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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조가 현장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5일 김재철 사장의 퇴진과 황희만 부사장에 대한 임명 철회 그리고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대한 고소 등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여온지 약 6주 만이다. MBC 노조는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MBC사옥 스튜디오에서 조합원 총회를 열고 14일 오전 9시를 기해 파업을 중단키로 결정했었다. 파업이 시작된지 무려 39일 만이다.
MBC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동안 심각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차질없이 방송되었기 때문이다. 국민드라마라고 불러도 좋을 창사49주년 특별기획드라마 '동이'나 젊은이들의 감성을 적시고 있는 수목드라마 '개인의 취향'이 중단없이 정상적으로 방영되었고 일일연속극 '황금물고기'나 주말특별기획드라마 '신불사(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도 마찮가지였다. 예전과 같은 파행이 없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드라마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파업의 여파가 있기는 했다. 매니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무한도전'이 파업 기간 동안 스페셜이라는 미명하에 재방송으로 떼워진데 이어 가장 결혼 프로그램 '우결(우리 결혼 했어요)', 중장년층이 즐겁게 보는 세바퀴(세상읠 바꾸는 퀴즈)', 지금은 바닥을 기고 있지만 한때 MBC 간반 프로였던 '일밤(일요일 일요일밤에)' 등이 줄줄이 재탕으로 메워졌다.
그에 대한 결과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드라마를 제외한 MBC 예능 프로들이 잊혀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청률에서도 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하더니 종내에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나마 심야 시간대에 전파를 탔던 '세바퀴'은 여전한 시청률을 보였지만 다른 프로그램의 이름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른 것이다. MBC 노조에서는 다시 방송에 복귀할 경우 회복될거라 믿고 싶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잊혀진다는건 모든걸 다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령 파업이 시작되기 전인 3월 20일 시청률 조사 전문기관인 에이지비닐슨미디어리서치의 자료를 살펴보자. 토요일이었던 이날 무한도전은 19%의 시청률로 '수상한 삼형제'와 '세바퀴'에 이어 3위에 올라있었다. 반면 스타킹은 13.9%, 천하무적토요일은 8.9%에 불과했다. 그리고 파업 종료를 선언했던 주말에는 무한도전은 순위에 없었지만 스타킹과 천하무적토요일은 각각 13.3%와 7.7%를 기록했다.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들이 '무한도전'이 있으나 없으나 비슷한 시청률을 보였다는 것은 '무한도전'으로서는 기회이자 위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무한도전'이 다시 시작되면 MBC를 떠났던 시청자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낙관론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무한도전' 없이도 사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MBC 노조가 파업으로 현장에서 떠나있는 동안 시청자들의 마음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결과였다. 이는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프로들을 함부로 취급하고 헌신짝처럼 내버렸던 사람들에게는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MBC는 파업을 풀었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이었던 '유재석-김원희의 놀러와'도 16.3%의 시청률을 올리며 화려한 복귀를 신고했다. 하지만 MBC 노조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들 없이도 왠만한 프로그램들은 차질이 없었으며 스페셜 방송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시간 때우기로 일관했던 예능 프로그램들도 방송을 하나 않하나 별 문제가 없었기에 그들이 현장으로 돌아온들 그다지 반가울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파업은 처음부터 시청자들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서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면서 국민들과 함께 호흡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당위성을 얻었어야 하지만 단지 자신들의 입장만을 외치면서 파업이라는 극한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MBC 노조의 파업 이유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는 점이 MBC 노조가 착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정부의 방송 장악보다 노조의 방송 장악이 더 심각해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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