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4. 오전 11시 예배 (누가복음 7장 36절 ~ 50정)
"엄마, 지금 뭐 만들어요?"
이제 다섯 살 된 해영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응, 엄마가 사랑하는 해영이도 주고 아리네 갖다주려고 맛있는 것 만들고 있어."
"왜요?"
"너도 알다시피 며칠 전에 아리네가 동생을 잃어서 가슴에 상처를 많이 입었거든. 그래서 엄마가 위로해주려고."
"왜 엄마가 위로해줘야 해요?"
"해영아! 사람들이 아주 슬플 때는 음식을 잘못 먹어. 그래서 엄마가 도와주는 거야. 해영이도 아리네 도와줄 거를 생각해 볼래?"
해영이는 어떻게 하면 자기도 아리네를 도와줄까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아리네 집으로 가서 인터폰을 눌렀다.
아리 엄마가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 아줌마!"
아리 엄마는 잠긴 목소리로 '응. 해영이, 왔니?'라고 말했다.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퉁퉁 부어 있었다.
해영이는 아리 엄마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무슨 일이니, 해영아?"
"엄마가 그러는데 아줌마가 가슴에 상처가 나서 많이 아프대요."
해영이는 부끄러워 하면서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가슴에 난 상처에 이걸 발라요. 그럼 금방 나을 거에요."
손에는 일회용 반창고가 들려있었다.
아리 엄마는 눈물을 왈칵 쏟으며 해영이를 껴안았다.
"고맙다, 해영아. 아줌마가 너 때문에 빨리 나을거야."
그래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모두 가슴에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가슴이 아프고 슬프고 고독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우두커니 서서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산책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저는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여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안절부절 하다가 헌혈하는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50절)를 보면
죄 많은 여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슨 죄를 얼마나 저질렀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에 대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상대 하기를 꺼려 했습니다.
성서는 이 여인을 창녀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여인에 대하여 깊이 생각 해 보앗습니다.
왜 창녀가 되었을까?
또한 그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내들에게 조롱을 받았을까?
당시 여자들의 자격은 짐승 취급을 받았으니 창녀의 취급은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미친개 취급을 받았겠지요.
그 여인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마 여러번 죽으려고 마음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동안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던 예수님이 그 마을에 방문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사람이 많은 장소에는 갈 수 조차 없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직면 했습니다.
오직 한번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기를 갈망 했습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많은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으면 머리털로 발을 씻길 정도이겠습니까!
저는 그 광경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발아래 엎드려 콧물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가여운 여인을 보시고 함께 우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무엇입니까?
얼마전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그때 그 뉴스를 접했을때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질때 머리와 몸이 바위에 부딪치고 찢길때 얼마나 아팠을까? 아찔하고 제가슴이 찢기는 심정이였습니다.
그때 가장 많이 불려졌던 노래가 ‘ The Saddest Thing' 이였다고 합니다.
청바지와 생맥주 통키타로 대변 되었던 7080세대의 낭만 가수 멜라니사프카는 “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 이라고 슬프게 노래 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인지 이별인지 ‘안녕’이란 말은 감히 어렵습니다.
어느 시인은 말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사람은
배반당한 사람 , 버린받은 사람도 아니고 잊혀진 사림이 아닐까요?“
이런 아픈 기억은 없습니까?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왜 우리 엄마는 한 눈이 없는걸까요?
그래서 항상 챙피했습니다.
운동회날이면 한눈이 없는 엄마 때문에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성공해서 외눈백이 엄마와 남처럼 살아야 겠다고 결심 햇습니다.
서울에 올라가 독학으로 서울대에 입학했고 성공 햇습니다.
결혼도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눈가진 어머님이 찾아 왔습니다.
어머니가 이미 죽었다고 속이고 결혼한 아들은 한눈을 가진 어머니를 보고 어린 아들이 울자 어머니를 쫓아 냈습니다.
아들에게 쫓겨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 합니다.
피눈물도 없이 말라버린 내 가슴을 발견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원망하지 않앗습니다.
어느날 동창회에 아들이 내려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기다리다가 쓰러져 죽었습니다.
아들이 동창회에 내려와 어머니의 집을 방문 햇습니다.
쓰러진 어머니의 손에 편지 한 장이 쥐어져 잇엇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보고싶다.
네가 5살때 교통사고로 네 눈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내 눈 하나를 너에게 주었단다.
아들의 눈에 박힌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렷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편지를 가지고 계십니까?
누가복음 7장에서 바리세인은 자칭 의인 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초청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바리세인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버림받은 창녀의 눈물에 더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초청받지 못한 창녀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슬픈 일이 있습니까?
그것은 나를 위하여 한눈가진 어머니의 사랑의 편지를 받아보지 못한 어리석은 나의 모습입니다.
가슴의 아픈 상처에 바를 일회용 반창고 들고 서 있는 어린 해영이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미안 합니다.
그동안 설교문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연세소망교회에서 13주째 에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초안 설교문을 성급하게 오렸습니다.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