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캠핑장에서 불을 지피다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붉게 달아오른 숯 불덩이들이 한데 모여 있을 때는 바위를 뚫을 듯한 화력을 발휘하지만, 그중 잘 타는 숯 하나를 집게로 짚어 멀찍이 떨어뜨려 놓으면 불과 수 분 만에 ‘치이익’ 소리를 내며 차가운 재로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우리의 신앙 역시 이 자연의 이치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바쁘다는 핑계와 기술적 편리함을 무기로 우리를 끊임없이 고립시킨다. 마귀가 성도를 무너뜨리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확실한 전략은 사자가 무리에서 떨어진 사슴을 노리듯 성도를 공동체로부터 ‘열외’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모이기를 폐하는 세속적 습관을 경계하며 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에 힘쓰라고 엄중히 권면한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회복은 골방의 단독자에 머무를 때가 아닌, 하나의 몸으로 모이는 공동체적 예배의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공동체 예배는 단순히 주일 하루 의무적으로 출석 도장을 찍는 자리가 아니다. 파편화된 개인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확인하고, 성령의 공적 임재를 대면하는 거룩한 집회다. 사적인 기도가 하나님과의 개별적 만남이라면, 공예배는 흩어졌던 지체들이 모여 동일한 찬양을 부르고 같은 말씀 앞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령의 권능을 경험하는 자리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거목 숲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통찰을 제공한다. 100미터가 넘는 높이에도 불구하고 뿌리가 겨우 1~2미터 깊이에 불과한 이 나무들이 수백 년의 태풍을 견디는 비결은 땅속에서 서로의 뿌리를 거미줄처럼 강하게 얽어매고 있기 때문이다. 나 홀로 신앙의 깊은 뿌리를 내리겠다며 고군분투하는 독불장군은 작은 시험의 비바람에도 맥없이 넘어진다. 그러나 모임의 자리에서 다른 지체들과 영적으로 단단히 얽혀 있는 성도는 세상의 거센 압박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공동체적 예배는 홀로 연주하는 외로운 독주가 아닌, 모인 성도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거룩한 교향곡이다. 이제 ‘나의 은혜’라는 좁은 틀을 깨고 곁에 앉은 지체의 무거운 짐을 함께 품는 ‘우리의 예배’로 시선을 넓혀야 한다. 모이는 자리를 사수하는 거룩한 고집을 회복하고, 예배에서 얻은 사랑을 흩어진 일상에서 흘려보낼 때 비로소 예배의 거룩함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