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서울에서 개인성형외과를 운영하는 P원장에게 어느 날 미인대회에 출전을 원하는 22세 여대생 J양이 찾아왔다. J양은 평소 자신의 턱과 이마에 대해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P원장은 J양의 이마와 턱에 실리콘 보형물을 삽입하고 쌍꺼풀을 만들어 주었다. 이 수술을 하기 전에 P원장은 수술을 하게 되면 염증, 출혈 등의 수술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특히 이마에 보형물 삽입을 위해 절개한 부분에는 머리털이 자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수술 후 이마나 턱의 높아진 정도가 본인이 원하는 것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정도의 설명을 추가하였다. J양은 수술결과에 만족하였고 미인대회에 입상하는 등 활동을 하였는데 1년이 지난 후 P원장에게 재수술을 요구하였다. P원장은 쌍꺼풀의 크기를 줄이고 이마와 턱에 삽입한 실리콘 보형물을 보다 얇은 것으로 바꾸었다.
재수술을 한 지 3년 후 J양의 턱에 삽입한 보형물이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6개월이 지나자 입 안으로 일부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실리콘을 삽입하면서 생긴 머리 부위의 반흔에도 부분적으로 머리털이 자라지 않고 있었다. J양은 이러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을 미리 들어서 알았더라면 자신은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면 P원장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P원장을 그러한 부작용은 통상적으로 매우 드물게 일어나며 자신은 일반적인 주의사항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 주었는데도 J양이 소송을 제기했다며 매우 억울해 하였다.
<윤리적 고찰>
P원장은 첫 번째 수술에서는 예측되는 부작용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두번째 수술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어느 정도 하였는지 명확하지 않다. P원장이 “그러한 부작용은 통상적으로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고 한 것을 주목해 보면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드물게 발생하는 부작용이라도 그것이 심각한 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는 반드시 설명해 주어야 한다. 또한 P원장이 “자신은 일반적인 주의사항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 주었다”라고 주장하
는 데 일반적인 주의사항이 무엇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정황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있긴 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J양이 호소한 부작용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왜냐하면 위 사례에 드러난 것만을 볼 때, 첫 번째 수술 때에도 보형물의 이동에 대한 부작용에 언급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그리고 상세히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야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가 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이 문제는 사안별로 그리고 상황에 따라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고 환자의 상태와 관심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아무리 경미한 발생빈도의 부작용이라도 심각한 장애나 해를 환자에게 일으키는 경우는 고지되어야 하며, 아무리 경미한 것이라도 발생빈도가 높은 부작용은 고지되어야 한다. 또한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음을고지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시술이거나 일반화되지 않은 약일 경우, 충분한 임상시험결과가 없어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형수술에서 보형물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에 해당하는 부작용인가? 의학적 지식이 없는 환자에게 이런 부작용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흔히 환자는 의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에게는 보형물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 게다가 보형물의 이동은 심각한 부작용으로서 아무리 그 발생빈도가 낮다 하더라도 담당 의사는 환자에게 반드시 알려주어야 할 사항이다.
또한 절개한 부분에는 머리털이 자라지 않을 수 있다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P원장이 첫 번째 수술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두 번째 수술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야 했다. P원장은 J양이 이전에 자신에게 수술을 받았기에 이와 같은 기본적인 부작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다고 추측했을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수술에서 이러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두 번째 수술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는 한 P원장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제공했어야 한다.
또한 첫 번째 수술의 경우에도 P원장이 윤리적으로 잘못을 범하고 있는것은 “수술 후 이마나 턱의 높아진 정도가 본인이 원하는 것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정도의 설명을 추가하였다”는 부분이다. 만약 이 내용이 수술후에 추가된 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P원장은 수술 전에 이야기해야 할 사항을 수술 후에 말함으로써 수술여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또한 같은 부위를 두 번 수술하는 것이 지니는 위험에 대해서도 언급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P원장은 이런 사항을 충분히 환자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의사가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의 질문에 대해 성실히 답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환자가 자신의 수술 여부 결정에 있어 이런 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의 경우도 일반적인 질병치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정보제공이 있어야 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한 환자의 자율적인 판단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성형수술의 경우 대개는 미용 상의 이유가 대부분이므로 과연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술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또한 앞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환자의 판단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자율적인 판단이어야 한다. 자율적인 판단을 위한 충분한 정보의 제공은 단지 환자가 수술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수술이나 치료를 받는 경우에도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환자는 의사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다. 의사는 단지 환자를 치료하는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치료를 위해 환자의 결정을 돕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을 위해 요구하는 전문적인 의료적 정보를 담당 의사에게서 얻는 것은 당연하고,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담당 의사가 최적의 조언자라 하겠다.
충분한 정보의 제공은 필요시 대안에 대한 설명까지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환자의 담당 의사로서 자신은 A라는 치료방법을 제안했지만 B라는치료방법도 있으며 그것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말해줄 의무도 있다. 많은 경우 표준적인 치료법이 유일한 치료법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암 치료제 중 A라는 치료법은 생식기능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고, B라는 치료법은 근육경련이나 발작과 같은 운동신경계에 아주 경미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일반적으로는 치료법 B를 사용한다고 해보자. 그러나 만약 환자가 무용수이고 계속해서 무용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치료법보다는 A라는 치료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오로지 하나의 치료법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 환자에게 어떤 치료법이 가장 좋은 것인지는 담당 의사의 일방적인 판단에 맡겨지기보다 의사와 환자가 함께 의논하고 숙고하여 결정할 사항이라고 하겠다.
많은 경우 환자는 의사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위나 위험한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수술이든 약물치료이든 100% 안전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의학 지식은 일정 정도 통계상의 지식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인종적 차이에 의한 예외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위험의 정도를 환자가 충분히 생각하고 고려한 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흔히 환자들은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의사가 자신의 실수로부터 도피할 여지를 만들어 놓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의료행위가 지닌 위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의사의 책임회피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충분한 설명이 제공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환자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의료사고에 대한 판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때 환자들의 이러한 오해는 교정될 것이라고 본다.
<법률적 고찰>
일반적으로 의사는 환자나 그 법정대리인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 의료행위에 따르는 후유증이나 부작용 등의 위험발생 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 면제될 수 없으며, 그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당해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
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인 경우에는 그 발생가능성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설명의 대상이 된다.(대법원 2002.10.25.선고 2002다48443 판결 등)
그리고 의료행위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검안·처방·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를 의미하므로, 성형수술행위도 의료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러한 성형수술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침습을 가하는 경우에, 의사의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에 관한 법리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례에서 P원장이 성형수술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일반적인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하였지만, 발생가능성이 낮은 보형물의 이동 등에 대한 설명 등은 생략하였다. 그러나 판례에 따르면 이 사항도 설명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그 결과 환자는 수술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잃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P원장은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책임을 진다 할 것이다. 이 경우 의사의 책임에 대한 입증에 대하여 대법원은 ‘의사의 설명 결여 내지 부족으로 선택의 기회를 상실하였다는 사실만을 입증함으로써 족하고, 설명을 받았더라면 사망 등의 결과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까지 입증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위 판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