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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문예작품 스크랩 지리산 둘레길 돌아오기 - 1 (주천 ~ 운봉)
梅苑 추천 0 조회 52 12.09.16 08: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智 異 山 둘 레 길 巡 禮 記

 

 

어둡기 前에 훌훌 털고 골목을 나선다.

打作 뒷마당에 낱알 몇 되박이라도 줍고 싶어서다.

 

‘智異山 둘레길’로 간다.

‘둘레길’은 돌아보지 않아도 되돌아가는 길이라 좋다.

지리산은 ‘마음의 山’이라 마음의 둘레를 돌아서 더 좋을 것이다.

 

黃昏녁에 더할 수 없는 因緣일 것이다.

 

먼~ 길인데 同行이 없느냐 하신다.

이 길은 ‘巡禮길’이라서 혼자만이 가는 길이라 말씀 드린다.

 

全南北 慶南 3個道, 五個 市郡의 智異山‘둘레길’ 800里를 걷는 길이다.

나는 한번에 2泊 3日씩, 몇 次에 걸쳐

智異山 온 자락을 휭~ 한 바퀴 巡禮하려 한다오.

 

山 神靈이시여 ! 굽어 살피시고, 낱알 몇 되박이라도 許諾하소서 !

 

 

‘智異山둘레길’ 槪要圖

 

                                

                                                                < ‘(사)숲길’  資料 >

 

첫 번째 巡禮길 (2012년 5월 24일 ~ 5월 26일)

 

이 ‘둘레길’을 잇고 管理, 運營한다는 ‘(사)숲길’에서 출판한 ‘公式 가이드북’

“지리산 둘레길”이라는 案內冊子와 ‘홈-P (www.trail.or.kr)’ 자료에 따라

南原市 區間 부터 “巡禮”를 시작 한다.

 

처음에 나는 그냥, 無酌定 나그네가 되고파서 길을 나섰다.

무슨 흔적이 쓰임 있으랴 싶어 카메라도 쥐지 않고 집을 나섰다.

더구나 紀行文은 당초에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남원구간’ 첫 巡禮 3日을 다녀오고 나서

다음 구간을 準備하려니

아무래도 ‘다녀온 마음’을 가다듬어 두어야 할 것 같아

巡禮記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5월 24일 아침 8시, ‘대구 서부 터미널’에서 南原을 向한다.

꼭 두 시간만에 ‘남원 터미널’에 도착.

南原구간 始發點, ‘주천’으로 가는 市內 버스停車場을 찾아 나서니

停車場길을 꼬부랑 할매, 할배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

왠 上老人들인지 疑訝하기만 하다.

 

어젯밤에는 멀리 出征하는 新兵 인양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이른 아침에 몇 술 뜬 아침밥은 남원고속도로 길에 벌써 消化되었는지

아직 아침 10時인데도 뱃속이 허전해 시장氣 마저 느낀다.

南原 땅 첫 걸음부터 발걸음이 무겁다.

솔직히 ‘마음’이 더 무겁다 할 것이다.

 

버스정차장 시간표에는 거의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已往之事 시작한 ‘실속(?) 巡禮길’ 인데 실속 있게 하자며 다짐을 한다.

 

호호 할매 할배들 사이로 停車場 긴 의자, 빈자리를 겨우 얻어 앉는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오늘 점심은 김밥, 내일은 빵으로 때운다며

배낭 속 깊숙이 넣어둔 製菓店빵을

밀려오는 시장氣에 肉脯랑 끄집어내어 廉恥不拘 어적어적 씹는다.

 

목 줄기로 짜릿한 感電信號가 올라온다.

生水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데 누군가 뒤에서 엉덩이를 들이 민다.

돌아다보니 할미꽃보다 더 굽은 할매가 엉덩이를 걸치고 있다.

 

이 생각, 저 생각 ! 낯선 길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리다

11時가 넘어서야 버스가 온다. 약 15분 걸려 始發點인 ‘주천지구대’ 앞에 닿았다.

案內冊子를 읽고, 인터넷을 몇 번이나 檢索한 득에 더듬지 않고 둘레길을 찾아 들었다.

 

 

 

“주천 ~ 운봉 구간”

 

< ‘(사)숲길’ 출판, 案內冊子의 紹介資料 >

* 始終點

     ‘남원시 주천면 치안센터 옆 안내소’에서 시작

     ‘남원시 운봉읍 읍사무소에서 인월 방향으로 100m 앞’ 까지

 

* 거리 : 15.7 Km, * 소요시간 : 6 hr,

 

* 難易度 :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걸을 수 있음

 

* 區間 略圖

 

 

 

 

 

 

 

* 區間距離 및 高度表

 

 

 

몇 年 前까지 나는 비록, 거북이 걸음이었지만 八空山을 오르내리는 體力은 되었다.

그러든 어느 날 부터인가 나는 世上萬事가 싫어져 바깥나들이를 거의 하지 않았다.

蟄居 數年동안 山行은 물론, 바깥 운동도 거의 하지 않고 지내다가

갑자기 지난봄부터 쏟아지는 햇볕 속으로 훨~ 훨 날아보고 싶어져 그래서 나선 길이다.

 

始發點에서 안내간판을 읽고, 배낭끈을 조이고, 첫걸음을 시작한다.

타박타박 堤防길, 아스팔트道路, 콘크리트農路를 따라 약 2 Km 걸어가니

山 밑에 ‘내송마을’이 있다. 마을 뒤에는 ‘개미 亭子’란 쉼터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山숲길이 시작 되는가 보다,

쉼터에 앉아 김밥을 꺼내 점심을 우선 먹는다.

목포에서 온다는 두 젊은이가 휙~ 지나가며

염려스러운 듯 “어르신 조심하여 올라오세요.” 한다.

 

서서히 올라가는 登山길이

初盤부터 힘에 부친다.

몇 년을 놀아먹은 아랫도리가 단단히 罰을 서는가 보다.

 

智異山‘둘레길’ 에는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復元한 곳이 많다 한다.

이 길 곳곳에도 ‘옛길흔적’이 아둔한 내 눈에도 鮮然하다.

이 길에 파 묻혔을 옛 事緣들을 나 혼자 재미삼아 이리 저리로 굴려보며

개미처럼 기어 올라간다.

 

고개를 넘었나 싶으면 또 고개가 나온다.

智異山 쪽은 生前 처음이다. 옆으로도 山, 앞으로도 山, 위로도 山이다.

5月의 靑綠이 이렇게 靑綠色 일까 ?

숨이 가빠도 어찌 이렇게 숨길이 맑을 수 있을까 ?

 

여기는 주막집흔적, 저기에는 火田마을 흔적 같다.

작년, 除草器로 伐草한 자국이 아직도 鮮明한 墳墓도 보인다.

이 높은 山中에다 先塋을 모신 저 至極한 後孫들은 얼마나 發福받았을까 ?

“ 엑끼- 이놈 ! ” 앗-차, 내가 몹쓸 생각을 하고 있구나. 容恕를 빌며 지나간다.

 

자료를 찾아보니 4~5백 m는 오른 것 같다. 첫 둘레길 申告로는 너무 힘겹다.

중간 중간, 만나는 사람마다 ‘어르신! 힘드시죠 !’라는 인사가 憫?하리 만큼 정답다.

 

오름길 보다 내려가는 길은 넓고 잘 다듬어진 길이다.

史劇영화 撮影 은 이런 곳에서 하는가 싶은 길이다.

오름길에 無理를 한 탓인지 내려가면서도 몸이 뒤뚱거려 힘이 든다.

가다가 엉덩이 붙일만한 곳이면 빠짐없이 앉아 쉰다.

내려가는 길이 ?하지 않아 多幸이다.

 

山길을 오르고, 내리며 6 Km 쯤을 걷고 나니

山밑 마을에 닿는다. 자동차가 달리는 찻길이 처음 보는 듯 반갑다.

여기가 標高: 海拔 500m가 넘는다는 ‘雲峰 高原’ 이란다.

時刻을 보니 오후 네時가 지나고 있다. 구름 짙은 날씨에 빗방울도 듣는 것 같다.

 

나직한 구름하늘 밑으로 山中 들녘이 열리면서

들판 양쪽에 肉重한 山줄기가 屛風처름 길게, 길게 뻗어 달리고 있다.

요즘 같은 極甚한 가뭄에도 찻길을 따라 개울물이 흐르고

개울옆 들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모내기 물이 가득한 들녘은 저녁 빛에 더욱 말끔하다.

이곳은 高原, 低溫地帶라 우리나라에서 모심기가 제일 빠르다 한다.

 

몇 집 안 되어 보이는 마을인데도 마을 앞 버스정차장에는

색깔이 멋진 의자와 바람막이 유리벽이 있어 映畵에서나 봄직한 風景이다.

저~기 보이는 마을 앞 亭子에도 유리벽 바람막이가 있어 富티를 풍기고

亭子안에 어렴프시 보이는 추임새 小북은 藝鄕, 南原의 멋을 限끝 부리는 것 같다.

 

案內資料와는 달리 길가에는 ‘民泊집 안내간판’이 심심찮게 보인다.

말쑥한 마을에 新型家屋들이며, 모내기하는 트랙터며, 농기계 차량들이며,

아스팔트길을 달리는 最新자동차들은

‘나의 옛 산골기억’을 송두리 체 트랙터로 ‘쟁기질’ 한다.

 

山中에서 사탕을 몇 개나 먹었지만 동네登山 할 때와는 달리 시장氣가 掩襲한다.

마침 閑暇한 버스정차장 의자에 앉아 빵과 肉脯로 시장기를 달랜다.

‘에너지供給 시스템體系’의 精密함에 새삼 驚異한다.

 

물 한 모금을 하고

案內冊子 地圖를 끄집어내어 마을이름을 비교해가며 오늘밤 잠 잘 곳을 측량해 본다.

 

버스정차장 바람벽에 붙어 있는 ‘콜-택시 호출안내문’을 보고 씩~ 웃음이 난다.

남원에서 예까지 택시를 부르고, 오갈 정도로 이곳은 豊盛한가 보다.

宿泊 안내자료에서 뽑아온 ‘남원 한증막’ 전화번호를 찾다가

‘이러면 안 돼- ’하며 다시 접어 넣는다.

 

정차장 의자에 앉아 지도를 읽어보니 道路番號도 없는 市, 郡部의 小도로인데도

2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가끔씩 농기계차량이며, 신형승용차가 멋지게 달린다.

 

앉은자리 길 건너편에는 ‘수세화장실 구비, 샤워가능 민박’이란 간판이 요란해서 낯설다.

어둡기 前에 조금 더 걸어보자 하며 일어선다.

 

길 方向이 의심스러울 때 쯤 이면 화살표시를 한 案內標示 말뚝이 나타난다.

山골 저녁은 일찍 온다는데, 걱정을 하며 조금 더 걸어가니

포장도로를 벗어나 左側으로 가란다. 雨傘이 아쉽지 않을 만큼 빗방울이 내린다.

 

길을 꺾어드니 말끔한 콘크리트農路가 길게 앞장을 선다.

저녁 어둠이 내리면서 앞 멀리 산기슭에 눈에 익은 듯한(?) 마을이 아늑하게 정겹다.

갑자기 凄凉한 마음이 인다. 가슴속에 옛 그림자가 아른거리며 눈물이 휭그렁 거린다.

 

옛 學窓時節 고향동네 五里밖 버스길에 車를 내리면

저녁煙氣 속으로 자자드는 山밑 동네가 이처럼 아늑하든가, 저녁 이슬비가 부슬거린다.

 

한참을 걸어 마을에 닿으니 집, 집의 形勢가 如前히 豊饒롭다.

옛날, 지나가든 길손이 하룻밤 신세를 請하던 시골人心일랑 아예 생각도 말라는 듯

번듯한 邸宅에 우람한 담장들은 그 威勢가 고단한 巡禮客에께는 씁쓸하기만 하다.

 

둘레길안내 화살표標示를 따라 마을 앞을 다 지나도록 民泊집이 보이질 않는다.

모내기를 막 끝낸 듯한 논두렁에서 무얼 심고 있는 한 아주머니한데

‘이 동네에는 민박집이 없읍니까 ?’라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마을 앞을 다 지나갈 즈음에 民泊집 간판이 두어 집 보인다. 눈에 번쩍, 반갑다.

두리번두리번하는데 들에서 돌아오는 七十客 노인네가 둘레길은 저쪽으로 간다며

안내인사를 건넨다. 마침, 나는 민박을 찾던 中이라고 하니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한다.

 

아주 깨끗한 民泊집이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예약 손님들이 넘친다고 한다.

친절하게도 本體 房으로 안내하며 가스보일러 온도를 올려준다.

목욕물이 데워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라 하며, ‘마을소개’를 해 주신다.

 

이곳이 白頭大幹이 마을을 貫通하는 唯一한 마을, ‘노치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뒤로는 덕음山 수정봉이고, 앞에는 智異山고리봉이 그 威容을 뽑내고 있다.

이 곳 마을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마을 가운데 백두대간을 따라

왼쪽은 섬진강, 오른쪽은 낙동강으로 물길이 나누어, 갈라진다 한다.

그래서 大幹의 分水嶺을 경계로 마을이름도 달리 부른다 하는데

내가 건성으로 들어 마을 이름을 옮기지 못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영감님께서

밖에 일 나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셔야 저녁밥을 하는데 그때까지 시간餘裕가 많으니

마을구경을 하고 오라 하시며

마을 뒤 堂山 소나무를 꼭 구경하고 사진도 찍어 가라고 하신다.

 

따뜻한 물을 뒤 집어 쓰고 나니 피로가 가득 밀려오는데

민박집 영감님의 ‘백두대간과 당산소나무’이야기에 등 떠밀려

아픈 다리를 끌며 마을뒤 山턱에 버티고 서 있는 우람한 堂山소나무를 향해 걸어 올랐다.

 

영감님이 나에께 强壓하듯 堂山에 오르게 한 緣由가 果然 있었구나 싶었다.

年數가 五百年을 넘는다는 堂山소나무는 그 威勢가 당당하고 堂山祭壇도 번듯 하다.

해 저무는 客마을에서 나그네心懷가 깊어짐은 늙은이 客氣만은 아닐 것 같다.

 

旅行사진은 찍어서 뭘 하냐 하였지만 이곳을 보니 또 그것이 아니다.

이슬비는 그쳤지만 저무는 저녁 빛 사이로 이리저리 휴대폰 사진을 찍는다.

이글을 쓰며 주물럭거려 보니 폰-사진이 記錄에 옮겨진다. 千萬多幸이다.

 

 

                                                     堂山소나무를 뒷편에서 본 광경이다.

                                                     ‘백두대간 등산 안내도’ 간판이 보이고,

                                                     소나무 아래 틈사이로 ‘노치마을’이 약간 보인다.

                                                     위쪽 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山이 고리峯이다.

 

 

                                                              앞에서 본 광경이다.

                                                              ‘폰-카’에는 Zoom이 없어 아쉬웠다.

                                                              해가 점점 어두워진다.

                                                              急한 마음에 이리 저리 遑急히 샷터를 누른 것이

                                                              그 때의 情景을 이 만큼이나마 옮겨주니 무척 대견하다.

 

위의 사진을 살펴보면

왼쪽 편에 앞 사진의 ‘백두대간 등산안내도 간판’의 옆모습이 멀리 보이고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소나무 밑둥치에 堂山祭壇의 坐板돌이 보인다.

祭壇에는 堂山에 모신 神位의 表示石이 있었는데

光景을 찍어 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음에는 白頭大幹으로 다시 찾아오리라 希望하며

堂山을 내려와 마을을 둘러보니 거의 別莊村 수준이다.

마을會館 앞에는 白頭大幹 造形物이며,

아픈 智異山 事緣들이 녹아 있는 記念物도 있다.

 

저녁을 먹고 民泊집 주인영감님과

標高 500m 高原地帶 物産에 關한 이야기며,

智異山에 묻힌 限 많은 이야기며

어둠에 빨려드는 智異山 峻嶺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이야기 하다가 깊은 잠에 들었다.

둘레길 巡禮를 시작하는 첫날,

客地의 첫 잠자리가 무척이나 安穩하여 앞 行路에 좋은 豫感을 갖게 한다.

 

어제 저녁상을 물리면서 민박집 할머니께서

할머니 자신이 내일 아침 7시에 農場으로 일을 나가야 하니

6시 30분까지는 아침을 먹도록 해 달라고 하신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어찌나 살갑게 이야기를 하는지

生前 처음인 民泊집 분위기에 잠시 어리둥절 하다.

 

영감님 말씀에

週末이나 休日에는 둘레길 客들이 많아서 各 民泊집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한다.

그러나 週中인 탓으로 나 外의 客이 없어

홀로 온 집을 獨占하여 편안히 잠을 잘 잤다.

 

아침 5時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나서도 6時가 조금 밖에 지나지 않는다.

民泊집 老人 內外가 벌써 일을 나간다 한다.

나도 따라 나서니 아침 일곱時 다.

 

白頭大幹이 머무는 “노치마을”에서 ‘巡禮길 첫 밤’을 자고,

마을 앞 農路를 따라 둘째 날을 걷기 시작한다.

 

지리산稜線이 아침안개를 품고 天上의 水墨畵를 展示라도 하는 듯하다.

어쩌면 인간들이 후벼 파 놓은 상체기를 희뿌연 乳液으로 治癒라도 하는 듯 하고,

山 아래초리 人間들의 흔적을 乳液으로 지우는 듯도 함은 나의 過敏 탓 일까 ?

 

이른 아침을 나서며 앞뒤를 살피니

‘노치 마을’ 앞으로는

智異山 峻嶺이 아침안개를 뿌려 下世를 감추며 하늘을 높이 달리고

마을 뒤로는

짙푸른 稜線들이 굽이를 치며 숨 가쁘게 白頭大幹을 이어 오르고 있다.

멀리 稜線들의 氣脈이 이른 아침빛을 받으며 더욱 더 白頭大幹 답다.

 

처음 느껴보는 感興에 젖어, 두리번거리다가 案內標示말뚝을 놓친 것 같다.

이리 저리 살펴보아도 안내말뚝이 보이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저 멀리 雲峰邑으로 向하는 地方道路를 方向삼아 논밭 사이로 빠져 들었다.

 

이제 막 묘 내기를 끝낸 논두렁은 마치 안房에 새 壯版을 깔아 놓은 듯 爽快하다.

밭고랑에도 돌아 다녀보고

갓 묘 내기를 하며 다듬은 논두렁을 이리 저리로 돌아도 보며

저~ 쪽, 큰 道路를 向하여 빠져 나가는 기분은 아주 逸品이다.

 

아직은 이른 봄철이라 雜풀이 없는 논두렁은 걷기에도 기분이 좋다.

새로이 丹粧한 논두렁과 밭두렁을 밟고, 걷는 기분은 옛 기억에도 새롭다.

그러나 그 옛날, 그 흔하던 개구리, 뱀들이 보이질 않아 마음이 못내 아쉽기는 하였다.

 

둘레길 案內標示말뚝을 놓치는 바람에

白頭大幹측 山밑으로 가야할 둘레길을 잘못 들어 들녘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탓으로 나는

덕산貯水池 못둑에서 白頭大幹 稜線을 멀리 玩賞할 수 있었고

원래 ‘둘레길 코-스’에는 없는 農家마을들을 구경 할 수 있었다.

 

마을마다 삶이 豊足스럽다. 동네마다 마을 앞에는 亭子가 있고

亭子에는 바람막이 유리벽이 감 쌓여져 있어 멋도 나고 富티도 난다.

어김없이 亭子마루에는 추임새小鼓와 木枕들이 있어 藝鄕의 멋을 더한다.

 

農事일이 바빠서 인지 골목에는 上老人들 만이 간혹 閑暇하게 말을 건넨다.

내가 부러운 듯 “어찌 그 나이에 둘레길을 나섰다오 ?” 하실 때에는 失笑가 절로 난다.

 

마을들을 둘러본 뒤에는 地方道路를 따라 (둘레길 코-스 上) 다음 地點인

‘행정마을’까지 車輛들이 빈번히 달리는 車線 옆을 위험스레 따분히 걷는다.

 

道路 옆의 한, 두 마을에 들리어 不良스럽게 ‘마을구경’을 하는 재미는 있었지만,

둘레길을 잘못 찾아 든지도 모르고 ‘案內標示말뚝’이 不實한 것 만을 탓하며

아스팔트道路 위를 너덜, 너덜 걷고 걸었다.

 

미련하게도 ‘행정마을’에 닿아서야 길을 잘못 왔음을 알았다.

‘행정마을’ 앞, 亭子나무 그늘에서 安堵의 休息을 하고

案內標示板과 案內말뚝의 화살표에 따라 둘레길을 다시 찾아드니

제법이나 큰 河川을 따라 堤防길에 올라선다.

案內冊子에 이 河川은 雲峰高原의 넓은 들을 적셔주는 ‘람천’이라 한다.

 

들녘이 넓어, 쭉 길게 뻗은 河川을 따라 堤防길 끝이 가물거린다.

뚝방 길을, 河川을 옆으로 하여 두, 세 시간을 걸었다.

중간 중간에 벤취가 있어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사탕과 肉脯로 疲勞를 달래곤 했다.

 

안내책자에 이 區間에는 나무그늘이 없다며 강한 햇볕을 對備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구름이 짙게 낀 날씨라 千萬多幸이다. 워낙 느린 걸음이라 땀도 나지 않는다.

아침 일곱時 부터 두, 세 時間을 걸어온 터라 疲勞의 限界는 이미 넘어 선 듯하다.

體力限界를 試驗이라도 하는 듯, 나는 妙한 快感까지를 느끼며 걷는다

 

집을 멀리 떠나 낯모를 곳에서 혼자 너울너울 춤추며 다녀도 萬古에 걸릴 것이 없다.

이게 ‘客地길을 걷는 妙味인가 ?’ 하다가 또 희죽 웃는다.

거북이걸음으로 개미와 競走를 하여도, 혼자 흥에 겨워 헛웃음을 친다 하여도,

불현듯 가슴속 悔恨에 눈물이 줄줄 흘러도, 아무것도 걸릴 이 없어 좋다.

 

案內冊子에 ‘람川’에는 물이 맑아 철새와 수달이 즐겨 찾고, 이 江물은 南江으로 흘러

洛東江에 이른다 한다.

자료에는 모든 地名이 ‘한글一色’이라 모르긴 하여도 ‘람천’은 ‘藍川’일 것이다.

 

철새가 즐겨 찾는다드니 해오라비 한 녀석이 진작부터 親舊하자며 따라오고 있다.

강물에 다슬기 줍는 아줌마들도 보인다.

한번은 다슬기를 줍는 아줌마가 스쿠타를 타고 내 앞뒤를 오-가기에 微笑를 짓는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스로우-시티’ 槪念이 헷갈릴 것 같다.

 

걷고, 걸어 ‘주천 ~ 운봉’구간 종점에 다다라 雲峰邑內로 들어선다.

入城(?) 時刻은 午前 열한時,

食堂이 몇 집 보인다만 점심밥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 것 같고

낯선 곳에서 아무 식당이나 찾아 들기가 쉽지를 않다.

내 걸음걸이가 워낙 느리니 ‘식당에서 기다리고 먹는 시간’을 줄이기도 할 겸,

길거리 ‘호떡-리어카’에서 먹음직한 ?쌀 튀김빵을 네 개나 사서 배낭에 넣는다.

 

늙수레한 골목아저씨들이 우- 둘러서서 국화빵들을 맛있게 자시는 것을 보고

국화빵으로 살까하다가 野球공 만한 ?쌀 튀김 빵을 샀다.

어제 먹고 남은 製菓店빵도 한 개 남아 있으니 점심요기로 충분할 것이다.

 

계속 걷다가 시장氣가 動하면 길가에 앉아 먹어야지 생각하며

다음, ‘운봉 ~ 인월’구간의 始發點을 찾아 雲峰邑內를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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