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비잔틴 사상가들이 희랍 고전 철학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자유와 필연의 문제에 관해서 어떤 입장을 표명했는지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과연 비잔틴 시대에 철학이 신학으로부터 명확히 구별되었는지, 또한 비잔틴 철학이 희랍 고대 철학의 모방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지 밝히는 것을 우리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과거의 많은 학자들은 비잔틴 시대에도 철학이 “신학의 시녀”에 불과했다고 간주했다. 물론 실제로 몇몇 비잔틴 사상가들은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간주했지만, 희랍 철학의 가치와 관련해서 모든 비잔틴 사상가들이 동일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가령 John Italos (c. 1025-82)는 철학을 수호하기 위해서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잔틴 철학의 의의가 단지 희랍 고전 철학의 문헌을 보존해서 서구에 전달해 준 점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비잔틴 철학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요한 비잔틴 사상가들의 저작을 직접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철학사적으로 이룬 업적이 무엇이며 이 업적은 철학사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밝히고자 한다.
하지만 비잔틴 철학의 역사는 거의 천년 가량 되며 그 동안 활약한 철학자들도 매우 많다. 따라서 우리가 몇 년 이내에 모든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 기준을 통해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을 선별해서 연구하고자 한다.
첫째, 사상가들 자신이 철학을 신학으로부터 독립한 학문으로 간주하고 있는가?
둘째, 사상가들의 추론이나 논변이 철학적으로도 가치를 가지는가?
셋째, 이들의 사상이 동방 혹은 서방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는가?
이러한 기준에 따라 우리는 다음 학자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1) John of Damascus
John of Damascus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지의 작용에 대해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했기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좋은 것을 보면 자연히 그것을 원하게 된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John of Damascus는 우리가 어떠어떠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의지작용이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의지의 문제가 중요하게 간주된 이유는 “만약 인간이 얼마 후 죄를 지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신은 인간을 그대로 창조했는가?”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동방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의지력을 부여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올바른 일을 선택할 수도 있고 잘못된 일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John of Damascus는 인간이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죄를 저질렀고 이는 전적으로 인간 자신의 책임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의 완전한 선함”과 “인간의 자유 의지 및 죄”를 양립 가능하게 만들고자 했다. 우리는 자유 의지와 선택, 합리성 등의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자유와 필연에 관한 John of Damascus의 입장을 해명하는 동시에, 그의 견해가 동방 및 서방의 기독교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하고자 한다.
2) Michael Psellos
다음으로 우리는 Michael Psellos (1018-78)의 철학을 연구하고자 한다. 11세기 비잔틴 시대에는 서구의 르네상스를 방불케 하는 고전문헌 부흥운동이 일어난다. 당시 사상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Michael Psellos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학, 수사학, 철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에도 조예 깊은 교양인이었다.
Psellos는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서, 먼저 필연과 가능성 그리고 운명을 구분하는데, 이 중 필연은 자연 과학(가령 천문학)의 인과 개념을 지칭하는 한편, 운명은 “신의 섭리의 간접적인 (또는 2차적인) 결과”라고 정의된다. 또한 그는 인간의 행동이 한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섭리와 자연적 본성 그리고 자발적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필연과 운명이 일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더구나 신의 섭리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나 자발적 선택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신의 예지력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이다. 만약 신이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다면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어째서 인간의 잘못을 미리 막지 않았는가? 우리는 Psellos와 그의 제자들(특히 John Italos)의 철학 저술을 바탕으로 위와 같은 의문들에 답하고자 한다.
3) George Gemistos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