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의 공화국. 정식명칭은 말리공화국. 면적 124만 192㎢. 인구 1162만 6219명(2003). 북쪽은 알제리, 동쪽은 니제르, 남쪽은 부르키나파소·코트디부아르·기니, 서쪽은 세네갈·모리타니와 접하는 내륙국이다. 수도는 바마코.
말리의 자연
국토는 대부분 해발고도 300~400m인 대지(臺地)와 분지로 된 단순한 지형이며 도곤 등 3개의 고원이 있다. 서남단에서 중동부에 걸쳐 니제르강의 중·상류부 1500㎞가 관류(貫流)하고, 서부는 세네갈강 상류부 100㎞가 흐른다.
북부는 사막기후, 중부는 스텝기후, 남부는 사바나기후로 위도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다. 어느 지역이나 여름이 우기이고 겨울이 건기이지만, 사막지역의 강수량은 극히 적고 스텝지역도 가뭄이 심하다. 이에 비해 사바나지역에서는 연간 강우량이 700~1100㎜이다.
기온은 여름에는 전체적으로 고온이며, 특히 사막지역에서는 낮에 40℃를 넘는다. 겨울은 상당히 선선한 편이며, 12월에 사바나지역에서는 20℃, 사막지역에서는 10℃ 이하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말리의 역사
현재 주로 말리령(領)으로 되어 있는 니제르강의 상·중류부는 예부터 북·서아프리카 교역의 십자로이며, 이 지역을 중심으로 대국들이 흥망을 거듭했다. 오늘날 밝혀진 가장 오래된 왕국은 가나제국으로 9세기경부터 번영했다. 13세기부터 발전한 말리제국은 서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하여 금·소금의 교역으로 번영했다. 그 번영은 유럽에도 알려졌으며, 이 지역에 이슬람교와 학술의 중심도시도 생겼다.
이어 15세기에 세워진 송가이제국도 광대한 지역에 걸쳐 세력을 떨쳤으나, 16세기말 모로코의 침입으로 붕괴되고, 그 뒤 소국이 난립하게 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탐험가들이 이 지역을 탐험했으며 19세기 후반 세네갈에서 내륙으로 진격해 온 프랑스군에 의해 이 지역은 프랑스령 수단으로서 식민지화되었다.
수단은 그 후 세네갈과 합병되거나, 영토의 일부가 프랑스령 기니에 편입되기도 했는데, 1920년 영역이 확정되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이곳에도 독립운동이 활발해져 1960년 6월 세네갈과 함께 말리연방으로 독립했으나 8월에 세네갈이 연방을 이탈하여, 9월에 단독으로 말리공화국이 탄생했다.
말리의 정치·외교
모디보 케이타 초대 대통령은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경제문제 및 관리의 부패 등으로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그로 인하여 1968년 11월 트라오레 중위를 중심으로 한 국민해방군사위원회(CMLN)의 쿠데타가 일어나 10년간 군사정권이 계속되었다. 1978년에는 많은 각료·군인이 체포되었으며 친소파(親蘇派)가 모두 제거되었다.
1979년 말리인민민주동맹(UDPM)이 결성되어 6월 선거에서 트라오레대통령이 탄생하고 1985년 헌법을 개정, 트라오레가 재선됨으로써 군부의 영향력이 커져 일당 독재체제가 유지되었다. 대통령은 1986년 총리에 덴베레를 임명하고, 1987년 3월에는 공공부문의 도덕성 향상을 위해 헌장을 채택하였다.
1991년 3월, 쿠데타로 1968년부터 장기군사정권을 유지해온 트라오레대통령이 체포되었으며 단일정당인 말리인민민주동맹이 해산, 4월 정당결성이 합법화되었다. 1992년 독립후 최초로 다당제 아래서 총선거·대통령선거가 실시되어 말리민주동맹이 제1당이 되었으며, 코나레 당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편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북부의 투아레그족 게릴라가 반정부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95년 6월 전투행위의 종결을 선언하였다. 1996년 3월 <평화의 불>제전이 열렸으며, 총기를 불태우고 반란군이 정규군에 편입하였다.
1997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코나레가 재선되었으며 7월 의회선거에서도 여당인 말리민주동맹이 압승하였다. 1998년 6월 지방의회선거가 실시되어 말리민주동맹은 19자치체 가운데 16자치체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였다.
2002년 4월 야당 후보 A.T. 뚜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외교는 독립 당시 친소경향이 강하였으나, 지금은 비동맹노선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우호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말리의 경제
과거에는 아랍권과 사하라사막 종단 무역으로 번영했으나 유럽과 해상을 통한 무역으로 중심이 옮겨지자 내륙국이라는 결점 때문에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코나레 정부가 출범한 뒤 국내경제 회복을 위해 대서방 실리주의노선을 견지하였다. 1993년 10월 긴급 재정조치를 발표, 1994년 1월 CFA프랑을 50% 절하하고 물가억제조치를 취해 인플레이션 억제에 성공하였다.
세계은행과 IMF의 지도로 경제자유화를 추진하였으며, 구조조정계획의 결과 재정적자가 1994년 970억 CFA프랑에서 1997년 230억 CFA프랑으로 감소하였다. 1990년부터 재개발한 금 채굴이 순조롭게 진전, 금 생산이 1996년 6.6t, 1997년 16t에 이르러, 면화에 이어 금이 제2수출품이 되었다. 또한 면화생산량도 급증하였으며, 그 결과 1997년 경제성장률은 6%에 이르렀고, 수도 바마코에는 건축붐이 일었다. 석유 탐색도 이루어지고 있다.
상품작물은 니제르강 유역에서 재배되는 면화, 세네갈강 유역의 땅콩 등이며, 기니만 연안의 여러 나라에 가축도 수출한다. 주요 농산물은 조·땅콩·쌀·옥수수·면화·면실 등이며 가축은 소·말·양·닭·염소 등이다. 농목업 외의 산업으로는 니제르·세네갈강의 담수어업이 성하며 건어물을 수출하고 있다.
광물자원은 사하라사막에서 암염이 산출되는 외에, 세네갈강 유역에서 석회암·대리석·철광석·보크사이트 등이 매장되어 있어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공업으로는 땅콩유·면화처리·담배·제당 등 농산물 가공이 중심이며, 이 외에 시멘트·맥주공장이 있다.
무역은 농축산물을 수출하고 식품·공업제품을 수입하는 무역구조이며, 무역수지가 만성적으로 수입 초과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교통망 중 도로는 총연장 1만 3360㎞이지만 우기에 이용할 수 있는 도로는 1/2밖에 안 된다. 바마코를 기점으로 하는 간선도로도 정비되지 않아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철도는 세네갈에서 바마코까지 연결되어 있다. 공항은 10개 있으며, 그 중에서 국제공항은 바마코 외 2개소로서 파리·다카르·아비장과 연결된다. 또 니제르강은 수상교통으로 이용되며 바마코와 가오사이를 기선이 왕래한다.
말리의 사회
과거부터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여러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요 부족은 유목·목축민과 농경민으로 크게 나뉜다.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유목을 하며, 내륙 델타에서 목축을 한다. 북서부·남동부·서부·남부 등지에서는 십여 부족이 농경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부족에게는 독자적 전통문화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도곤고원에 사는 도곤족은 특이한 신화와 2원론적 우주관·세계관을 가지며 가면무용이 아프리카 예술제에서 대상을 받아 유명하다.
공용어는 프랑스어로 학교교육에도 사용되고 있으나, 일상생활에서는 부족어를 쓴다. 종교는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도이고, 9%가 전통종교를 믿으며 그리스도교도는 1%에 불과하다. 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은 1980~1984년에 2.5%이며 근래에는 도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의료수준이 낮아 종합병원이 바마코에만 있다.
교육은 초등학교·중학교·러세(프랑스식 7년제 중등교육기관)·고등사범·기술전문학교 등이 있으며, 종합대학은 없고 대학진학자는 해외에 유학한다. 아동취학률은 31%(2000)이며 문맹퇴치를 위해 전국에 1300개 이상의 교육센터가 설치되었으나 문맹률은 60%(2000)로 여전히 높다.
말리와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남한과는 1990년, 북한과는 독립 직후인 1960년 10월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68년 1월 상주공관을 설치하였으며, 무역 및 지불에 관한 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2001년 대한수입액 250만 달러, 대한수출액 756만 달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