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연구회(회장 이명진)가 지난 3일 오후 8시 의협 3층 동아홀에서 4번째 연구 모임을 가졌다. 윤리를 배움으로써 사회와 소통하는 자리이기도 한 연구회의 이날 주제는 '의사와 동료의료인 관계 윤리'였다. 강의는 구영모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가 맡았다. 의료인 간의 윤리문제에 대해 사례 중심의 논의가 이어졌다. 본지는 개원의들이 진료현장에서 겪는 윤리적 고민을 덜 수 있도록 의료윤리의 기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매월 첫째주 월요일 저녁 열리는 의료윤리연구회 토의 내용을 지상중계하고자 한다. |
"동기가 선했나?" 윤리적 문제 중요 판단 기준
강의 : 구 영 모 울산의대 교수 인문사회의학교실, Ph.D
현재 대한의사협회의 의료윤리지침은 2006년 4월에 개정된 것으로 2001년도의 지침이 개정된 것이다. 여기에는 의사와 동료 의료인 사이의 윤리를 다룬 조항이 있다. 제11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의사와 동료 의료인 관계에 있어 윤리적 문제는 의협의 윤리지침에 명시돼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 그 외 파라메딕 직업군과의 관계도 중요한 문제인데 의협의 지침에는 이러한 부분까지는 다루지 않고 있다. 이는 아직 의사들이 불공정 경쟁, 과대광고 등과 같은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는 의협의 윤리지침에서와 같이 의사와 의사간의 윤리문제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다뤄본다.
표 1.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지침 ( 2006. 4. 22 )
제11조(불공정 경쟁금지 등) ① 의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다른 의료기관을 이용하려는 환자를 그가 종사하거나 개설한 의료기관으로 유인하거나 그 직원으로 하여금 소개·알선 등 유인하게 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의사는 환자로부터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의료보수를 징수하여야 한다. 다만, 사회봉사를 목적으로 시행한 의료의 경우는 예외로 한다. 제12조(과대광고금지) 의사는 의료업무 또는 경력에 관하여 허위 또는 과대한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특정 의사를 비방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
▶ 사례 1. 허위 광고와 동업 P원장은 신도시의 메디칼센터 빌딩에서 내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다. 어느 날 그 건물 같은 층에 한의원이 문을 열었다. 한의원 원장은 P원장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으로 매우 의욕적인 사람이었고 둘은 곧 친해지게 됐다. 얼마 후 한의원 원장인 K한의사가 P원장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어차피 서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으니 돕고 살면 좋지 않겠느냐가 그의 제안이었다. 즉 한의원에서 하지 못하는 간단한 검사나 엑스선 촬영 등이 있으면 P원장에게 보낼 것이고 대신 P원장은 별다른 기질적 이상이 없는 신경성 환자나 우울증 환자 등이 있으면 자신의 한의원으로 보내면 진맥을 하고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한의원에서 개설한 침이나 뜸 치료를 P원장이 이용하고, 또 자신은 P원장의 검사실을 이용할 수 있으면 서로 좋은 일이라는 요지였다. 대신에 그로 인한 수입은 기여한 만큼 나누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건물의 같은 층에 '양한방 협진 및 종합검진' 표시를 붙이고 두 사람의 사진과 진료 과목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전단지도 함께 만들어 '양한방 협진'을 한다고 소개했고 의원을 소개하는 웹사이트에도 같은 내용을 실었다. 이러한 행위는 허위 광고를 규제하는 의료법 위반이 아닌가? 또 의사가 한의사와 협업을 하는 것은 의사로서 전문직 윤리 위반이 아닌가? (출처 : KMA 개원의를 위한 의료윤리, 2006) ◇ 토의 : - 양·한방 협진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다. 협진이 아니라 협업의 문제다. 실제로 많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영리목적으로만 가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인 것 아닌가? 환자들에게 협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뿐이지 개인병원 협진은 아직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환자를 두고 서로 이익이 될 만한 부분을 찾아 공유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인 것이다. - 양·한방 협진이라는 광고가 정당한가? 협진은 두 사람이 한 환자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공유하면서 긴밀한 협조하에 진료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몇 가지 검사를 공유하고 환자를 서로 의뢰하면서 협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 의뢰(referral)를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뢰의 동기가 문제다. 경제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정당화되기 어렵다. - 별도로 개설된 의료기관이 서로 이익을 얻으려고 환자를 공유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이다. - 환자 입장에서 보자. 한 측에서 못고친 부분을 다른 측에서 고칠 수 있다면 좋아할 수도 있다. 오히려 풀서비스를 받았다고 좋아할 수도 있다. - 이를 경제적인 시각으로만 따져서는 안된다. 환자를 의뢰한 것이 진정 환자를 위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비윤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 사례 2. 피부관리사를 고용해 박피술을 지시한 의사 A의사는 피부과 전문의이다. 통상적인 피부과 진료로는 의원 경영이 여의치 않자, A의사는 피부질환 치료 외에 피부관리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의원 내에 피부관리실을 차린 다음 피부관리사 2인을 고용했다. 이들은 피부 미용과 마사지 등 기본적인 피부관리 업무 외에도 크리스털 필링기를 사용하여 환자 얼굴의 각질을 제거해주는 피부박피술을 시행했다. A의사는 피부박피술에 대한 일은 전적으로 피부관리사들에게 맡겨두고 필요한 환자에 대해서는 처방과 지시만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A의사의 피부과가 피부관리실로 인기를 끌자 인근의 피부관리전문업소에서 A의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무면허인 피부관리사들이 크리스털 필링기를 사용한 피부박피술까지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는 취지였다. (출처 : KSME 전공의를 위한 의료윤리, 2010) ◇ 토의: - 피부관리사가 의료행위를 했다면 이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요즘에는 피부관리사가 한정적인 시술행위를 하고 있다. 오히려 의사가 에스테틱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없는 상황이다. - 이 문제는 이미 피부과의사단체와 피부관리사단체 간에 이슈가 됐었다. - 의료법을 근거로 의료행위는 의사만 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것에 대해 '의료독점'이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제한하는 행위가 과연 타당한가? - 미국의 경우에는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 외에 간호사 등 파라메딕들이 어느 정도의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돼 있다. 파이가 한정돼 있지 않다면 허용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허용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럴 경우 직업윤리나 의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 의한 비윤리적, 음성적인 의료행위가 성행하게 됨으로써 국민건강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 공정한 배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제한하고 있다. - 의료현장에서 일하면서 관련 기술을 습득한 사람이 겁없이 불법적인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이로 인한 책임과 처벌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만약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다가 문제가 생긴 경우 엄청난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감히 그런 행위를 할 엄두도 못낸다. - 비의료인의 의료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다. 의사의 진단 처방에 따른 후에 발생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묻지만 비의료인에게 받은 의료시술로 인한 부작용은 비의료인을 선택한 자신의 잘못을 탓하고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는 의료행위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법도 '국민의 건강은 엄중한 것이기 때문에 과다하다고 할 정도로 국가가 이에 대해 보장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이를 보장하고 있다. - 미국 등 외국에서 제한적이지만 의료행위를 타 직역에게 허용을 하는 이유는 의사의 진료비가 높기 때문이다. 의사의 의료행위는 그 비용이 현격히 비싸기 때문에 의료비 절감을 위해 정부가 의료행위의 타 자격사 허용에 관대한 것이다. - 우리나라는 의료시장의 규모가 연간 4조원 정도인데 비해 유사 대체의료의 시장은 6조원 규모에 달한다고 한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 몇 천원만 내면 되지만, 마사지숍에서 서비스를 받으면 10만원도 넘는 돈을 내지 않는가.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수가가 저렴한 상황에서 의료 진입장벽이 높다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 사례 3. 다른 의사의 과오 발견 소도시에서 비교적 큰 규모의 정형외과를 운영하는 P원장에게 오른쪽 손목과 팔 부위에 열상을 입은 22세 남자환자 K씨가 찾아왔다. K씨는 술에 취해 넘어지며 깨진 현관 유리창에 상처를 입었다. K씨는 인근 2차 병원 응급실을 찾아 응급치료를 받았는데 아침이 돼도 팔의 부기가 가라앉지 않고 손가락이 차가워지며 맥박이 잡히지 않아 P원장의 정형외과를 찾아왔다고 했다. P원장이 보니 척골동맥이 파열돼 있었고 손가락의 골격근과 다섯 번째 손가락 인대가 모두 파열돼 있었음에도 응급실에서는 피부봉합만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 병원으로 전화를 해 보니 응급실 당직을 했던 일반의는 이미 퇴근했고 그곳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없어서 아침까지 방치하다 이곳으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환자의 팔과 손은 이미 봉합된 상처 내부에서 출혈이 계속돼 부어올랐고 환자는 통증을 호소했다. 봉합 부위를 다시 열고 척골동맥 접합과 손가락 인대 봉합을 하고 혈관수축 예방 조치를 취했지만 혈액순환저하 증세는 점점 심해져 결국 손가락이 괴사에 빠졌고 마침내 오른쪽 손목 부위부터 절단을 해야만 하는 상태에 빠졌다. K환자는 P원장에게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P원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P원장은 사실대로 애초 당직의사가 잘못했다고 얘기해야 할 지 아니면 원래 상처가 크고 깊어서 그런 경우에는 치료를 해도 제대로 되지 않고 혈관이 막히는 수가 있다고,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출처 : KMA개원의를 위한 의료윤리, 2006) ◇ 토의 : - 이런 사례는 임상 현장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경우이다.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문제이다. - 의학적으로 했어야 할 처치를 안 한 경우라면 악행이다. 제대로 된 처치를 안 한 당사자인 의사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부족한 부분을 다른 의사에게 의뢰하고 그에 대해 설명해줘야 한다. - 몇몇의 의사만 입을 다물면 덮고 넘어갈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드러나는 세상이므로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 것 같다. - 전문의가 당직을 설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는 현재의 의료현실도 문제다. - 방치한 것은 당직의사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는 법적인 문제가 아닌 윤리적 문제이다. - 전문의가 처치했어도 동일한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모든 의사는 의료 행위를 해오면서 제대로 처치하지 못했던 경험이 분명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좀 더 숙련돼 온 것도 사실이다.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해 피해를 본 환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누구나 처음은 있지 않는가. - '환자들에게 진실 말하기'를 논하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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