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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 (하편)
Thaksin Shinawatra
8. 2005-2006년의 정치소요
8.1. 2005년의 재선
2005년 2월의 총선에서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ทักษิณ ชินวัตร)과 그의 정당인 "타이락타이 당"(TRT)은 "지난 4년은 수리만, 향후 4년은 건축을"이란 구호와 "건설의 기회를"이란 두 구호를 가지고 기록적인 승리를 얻었다. 탁신의 정당이 총 500석의 의석 중 374석을 확보한 이 선거는, 역대 선거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2번째 임기는 곧 반대 시위자들로 인해 혼란에 빠졌고, 그들은 탁신이 "의회 독재"를 획책한다고 주장했다.(주108)
8.2. 손티 림텅꾼의 공격

(사진) PAD 지도자 손티 림텅꾼
이전에 탁신을 지지했고, 언론계 거물이자 인기있는 토크쇼 진행자인 손티 림텅꾼(สนธิ ลิ้มทองกุล, Sondhi Limthongkul, 林明達)이 여러 차례 탁신을 공개비판하면서, 정치위기가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손티가 탁신을 공격한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 논란에 휩싸인 한 승려의 설법을 손티가 출판한 이후 고소를 당함으로써 언론자유가 억압받았다고 주장. [루앙 따 마하브워(หลวงตามหาบัว, Luang Ta Maha Bua) 사건]
- 에라완 신전(Erawan Shrine, ศาลพระพรหม 산파폼) 훼손사건의 배후가 탁신이란 주장.
8.3. 친 코포레이션의 매각
2006년 1월 23일, 친나왓 가문은 "친 코포레이션"(Shin Corporation, 친 코프)의 거의 모든 주식을 싱가포르의 국영투자기업인 "테마섹 홀딩스"(Temasek Holdings)에 매각했다. 친나왓 가문과 탁신의 처가인 다마뽕(Damapong) 가문은 이 거래를 통해 730억 바트(18억 8,000만 달러)를 받았지만, 증권거래소를 통해 매각한 개인은 자본소득세를 감면받는다는 조항을 적용해 세금을 한푼도 내지않았다.(주109) 이 매각은 탁신을 부정부패 및 국가자산의 외국인에의 양도 혐의로 공격받게 되는 대상으로 만들어주었다.
8.4. 반-탁신 소요
"친 코포레이션"(=친 코프)을 매각하면서, 탁신은 사임압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손티 림텅꾼과 짬렁 시므앙(จำลอง ศรีเมือง) 등이 이끄는 "국민민주주의연대"(일명-노란셔츠: PAD) 주도의 시위대는 순식간에 수만명으로 불어났고, 곧이어 방콕의 정부청사 점거에 들어갔다.(주110) 이들은 주로 방콕에 거주하는 중산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저명인사들과 학자 및 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8.5. 국회해산과 총선
2006년 2월 24일 탁신은 국회해산을 선언했고, 새로운 총선은 4월 2일로 예정되었다. 갑작스런 선거에 대해, 탁신은 많은 공격을 받았다. <네이션>(The Nation) 지는 사설을 통해 "이 선거는 [민주주의의] 주요한 개념에 대한 주된 오류들을 고려하지 못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저개발국가에서 가난하고 별로 많은 정보를 갖지 못한 대중들이 그(탁신)의 정파가 조작하는 것에 쉽게 동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탁신의 조작은 매우 정교하게 문서화되어 있다"(주111)고 평했다.
8.6. 선거결과 및 보궐선거
탁신의 TRT당은 야당의 보이코트가 폭넓게 발생한 상황에서 지지 및 비지지 비율이 16:10의 득표율로 총의석 중 462석을 획득했지만, 투표율은 발표되지 않았다.(주112) 하지만 <1997년 헌법>에 따라 TRT 소속 후보들 중 경선이 없는 지역의 후보들이 유권자의 최소 20%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했지만, 그 중 40명이 이 조건에 미달했다.(주113)(주114) "민주당"(Democrat Party)은 이러한 상황의 경선참여를 거부하고,(주113) 노란셔츠들(PAD)과 함께 "중앙행정법원"(Central Administrative Court)에 당선취소를 신청했다.(주115) 짬렁 시므앙(จำลอง ศรีเมือง, Chamlong Srimuang)은 PAD가 이번 선거결과를 무시할 것이며, "탁신 정권이 퇴진하고, 국왕이 임명하는 새로운 총리를 맞이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 선언했다.(주116)
4월 25일 보궐선거에서 TRT 소속 후보 25인이 당선되고 2인이 탈락했다. 하지만 4월 29일에 또 다른 13개 선거구에서 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 선거에서 TRT는 유권자 20% 규정을 채우기 위해 군소정당을 매수했다고 고발당해 유죄선고를 받았다. 반면 "민주당"은 군소정당들을 선거에 참여하지 않도록 매수했다고 고발당했지만, "헌법재판소"(Constitution Court)가 최초의 총선거 자체를 무효로 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검토할 동안 선고유예를 받았다. 탁신은 망명처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실질적 다수를 획득했다고 주장했다.(주117)
(역자 첨부) 이 부분의 내용이 상세하지 못해, 한국의 정당 중 최근에 해산한 "노동자의 힘" 기관지에 실린 부분을 첨부하니 참조 바람. 저자: 최경희, <2006년 태국 조기총선의 의미>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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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의 조기총선 전술에 대해서 민주당(Democratic party)과 찻타이(Chat Thai), 마하촌(Mahachon) 야3당 반탁신 세력은 '민주주의를 위한 민중동맹'(the Peoples's Alliance for Democracy)으로 모여 선거보이콧 전술을 선택하였다. 투표가 의무화되어 있는 선거법이기 때문에, 선거보이콧 전술은 기권표 전술과 일치한다. 즉, 다른 야3당은 선거에 후보자를 출마시키지 않았고, 투표를 해도 기권란에 기표하는 방식을 활용해 여당 후보의 낙선운동을 선택하였다. 100명 전국구 비례대표와 400명 직접선거에 의해 하원의원을 뽑는 2006년 4월 2일 총선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태국 중앙선거관리 위원회는 3일 전국 76개 주 400개 지역구 중 362곳에서 타이락타이당 후보가 당선했다고 집계했다. 단독 출마한 278개 지역구 중 38곳에서 '단독 출마자는 최소 20%를 득표해야 한다'는 선거법 규정을 총족하지 못해 낙선되었다. 100명을 뽑는 전국구 의원의 경우 전국 득표율이 5% 이상인 정당에만 의석이 배정되는데 타이락타이당과 선거에 참가한 17개 군소정당 중 5%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한 곳도 없다. 특히 방콕에서 기권란 기표율이 득표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태국의 선거법은 총선에서 500개 의석이 모두 결정돼야 총리 지명 등 새 정부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탁신 총리는 전체 500개의 의석이 채워지지 않음에 따라 새 내각을 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야권은 "이번 총선이 무효이기 때문에 총리 퇴진 투쟁을 계속 하겠다"고 밝히고 있었다. 이에 탁신 총리는 4월 4일 선거결과와 반탁신 운동의 압력에 의해 총리직 사임을 전격 발표했다. |
8.7. 선거무효
2006년 5월 8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대 6의 의견으로 4월 총선이 왜곡된 투표장에 기반해 실시된 것이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사법적 행동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주118) 4월 총선을 보이코트했던 "민주당"은 10월 총선 참여를 준비한다고 발표했다.(주119)
"헌법재판소"는 새로운 선거를 명했고, 이후 10월 15일로 확정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또한 선거관리위원들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9월 19일에 쿠테타가 발생함으로써 10월 15일 총선은 취소된다.
8.8. 정치로부터의 휴식
2006년 4월 4일 탁신은 국회가 재소집되어도 총리직을 수락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후 총리 대행 체제를 지속할 것이라 발표했다.(주120) 그리고 그는 치차이 완나서팃(ชิดชัย วรรณสถิตย์, Chidchai Wannasathit, 曹壁光)에게 총리 대행을 위임한 후, 정부 청사를 나와 휴가를 떠났다.
9. 2006년 9월의 쿠테타
2006년 9월 19일, 탁신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UN) 정상회담 참가 및 미국 "외교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 연설을 위해 외유중일 때, 군대가 방콕을 장악하는 "쿠테타"가 발생했다. 정부청사에서는 50여명의 군인들이 약 220명의 경찰병력을 무장해제시켰고, 타이콤(Thaicom) 위성기지국 및 국영 텔레비전인 채널11 방송국도 장악했다. 9월 20일 아침에는 정부청사와 로얄플라자(Royal Plaza), 그리고 라차담는(Rajdamnoen) 거리를 따라 위치한 여러 정부기관들에도 탱크와 장갑차들이 배치됐다.(주121)

이 쿠테타에 가담한 군인들은 육군 제1군구 및 제3군구, "국내안보작전사령부"(Internal Security Operations Command: ISOC), 그리고 나콘 라차시마(Nakhon Ratchasima: 코랏) 도와 빤찐부리(ปราจีนบุรี, Prachin Buri) 도에 주둔하는 "특수전본부"(Special Warfare Centre) 및 육군 부대들, 그리고 일부 해군 병력도 포함되어 있었다.(주122)
(사진) 손티 분냐랏낀 대장.
쿠테타 지도자인 운군참모총장 손티 분냐랏낀(สนธิ บุญยรัตกลิน, Sonthi Boonyaratglin) 대장은, 쿠테타 지도부가 치차이 완나서팃 총리 대행과 탐마락 이서랑꾸라 나 아유타야(ธรรมรักษ์ อิศรางกูร ณ อยุธยา, Thammarak Isarangkura na Ayuthaya) 국방부장관을 연금했다고 발표했다.(주123)
최초에 "입헌군주제 하의 민주개혁평의회"(Council for Democratic Reform under the Constitutional Monarch: CDRM)라고 자칭한 군사정부는, 기존 정부의 왕실모독죄(lèse-majesté, 대역죄)와 부정부패, 공공기관에 대한 간섭, 사회적 차별 양산을 쿠테타 이유로 제시했다.(주124) 그리고 국왕을 국가수반으로 하며, 곧 총선을 실시해 민주국가로 복귀시킬 것이라 발표했다.
이후 탁신은 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영국에 도착했다.
9.1. 타이락타이 당
쿠테타로 인해 당해체와 정치활동금지를 우려한 "타이락타이 당"(TRT) 소속의 여러 국회의원들은 탈당을 했다. 여기에는 솜삭 텝수틴(Somsak Thepsuthin) 의원, 그리고 왕 남 욤(Wang Nam Yom) 계파의 국회의원 100명도 포함되었다. 또 다른 주요 계파 지도자인 수리야 쯩룽리엉낏(Suriya Jungrungreangkit, สุริยะ จึงรุ่งเรืองกิจ) 의원이 당시 탈당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손타야 쿤쁠름(Sonthaya Kunplome, สนธยา คุณปลื้ม) 의원도 촌부리파 의원 20명을 이끌고 탈당했다.(주125)(주126)
2006년 10월 2일에는 탁신 자신도 전 부총리 솜낏 짜뚜시삐딱(Somkid Jatusipitak)과 함께 TRT를 탈당했다.(주127)(주128) 이렇게 되자 짜뚜론 차이셍(Chaturon Chaisang)이 당수가 됐다.
2007년 5월 30일, "헌법재판소"는 2006년 4월 총선에서 군소정당들의 선거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뇌물을 준 혐의로[근거는 탐마락 국방부장관과 뽕삭 락따뽕빠이산Pongsak Raktapongpaisarn 의원의 혐의], "타이락타이 당"(TRT)의 해산을 명하고 탁신을 포함한 핵심 당직자 100여명에 대해 정치활동 금지를 명했다. 한편 "민주당"의 동일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9.2. 2006 방콕 신년 이브 폭발사건
2006년 12월 31일과 2007년 1월 1일에 걸쳐 방콕에서 몇차례 폭발사건이 발생했다. 탁신은 나중에 CNN에 출연해 이 폭발사건들과 자신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주129)
9.3. 사법적 혐의들
2006년 12월 31일 국사정부는 망명처에서 정치활동을 한 혐의로 탁신의 외교관여권을 말소시켰다. 또한 태국 대사관들에는 그의 여행에 협조하지 말라는 훈령이 내려졌다.
2007년 1월 "금융기구발전기금"(Financial Institutions Development Fund: FIDF)은 "자산조사위원회"(Assets Examination Committee)의 요청을 받아들여, 2003년 탁신과 그 부인이 FIDF로부터 불하받은 7억 7,200만 바트(약 200억원) 상당의 토지계약 4건을 동결시켰다. 이 혐의는 <국가 부정부패방지법>(National Counter Corruption Act) 제100조에 근거한 것으로, 이 조항은 공직자 및 그 배우자가 재임기 동안 공공기관과의 거래 이권에 개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자산조사위원회"는 또한 탁신이 고무나무 묘목을 구입하는 데 불법적인 내각결정을 내렸다는 것도 고발했다.
2007년 3월 "대검찰청"은 탁신의 아내와 처남에 대해, 1997년 "친 코프" 주식을 거래하면서 5억 4,600만 바트(1,560만 달러)의 세금탈루를 공모한 혐의로 기소했다.
"자산조사위원회"는 탁신이 이동통신 사업자들에게 특별소비세(excise tax)를 부과한 것도 공정경쟁을 방해하는 불법행위라고 고소했다. 탁신 내각은 2003년에 이러한 세금관련 총리령을 선포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탁신의 혐의들에 대해 태국의 어떠한 사법기관들도 유죄를 선고하지 않고 있다.
10. 맨체스터 시티의 인수
탁신은 이미 총리 재직 시절부터 그다지 성공적 결과는 없었지만 영국 프로축구 구단들인 "풀햄"(Fulham)과 "리버풀"(Liverpool) 지분을 매입한 바 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비판 중에는, 자신의 정치적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대중적 스턴트(곡예)를 하는 것이란 주장도 있었다.(주130)

(사진) 2008년 9월, 탁신 전 총리가 맨체스터 시티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하는 칼둔 알 무바라크(Khaldoon Al Mubarak)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2007년 6월 21일, 실각한 상태의 탁신은 "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 맨 시티) 구단을 8,160만 파운드에 인수했다.(주131) 그는 스벤-고란 에릭슨(Sven-Göran Eriksson) 감독을 임명하고, 자신의 성인 "친나왓"(Shinawatra: 영어식-신나와트라) 앞에 "프랭크"(Frank)를 붙여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와 유사한 느낌을 갖도록 해 구단의 팬들과도 간단히 친해졌다.(주132) 하지만 내부불화로 인해 그는 2008년 9월에 이 구단을 아부다비의 투자자들에게 매각했다.(주133)
11. 판결과 망명
2007년 5월 수라윳 쭐라논(Surayud Chulanont, สุรยุทธ์ จุลานนท์) 총리는 손티 장군과 성명전을 벌이면서까지, 탁신은 태국으로 자유롭게 돌아올 수 있으며 자신이 탁신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 말했다. 2008년 1월 탁신의 아내 퍼짜만 다마퐁(Potjaman Damapong, พจมาน ดามาพงศ์)이 방콕공항으로 도착 직후 구속됐지만, 이후 "대법원"에 출두하여 출국금지령과 함께 보석을 허가받았다.(주134) 그녀는 주식거래와 토지거래 위반에 관해 재판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주135)
2008년 2월 28일, 망명 18개월만에 탁신이 방콕에 도착했다. 그는 도착 즉시 체포됐지만, 곧 보석으로 풀려났다. 탁신은 다시 정계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며, 축구에 대한 관심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주136)(주137)
3월달에 탁신은 "대법원"에 출두해 부정부패와 관련한 2건의 혐의에 대해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법정은 한달 간의 영국 방문을 허락하고, 4월 11일에 보고하도록 했다.(주138) 6월달에 "대법원"은 중국과 영국을 방문하겠다는 탁신의 요청을 거부하면서, 방문목적이 충분하지 않고 재판이 예정대로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라 밝혔다. 법정은 기소인부절차(arraignment)가 끝난 후 여권제출을 명했다.(주139)(주140) 7월달에 법원은 버어마에 저금리 차관을 대출해준 것과 관련된, 부정부패에 관한 4번째 혐의에 대한 재판을 예정했다. 법원은 또한 2003년 새롭게 국영 복권사업을 실시하여 "도박방지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서도 탁신과 그의 전직 각료들, 그리고 현 정부 각료 3명의 증언을 청취키로 했다.(주141)(주142)
7월 31일 탁신의 아내 포짜만에 대하여 징역 3년형이 선고됐지만 보석으로 풀려났다. 또한 "방콕형사법원"(Bangkok Criminal Court)은 포짜만의 수양 동생인 바나뽓 다마뽕(Bhanapot Damapong) 및 퍼짜만의 비서에 대해서도, 위임된 차명을 통해 탁신의 재산을 보유하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주143)(주144)
(주134) news.bbc.co.uk/2, Thaksin's wife back in Thailand.
(주135) news.bbc.co.uk, Ex-PM's wife set for Thai trial, BBC News.
(주136) www.presstv.ir, Ex-Thai PM arrives, detained, freed.
(주137) news.bbc.co.uk, Former Thai PM Thaksin back home.
(주138) "Thaksin Pleads Not Guilty in Thai Court" By Ambika Ahuja, 12 March 2008, Associated Press.
(주139) abs-cbnnews.com, Thai court blocks Thaksin trip to China, Britain.
(주140) bangkokpost.com,'And don't leave town'.
(주141) voanews.com, Thailand Court Agrees to Hear Case Against Thaksin.
(주142) crainsmanchesterbusiness.co.uk, Burmese loan case is fourth supreme court charge against Thaksin.
(주143) ap.google.com, Thaksin's wife found guilty of tax evasion.
(주144) iht.com/articles, Ex-Thai PM's wife guilty of tax fraud. |
11.1. 영국에의 망명신청
2008년 8월 10일 탁신과 포짜만은 보석허가 기한을 넘기면서 "2008년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했고, 이후 베이징에서 런던으로 이동했다.(주145) 탁신은 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의 바램이지만, 작금의 상황상 자신과 가족이 안전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주146)(주147) 그는 정치적 적대자들이 재판에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영국에 정치적 망명신청을 할 것이라 밝혔다.(주148)
"대법원"의 "고위공직자 담당 형사부"는 2008년 9월 16일 탁신의 부정부패 관련 재판 4건과 관련하여 제2차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재판은 연기시켰다.(주149)(주150) 이후 여러 재판들에 불출석하면서 구속영장들이 수차례 추가로 발부되었다.(주151)(주152)(주153)(주154)(주155)
(주145) online.wsj.com, Thaksin to Live in U.K. Amid Court Case in Thailand.
(주146) news.bbc.co.uk, Ex-Thai PM 'will remain in UK'.
(주147) www.reuters, RPT-UPDATE 2-Ex-Thai PM Thaksin skips bail, stocks jump.
(주148) smashits.com, Former Thai premier seeks asylum in Britain.
(주149) nationmultimedia.com, Second arrest warrant against fugitive ex-premier issued.
(주150) ap.google.com, Thai court issues arrest warrant for Thaksin.
(주151) gmanews.tv, Thai court issues fresh warrant for ex-PM Thaksin.
(주152) bernama.com, Thai Court Postpones Verdict Against Ousted Premier Thaksin, Wife On Land Case.
(주153) google.com, Thai court issues fifth arrest warrant for ousted PM Thaksin.
(주154) earthtimes.org, Thai court issues a sixth arrest warrant for former premier.
(주155) enews.mcot.net, Thai court issues fifth arrest warrant for Thaksin. |
11.2. 랏차다피섹 토지불하 선고공판
2008년 10월 21일, "대법원 고위공직자 담당 형사부"는, 탁신이 재임기간 중 자신의 아내로 하여금 공공자산을 불하받도록 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2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퍼짜만은 당시 공직에 있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혐의는 무죄이며, 그녀가 취득한 토지소유권 역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하여 그녀에게 발부된 구속영장도 취소했다.(주156)
이 판결 직후 탁신은 <로이터통신>(Reuters)과의 회견을 통해, "선고결과를 전해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결과가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다"고 말한 후, 이 재판은 정치적 동기에 의해 진행된 것이라고 부연했다.(주157)
한편 섹산 방솜분(Seksan Bangsombun) 검찰청장은 영국에 대해 탁신의 신병인도를 요청했다.(주158) 탁신은 현재 영국에서 자신이 정치적 망명신청을 했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주159)
11.3. 스스로 부과한 망명
태국의 신문들이 2008년 11월 10일 탁신의 매제인 솜차이 웡사왓(Somchai Wongsawat, สมชาย วงศ์สวัสดิ์) 총리가 필리핀을 국빈방문하는 길에, 그 비행기편을 이용해 탁신이 마닐라에 도착할 것이란 보도들을 내보냈다.(주160)(주161) 이에 대해 11월 10일 필리핀 정부 대변인은, 만일 탁신 측으로부터 정치적 망명처 제공 요청이 온다면, 방콕과 마닐라 사이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 "정중히" 사양할 것이라 말했다.(주162) 이 사이 영국 정부 "이민실"(Home Office)은 탁신 부부의 유죄가 확정됨에 따라 두 사람의 비자를 말소시키고, 각국 항공사들에 이메일을 보내 이들을 영국행 비행기에 탑승시키지 말 것을 요청했다.(주163)
이후 탁신은 중국과 바하마, 니콰라과, 그리고 남미 및 아프리카 몇개 국가에서 머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보고들은 탁신 친나왓이 바하마와 니콰라과 명예시민권을 갖고 있고, 중국에는 550만 파운드 상당의 저택도 건축했다고 한다. 비자취소 문제는 영국의 범죄인송환 문제에 관한 논란을 일으켰다. 법무부장관은 검사들이 송환서류를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고, 심지어 탁신이 태국과 범죄인송환협정이 맺어져 있지 않은 국가에 체류중일지라도 이 서류를 보낼 것"이라 첨언했다.
2009년 5월말 현재, 탁신은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주164)(주165)(주166) 한 대변인은 탁신이 태국 이외의 6개국 여권을 소지하고 여행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주167)
2008년 12월 탁신은 독일에서 1년간 체류할 비자 발급을 받기위해 고위급 채널을 가동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가 이 사건을 인지하면서 2009년 5월 28일 비자는 철회되었다. 이후 탁신은 니콰라과 외교관 신분을 획득했다. (주168)
11.4. 송깐 소요
2009년 4월 중순 대부분 탁신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레드셔츠"(UDD)가 대규모 폭력시위를 일으켜, 파타야(Pattaya)에서 진행예정이던 "아세안 정상회담" 장소에 진입하고, 방콕 일원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탁신은 위성통신과 화상전화를 통해 이들의 시위를 적극 고무시키면서, 한편으로는 "민중혁명"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시위자들에 대한 탄압이 이뤄지자, 그는 단지 "정신적 지원"(moral support)만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주169)(주170)
11.5. 돈세탁 증언
2009년 4월 왕실자문기구인 "추밀원"(Privy Council) 위원 피찟 꾼라와닛(Pichitr Kullavanijaya, พิจิตร กุลละวณิชย์)은 랠프 보이스(Ralph L. Boyce) 전 태국주재 미국대사에게 들었다면서, 탁신이 케이맨 아일랜드(Cayman Island)의 은행계좌를 통해 1,000억 바트(28억 달러)를 돈세탁해서 반정부군 조직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탁신 자신은 물론, 보이스 전 대사도 이같은 주장을 부인했다.(주171)
11.6. 캄보디아 경제자문위원
2009년 11월 4일 캄보디아 정부는 탁신 친나왓 전 태국총리를 캄보디아 정부 및 훈 센(Hun Sen) 총리 개인의 경제자문위원으로 위촉한다고 발표했다. "캄보디아 국영TV"(TVK)는 탁신 전 총리가 부정부패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정치적 희생양이므로 송환시키지 않을 것이라 발표했다.
2009년 11월 5일, 캄보디아측의 이러한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태국이 자국대사를 소환했다.(주172) 아피싯 웻차치와(Abhisit Vejjajiva, อภิสิทธิ์ เวชชาชีวะ) 태국 총리는 이러한 조치가 "외교적으로 동원하는 첫번째 수단"이라 말했다.(주172) 그는 캄보디아가 태국의 내정에 개입한 것이므로, 양국간 협정들을 모두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주172)
캄보디아의 이같은 결정이 있기 수개월 전에, 양국 국경에 위치한 쁘레아위히어(Preah Vihear) 사원에서 양국 군대간에 교전이 발생하여 외교적으로 악화상태에 있는 와중이었다.(주172)
11월 5일 우후 8시 30분 캄보디아도 성명을 발표해 태국의 조치에 대응하여 캄보디아도 대사를 소환한다고 밝혔다.(주173)(주174) 캄보디아의 속 안(Sok An) 부총리 겸 관방부장관은, 탁신 전 총리의 경제자문위원 위촉은 캄보디아의 내정에 관한 사항으로 "국제적 관행에 부합된다"고 말했다.(주174) 상호간 대사 철수는 양국의 외교사상 가장 심각한 관계악화라고 할 수 있다.(주174)
(역자 추가내용)
탁신 전 총리의 캄보디아 경제자문위원 임명 파동에서, "캄보디아 항공교통서비스"(CATS)의 태국인 직원 시와락 초티퐁(Siwarak Chutipong, 31세: 사진) 씨가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태국총리의 캄보디아 방문 일정과 관련하여, 비행스케줄을 프놈펜 주재 태국대사관의 깜롭 빨라왓위차이(Kamrob Palawatwichai) 1등 서기관에게 넘겨주었다 간첩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재판을 통해 7년형을 선고받은 직후, 캄보디아 국왕의 사면장을 훈 센(Hun Sen) 총리로부터 직접 수여받은 후 어머니인 시마락 나 나콘 파놈(Simarak na Nakhon Phanom) 씨와 함께 태국으로 귀국했다. 그의 사면은 탁신 전 총리의 2번째 캄보디아 방문일에 맞춰서 진행되었다. 최근 프놈펜으로 업무복귀를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12. 훈장과 작위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다음과 같은 훈장들을 수여받았다.(역주)
태국 왕실 훈장
외국정부 훈장
2002 - The Most Blessed Order Of Setia Negara Brunei, 1st Cla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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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탁신 전총리와 태국을 공부하면서 느낀점은 쿠테타가 빈번하게 일어 나지만, 사회적 불안이 대통령중심제의 나라보다 훨씬 적고 빨리 안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국왕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있어 그렇지 않나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글세요.. 일단은 그런 영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직은 우리가 태국에 대해서 더 공부해보아야만 할텐데... 사회불안 요소가 적다는 것은, 역으로는 발전의 속도도 더딘 정체된 사회라는 걸 말해줄 수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국민들 의식도 좀 단순한 것 같고 말이죠... 그래서 이념투쟁이 아닌, 인물이라는 아이콘이 등장해서 사회를 양분한 것 같은데... 일단 탁신이라는 인물이 상당히 복잡한 인물이네요... 우리같은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양쪽 어느쪽도 선뜻 손을 들어주기가 어려워 보이고... 다만 빈곤층을 생각하면 그나마 탁신 쪽이 좀 나을듯 한데... 그나마도 참 여러가지 때가 많이 묻어 있으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