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도 뺑소니 나름
Q.연개소문은 안양에 사는 직장인입니다. 그가 하는 일은 전주의 통신선을 연결하는 육체노동입니다. 통신선을 가설하는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자동차 운전은 필수입니다. 사건은 연개소문이 전주의 통신선을 연결하고나서 귀가하는 길에 생겼습니다.
연개소문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들의 학원 앞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원은 안양에 있는 입시학원 중 ‘족집게 강의’로 유명한 곳 입니다. 그러다 보니 귀가길의 학원 앞은 학원차와 일반 승용차들로 뒤얽혀 3~4차로까지 꽉 막히게 됩니다. 아들을 태운 연개소문은 녹색신호를 확인한 뒤 복잡한 3~4차로를 피해 2차로를 따라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학생 한명이 연개소문의 차 앞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학생은 학원 수업을 마치고 반대편에 있는 귀가차를 타기 위해 학원버스 앞을 통과한 뒤 무작정 달려 연개소문의 차로 뛰어든 것입니다. 놀란 연개소문은 차를 급제동했고 학생에게는 전치 2주 정도의 가벼운 피해를 입혔습니다.
화가 난 연개소문은 창문을 열고 “야 너 이렇게 신호를 무시하면 어떻게 해, 조심해야지! 목숨이 두개야?”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학생은 연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반대편의 차로 뛰어 갔습니다.
연개소문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일은 그렇게 넘어가는 듯 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아들의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개소문 앞으로 등기우편이 왔다는 우체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직접 우편물을 받을 상황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사무실로 가져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우체부는 그의 말대로 친구의 사무실로 우편물을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친구는 우편물을 그대로 보관만 했고 연개소문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어느 날, 연개소문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조사할 것이 있으니 경찰서로 출석을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연개소문은 일단 경찰서에 찾아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4개월 전 연개소문이 학원 앞에서 친 학생의 일로 검찰에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의관한법률위반(도주차)’이라는 내용으로 벌금 2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약식명령을 발한 것입니다.
연개소문은 속칭 ‘뺑소니’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발부된 약식명령은 그대로 이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이에 연개소문은 을지문덕 변호사를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습니다. 을지문덕 변호사는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구호조치의무’를 위반하기는 했지만 피해자 쪽의 신호위반 잘못도 크고 하니, 연개소문의 억울한 상황과 함께 정상을 참작해 줄 것 등을 변호했습니다
다행히 사건이 경미하고 연개소문의 억울한 점도 있고 해서 법원은 벌금 200만 원의 ‘선고유예’ 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연개소문은 ‘운전면허취소’를 무효화 시켜 운전도 다시 하려고 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을지문덕 변호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운전면허취소’를 취소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적어도 ‘운전면허정지’ 정도로 해서 일정기간이 지나면 운전면허를 다시 받을 수 있는지를 문의했습니다.
을지문덕 변호사는 행정소송은 처분이 도달한 날로부터 90일내에 제기해야 하며 그 기간이 지났을 때에는 불가능 하다고 말했습니다.
연개소문은 운전면허 취소 통보서가 배달됐던 4개월 전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등기를 받지 않고 무심히 넘겨버린 일과, 교통사고가 났을 때 차에서 내려 피해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그냥 보냈던 일들이 크게 후회 됐습니다.
그는 직업의 특성상 차 없이는 생활할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을지문덕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운전면허라도 빨리 따게 해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연개소문은 과연 운전면허를 딸 수 있을까요?
A.운전면허를 딸 수 있습니다. 위 사례는 필자가 수행한 사건을 어느 정도 각색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운전면허시험장에 판결문을 가지고가 면허는 취소됐지만 ‘선고유예’를 받았다고 말한 후 ‘운전면허재신청’을 하면 됩니다.
해설 : 속칭 ‘뺑소니’로 처벌받아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람은 5년 동안 운전을 하지 못합니다. 도로교통법 제82조는 운전면허의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도로교통법 제82조 제2항 각 호에 ‘벌금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의 선고를 받은 사람은 운전면허를 발급받지 못한다’가 그 내용입니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는 형의 ‘선고유예’는 포함되지 않았음으로 연개소문은 운전면허를 새로 발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 사례에서 보았듯이 일단 교통사고가 나면 차에서 내려 피해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리고 본인의 운전면허를 제시한 다음 인적사항을 알려주고 피해자의 상태를 피해자로부터 확인(가능한 한 문서로) 받아야 합니다.
그 뒤 피해자에게 약간의 문제라도 있다고 생각되면 바로 경찰과 보험사에 신고하고 필요시 병원으로 후송하는 등의 제반조치도 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칭 ‘뺑소니범’이 되는 것 입니다.
글·전상귀 변호사
일러스트·권혁진
< 자동차생활, 2006년 08월호 내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