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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2코스-1(20210123)
부산역광장 서쪽-부산역풍물거리-부산차량사업소-세관삼거리-
조선통신사행렬도-부산항만공사-광복동롯데몰-부산대교-대교로-
봉래교차로-부산지방경찰청교통순찰대-봉래언덕길-봉래 '에일린의 뜰'-
산유화길-봉래길-유림아파트유림캐슬 방향(봉래길96-114)-
새마을경로당-선불사-봉래골 그린공원-봉래산둘레길
1. 산에는 꽃 피고 꽃이 지네
남파랑길 2코스를 빠뜨리고 진행했는데 2코스를 진행한다는 반더룽산악회를 따라서 트레킹에 참여했다. 그런데 원래 2코스에 들어있던 태종대와 감지해변이 공사로 인하여 트레킹을 할 수 없어서 거리가 22km에서 7km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있으랴. 아쉽지만 그대로 즐길 수밖에.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으니 핵심이 되는 태종대와 감지해변이 빠졌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고 주어진 상태를 마음껏 즐기자. 줄어든 15km의 거리 그 속에도 숨은 보석처럼 빛나는 알짜배기들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
부산역 맞은편 초량전통시장 입구를 조금 지난 곳 김경식 내과의원과 부일약국 앞에 버스가 멈추어 내리니 11시 30분이다.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한다. 기온은 겨울 날씨로서는 따뜻한 편이다. 살금살금 보슬비가 봄비처럼 내리는 듯 이내 멎는다. 우산을 펼치지 않고 가벼운 비와 바람 속으로 걸어들었다. 남파랑길 2코스는 부산역 광장 서쪽 부산역 풍물거리로부터 시작된다.
부산역 풍물거리에서 부산대교 북단까지는 두 번째로 걷는다. 낯익은 풍물거리를 따라가며 지난해 가을의 바람 거친 날들을 추억해 본다. 춥지 않아도 겨울은 겨울이다. 우중충한 날씨에 마음은 경쾌하지 않다. 그래도 마음을 달래며 재빠르게 주변을 살피면서 걸었다. 세관삼거리를 지나 부산본부세관 외벽에 그려진 조선통신사 행렬도를 이번에는 꼼꼼하게 보면서 사진에 담았다. 줄지어선 가로수 먼나무들의 열매들이 겨울에도 붉게 아름답다. 수미르공원은 지난번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공사 중인지 방어시설물을 세워두었다. 부산항만공사를 지나서 남동쪽으로 보이는 봉래산이 듬직하다. 저 봉래산 중턱을 에둘러 트레킹을 이어갈 것이다.
광복동 롯데몰을 지나며 땅에서 부산대교 북단 다리로 올라서 대교로를 따라 걷는다. 뒤돌아보면 부산역에서 부산항 연안여객선 터미널로 이어지는 동쪽 풍경이 활력적이다. 빌딩숲과 바다와 여객선이 혼합된 풍경 속에 인간의 꿈들이 바다로, 미래로, 하늘로 퍼져나가는 인상을 준다. 서쪽으로 바라보니 부산남항이 빼꼼히 제 모습을 열어 보이고 그 뒤쪽에 천마산이 우뚝하다. 부산대교 남단에서 대교로는 다리에서 땅으로 내려간다. 대교로를 따라 올라가니 봉래교차로, ‘영도구 방문을 환영합니다’, 조형물이 맞이한다. 교차로 공중에는 마치 우주 열차가 통과하는 공중터널 같은 영도고가교가 동서로 가로지르는데, 그 모양은 어떤 파충류 동물을 연상시킨다.
봉래교차로를 왼쪽으로 꺾어 따라 오르다가 부산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 앞 횡단보도를 건너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봉래언덕길 입구에 남파랑길을 안내하는 이정목이 있다. 봉래산까지 2.7km라 표시되어 있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건너편을 보니,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른 듯한 ‘봉래 에일린의 뜰(Eileen's Garden)’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에일린Eileen’은 여성 이름이겠지? 꼭 영미여성의 이름을 쓸 필요가 있을까? 영미여성이라야 우아해 보이니까 그런가? 이것은 문화적 사대주의고 인종차별은 아닐까? 속으로 괜히 발끈해 보았다.
집에 돌아와서 이 명칭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에일린의 뜰(Eileen's Garden)은 아이에스동서에서 짓는 아파트 브랜드이다. 브랜드 명에서 나타나듯, ‘에일린의 뜰’은 인간과 환경 그리고, 문화적 감수성이 공존하는 ‘Human Design’을 지향하는 아이에스동서의 아파트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에일린’은 주체적이고 감성적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행복한 여성’을 상징화한 Persona로 여성의 꿈과 미래를 상징하고 있으며, ‘뜰’은 누구나 꿈꾸는 인간을 위한 가장 조화로운 공간을 의미한다.”(나무위키에서) 아름다운 뜻을 심은 좋은 명칭이다. 그렇지만 ‘경희의 뜰’, ‘신애의 뜰’, ‘미정의 뜰’ 이름에서 주체적이고 감성적인 여성의 행복함이 더 아름답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봉래언덕길을 오르며 뒤돌아보면, 부산의 랜드마크 용두산의 부산타워가 하얗게 하늘로 솟아있고 그 뒤쪽으로는 시약산과 구덕산이 의젓하게 품 넓은 자세로 포근하다. 언덕길 아래 공중에는 파충류 모양을 한 영도고가교가 소음을 내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듯이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다.
봉래언덕길을 올라서 만나는 ‘하나길’을 가로질러 맞은편의 좁은 골목길 ‘산유화길’로 올라간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를 떠올리게 하는 길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이렇게 끊임없이 생명체들은 탄생한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그런데 산에 피어나는 꽃들은 근원적인 고독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그리고 끊임없이 생명체는 죽어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고독하게 살다가 죽는 게 생명체의 숙명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존재의 근원적 고독감을 노래한 절창 김소월의 ‘山有花‘를 웅얼거리며 산유화길에서 만나는 표지물 ’달 세방, 방2, 300-15(배수지 옆)‘. 아마도 방 2개짜리 셋방이 보증금 300만에 월 15만원이라는 뜻이겠지. 그 표지물 앞에 서니,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이 온몸을 엎누르며 학창 시절 싼 전세방을 찾아다니던 모습이 어른어른 떠오른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사회의 소외된 약자들에게는 거처할 공간 구하기가 그리 쉬운 일일까? 험난한 역정의 길이다. 산유화길에서 만나는 남루한 주택들은 예전의 어려운 시절을 살던 삶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꿋꿋이 오늘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곳 주택들도 사라질 것이고, 봉래언덕길에 새로 짓는 아파트 ’에일린의 뜰‘ 같은 우아한 고층아파트 숲이 우뚝 솟아오를 것이다. 거주민들도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골목길을 오르면 순식간에 차량들이 다니는 포장도로와 만난다. 오른쪽이 동백꽃길이고, 왼쪽이 봉래길, 왼쪽으로 꺾어 봉래길을 잠깐 오르다가 봉래 치안센터 건물 옆 유림아파트 방향으로 들어서서 새마을경로당이 있는 왼쪽의 봉래골 그린공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봄비처럼 살금살금 비는 내리다 멎고 바람이 불어온다. 추위를 걱정하여 옷을 두껍게 입은 탓에 몸에 열기가 솟아 땀이 흐른다.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5시 50분에 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 뒤 물을 마신 것밖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고픔이 밀려온다. ‘그린공원이 있다고 하니 공원에 점심 먹을 좋은 자리가 있겠지.’ 5층 석탑이 극락전 앞 좁은 마당에 세워져 있어 답답해 보이는 선불사를 지나 계단길을 오르면 봉래골 그린공원이다. 운동시설과 정자가 있어 정자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빗물에 젖어 바닥이 축축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바람이 몰려오는 곳이라서 점심 먹기에 좋지 않다. 그린공원 입구로 되돌아가 산 위로 오르는 좁은 길을 따라 오르니 봉래산 둘레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그 뒤에 산불감시초소와 벤치가 있다. 저 벤치에서 점심을 먹자. 봉래산을 등지고 앉아 점심을 먹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문명의 화려한 도심을 거쳐 봉래산에 오르는 언덕길을 올라 지금 봉래산 둘레길에 있다. 부산대교를 건너 파충류 모양의 영도고가교 아래를 통과했다. 봉래언덕길, 언덕 낮은 곳에는 ‘에일린의 뜰’ 아파트가 새롭게 지어져 삶의 편안함을 선물하는 듯하고, 산유화길로부터 예까지 이르는 동안 산동네 마을을 거쳐 왔다. 인간 삶의 간고(艱苦)함이 곳곳에 배어 있지만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끈질긴 적응력과 인정이 봉래산보다도 더 아름답게 반짝이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이렇게 부니 비가 안 오겠지요?” 우산 없이 봉래산 체육공원에 오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내게 말을 건네신다. 청승을 떠는 내 모습이 외로워 보였나 보다. “그럼요, 비는 안 내릴 듯하지만, 내리더라도 적은 양일 것 같아요.” 할아버지 내외는 산길을 올라가고 나는 배낭을 챙겨 해돋이배수지 방향으로 봉래산 둘레길을 따라 떠난다.(2부로 이어짐)
江山 좋은 景을 힘센 이 다툴 양이면
내 힘과 내 분으로 어이하여 얻을 수 있겠느냐?
진실로 禁할 이 없기에 나도 두고 노니노라.
-김천택(金天澤. 1680년대 말?~미상)의 옛시조
2. 걸은 과정
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돌아가 부산지방경찰청교통순찰대 앞까지 걸어간 뒤 횡단보도를 건너 위쪽으로 올라가면
산불감시초소 옆 벤치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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