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 기지 관리 사령부 6.25 전쟁 사료 공개 사진에는 전쟁 중 폐허로 변한 도시의 모습과 한국군·미군의 전투 모습 등이 다양한 형태로 담겨 있다.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전장 시찰, 코미 디언 보브 호프와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미군을 위문하는 장면 등도 포함돼 있다. 동영상 가운데는 6·25 전쟁 격전지의 전투는 물론, 6·25 전쟁 후 한국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내용도 들어 있다.
1. 24 보병연대가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2. 철조망을 싣고 대구역을 출발하는 화물 열차.
3. 부상병이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4. 북한군의 박격포로 부상한 병사가 부산가는 열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5. 대구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군중이 모여 있다.
6. 해군 병사들이 배 난간에 기대어 쉬고 있다.
7. 3개의 BD-100A와 BD-96을 제임스가 조작하고 있다.
8. 상륙후 부두에서 쉬고 있는 미군 병사들.
9. 전투가 소강 상태일 때 무전병이 신문을 보며 음식을 먹고 있다.
10. 새로 도착한 미 해병 대원들이 전선으로 이동하기 전의 모습.
11. 전사자 모습.
12. 9보병연대 병사들과 M26 탱크가 북한군의 낙동강 도강에 대비히고 있다.
13. 북한군포로, 그는 전쟁 포로라는 판을 목에 걸고 유엔법에 따라 관리되었다.
14. 해병대를 태운 상륙정이 인천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
15. 4척의 상륙정으로부터 병력과 장비가 내려지고 있다.
16. 사다리를 싣고 인천 상륙을 위해 상륙정에 승선한 해병들.
17. 인천의 관문인 을미도에서 북한군을 소탕 중인 해병대.
18. 해병들이 인천 해안에 상륙, 공격은 신속했으며 부상자는 놀랄 정도로 적었다.
19. 상륙 작전중 인천 해안을 살피는 맥아더 사령관.
20. 어린 소녀가 길가에서 울고 있다. 미해병과 한국 해병이 인천에 상륙한 직후.
21. 부산 운동장 공연, 그는 자비로 공연을 했으며 한국에서 돌아간 직후 사망했다 .
22. 북한군이 김포 공항에서 파괴된 비행기가 1950.9.18 다시 미군 손에 들어왔다.
23. 31연대 병력이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
24. 신당동에서 미군에 잡힌 북한 소년병이 신문을 받고 있다 .
25. 낙동강을 건너다 부상 당한 병사가 들것에 누워 있다.
26. 시가전 중인 유엔군.
27. 탱크가 포로 행렬을 따르고 있다. 28. 미영사관에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29. 북한군에 의해 대량 학살된 시신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한국인.
30. 공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 위의 탱크.
31. 한국군 헌병이 무너진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32. 서울의 주거지의 파괴된 모습.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33. 한강에 새로 건설된 철교에 처음 지나는 기차 앞에서 62공병대 병사와 사병들.
34. 북한군과 중국의 통신단절(39마일) 위해 청진에서 16인치포 사격을 하고 있다.
35. 밥 호프의 공연을 보며 웃고 있는 병사들.
36. 북한군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는 미해군 전투기.
37. 유엔의 날에 마지막에 한국의 부통령(이시영)이 만세를 선창하고 있다.
38. 위문 공연을 온 밥 호프와 함께 포즈를 취한 병사들.
39. 마산 근처의 ching pung면에서 피난 온 가족. 지금은 장생포에 있다.
40. 폐허가된 서울에서 할머니가 쓸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41. 아주머니와 아이들이 땔감을 찾고 있다.
42. 한국의 여류시인 모윤숙이 어떻게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서 탈출했는 지 말하고 있다. 유엔군이 올때까지 산에 숨어 지냈다.
43. 미해군 폭격기가 신의주 압록강 다리를 폭격하고 있다.
44.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작은불 옆에 있다.
45. 청천강에서 북한군 진지를 겨냥하고 있는 병사들.
46. 환자들을 위해서 조지 밀러가 피를 모으고 있다.
47. 부상당한 목사님이 전사한 해병들을 위해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48. 밥을 짖고 있는 세 병사. 49. 부상 당한 병사들은 의족 의수가 익숙해 질 때 까지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했다.
50. 공산군의 맹공으로 흥남에서 철수하는 보급품과 장비들.
51. UN군의 LST가 인천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52.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3. 전사한 미해병들의 무덤에서 추도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54. 투루먼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55. 북한의 피난민들이 흥남을 떠나고 있다.
56. 피난민들이 LST에 승선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피난민들은 우마차에서 짐을 내려 어선에 옮기고 있다.
57. 흥남으로 함폭 사격 중인 미해군. 58. 전투기의 근접 지원 후 전진 중인 미해병.
59. 중공군의 맹공에 후퇴하는 미군.
60.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한국에서 중공군의 철수 결의에 반대를 표하는소련 대표 .
61. 논을 따라 이동중인 북한군 포로들.
62. 미해병이 지키고 있는 북한군 포로.
63. 평양으로부터 철수하여 38선을 건너는 유엔군 .
64. 참호에 있는 미해병.
65. 극동태평양사령부로부터 보급된 탱크가 항구로 내려지고 있다 .
66. 수원비행장의 한국인이 철수하는 동안 대전차포가 수리를 위해 이동되고 있다.
67. 장교의 아내가 자동차에서 장교가 한국으로 타고 갈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6,25 전쟁의 처절했든 참상을 공개한"귀중한 사진자료!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 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 돌아올 깁니다.”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 (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 (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 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새로운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다듬었습니다.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 조국에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옮겨온 글과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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