 불법광고물 붙인 아줌마 붙잡으랬거든요.
중년여인1 : 전, 그런 일 없어요. 그리고 전 입주민이에요.
이보안 : 입주민이라구요? 죄송합니다.
중년여인1 :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중년여인1 퇴장
이보안 : 저런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리고 여기 있고요.
중년여인2 등장
박실장 : 참, 대단하십니다. 저 여잔 또 뭔데?
이보안 : (중년여인2를 가리키며) 제가 윙크를 했습니다.
박실장 : 뭐라, 윙크? 이게 미쳤나. 왜 그랬는데?
이보안 : 제가 담배를 막 피우는데 이 여자가 택배를 가지러 왔잖아요.
박실장 : 이 여자가 뭐야?
중년여인2 : 그러게요. 교육 좀 시키세요.
이보안 : 죄송합니다. 한 모금 밖에 빨지 못했는데, (끄는 시늉을 하며)막 화가 나 데요 그래서 인상을 쓰다가 아차 싶어서 실장님께 말하지 말라고 윙크 를 했습니다.
박실장 : 이 여자분께서 나한테 말한다 하드나?
이보안 : 그럴지도 모르죠.
중년여인2 : 저도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박실장 : 아뇨. 지금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이보안 얘기 다 들으려면 해가 바뀔지도 몰라요.
중년여인2, 불쾌한 표정으로 황급히 퇴장
박실장 : 또 고백할 게 있나?
이보안 : 네. 있습니다.
정팀장 등장
박실장 : 어디 갔다 오나?
정팀장 : 순찰 돌았습니다.
이보안 : 저, 실장님. 고백할까요?
정팀장 : 무슨 고백이요?
이보안 : (수화기를 들고) 네. 사랑합니다 고객님. 보안요원 이봉원입니다.
박실장 : 누구야?
이보안 : 소장님인데 잠깐 와보라는데요.
박실장 : 나?
이보안 : 아무나요.
박실장 : 그럼, 니 갔다 와.
이보안 : 알겠습니다.
이보안 퇴장
정팀장 : 실장님, 이보안이 좀 전에 고백할 게 있다고 하던데...
박실장 : 아, 고백? 우리가 참으로 대단한 대원과 근무하고 있다. 오면 직접 물어 본나. 니, 이보안 어떻게 생각하나?
정팀장 : 일은 열심히 잘 합니다. 순찰도 열심히 돌고...
박실장 : 니도 그리 생각하나.
정팀방 : 가끔 말실수를 하셔서 그렇지...
박실장 : 실수 안 하는 사람 어딨나. 사람인데 누구나 실수는 하지. 근데, 저놈은 좀 심하다. 나도 그게 걱정이다.
이보안 등장
박실장 : 뭐라시는데?
이보안 : 그게, 뭐라 말씀하시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박실장 : 그게 뭔 소리야. 듣고 온 니가 모르면 내가 아나. 모르면 다시 물어봐야 지 그냥 나오나.
정팀장 :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정팀장 퇴장
박실장 : 니는 웬만하면 관리실에 가지 마라. 여기 보안실에만 있어. 알았나?
이보안 : 순찰은요?
박실장 : 그건 돌아야지. 니가 잘하는 게 그것 말고 또 있나. 입주민과 쓸데없이 대면하지 말고 순찰만 바로 돌고 보안실에 기어 들어와.
이보안 : 네. 근데요. 대면이 뭐죠?
박실장 : 그렇잖아도 설명을 해주야 되나 생각했다. 대면이란 얼굴을 대한다는 뜻, 즉 누군가를 만난다는 얘기야. 니는 그걸 하지 말란 얘기고...
이보안 : 인사는요?
박실장 : 안 해도 되니까 쓸데없는 말만 하지마.
이보안 : 저만 그래야 되나요?
박실장 : (단호하게) 그래. 너만!
정팀장 다시 등장
박실장 : 소장이 뭐래?
정팀장 : 그냥 웃던데요. 입주자대표회의 결과 공고문은 날짜가 지났으니 수거하 고, 오늘 게시물은 1층 지하1층 게시판에 붙이라던데요.
박실장 : 소장님이 우릴 어떻게 생각하겠나. 보안이 경비보다 못하다고 그럴 거 아냐. 이보안, 니 보기 싫으니까 후문초소에 가 있어.
이보안 : 네. 알겠습니다. 근데요, 고백이 아직 안 끝났는데...
박실장 : 아, 고백?
(긴 사이)
이보안 : 꼬마야, 이리와 사탕 먹어.
꼬마야, 이리와 귤 먹어.
꼬마1 : 싫어요. 안 먹어요.
꼬마2 : 엄마가 그런 거 함부로 받지 말랬어요.
이보안 : 꼬마야.
중년여인3 : 저, 꼬마 아니거든요.
이보안 : 죄송합니다. 제가 길눈이 안 좋아서...
중년여인3 : 그건 길눈이 아니고 시력이죠. 그리고 시력이 안 좋으면 안경을 쓰 시던가...
이보안 : 경비가 안경을 쓰면 보기에 안 좋아요.
중년여인3 : 누가 그래요?
이보안 : 음,... 누가 그랬더라. 제가 보기에 그렇단 거죠.
중년여인3 : 그래두 지금처럼 실수하는 것보단 낫겠어요.
이보안 : 그렇겠죠.
중년여인3 : 아이들한테 그런 거 주지 말아요. 뭐예요? 더럽게. 보안실, 아니 경비실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것들을...
정팀장 : 그것 봐요. 성님. 주고도 욕먹는 짓을 왜 해요. 요즘은 옛날처럼 먹고 살기 어려운 시기가 아니잖아요. 부모들이 애들한테 그런 것 주는 거 싫어해요.
박실장 : 잘하는 짓이다. 어른한테 꼬마라고? 니 당장 안경 맞춰라. 그리고 애들 한테 먹을 것 주지 마. 니나 실컷 먹어.
이보안 : 애들이 귀엽잖아요.
박실장 : 애들은 다 귀여워.
이보안 : 아, 그렇군요. (머리를 긁적이며) 애들은 정말 다 귀엽지. 여지껏 괜히 먹을 거 줬네. 우리 팀장이나 줄 걸...
정팀장 : 됐수, 성님.
박실장 : 이보안, 다음부턴 고백하지 마. 알았지? 니 혼자만 알고 있어.
이보안 퇴장
박실장 : 정팀장, 니는 알고 있었나. 이리 심각한 걸... 니, 감시 잘해라. 저 놈이 우리 보안경비회사 말아먹을 놈이다. ... 저걸 짤라?
정팀장 : 저 행님은 여기서 짤리면 갈 데도 없습니다.
박실장 : 내 그래서 안 짜르는데, 에이...
슈퍼사장 등장
박실장 : 요즘 김반장, 술 안 사가나?
정팀장이 슈퍼사장을 보고 박실장 모르게 윙크를 한다.
슈퍼사장 : (알았다는 듯 윙크하며) 요즘은 안 사가요. 끊었는지...
박실장 : 니 뭐 잘못 먹었나. 왜 나한테 윙크하고 지랄이고.
슈퍼사장 : (능청맞게) 아따, 제가 요즘 외롭다요. 실장님하고 사랑하고 싶당게요.
박실장 : 됐네. 이 사람아. 난, 오늘 애인하고 약속이 있어요.
슈퍼사장 : 성님, 연식이 좀 돼봐요. 그냥 중고로 팔아묵고 싶지.
박실장 : 이게 돌았나. 내 부회장한테 이른다.
슈퍼사장 : 아따 왜 그런다요. 부부싸움 시킬 일 있나. 근데, 4차원은 안 보이네.
박실장 : 조용한 데서 4차원적인 생각 실컷 하라고 후문초소 보냈다.
정팀장 : 행님, 부녀회장이 사준 음료수 라면으로 바꿀라요.
슈퍼사장 : 니가 사장해라. 그냥 쳐묵지 꼭 바꾸고 지랄이야.
박실장 : 그냥 바꿔 줘. 니는 아파트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보안이 불쌍치도 않 나?
슈퍼사장 : 아따 성님은 ... 그러니까 제가 툭하면 두부하고 통조림 갔다 안줘요.
박실장 : 야 이눔아, 양심 좀 있어라. 유효기간 지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버 리기 아까봐서 갖다주는 거 아니가.
슈퍼사장 : 성님은... 그것 다 먹을만 허요. 금채야, 니 그거 먹고 탈 난적 있나?
정팀장 : 아직은 없어라.
슈퍼사장 : 봐요 성님.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박실장 : 됐네. 담부턴 좀 싱싱한 걸루 가져와.
슈퍼사장 : 아따, 성님은... 제 맘이 그렇지라.
박실장 : 변비 때문에 큰일이네.
박실장, 슈퍼사장 퇴장
안팀장 등장
정팀장이 커피믹스를 탄 종이컵을 안팀장에게 건넨다.
정팀장 : 그 형님이 처음부터 약간 이상하긴 했죠. 관리실에서 관리비 독촉고지서를 주면서 세대에 방문하여 사인 받으라 한 적이 있는데, 세대주가 없는 집 통지서를 덜컥 현관 게시판에 붙인 거예요. 제가 회수했기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죠.
안팀장 : 어휴, 무궁무진해. 전화기는 어떻구. 현관이나 세대에서 호출이 오면 수 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을 땐 전화선이 꼬인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공중 에서 휙 내저으며 내려놓는 거야. 처음엔 신기했는데, 자꾸 보니깐 짜증 이 나는 거라. 이보안, 그냥 이렇게 내려놓으면 돼. 잘 봐봐. 아무 일 없 잖니. 꼬이지도 않고... 앞으로 이렇게 살짝 내려 놔. 그렇게 호들갑떨지 말고. 그러면, 네 하고 말은 잘해. 그리고는 바로 까먹는다니깐. 전화기를 들고 그 짓 하려다 멈추며, 아~ 하고 웃는다니까. 내가 요즘 이보안 때 문에 웃고 살지.
이보안 등장
안팀장 : 넌 똥을 만들어내냐.
이보안 : 변기가 막혀서 뚫고 오느라고요.
안팀장 : 그렇게 먹어대니 화장실이 안 막히는 게 이상하지. 넌 똥이 무척 굵더 라.
이보안 : 팀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안팀장 : 세상에 비밀은 없다. 지난번에 니가 똥싸고 간 다음에 내가 화장실을 갔 는데 니 똥이 너무 굵어 변기가 막혔더라. 무슨 오리도 아니고 변기 안 에서 둥둥 떠다니는 꼴이... 그거 뚫느라 애먹었다.
이보안 : 제 똥이 좀 굵긴 굵죠?
안팀장 : 좀이 아냐. 말뚝이지 그게 똥이니?
이보안․정팀장 : 하하!
안팀장 : 니들은 건강할거야. 방금 웃어서....
(사이)
안팀장 : 경비는 그저 경비일 뿐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요. 입주민들이 인사하는 건 반갑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얼굴을 마주치니까 민망해서 슬쩍 고개를 숙이는 거라구요. 경비는 막장인생입니다. 아무리 잘난 체 해도 경비를 보잖아요. 경비가 명함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오죽하면 명함이 없 겠어요. 어디 가서 경비일을 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밝힌 적 있나요? 없 을 걸요. 경비는 일축에도 끼이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단 하루라도 사람 취급을 받고 싶으면 하루 빨리 이 일에서 벗어나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죠. 강의 끝!
이보안 : 박수. 안팀장님한테 이런 면이...
안팀장 : 전보안, 빨리 때려치우세요. 머리만 아무리 고고한 척하면 뭐합니까? 현 실은 분리수거를 하고 입초를 서고 순찰을 도는 경비원인데...
전보안 : 글쎄요. 저는 현실에 안주하는 버릇이 있어서 때를 놓치곤 합니다. 이번 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니, 실수는 이미 저질렀고 지 금이 결정을 내릴 순간이라는 확신이 서는군요.
안팀장 : 이보안, 퇴근 안해. 빨리 반찬통 챙겨 퇴근해야지.
이보안 : (거수경례를 하며) 옛서!
안팀장 : 지랄. 저게 언제 사람 되나...
이보안 퇴장
전보안 : 왜 절 쳐다보시나요? 저요? 고백할 게 있나요. 그저 평범한... 삶은 아니 군요. 전, 예술가입니다.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라는 표현이 어울리겠군요. 사진작가인데 개인전은 단 한 번 인사동에서... 언제인지 기억도 못해요. 오래 돼서... 사진찍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죠. 그래서 모텔카운터에서 일하게 되었죠. 격일제가 제일 맘에 들었구요. 하루 꼬박 일하면 다음날 은 내 세상이잖아요. 그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20여년을 허송세월 했 죠. 정신을 차려보니 이젠 모텔에서 일하기엔 내가 너무 늙었더군요. 그 래서 궁리 끝에 경비원을 하게 되었죠.
아직도 사진가에 대한 꿈은 버리지 못한 채... 오히려 꿈을 하나 더 키 우고 말았죠.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죠? 주제넘게 소설가를 꿈꾸기 시작 했답니다. 모든 걸 포기할까 그런 순간도 있었는데, 냉정하게 돌아보니 제 인생 여정 중간쯤에 서 있더라구요. 포기하기엔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까운 거죠. 안팀장님도 하실 말씀이 많을 텐데...
안팀장 : 난, 너무 많아서 다음 기회에... 산악회 회원들과 광덕산 가기로 해서 먼 저 갑니다.
안팀장 퇴장
전보안 : 경비실은 꿈을 꾸기엔 너무 더럽고 비좁아요. 정팀장님, 예전의 운전학 원 강사로 돌아가세요.
정팀장 : 저도 지금 고민 중입니다. 맞선을 보라는데, 신부측에는 제가 운전학원 강사로 일한다고 말했다네요. 저희 어머니도 지금 그렇게 알고 계시는 걸요.
전보안 : 저도 초등학교 여자친구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길래, 그냥 웃고 말았 죠. 차마 아파트 경비를 한다고 못하겠더라구요. 죄를 지은 것도 아닌 데...왜 경비일을 하면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암전)
3.안팀장 VS 전보안
(경비실 안)
뒤편에 자바라가 닫혀 있고 전보안이 전방을 주시하는데 30대 男 등장
30대男 : 저는 104동 1602호에 사는 사람인데요. 아까 저희집에 출동하셨던 분 맞나요?
전보안 : 네. 제가 출동했습니다.
30대男 : 근무자는 혼자인가요. 두 명씩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한 분은 어디 갔 죠?
전보안 : ...그게 말이죠. (방백) 자바라 뒤에서 술에 취해 자고 있지요. 시체와 다 름없죠. 저는 그 시신을 지키는 경비구요.
30대男 : 경찰서에 신고하셨나요?
전보안 : 아뇨.
30대男 : 여기는 근무를 이런 식으로 하는가 보죠. 어머니가 강도를 당했는데, 집 에 와서 자초지종을 다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요?
전보안 : 어머니가 됐으니까 놔두라고 말씀하셔서...
30대男 : 당장 내일 이사 가자고 난리입니다. 노인네가 겁이 나서 지금도 부들부 들 떨고 계십니다. 당장 경찰서에 전화하세요. 우리 형님이 검사인데, 당신들 모두 날려버리겠어. 근무태만이에요. 알아요?
경찰관A, B 등장
경찰관A : 신고를 하시면 조서를 꾸미기 위해 경찰서에 한번 다녀가셔야겠어요.
30대男 : 꼭 다녀가야 됩니까?
경찰관B : 네. 접수를 하려면 조서를 꾸며야 하니까요.
30대男 : 우린 바빠서 못가요. 그럼, 신고 안하겠습니다. 그런 데 들락거리는 거 싫고요 시간도 없습니다.
전보안 : 형님이 검사랍니다.
30대男 : 시끄러워요.
경찰관A, B 퇴장
(사이)
30대男 : (쪽지를 돌려주며) 젊은 사람 일자리 잃게 하고 싶진 않고요. 이거 찢어 버리세요. 전 들어갈테니 수고하세요.
전보안 : 네. 정말 죄송합니다.
30대男 퇴장
안팀장이 자바라를 열고 등장. 둘의 관계는 소원하다. 따라서 둘의 대화 는 상대방의 시선을 피해 등을 45도 돌린 채 전방을 주시하며 진행된다.
안팀장 : 갔어요?
전보안 : 그럼. 가지 않구요. 상황이 종료되었답니다.
안팀장 : 답답해서 혼났네. 자다가 열고 나올 수도 없고...
전보안 : 경찰서에 신고했어야 하는데...
안팀장 : 아까 봤잖아요. 아들놈도 서에 들락거리는 거 싫으니 없었던 일로 하자 고... 뭔가 있다니까... 비디오 보면 답이 나옵니까? 자꾸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그냥 두세요.
전보안 : 인상착의라도 기억해두고 싶어서...
안팀장 : 같은 옷 입고 또 나타날까 봐요. 모르지요 전보안처럼 단순하면 나타날 지...
전보안 : 단순한 놈이 단순한 놈을 알아보죠.
안팀장 : 좋겠습니다. 그럼, 계속 보셔. 난, 잘테니까.
전보안 : (방백) 감추는 게 능사는 아닌데.. 자꾸 감추기만 하려 하니..
안팀장(목소리) : 중얼거리지 말아요. 다 들리니까.
(긴 사이)
안팀장 : 전보안, 순찰 좀 돌아요.
전보안 : 예.
안팀장 : 무전기 가져가야죠. 화장실 갈 때만 빼놓고 항상 가지고 다녀요.
전보안 퇴장
안팀장 : 이보안 닮아가나...
박실장 등장
박실장 : 동탄 쪽에 실장 자리가 있는데 그리 갈 생각 없나?
안팀장 : 괜찮습니다. 멀어서 통근하기가 힘듭니다.
박실장 : 그냥 물어봤어. 내 참, 이보안이 또 큰 일을 저질렀다.
안팀장 : 또요? 뭔 일을 저질렀는데요. 이젠 사건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요. 항 상 사고를 치니까...
박실장 : 이보안이 원래 밥은 잘 안하는데, 어젠 대뜸 밥을 하겠대. 그래라 그러 니까 쌀을 씻고 하는 거 같애. 시간이 돼서 정팀장이 수저 밥그릇 반찬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데 밥솥을 여니까 생쌀인기라. 이 자슥이 스위 치는 눌렀는데 코드를 안 꼽았어.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노.
안팀장 : 이보안답네요.
박실장 : 이러다 보안실에서 이보안 어록 한 권 만들어지는 거 아냐.
안팀장 : 한 권으론 부족할 겁니다. 적어도 시리즈는 돼야...
박실장 : 이젠 아무렇지도 안해. 뭐라 잔소리하기도 싫고 그냥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해. 근데 전보안은 어디 갔어?
안팀장 : 제가 순찰 좀 돌라 그랬습니다.
김반장 등장
박실장 : 김소장(별명) 왔나. 엊그제 회식 때 못 가서 미안해. 애인하고 선약이 있 어서... 잘 끝났나. 안팀장은 잘 들어가고?
안팀장 : 또 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24시간 근무를 한데다 빈속에 소주를 먹다 보니 맛이 갈 수 밖에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어요. 소장님 차에 서 내리니까 집이던데요.
김반장 : 너 또 백주임한테 집적댔어. 백주임이 인상쓰더라.
안팀장 : 또? 난 술만 먹으면 왜 그런지 몰라. 예전에도 노래방에서 부녀회 총무 엉덩이를 슬쩍 만졌다가 개쪽 당했는데... 뭐라고 그러지?
김반장 : 넌 약과야. 난 아침에 해장을 한 것이 취해 여기 경비실에서 실수하고 또 청소반장한테 연애하쟀다가 다음날 관리실에서 소장님 보는 데서 무 릎 꿇고 빌었잖니.
박실장 : 참, 대단들 하십니다. 우리 보안이나 김반장이나 명물이십니다. 요즘도
관리실에서 밤에 술 마시나?
김반장ㆍ안팀장 : (놀라며) 아뇨. 요즘엔 안 마셔요.
김반장 : 요즘은 아들 눈치 보느라 안 마셔요. 아들이 얼마 전에 뭐라 그랬는지 아세요. 아빠 어제 어땠니, 물으니까 ' 어, 술이 떡이 됐어. ' 그러더라니 까요. 마누라가 옆에서 얼마나 웃어대던지...
박실장 : 봐. 얼마 전에 마셨잖아.
김반장 : 쉬는 날 반주로 조금씩은 하죠. (방백)제 버릇 개주나.
박실장 : 조금씩 마셔라.
김반장 : 몸 생각해야죠. 낼 모레면 오십인데, 요즘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쁘 고 그래요. 근데, 이보안 걔 좀 부족한 거 아녀요? 관리실에만 오면 꼭 한두 가지 놔두고 가요. 어떤 때는 무전기를 두고 갔다가 다음날 아침에 찾아가던걸요.
박실장 :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 4차원대원 하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암전)
4.일탈을 시도하다
스포트라이트가 경비실을 비춘다. 슈퍼는 불이 꺼져 있어 시간적으로 밤이 깊었음을 암시한다. 경비실 안에 자바라가 쳐져 있고 안팀장, 슈퍼사장, 김반장의 말소리가 들리고 전보안은 전면을 주시하고 있다.
슈퍼사장(목소리) : 오늘 노래방 갈라요? 가끔 유흥을 즐겨야 인생이 즐겁지라.
안팀장(목소리) : 좋지. 니가 일단 돈을 내면 각자 갹출해서 주면 되지.
김반장(목소리) : 도우미는?
슈퍼사장(목소리) : 아따, 불러야지라. 근데, 성님 근무시간 아닌가?
김반장 : (자바라를 열며)전보안님, 근무시간 좀 바꿔줘요. 우리 잠깐
나갔다 오게.
전보안 : 그러세요.
슈퍼사장 : 난, 가게 문 좀 닫고 올라요. 택시 좀 불르시소.
안팀장 : 알았어. 오늘 미쳐보는 거야.
김반장 :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가요
안팀장 : 아, 미운 사람~ 미안해요. 다음에 내가 따블로 근무할게요.
김반장, 안팀장, 슈퍼사장 퇴장
(사이)
안팀장 등장. 술에 취해 있다.
안팀장 : 잠깐 와 봐요. 얘기 좀 하게... 오늘 내가 좀 취했는데, 술 먹어서 하는 말 아닙니다. 참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답답합니다. 내가 부사수일 때 사수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다 했습니다. 식사 준비하고 밥 먹으면 설거지 다하고 남은 음식물찌꺼기는 바로 음식물수거통에 버리고... 알아서 해주면 좋을 텐데...
전보안 : 식사준비와 설거지를 분담하자고 그러더니...
안팀장 : 융통성에 대해서 말한 겁니다. 나도 큰집에 가서 몇 개월 산 놈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알아요? 거기선 기싸움에서 지면 끝입니다. 나는 기싸움에서 아직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깡패라는 건 아니고...
(일어나 전기난로를 걷어차며)
씨팔, 경비라고 다 같은 경비인 줄 알어.
문을 걷어차며 나가는 안팀장,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지는 전보안
암전 후 서서히 밝아지면 정팀장, 이보안 등장
정팀장 : 안팀장님은요?
전보안 : (닫힌 자바라를 가리키며) 아직... 안팀장은 왜 매일 술을 마시죠?
정팀장 : 저도 들은 얘긴데, 트럭운전수 시절 사고로 사람을 치어 면허정지 당하 고 직장 잃고 방황할 때 홧김에 룸싸롱에 가서 카드를 긁어 댄 것이 이천만원이 넘는다네요. 통장이 가압류 돼서 월급이 입금 되는대로 쏙 쏙 빠져나가 일하는 재미도 없고 답답하니까 산에 간대요. 들어가세요.
전보안 퇴장
안팀장이 자바라를 열고 나온다.
정팀장 : (깜짝 놀라) 안팀장님, 가발이...
안팀장 : (그제서야) 이런, 제기랄... 내 가발... 어젠 약을 너무 많이 마셨나봐.
전보안은?
정팀장 : 들어갔어요.
안팀장 : 어, (부서진 전기난로를 보며)이거 왜 이래?
이보안 : 누가 발로 걷어찬 모양이네. 전보안이 화나서 그랬나?
안팀장 : (그제야) 아이구, 내가 무슨 실수나 안했는지 몰라.
정팀장 : 실장님 아시면 뭐라 그러시겠네.
이보안 : 시말서 감이죠.
안팀장 : 머리가 깨지는 거 같네. 어제 전보안이 아침까지 근무를 한 건가. 뭐라 사과를 하지? 문자를 보내볼까?
전보안 : (에코)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길 바라는 건가? 그냥 적당히 마시겠다고 하 면 믿어주겠는데...
안팀장 : 에이, 괜히 보냈나. ... 술을 한두 번 끊어봤나.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끊었지. 그냥 적당히 마시겠다고 할 걸... 적당히 마신다는 게 가능해? 나 같은 주당에게. 에라, 모르겠다.
전보안 : (에코) 그냥 모른 체하자. 어차피 다음 달이면 이곳을 떠나는데 굳이 각 을 세울 필요가 있나. 물 흐르듯 맡겨버리면 그만인걸. ...그렇지만, 트럭 운전수는 왠지 정이 안간다니까. 주는 게 없이 밉고...
아듀~ 한솔솔파크 보안실이여
아듀~ 한솔솔파크 입주민이여
5.이보안, 반전의 기회를 만나다
이보안, 놀이터에서 주운 세발자전거를 타고 등장
모노드라마처럼 혼자 스폿 조명을 받고 있다.
박실장 : 이보안, 순찰 돌아요?
이보안 : 누가 놀이터에 버리고 갔더라구요.
박실장 : 버린 것이 아니라 놀다가 잊고 들어간 거 아냐. 그냥 놔두면 다시 찾아 갈 건데 뭐하러...
이보안 : 아, 그렇군요. 거기까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근데, 정말 편해요. 안 정감 있고...
박실장 : 이해합니다. 이따가 순찰돌 때 타고 놀이터에 갖다 두세요.
이보안 : 네. 알-겠-습-니-다.
박실장 : 잘했어요. 전, 소장님께 근무일지 결제하러 갑니다.
박실장 퇴장
이보안: (독백) 벌써 다섯 달이 지났네. 이젠 내 친구라 생각했던 전보안까지 날 무시하네. 아이 짜증나. 내가 일부러 그랬냐고... 자꾸 깜빡깜빡하는 걸 어 쩌냐고. 오죽하면 소장님이 내가 관리실에 가니까 나를 한번 쳐다보다가 팀장님을 찾겠냐고. 무슨 일인지 설명하지도 않고...
박실장(에코) : 니, 또라이 아이가.
이보안 : (독백)네. 맞습니다. 맞고요. 입주민한테 윙크 좀 하면 어때요. 귀엽게 봐줄 수 있잖아요. 제가 끌어안은 그 아줌마요? 저 같은 또라이한테 누 가 안기겠어요. 제가 미친 척 안아보는 수밖에... 전기밥솥이요? 큼, 그 건 정말 변명하고 싶지 않아요. 저도 그 생각만 하면 어이없어서 웃곤 해요. 제가 좀 생각이 많다 보니까 실수를 했죠. 실장님 지금 웃으셨죠? 정말 저도 생각이 많다니까요. 어떡하면 실장님을 웃겨줄까 생각하죠. 어떡하면 우리 팀장님한테 똑똑해 보일까 연구하죠. 어떡하면 안팀장한테 면박줄까 생각하죠. 면박? 명박? 왠지 고급스런 단어 같은데... 참, 그런데 안팀장은 근무할 적마다 소주를 마시는데 아무도 그런 얘기를 왜 안하죠? 이런, 담배가 다섯 개비 밖에 안 남았어요. 전, 담배가 떨어지면 안 되는데... 슈퍼에 갔다 올게요.
황급히 퇴장 후 다시 등장
많이 기다리셨죠? (새로 산 담뱃갑을 보며) 새 담배를 피우려면 이걸 빨리 피워야겠죠.
다섯 개비를 연달아 피운다.
아우! 시원해. 담배는 이 맛에 피운다니까.
다섯 개비를 절반씩 피우고 버린 후, 새 담배를 뜯어 다시 한 개비를 입에 문다. 마냥 행복한 표정의 이보안.
박실장(에코) : 이보안!
이보안, 표정이 어두워지며 담배를 뒤춤에 숨긴다.
이보안, 그냥 피워. 내가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섭섭해 하겠지. 그 냥 부탁이 있어서. 부담 갖지 말고 들어. 동탄에 보안 자리가 하나 있는데 그쪽으로 옮기면 안 되겠나. 월급도 여기보다 14만원 더 주고 거긴 분리 수거도 하지 않고 택배도 취급하지 않아. 거긴 보안의 천국이야. 불편한 점이 하나 있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는 것뿐이야. 버스 두 번 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이보안 : 여기서 일하면 안 되나요?
박실장(에코) : 누가 안된대. 그냥 부탁하는 거잖아. 몇 달만 있으면 팀장 시켜줄 게.
이보안 : 전, 팀장 되고 싶지 않아요. 여기가 좋은데요.
박실장(에코) : 그럼, 한번 가보고 며칠만 일해요. 그래보고 싫으면 다시 여기로 오면 되잖아.
이보안 : (작지만 단호하게) 전, 여기서 일하겠습니다.
박실장(에코) : 그래? 알았다. 밤에 졸지 말고 근무 잘해!
이보안 : 네, 알겠습니다.
동탄으로 나만 보낸다고? 내가 짱구야. 그렇게 좋으면 다른 사람 보내 면 되지, 왜 하필 나야? 설마 실장님이 날 짜르지는 않겠지. 안 가서 화 가 나신 거 같은데...
(사이)
왜 자꾸 불안해지지. 모두들 날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해. 왜 벌레 씹은 얼굴로 날 쳐다보냐구. 내가 뭘 어쨌다구. 실수 좀 하면 어때. 그때마다 지네들은 날 맘껏 비웃었으면서... 나한테 그런 웃음 준 적 있어? 건망증 이 죄인가?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다친 다음부터 그랬는 걸 어떡해. 하긴, 그 전에도 똑똑하단 소릴 들은 건 아니지만... 프레스기계에 엄지손 가락을 잃은 후부터 물건을 쥐는 힘이 약해져 자꾸 떨어트리는 걸... 그 래서 무전기도 자꾸 떨어트린 거구...나보고 변상하라구 각서까지 받았으 면 됐지. 실장님도 꼭 그래야 돼? 동료들 보는 데서 각서까지 쓰게 하냐 구.
부녀회장 등장
부녀회장: 서운하게 왜 동탄으로 가는겨?
이보안 : 동탄이요? 누가 그래요. 전, 여기서 근무할 건데.
부녀회장 : 관리실에서 그러구, 실장님도 그러구. 입주자대표가 이보안 다른 데로 보내랬대. 무슨 일 있어?
이보안 : 아뇨. 주차장 물샐 때 만났는데...
암전 후 무대 중앙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면, 입주민대표와 이보안이 마주보고 서 있다. 효과음으로 배수관에서 동파로 인한 낙숫물 소리가 들린다.
입주민대표 : 자네, 여기 물이 떨어지는데 왜 그런지 아나?
이보안 : 아뇨.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입주민대표 : 그럼, 언제부터 새는지 아는가?
이보안 : 그것도 모르죠. 저희가 순찰을 돌긴 하는데, 형식적이라...
입주민대표 : 실장한테 연락해봐.
이보안 : 실장님은 퇴근했는데요.
입주민대표 : 그럼, 팀장에게...
이보안 : 예. 어떤 입주민이 지하주차장 물 떨어진다고 자꾸 뭐라 그러네요. 소장 한테 연락하라 실장님한테 연락해라...
안팀장(에코) : 많이 떨어져요?
이보안 : 아뇨. 쬐끔씩.
안팀장(에코) : 그럼, 일단 돌아와서 김반장한테 알려줘요.
입주민대표 : 내가 소장한테 직접 연락하는 게 빠르겠군.
이보안 : 진즉 그러시죠.
입주민대표 퇴장.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 점점 작아지면, 다시
이보안과 부녀회장 등장
이보안 : 내가 뭘 잘못했지?
부녀회장 : 아무튼, 실장님이 동탄으로 보내든지 자르든지 할거래. 나 같으 면 돈 더 받고 동탄으로 가겠다. 거긴 놀자판이래.
이보안 : 실장님한테 무슨 부탁 받았어요?
부녀회장 : 무슨 부탁?
이보안 : 날 설득하라고...
부녀회장 : (어이없는 듯) 실장님 얘기가 딱 맞네. 또라이!
이보안 : 나도 그건 알아요. 꼬마들도 그러대요. 나보고 또라이라고...
부녀회장 : 그게 자랑이다. 아무튼 알아서 잘 결정해. 바보처럼 짤리지 말고...
부녀회장 퇴장
이보안 : 내가 왜 짤려? 누가 감히 이보안을 자른대?
(긴 사이)
이보안의 무릎 위에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 그 여자아이는 이보안 이 사준 과자를 먹고 있다.
입주민대표 등장
입주민대표 : 자넨, 아직... 일하나?
이보안 : 예. 아직 짤리지 않았습니다. 회장님이 짜르라고 하셨죠.
입주민대표 : 그 아인 누군가?
이보안 : 108동에 사는 민지인데요. 귀엽죠?
입주민대표 : 왜 자네 무릎 위에 앉아 있는가?
이보안 : 과자를 사주니까 무릎에 앉던데요.
입주민대표 : 당장 아이를 내보내요.
이보안 : 민지야, 그만 집에 가. 다음에 아저씨가 더 맛있는 거 사줄게.
여자아이 퇴장
중년여인3 등장
입주민대표 : 술을 마셨나?
이보안 : 보안실에선 술을 약이라 부르죠. 약을 좀 했습니다.
입주민대표 : 근무 중에 술을 마셔도 되는가?
이보안 : 어우, 안되죠. 근데, 저는 처음이거들랑요. 매일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입주민대표 : 누가 매일 술을 해?
이보안 : 안팀장하고 기전실 김반장이죠.
입주민대표 : 안팀장이 누군데?
이보안 : B조 팀장이요. 가발 쓴 팀장이죠.
입주민대표 : 가발? 기가 막힐 노릇이군.
이보안 : 저는 벌써 귀가 막혔죠.
중년여인3 : 경비실 아저씨들은 매일같이 술을 하네.
입주민대표 : 보신 적 있나요?
중년여인3 : 어젯밤 몇 번이나 소주병 들고 들락거리던데요 뭘. 왜 안 자르고
그냥 두죠?
입주민대표 : 저는 처음 봅니다.
중년여인3 :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이 아파트 경비는 수준이 왜 이 모양이야.
입주민대표 : 내일 당장 임시 대표자회의를 열어야겠군요.
중년여인3 : 모두 갈아치워요. 어디서 이상한 인간들만 모아놓고...아파트 이미지 나빠져요. 이살 가든지 해야지 원...
중년여인3, 입주민대표 퇴장
전보안, 안팀장, 정팀장, 박실장 등장
박실장 : 차단봉 다 올려라.
정팀장 : 네, 알겠습니다 실장님.
정팀장이 차단봉 3개를 모두 올린다.
박실장 : 어제 임시 대표자회의가 있었습니다. 들어서 대충 아시겠지만, 우리
보안회사하고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어이가 없 어서... 이보안,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제가 이보안을 과소평가한 게 실 수입니다. 내 진작 잘랐어야 하는데...이놈이 어제 무슨 짓을 했는지 아 나?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노. 니가 변태가... 무릎에 아이를 앉혀 놓고 끌어안게.
이보안 : 끌어안지는 않았습니다.
박실장 : 가만 못 있나. 니 죽을래?
이보안 : 죄송합니다.
박실장 : 사과하지 마라. 니는 죄송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거야. 그리고 술은 왜 마셔. 닌 평소에도 술 안 마시잖아. 회사 말아 먹을려구 작정을 했나.
안팀장,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심각하데. 매일 술을 마셨다며?
전기난로 부순 것도 전보안은 안팀장이 개인적인 일로 기분이 상해서 그랬다지만, 니가 전보안을 겁주려고 그런 거 다 안다.
안팀장 : 죄송합니다.
박실장 : 이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죄송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지요.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래 끌지도 않고 2,3일 후면 다른 회사 경비들이 들어옵니다. 젊은 오빠들이 술 먹고 지 랄하니까 나이든 아저씨들로 체제를 바꾼답니다.
이보안 : 실장님, 제가 노래 불러 드릴까요. 지금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는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으흐흐 으흐흐...
박실장 : 니는 이 상황에 노래가 나오나?
이보안 : 미쳤어, 내가 미쳤어.
박실장 : 이보안, 고생했으니까 일찍 들어가세요.
이보안, 안팀장, 전보안 퇴장
관리소장 등장
관리소장 : 다들 어디 갔어요?
박실장 : 팀장은 양복 좀 맡기라고 세탁소에 보냈고 이보안은 꼴보기 싫어서 집 에 가라고 그랬습니다.
관리소장 : 제가 보내라고 할 때 보냈으면 좋았을텐데... 다들 일자리 알아보셔야 겠네요.
박실장 : 저야 얼마 전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면접을 봐서 괜찮지 만, 다른 대원들이 문제죠.
관리소장 : 관리실도 마찬가지죠. 몇 명은 내가 소장으로 있으면서 데리고 있었던 건데, 이젠 힘들 거 같애요. 기전반장이야 회사가 바뀌어도 남아있을 수 있지만...근데, 왜 진작 자르지 않았죠?
박실장 : 어휴, 소장님. 그 정도인 줄 알았으면 소장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잘랐 죠. 그냥 좀 부족한 친구니 다른데 가면 왕따 당할거고, 우리가 그냥 데 리고 있자. 그랬는데 완전 뒤통수를 친 거죠. 이보안이 마지막 순간까지 즐거움을 주고 갔습니다.
관리소장 : 뭔데요?
박실장 : 제게 이러는 거 있죠.
이보안(에코) : 실장님, 제가 노래 불러 드릴까요. 지금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는데...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으흐흐 으흐흐...
관리소장 : 완전 또라이네. 그 상황에 노래가 나오나.
박실장 : 누가 아니래요. 심란한데 동탄 쪽에 순찰이나 돌고 오겠습니다.
관리소장 : 그러세요.
(암전)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