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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링크스의 후예들
-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
1> 플루트
플루트처럼 역사가 길고 다양한 변형을 가진 악기도 드물다. 플루트 족 악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남미 등에서 골고루 발견된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가로로 부는 플루트가 관현악에서 쓰인 것은 19세기 이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뵘 식의 플루트가 일반화된 후의 일이다.
모차르트 시대만 해도 키를 눌러서 음을 내는 장치가 하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음이 단조로웠고, 이 때문에 모차르트는 플루트를 싫어했다. “이따위 참을 수 없는 악기를 위해 작곡하자니 제 머리까지 멍청해지는 것 같습니다.” 플루트 4중주곡을 쓰면서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투덜거린 내용이다.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 1922-2000)은 원래 의학을 전공하다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음악가로 길을 바꿨다. 파리 국립 음악원을 5개월 만에 졸업할 만큼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1947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빈 국립가극장, 프랑스 국립 방송 교향악단 등의 수석 주자를 역임했다. 정통 클래식 곡에도 능했지만, 클로드 볼링과 크로스오버 음반을 내는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파트릭 갈루아(Patrick Gallois, 1956-)는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수석이었고, 현재에는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엠마누엘 파위(Emmanuel Pahud, 1970- )는 현역 플루티스트 중에서 최고의 지명도를 자랑하는 연주자로 이름 높다. 스위스 태생으로, 파리 국립 음악원 출신이다. 두이노 콩쿠르, 고베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면서 22세의 나이로 베를린 필의 수석 연주자로 지명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독일-오스트리아 악파 역시 프랑스의 영향으로 발전했다. 크레모나 콩쿠르, 뮌헨 ARD 콩쿠르에 입상하면서 2003년부터 빈필의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는 발터 아우어(Walter Auer, 1971- ) 등이 현재의 독일-오스트리아 플루트계를 움직이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기사 작위까지 받은 플루티스트가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 1939- )였다. 런던 심포니, 로열필하모닉 수석 주자를 거쳐 1969년부터는 베를린필의 수석 주자 활동했다. 1975년에 솔로이스트로 전향한 후 클래식부터 현대 음악, 팝 명곡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레코딩을 내놓았다.
2> 클라리넷
바로크 시대엔 클라리넷 곡이 없었다. 클라리넷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은 1700년대 초, 남독일의 플루트 제작자인 테너와 그의 아들이 프랑스의 샬뤼모를 개량하여 내놓고부터였다. 모차르트 시대의 명연주자 슈타틀러, 그리고 명곡 클라리넷 협주곡 등이 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안톤 슈타틀러나 베버 시대의 명연주자 베어만 같은 옛 명인들이 있었지만, 근대에 나타난 클라리넷의 명인들로는 영국의 레지널드 켈,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블라흐, 프랑스의 자크 랑슬로 등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영국은 다른 목관 악기보다 특히 클라리넷에서 강세를 보인다. 1984년에 BBC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에 떠오른 엠마 존슨 (Emma Johnson, 1966- ) 등이 있다.
프랑스에 율리스 들뤼즈와 자크 랑슬로라는 양대 산맥이 있었다면, 독일에는 저 유명한 칼 라이스터(Karl Leister, 1937- )가 있었다. 라이스터의 깊고 안정감 있는 음색은 가히 “클라리넷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카라얀에 의해 1983년, 당시 23세의 나이로 베를린 필하모니 솔로 클라리넷 주자로 임명되어 시끄러웠던 자비네 마이어(Sabine Meyer, 1960- )는 그 명성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
미국에는 ‘베니 굿맨’이란 예명으로 더 유명한 재즈 클라리네티스트 벤자민 굿맨(Benny Goodman, 1909-1986) 이 있었다. 처음엔 클래식을 배웠으나 소년 시절부터 재즈에 매력을 느껴 1930년대부터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날렸다. 사람들은 그를 ‘스윙의 왕’이라 불렀다. 팝, 재즈, 클래식계를 오가면서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누린 바 있는 리처드 스톨츠만(Richard Stoltzman, 1942- ) 역시 미국이 낳은 연주자다. 100개가 넘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으며, 수많은 앙상블과 독주 리사이틀 무대를 선보였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연주자로는 스웨덴의 마틴 프뢰스트 (Martin Fröst, 1970-), 그리고 2011년 22세의 나이로 베를린필 수석에 발탁된 오스트리아의 안드레아스 오텐잠머 (Andreas Ottensamer, 1989-) 같은 이를 꼽을 수 있다.
3> 오보에
오케스트라를 튜닝할 때 쓰이는 악기가 오보에다. 아주 섬세한 더블 리드에서 나오는 목가적인 소리가 매력 포인트다. 역시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현재와 같이 개량된 것은 1844년 프랑스의 악기 제작자 뷔페가 손을 대고부터였다. 따라서 오보에 역시 프랑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현역 연주자 중에서는 18세의 나이로 파리 오페라단 수석 오보이스트로 발탁된 프랑수아 를뢰(François Leleux, 1971- )는 연주자, 지휘자, 교수로 다양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뮌헨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뒤부터 독주자로, 실내악 연주자로 활동해왔으며 현재 뮌헨 국립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으로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데이비드 액뉴(David Agnew, 1961- )는 캘틱 음악과 오보에의 음색을 연결시키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독일엔 세계 오보에계의 최정상으로 군림하던 하인츠 홀리거(Heinz Holliger, 1939- )가 살아있다. 1959년 제네바 콩쿠르에 우승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연주하고 있는 오보에 역사의 신화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베를린 필하모니의 수석 오보이스트로 활동하는 알브레히트 마이어(Albrecht Mayer, 1965- )는 아마도 현역 오보이스트 중에서 가장 많은 팬을 가진 연주자일 것이다.
1> 트럼펫
트럼펫은 금관악기 중 가장 긴 역사가 있다. 예로부터 종교 의식, 전쟁의 신호, 왕의 권위 상징하는 팡파르에 쓰이던 “왕의 악기”였다. 그러나 트럼펫에 밸브가 장착되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밸브로 인해 트럼펫의 반음계 처리가 더 쉬워졌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음색이 밝고 화사한 피스톤 밸브식이,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는 음색이 다소 어둡고 음향이 풍부한 로터리 밸브식이 고안되었다. 현재는 독일, 오스트리아 권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피스톤 밸브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세기를 밝힌 트럼펫의 명인들이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우크라이나 출신의 연주자 티모페이 독시체르 (Timofei Dokshitser, 1921~2005)의 명성은 전설적이다. 1941년에 소련 콩쿠르에서 1위, 1947년 프라하 콩쿠르에서 우승. 1945년부터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에 트럼펫 주자로 활동했다. 초절적인 테크닉과 힘을 겸비한 러시아 금관 사운드의 상징이었다.
러시아에 독시체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모리스 앙드레 (Maurice André, 1933~2012)가 있었다. 제네바 국제 콩쿠르(1955년)와 뮌헨 국제 콩쿠르(1963년)를 석권했다. 바로크 음악에서부터 크로스오버 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은 연주자였다.
미국의 윈턴 마살리스 (Wynton Marsalis, 1961~)는 클래식과 재즈 두 부문에서 모두 그래미상을 수상한 특별한 연주자다. 퓰리처 상, 프랑스의 그랑프리 뒤 디스크, 네덜란드의 에디슨상을 받았고, 음악교육자로, 음악저술가로도 유명하다. 현재 링컨센터 재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다.
스웨덴 출신으로 파리 음악원을 나온 호칸 하덴베리에리 (Hakan Hardenberger, 1961~)는 툴롱 국제 콩쿠르, 제네바 국제 콩쿠르 등에서 우승한 후 스웨덴 말뫼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음반과 연주회로 이름을 알렸다. <런던 타임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트럼펫 연주자"라고 말한 바있다.
노르웨이 올레 에드바드 안톤센 (Ole Edvard Antonsen, 1962~)도 만만찮았다. 제네바 콩쿠르 우승 이후 솔로이스트로 활동하면서 클래식, 재즈, 팝 할 것 없이 전천후 연주자로 명성을 획득했다. 티네 팅 헬세스 (Tine Thing Helseth, 1987~)는 일곱 살때부터 트럼펫을 시작해 트럼펫계의 신동으로 유명했다. 2004년 노르웨이 콩쿨에서 우승한 후 수많은 솔로 무대에서 갈채를 받아왔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 (Sergei Nakariakov, 1977~)는 '트럼펫의 파가니니'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테크니션이다. 1991년 14세의 나이로 데뷔한 후부터 지금까지 세계 최정상의 명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숨을 내쉬면서 동시에 조금씩 들이마시는 순환호흡법은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영국 여성 트럼페티스트 앨리슨 발솜 (Alison Balsom, 1978~)의 인기도 여전하다. 2006년 브릿 어워드(Classical BRIT Awards)에서 '올해의 젊은 클래식 음악가상'을 수상했고, 2009년과 2011년 브릿 어워드에서 '올해의 여성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2> 트롬본
트롬본은 본질적으로 트럼펫에서 출발한 악기다. 15세기경에 슬라이드가 부착된 트럼펫(=색벗)이 등장했는데 사람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따뜻한 음색으로 인해 주로 교회 음악이나 합창 음악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바흐, 헨델 등의 곡에서 색벗은 장례식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노래하는데 많이 쓰였다. 그러다가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 본격적인 독주악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선 재즈, 팝 밴드 등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금관악기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사람으로는 체코 출신의 아르민 로진 (Armin Rosin, 1939- )이다. 1962년에 세계 최초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협주곡 음반들을 내놓으면서 트롬본을 솔로 악기로 각인시킨 공로자이다.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교수로 였고, 세계 최고의 알프스 호른 연주자이기도 했다.
스웨덴 트럼펫에 호칸 하덴베르거가 있다면 트롬본에 크리스티안 린드베리 (Christian Lindberg, 1958- )가 있다. 린드베리는 트롬본의 레퍼토리를 확장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정성을 쏟아왔다. 이미 60개가 넘는 음반을 통해 수많은 편곡 작업과 창작 음악들을 알려왔다. 작곡가로, 또한 지휘자로도 활동 중이다.
뉴욕 필하모닉의 트롬본 주자이자 줄리어드 음대 교수인 죠세프 알레시 (Joseph Alessi, 1959- )는 스웨덴의 린드베리, 빈 필의 이안 부스필드 (Ian Bousfield, 1964- )와 함께 우리 시대 트롬본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3> 호른
호른은 짐승의 뿔(Horn)에서 기원된 단어다. 원래 짐승의 뿔을 가공하여 신호용으로 쓰던 것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내추럴 호른은 주로 사냥용 호른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에 들면서 오케스트라에 가장 먼저 도입된 금관악기가 되었다. 이후 호른은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기에 프렌치호른이라고도 부른다. 관이 대단히 길어 울림이 좋은 대신 명확한 소리를 내기 힘든 악기다.
20세기 초, 중반에 활동한 인물로 영국의 데니스 브레인 (Dennis Brain, 1921-1957)이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1953년에 카라얀이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필청 음반의 위치를 놓치지 않고 있다.
호주 출신으로 1955년부터 13년간 런던심포니 호른 수석으로 활동한 배리 터크웰 (Barry Tuckwell, 1931-)은 호른 음반을 가장 많이 녹음한 연주자 중의 한사람이다. 독일의 헤르만 바우만 (Hermann Baumann, 1934-) 역시 내추럴 호른부터 현대의 호른까지 완벽히 구사하면서 수많은 음반을 남겨 놓았다. 미국에선 뉴욕필의 수석 필립 마이어스 (Philip Myers, 1949-)가 유명했다.
현역 명연주자 중에서 몇 명을 얘기하자면, 우선 체코 출신 라도반 블라트코비치 (Radovan Vlatkovic, 1962-)가 있다. 1983년 뮌헨 ARD 콩쿠르 우승자였고, 1982년부터 1990년까지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호른 수석이었으며, 이후 솔로이스트로 전세계를 누비며 협연 무대를 펼쳐왔다. 현재 베를린필 호른 수석인 스테판 도어 (Stefan Dohr, 1965-) 역시 고전부터 현대까지 막힘없이 연주하는 최정상의 호른 주자로 이름 높다.
체코의 라데크 바보락 (Radek Baborak, 1976-)은 가장 인기 있는 호른 주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프라하 콩쿠르, 제네바 콩쿠르, 뮌헨 ARD 콩쿠르 등 세계 주요 콩쿠르를 석권하면서 18세의 나이로 체코 필하모닉의 호른 수석에 임명된 호른 천재였다. 뮌헨 필하모닉,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의 호른 수석을 거쳐 솔로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