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받는 자를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브리서 2:11~18
국민일보 [겨자씨]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누군가 비를 맞고 있을 때 그 사람을 돕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산을 씌워주는 것, 또 하나는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입니다. 전자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비 맞는 사람과 공감은 할 수 없고, 후자는 공감은 할 수 있지만 문제 해결은 해 주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으로 우리와 공감대를 이루시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십니다.”
히브리서, 박해당하는 유대인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서는 어떤 배경에서 기록되었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엄청난 환난과 박해였습니다.
먼저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당합니다. 유대사회에서 출교를 당했는데 이는 인격적으로, 사회적으로 삶의 모든 기반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은 황제를 주로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결박과 옥에 갇히는 것, 돌로 치고, 톱으로 켜고,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11:36-37)
이와 같은 박해가 계속되자 믿음에서 떠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이란 무엇이며,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설명함으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하기 위하여 쓴 편지가 히브리서입니다.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히2:1)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들은 모든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보응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히2:3) 여기에서 큰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 구원의 복음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이라”(히2:3)고 했습니다. 즉 복음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전해주신 말씀이며, 열 두 사도를 비롯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들은 제자들이 그것을 확증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와 여러 가지 기적들, 그리고 성령의 은사들을 통해 그들의 증언을 뒷받침해 주셨습니다.(히2:4) 따라서 이 복음을 소홀히 여기는 자들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핍박을 받으며 살지만 그들에게 장차 올 세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히2:5) 그 세상은 죄와 슬픔이 사라진 새 하늘과 새 땅이며,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될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잃지말고 구원의 복음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난 형제
본문 11절에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등장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님,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우리가 다 한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났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환난 중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와,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부끄럽게 여기지않고 자랑스럽게 여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욥입니다. 여호와 앞에 온 사탄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욥1:8) 아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지 않고 더 나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다고 하였습니다.(히11:15-16)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 형제”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무덤을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마28:10) 그런데 예수님이 형제라 부르시는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아십니까? 가룟 유다는 은30개를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께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실 때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마26:56) 베드로는 다른 제자가 다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절대 버리지 않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마26:74) 그런 제자들을 향하여 “내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살다 보면 형제끼리도 서로 다투고 싸우고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구나 형제 중 하나가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면 그 사람이 우리 형제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어떨까요? 우리의 과연 삶이 깨끗한가요? 진실한가요? 아름다운가요? 참 부끄럽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지금 여러분의 옆에 앉아계신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사랑받은 형제요 자매입니다. 서로 찬양으로 축복합시다. (미가엘 1426번)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혈과 육을 지니고 이 땅에 오신 예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혈과 육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히2:14) 그래서 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내가 모르는 것까지도 예수님은 아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천사와 같은 모습도 아니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이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적 존재로 오시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으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 즉 장차 오는 세상에 참여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히2:10)
또 죽기를 무서워하는 자들은 한평생 마귀의 세력에 매여 종노릇하는데 그들을 놓아주려 하심입니다.(히2:14-15) 지혜의 왕 솔로몬은 말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전3:1-2) 그렇습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죄의 저주와 죽음의 공포에 매여 살아갑니다. 죄에 종노릇하고, 세상과 물질에 종노릇하고, 마귀에 종노릇하고, 마침내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십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기도와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고향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당하시고, 제자들에 의해 배신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 로마 병정과 무리들로부터 채찍에 맞으시고, 멸시와 조롱,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는 끔찍한 고통 뒤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는 예수님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 시험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18절) 우리를 공감하시고, 십자가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계2:9)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도 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위해 혈과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우리를 놓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를 붙들어 주려 하심입니다.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능히 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