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께서는 어릴때부터 일본식민지교육에 염증을 느껴 자주 결석하는등 퇴학을 하고 서당 등에서 四書, 三經, 漢學 등을 수학하여 농민운동에 정열을 태웠다 그러든중 광복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서 1932년 4월29일 상해 흥구 공원에서 거행된 일본 천황 탄신 기념일인 "천장절겸 전승 축하 기념식"장에 잠입하여 도시락 폭탄 투척으로 대한민국 독립의 열망을 전세계에 알리고 일본 국국주의를 응징한 한국독립운동의 투사이다. 그러나 윤봉길 의사는 그자리에서 체포되어 구속수감중 동년 5월25일 상해파견군사주력부대 일본군 제9사단에서 있은 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후 동년 11월18일 일본 오사카 일본 육군 형무소로 이감되어 수감중 동년 12월18일 군사재판에서 사형집행을 결정받고 그날 이시가와현 가나자와시 가나자와성내로 연행되어 일본육군형무소에서 하루밤를 묵고 그 이튼날 동년12월19일 오전7시 40분 가나자와시 교외에 있는 일본군 공병작업장뒤 三小牛山 야산속에서 총살형을 당하여 그때나이 24세 6개월의 짧은 생애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체는 형법의 절차를 무시하고 일본육군묘지 입구 관리사무소 계단밑에 비밀리에 암매장 하여 묘비도 없이 13년간 많은 사람들의 발에 짓 밟혔다. 대한민국 광복후 1946년 3월 윤봉길 의사님의 암매장지 인근에 거주하는 제일동포 박인조 할아버님(현재 82세)과 뜻있는 애국 동포들에 의해 언론에 공표하여 그사실을 알렸졌다. 오호! 원한 많은 윤봉길 의사의 유채는 그후 뜻있는 재일동포 연 200여명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쓸쓸한 지금의 그자리에서 발견 진실을 확인하고 동년 7월 7일에 한국에서 독립 영웅으로서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른후 안장 되었다. 윤봉길 의사님의 암매장지는 식민지 지배에 의한 사건의 증거, 은멸과 역사의 말살이었다. 이사실과 윤봉길 의사님의 얼을 계승, 한일간의 불행한 과거사를 깊이 직시하고 우호친선을 원하여 이시가와현 가나자와시에서 사적으로 보존공사 하였다. 보존사업에는 지금 윤봉길 의사님의 묘지를 관리하고 계시는 박인조 할아버님의 노력과 뜻있는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 다시한번 고개 숙여 그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혹시 각여행사나 단체등에서 이시가와현 가나자와시를 방문하시면 꼭 한번쯤 들러서 술한잔 올리고 정성어린 예 라도 표했으면 합니다.
▼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전 하루밤 수감 되어 있었다는 가나자와성
▼ 일본 육군묘지 내에 세워진 윤봉길의사 기념비
▼ 기념비가 세워진 의의를 설명하고 계시는 박인조 할아버님
▼ 설명을 하시면서도 손수건으로 비석을 닦으시는 박인조 할아버님
▼ 조금 떨어진 음달진 곳에 윤봉길 의사님 암매장지( 현 묘지)
▼ 윤봉길 의사님의 묘비와 유채를 모신 묘지
(유리판 아래 영위라고 쓰여진 곳)
▼ 약소하지만 甘山이 준비해간 술을 한잔씩 올리고 윤봉길 의사님께 참배하는 일행들...윤봉길 의사님께서 감옥에 수감 중이실때 남긴 편지에 의하면 조국과 민족과 후손들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당신께서 죽고 나면 묘지에 술한잔 올려주면 만족 하다고 하셨답니다. 가시면 꼭 술한잔 올리고 참배하고 오세요...
▼윤봉길 의사님의 암매장지 발견과 지금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시는 재일동포 박인조 할아버님(82세) 현재까지 묘지 관리를 하고 계심
▼묘지 양 옆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슴
▼서울에서 있은 기념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과 박인조 할아버님과 관계자 여러분들의 사진과 윤봉길 의사님 추모 사업회 회장 이명박 현 대통령으로 부터 받은 박인조 할아버님의 공로패와 평소 관리모습
▼한국의 선박 회사 관계자와 여행업 관계자 분들께 설명을 하시는중
▼연로하신되도 불구하시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묘지 관리와 설명을 하고 계시는 박인조 할아버님께 고개숙여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말은 육군묘지 관리사무소라고 하는곳. 실은 윤봉길 의사님의 유채를 감시하든곳으로 알려져있슴 이건물 앞 계단 옆에 암매장 되어 있슴
▼관리사무소 전면에서 본 모습 저 아래 계단 아래 입구에 윤봉길 의사님 암매장지가 있슴...
▼박인조 할아버님께 감사의 인사와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큰절을 올린후 기념촬영
▼겨례의 인물 윤봉길 의사님의 생전 모습
▼1946년 윤봉길 의사님의 암매장지를 세상에 알리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묘지를 관리하고 계시는 박인조 할아버님과 기념촬영 만나뵙게되어 영광이었으며 절로 숙연해지고 다시한번 고개 숙입니다
아쉽게도 박인조 할아버님의 말씀으로는 지금까지 한국 정치인이나 정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분도 찾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래가사 되겠습니까? 일행 모두에게 설명하셨습니다.
분명히 박인조 할아버님께서 해주신 말씀 이십니다
첫댓글 정보 잘 올렸습니다. 저도 첫잔을 올리며 가슴에서 뭔가 쑥하고 올라 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듯한 감정이었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 바치라고 교육들을 시키면서 정작 높은 위치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과연 지금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여행도 좋고 트랙킹도 좋지만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히 아는게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꼭 한번씩 둘러 보시고 현실을 잘 직시해서 더 나은 나라,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사장님 수고 하셨어요-탱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산행을 할수 있는것도 다 울 선조님들의 피와 땀으로 얻은 결과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울 후손들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데 모자라는것 같아 늘 아쉽네요
세월이 흘러 이제서야 찾아가 보았습니다. 대장님의 관심과 설명으로 다시 한번 우리 민족의 정체성를 생각해봅니다.
평소 여행을 통해 미래를 본다고 생각 해 보았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곧 과거의 결과 라고도 생각합니다...과거를 되돌아 보면서 여행을 한다면 오늘과 미래를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과 함께요...여행의 최전방에 계시는 울님들의 오늘 행동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 후손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