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팔>에서 <내 팔>로 <내 집> 지으면서 한 思索들
경주 ‘원시인의 집’에서
*전기 없는 밤이 지내기 어렵다.
전기 없는 깜깜한 밤에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뱃속의 음식이 소화 될 때까지 2시간은 보내야한다. 달빛이 있을 땐 일도 했으나 혼자 있는 캄캄한 적막은 또 다른 경험이다. 다른 사람들은 감히 감당키 어려운 지루함일 것 같다. 이 답답함과 지루함을 내가 이겨나간 것도 ‘고생 극기력’ 덕분이라고 본다.
그러나 TV와 컴퓨터 속에 묻혀있던 한국에서보다 확실히 순수한 시간이다. 잊었던 지난 일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내가 잘못했던 일들, 그리고 더 잘 대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철이 드는 구나!”
*한국에 돌아가면
매끼마다 마련해주는 아내의 맛있는 음식
따뜻한 침실과 재미있는 TV
친구들과 술, 그리고 컴퓨터....
이것에 빠져 네팔에 들아 오는 것을 주저할 줄 모른다
명심하라! 네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멀어야 10년인 것을... 인생 정리기인 것을....
*네팔에서의 혼자 생활
매일 10시간 이상씩 노동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뿐만 아니다. 혼자이어서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 이기도하다. 노동으로서 시간을 매우는 것이다.
나는 한 달 넘게 혼자이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으로 해서 나는 당황한다. 아내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없는 공백은 크다. 우리 음식을 못 먹는 것은 은근히 큰 고통 중의 하나이다. 電氣 없는 밤은 시간 보내기가 어렵다.
남들은 나를 부지런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부지런함은 ‘조급증’과 관계되어 있다. 한 가지 일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일을 시작한다.
나의 부지런함은 ‘여유 없음’을 의미 한다. 한가롭고 게으른 것의 좋은 점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네팔에서의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생활에 성공할 것인가?
*한국에서 가져간 접이식자전거
내 자전거가 이곳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한번 타보려고 안달이다. 이 특수한 자전거가 이곳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것을 본다.
내가 잘못한 거다. 이후 난 자전거를 아이들 눈에 뜨이지 않게 치워버렸다.
*편하게 살고 있는 네팔인들
그들은 여기 저기 쓰리기통을 두지 않는다. 버릴 곳을 못 찾아 버릴 물건을 움켜쥐고 있지도 않는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냥 언제고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저분한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자욱한 먼지 속에 있으면서 그냥 들이 마신다.
나는 먼지 많은 거리에서 질식할 것만 같다. 지옥에 온듯하다. 나는 내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헐떡이는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나의 적응력
여행하다보면 나의 적응력이 뛰어남을 본다. ‘적응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생스러움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리고, 불편하고 구차한 것을 참는 것이다. 그리고 더러운 것들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내가 집 지은 <순탁한>마을에서 15분 걸으면 카투만두행 버스가 있다. 15루피(250월)에 챠벨까지 와서 다시 갈아타고 공항 입구까지 왔다. 교통비로 500원 썼다. 배낭 3개를 지고 공항 건물까지 걷는데 좀 힘들었을 뿐이다. 네팔인처럼 살려고 연습 중이다. 네팔인들이 크게 여기는 100루피(1,700원)는 나에게도 이제 큰 돈이다.
태국 수완나폼공항, 호화로운 상점들 앞을 걷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인 듯하다. 음료수 유혹이 있었으나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오래 간만에 맥주와 위스키를 마셨다. 부산은 가까워오는데 나는 벌써 네팔의 내 집이 그립다.
술 때문이렸다.......
첫댓글 이글을 읽는 순간 30년전 순간순간 살아있는 선생님의 정신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