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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담 임애월 편집주간
젊은 별을 우러러보며 구도의 길을 찾은 30년
이승하 시인
신록이 푸르른 5월, 중앙대학교 교정에서 올해 시력詩歷 31년을 맞은 이승하 시인님을 만났다. 등단 이력을 계산한 후 시인을 만나면 먼저 동안童顔에 놀라고, 해맑은 미소에 다시 놀라고, 시집 포함 30여 권 저서의 저자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철저한 시간 관리와 자기 관리, 아픔이 승화된 미소, 마른 체구에 응집된 놀라운 의지력……. 이것은 그를 이루는 요소들 중 일부분일 뿐이다. 오늘의 이승하 시인이 있기까지 그가 껴안은 아픔과 슬픔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임애월:이승하 시인님, 안녕하세요? 푸르른 계절 5월에 만나 뵙게 되어 더욱 반갑습니다.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학에서의 후진 양성, 시 창작, 문예지상에 평론 발표와 평론집 발간, 신문지상에 칼럼 발표, 외부의 문학 강연과 심사 등으로 바쁘실 텐데요, 늘 성실하고 열정적인 활동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년에 등단 30주년을 맞이하셨지요?
이승하:예, 반갑습니다.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니까 작년이 등단 30주년이 되는 해이긴 합니다만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식사를 한 번 같이했을 뿐 학교 내에서나 밖에서나 다른 행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 글쓰기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지만 우리 문단에 정말 성실한 분들이 많은데, 제가 가끔씩 뵙기도 하는 이숭원ㆍ장석주ㆍ박태일ㆍ송희복ㆍ김용희ㆍ이재복ㆍ방민호ㆍ권성훈 같은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임애월:선생님께서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가 뭉크와 함께」로 등단하셨는데, 이 시는 말더듬이 화법을 사용해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넘어 인류의 고통까지 보듬어 안으려고 한 탁월한 시편이었습니다. 등작은 어느 작가에게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작품인 경우가 많지요. 그 작가가 이후에 발표하는 작품을 이해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요. 이 작품과 관련하여 등단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승하:대학생 시절, 꽤 심한 말더듬이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단작은 저의 육성이었습니다. 저의 중학생 시절은 이른바 ‘유신시대’였습니다. 아버지가 받아보시는 신문에 ‘인혁당 사건’이니 ‘민청학련 사건’이니 하는 것 외에도 온갖 시국사건이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고문을 당하고 죽기도 한다는 것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일제에 의해 고통을 겪었는데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하고 분단이 된 상황에서 왜 남쪽에서 이런 사건이 끊이지 않는지, 어린 나이였지만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베트남이 통일되었는데 신문지상에는 ‘베트남 패망’으로 보도되었죠. 통일이 되자 남쪽의 군경 유가족, 지주계급, 고위공직자 집안은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국외로 탈출을 시도했는데 대다수가 배로 탈출했지요. 규모를 갖춘 배가 아니라 어선 같은 것을 구해 온 가족이 외국으로 망명을 했던 것이지요.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당할 것이 두려워 탈출하는 것이었으므로 목숨을 건 승선이었죠. 이런 배에 탄 사람들을 ‘보트 피플’이라고 했는데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 동안 탈출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배들 중 상당수가 풍랑을 만나 침몰, 일가족 몰살 소식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마침 제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전개되면서 몇 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끔찍한 광경을 간접경험했었고요. 나라 안팎의 이런 폭력사태는 제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주었고 그래서 썼던 시가 「화가 뭉크와 함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고문당하며 내지르는 비명,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이의 비명, 병자의 신음소리, 살려달라는 외침 등으로 가득 차 있다고 인식했고, 뭉크의 그림 「절규」처럼 저는 귀를 틀어막은 채 절규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임애월: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이 말더듬이 시편으로 발현되었군요. 등단 이후에도 「병든 아이」, 「미역 감는 남자들」 등 뭉크의 그림과 관련된 시를 여러 편 발표하셨는데요, 특이한 점은 사진이나 그림과 시를 결합한 시편들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일찌감치 선생님은 ‘사진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이승하:제가 등단했을 때는 이성복ㆍ박남철ㆍ황지우 등에 의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통적인 서정시가 위축되고 몽타주와 콜라주, 패러디와 패스티시 기법으로 시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부터 시작된 1980년대에 우리 시단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들이 창작되기 시작했는데, 사진과 그림을 응용한 저의 시 쓰기는 바로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시 쓰기의 일환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서정시의 문법으로는 현실의 모순과 상황의 부조리를 담아낼 수 없었습니다. 세계의 폭력 상황을 직시하고 독자에게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사진과 그림을 인용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사실 ‘사진시’는(이런 용어가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박남철ㆍ황지우ㆍ함민복ㆍ신현림 등도 쓰고 있었습니다.
임애월:김준오 선생님의 시론을 보면, 이러한 선생님의 시들을 ‘해체시’의 범주에서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해체시라고 하면 기상천외한 파격과 고도의 환유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김준오 선생님은 일반 대중이 보는 시각보다 더 깊이 있는 견해로 선생님의 시를 진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승하:저는 부산대학교에 재직하셨던 선생님을 생시에는 뵌 적이 없는데 시론에서 몇 차례 제 시를 언급해놓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사사진과 그림이 텍스트의 구성 요소가 된 제 시들을 이데올로기적 탈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논했습니다. 중심의 해체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다원적 글쓰기의 한 방식이라고 진단하셨지요. 이승하의 장르혼합식 글쓰기가 시를 사회적ㆍ역사적ㆍ이데올로기적ㆍ미적인 다원적 문맥에 놓이게 한다는 선생님의 평가는, 중심의 해체를 시도하는 제 시의 경향을 적시한 것이었습니다.
임애월:1988년에 중편소설 「설산」이 KBS 방송문학상에, 1989년에는 단편소설 「비망록」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셨더군요.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도 출간하셨고요. 운문과 산문은 그 성격상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장르가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이 소설집의 작가 후기를 보니, “많은 죽음을 그리면서 저는, 아버지를 용서하고자 필사의 노력을 해왔다고 하늘을 우러러 말할 수 있습니다.”고 씌어 있더군요. 그중 ‘용서’라는 어휘가 유난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의 의미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승하:꽤 복잡한 가족사의 내막을 들려드려야 그 말을 쓴 이유가 드러나는데…….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소설 「비망록」에 국한시켜 말씀드리면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압군 공수부대원의 아버지가 사일구혁명 때 발포경찰일 수 있겠다는 가정이 그 소설을 쓰게 했습니다. 사실 제 아버지는 제가 태어났을 때 경찰관이었거든요. 제 초등학교 때 친구 중 하나는 조선대학교에 진학해서 광주에서의 참상을 다 보기도 했었고요. 그 친구는 훗날 ROTC 장교로 임관되었는데, 이런저런 것들을 섞어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를 소재로 소설을 써보았던 것입니다. 사일구혁명 때 죽은 2백 명과 광주에서 죽은 3천 명 가족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드리고 싶다는 열망도 작용했습니다.
임애월:네에, 서글픈 우리 시대의 아픈 자화상입니다. 평론가들은 선생님의 시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아픔’이라고 하는데, 그 아픔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실 수 있으신지요? 첫 시집 사랑의 탐구에서보다 더욱 깊어진 아픔을 보여준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에서 만나는 ‘미친 누이’의 초상은 시인의 가슴을 찢으며 나온 절절한 시편들인 듯합니다.
이승하: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보면 무능한 가장과 헌신적인 어머니와 유순한 두 누나, 폭력적인 장남, 냉소적인 관찰자 동생이 나옵니다. 형은 술에 취해 들어와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미쳐 날뛰기도 하지요. 이런 가족사를 ‘진실’로 믿고서 저도 저희 집안의 어두운 부분을 시로 다뤄보았는데 나중에 웅진출판사에서 나온 이성복 문학앨범을 보니 가족사 부분은 완전히 허구였더군요. 저는 대학 시절에 로버트 로웰, 실비아 플라스의 ‘고백시’도 즐겨 읽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의 시편을 썼던 것인데, 나중에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에게 혼이 났습니다. 불쌍하게 된 누이를 그렇게 세상에 알려야 했느냐고 엄청나게 꾸중을 들었지요.
임애월:청소년기에 방황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지만 선생님은 유난히 아프고 슬픈 방황의 시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괴테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말했지요. 그런 측면에서 저도 선생님의 방황을 ‘노력’의 다른 모습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인 것이지요. 우리 문학사를 보면, 훌륭한 작가의 탄생은 고향으로부터의 ‘탈주’에서 시작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방황과 방랑은 장래에 펼쳐질 문학의 길을 예고하는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승하:자꾸 그쪽으로 질문을 유도해 가시네요. 그렇다면, 이런 드라마를 한 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20년을 경찰직에 있다가 어떤 일로 무작정 사표를 낸 이후 만년 실업자가 된 아버지가 있다고 합시다. 그의 큰아들이 공부를 잘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다고 해요. 사법고시 1차시험에 2학년, 3학년 때 합격했는데 문학병에 덜컥 걸려버렸습니다. 법조인이 되지 않고 문학도가 되겠다고 선포하고는 2차시험을 치러 시험장에 가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 아버지가 ‘폭력과 광기의 나날’을 보내게 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불똥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장남한테는 튀지 않고 아내와 차남과 막내딸에게 튀었다는 것이지요.
임애월:아픈 가족사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자리에서 그 얘기를 다시 청하여 듣게 되어 송구스럽고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시편들을 보면 초기 시에서부터 최근까지 ‘별’을 심상으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별은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인지요? 아울러 선생님의 작품에는 ‘길’에 대한 성찰과 물음도 많은데요, ‘별’과 ‘길’의 관계에 대해 감상 힌트를 좀 주세요.
그때 고개를 드니
동쪽 하늘에서 살아 숨쉬는 밝은 새벽별
어제 빛났던 별이 오늘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제 이름을 갖고 빛나는 별보다 더 많은 무명의 별이여
별이 있었던 것이다
폭풍우 몰아치는 칠흑의 밤에도
저 하늘 위에는 길을 찾는 이들을 인도할
별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빛나는 별은 없지만
별이 지향하는 것은 영원이 아닌가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별빛이 아닌가
영속하는 것, 영원히 빛나는 것
그 빛을 찾아서 밤하늘을 보면
싯다르타가 득도했을 때 눈 맞추었던 그 별
별 하나가 이웃 별들을 불러 모으고 있을 것이다
- 「별」 전문
이승하:고대로부터 남성들은 별을 보고 길을 찾는 훈련을 했다고 하지요. 그런 점에서 별은 곧 길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보고 그 별이 가리키는 대로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구유를 찾아갑니다. 별은 부처에게도 큰 의미가 있지요.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서 참선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새벽별 하나를 보게 됩니다. 그 별은 인간과 우주의 만남을 주선하는 심부름꾼 같은 존재였죠. 기독교에서는 인간과 신 사이에서 가브리엘천사가 심부름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조지훈의 시구는 별이 희망의 빛, 구원의 빛임을 말해줍니다. 별은 빛을 뿜는 항성이지만 실은 어둠을 배경으로 하지 않습니까? 길 또한 마찬가지지요. 낯선 길은 인간에게 어둠일 뿐입니다. 그래서 별과 길은 인간에게 어둠과 빛의 상징이 아닌가 싶어요.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을 찾게 되지만, 때로는 어둠 속에 숨고 싶은 것이 또한 인간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빛과 길은 근본적인 속성이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 생명에서 물건으로 표4에 실은 제 자신의 변이 참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시집을 갖고 왔습니다.
독학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지구과학 참고서 한 권이 준 감동은 20년이 다 된 지금도 나의 심금을 울려 또 시를 쓰게 한다. 케플러의 법칙, 허블의 상수, 고생대 캄브리아기, 혜성의 방문, 별의 생성과 소멸, 대폭발과 우주 팽창설……. 책을 덮고 지하실 계단을 올라가 밤하늘을 보며 나는 이 거대한 우주 속에 던져져 있는 ‘나’라는 존재의 미미함을 깨닫고 전율하곤 했다. 우주의 역사와 넓이를 공부하면서 내 삶의 양태가 불을 보고 달려들다 타 죽는 하루살이와 진배없다는 것도 알아갔다.
그러나 생물 과목은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우주임을 알게 했다. 세포의 분열, 멘델리즘과 非멘델리즘, 유ㆍ무성 생식, 각종 동물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 식물의 명반응과 암반응……. 생명체의 역사와 종수,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이 우주의 역사와 넓이, 그 엄청난 질량만큼이나 위대한 것임을.
임애월:사인까지 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1995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시집이군요.
이승하:네, 오래 전에 절판된 시집입니다. 제가 대학원 시절에 숙명여대와 학점 교류가 되어 숙대 독문과 김주연 선생님의 강의를 두 번 들었는데 그 인연으로 해설도 써주시고 출판을 알선해주셔서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아끼는 시집입니다.
임애월:은사님께서 해설을 써주셨으니 아름다운 일이네요. 이 시집에 대해 말씀을 좀 더 해주세요.
이승하:우주는 무궁하고 영원하지만 인간은 왜소하고 유한하지요. 그러나 인간은 영원과 무궁을 시를 통해서 꿈꿀 수 있으니, 위대한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점성술과 천문학의 발달은 오늘날 우주항공학으로 이어져 인공위성과 로켓을 쏘아 올리게 합니다. 과학의 발달과는 무관하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나 길에서 살아온 것이며, 별을 우러러보며 살아온 것일까요. 저는 흑백텔레비전 시절, 칼 세이건이라는 학자가 해설해주는 ‘코스모스’라는 텔레비전 다큐 프로를 빠짐없이 봤습니다. 그리고 ‘실크로드’나 ‘차마고도’는 텔레비전 방영이 끝난 뒤에 비디오와 CD를 구해 소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별과 길은 제 인식과 사유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생태계 파괴현상은 우리를 자꾸만 물건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물건이란 쓰다가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 무렵 저는 인간의 몸이 상품이 되고 인간의 영혼이 물건 취급당하는 현실을 아파하면서 시를 썼습니다.
임애월:그런 관점에서 낸 시집은 생명에서 물건으로 한 권인가요?
이승하:아닙니다. 뼈아픈 별을 찾아서와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에도 생태계 파괴를 근심하며 쓴 시들이 꽤 나오고요, 이후에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임애월:근원적인 문제라면 종교적인 문제, 혹은 초월과 영원의 문제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승하:2000년도에 중국의 시안과 둔황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와 10년 동안 길을 화두로 삼아 시를 써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을 2010년에 펴냈습니다. 별이나 길이나 모두 ‘구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별을 보면서 길을 찾으니까요. 그런데 별은 구름 낀 날에는 보이지 않고 계절이 바뀌면서 자리를 바꾸지요. 길도 에움길이 있고 비탈길이 있고 가지 않은 길도 있습니다. 길의 끝이 낭떠러지가 되기도 하고요. 구도의 길이 만만치 않은 것처럼 별도 길도 우리에게는 막막한 난관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눈뜨면 길로 나서야 하고 밤이 오면 별을 우러르며 길을 찾아야 합니다. 숙명인 거지요. 그래서 별과 길이 제 시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제 자신 20대 젊은 시절에 이런 운명 내지는 숙명을 「젊은 별에게」에서 다뤄보기도 했습니다. 이 시는 제 10대의 초상이어서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임애월:1993년에 발간한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서는 세계의 폭력과 광기를 다뤘지요. 이러한 주제들은 등단작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어서, 선생님의 시들을 넓은 스펙트럼에서 보면 바로 이 ‘폭력’이라는 대주제 안에서 변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 이야기는 사실 모든 작가들에게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지요. 가족의 폭력 이야기를 거쳐 세계의 폭력으로 확장되는 선생님의 시편은 대단히 독특합니다. 나만의 아픔의 아닌 ‘우리’의 아픔과 인간애를 환기시켜 주더군요.
이승하:이 세상에 인류가 등장할 때부터 폭력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볼까요. 인간의 감정은 상대가 없이는 생기질 않지요. 상대방 때문에 기쁨, 슬픔, 분노, 감동 등 구체적인 감정들이 생겨납니다. 그중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격해질 때 폭력도 태어난다고 봐요. 그래서 폭력은 인류의 조상과 함께 탄생한 것이지요. 이브는 아담에게, 카인은 아벨에게 각각 보이지 않는 폭력과 보이는 폭력을 행사한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리스ㆍ로마 신화도, 중국의 사대기서도 폭력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됩니다. 금병매는 좀 다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 대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만, 제 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부연할게요. 우리는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자살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아마 지난 수십 년 동안 왕따를 당하다 자살한 학생의 수가 수천 명은 될 것이고 피해학생의 수는 수만 명이 될 겁니다. 그런데 그 수보다 훨씬 많은 수가 폭력을 행한 개인 혹은 집단일 것입니다. 우리는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생명을 죽이는 즐거움을 맛보고, 전쟁영화나 조직폭력배를 다룬 영화에 줄기차게 나오는 폭력 장면을 신이 나서 봅니다. ‘현대의 화약고’라고 하는 중동을 보십시오. 끊임없는 살상과 보복, 폭탄테러와 미사일 발사……. 예수가 걸어갔던 길마다 폭탄이 터지고 피가 뿌려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임애월:폭력 없는 세상을 시를 통해 꿈꾸어 오셨군요. 선생님의 시 중에는 생태시들도 꽤 있습니다. 특히 멸종 위기에 처한 조류나 인간의 욕망 때문에 희생되는 동물들의 생명이 경각에 처한 시편들을 읽을 때면, 자연환경보다 우리의 안위부터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생태란 넓은 의미로 보면 생명체는 물론 무생물까지도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가 아닌지요? 선생님의 생명관 내지 생태관을 시에 녹여낼 때의 심정을 들려주십시오.
이승하:집의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제게는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었습니다. 환경문제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종족 유지와 관련된 문제죠.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개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조짐은 보이질 않습니다. 리프킨 같은 학자가 말하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고향에 가서 친지들을 만나보면 저마다 농약중독 체험을 들려줍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많은 농약을 먹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제 부모님도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주변 어르신네들도 대다수가 암으로 돌아가십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자가용을 몰고 다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공기 오염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단위면적 농산물 생산성 제고를 위해 농약 살포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육류 소비의 증가로 쇠고기의 수입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식입니다. 환경파괴에 대한 이런저런 사건들을 먼 산 보듯이 하면서 저는 제 손으로 남을 죽이고, 또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생태 관련 평론과 시를 쓰게 했습니다. 제 평론집 가운데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은 제 딴에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쓴 것이랍니다. 작년에 낸 평론집 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 2에 실은 「시인들은 핵과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란 200매짜리 글도 생명에 대한 관심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여겨주십시오.
임애월:올봄은 다른 해보다 꽃들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흐벅지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시간 순서를 따라 피고 지지 않고 이렇게 한꺼번에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들을 보면 한편 걱정도 됩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고, 이렇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생명체들은 어디선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을 테니까요. 선생님께서 자가용을 안 갖고 다니는 이유가 바로 이런 환경을 염려하시기 때문이지요?
이승하:제가 뭐 투철한 환경론자는 아니고요, 길눈이 어둡고 기계치여서 운전을 안 배웠을 따름이지요. 그런데 임 시인께 제가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일본 NHK 위성방송 ‘생물의 묵시록’ 프로젝트 팀이 편찬하고 세계자연보호기금 일본위원회(WWF Japan)가 감수한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이란 책입니다. 서문을 쓴 프로젝트 팀의 대표 하야시 나오히사 씨의 말에 의하면 20세기에 절멸한 동물의 수는 2백 수십 종이라고 합니다. 오직 인간의 남획과 남벌, 공장 가동과 승용차의 배기가스로 인한 생명체 멸종인 것이지요. 21세기인 지금도 동식물과 곤충 중 멸종하는 것들이 계속 보고되고 있고 개체수도 현저히 줄고 있습니다. 과소비와 난개발, 그린벨트 폐지는 동식물의 터전을 잃게 할 것이고, 결국은 우리 인간의 터전을 잃게 될 겁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임애월: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고, 먹다가 버리는 우리의 풍요로움이 부끄러워집니다. 선생님의 작품 중, 늦은 밤 귀갓길에 술에 취해 주택가 골목길에서 토하다가 TIME지 속, 피골이 상접한 소말리아 어린이의 사진을 떠올리며 반성하는 시가 있더군요. 지구 한쪽에서는 생명을 유지하기에도 모자란 음식물이 다른 한쪽에서는 잔뜩 먹고 토하는 대비가 너무나 극명한 시편이더군요.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또한 그러한 생각을 몸소 실천하시는 게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승하:우리나라 사람들이 육식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는데, 시내 식당가에 가보면 이것을 확인할 수가 있지요. 소, 돼지, 닭, 오리를 너무나 많이 먹고 있습니다.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드는 사료도 만만치 않지만 배설물이 토질을 얼마나 오염시키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이지요.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보시면 고기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비건(vegan)은 아닌데 요즘에는 이상하게도 <워낭소리>라는 영화의 장면이 생각나 고깃집에는 잘 안 갑니다. 치킨이나 육개장, 감자탕, 삼계탕 같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죠. 그런데 아버지가 닭 잡던 날이 생각나서 요즘엔 치킨도 웬만하면 안 먹고 있습니다.
임애월:이은봉 시인은, 연작시를 묶은 선생님의 시집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을 읽은 후 「길 떠나기와 길 찾기」라는 평론을 통해 “시인 자신의 여정을 혜초의 여정에 덮어씌움으로써 심리적인 동일시”를 얻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 시집은 혜초의 깨달음을 시를 통해 찾아가본 행로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일단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의 여정을 요약해주세요.
이승하:중국 시안까지 가는 직항로가 생겨 시안공항에 일단 내렸지요. 시안에서 우루무치로, 투루판으로, 하미(합밀)로, 유원으로, 둔황으로 버스와 기차로 간 여정이 꽤 멀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멀고먼 길을 신라의 학승 혜초는 몽땅 걸어서 갔으니 기가 막힌 일이지요. 혜초는 이 정도만 여행했던 것이 아니에요. 왕오천축국전에 따르면 중국 광주에서 출발해 남중국해 → 불서국(수마트라) → 사자국(실론, 스리랑카) → 동천축 → 폐사리국(바이샬리) → 구시나국(쿠시나가라) → 피라날사국(바라나시) → 마게타국(왕사성, 마하보리 등 4대 성지) → 중천축국 수도 갈나급자(카냐쿱자) → 남천축국(나시크) → 서천축국(알로르) → 사란달라(잘란다라) → 탁사국(탁샤르) → 신두고라국(신드구르자라) → 사란달라 → 가섭미라국(카슈미르) → 건타라국(간다라) → 오장국(우디아나) → 구위국(치트랄) → 건타라국 → 람파국(람파카) → 계빈국(카피시) → 사율국(자불리스탄) → 범인국(바미얀) → 토화라(토카리스탄) → 파사국(페르시아) → 대식국(니샤푸르) → 토화라국(토카리스탄) → 호밀국(와칸) → 파미르고원(총령진) → 소륵국(카슈가르) → 구자국(쿠차) → 언기국(카라샤르) → 둔황 → 난주 → 장안(시안)에 도착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723년에 시작하여 727에 끝난 4년 동안의 여행 경로는 2만 킬로미터, 어마어마한 길이었죠. 제가 귀국 후 왕오천축국전을 보면서 감동과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리고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고요. 제가 본 별 중에서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크로드 여행 중에 본 것이었습니다.
임애월:1180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혜초의 시간을 드디어 열어보셨군요. 혜초와 깊이 교감하는 동안 선생님의 지난날의 아픔이 시의 언어로 승화되고 있음을 읽었습니다. 길을 떠난 자가 숙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자아에 대한 성찰이 번뜩이는 이 시집에서요. 이번에는, 혜초와 ‘동일시’된 아픔이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군요.
이승하:혜초는 집을 떠나서 도를 이룬 사람입니다. 5천축국(지금의 인도)을 비롯한 40개국을 돌아보고 당나라로 돌아온 뒤 조국 신라로 돌아오지 않고 중국에서 입적했지요. 한 번 길을 떠나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자가 진정한 나그네인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폭력과 광기를 피해 일본으로 밀항해 일본의 산간벽지에 숨어 살 것을 중학교 3년 내내 꿈꾸었는데 일본말을 모르는 상태라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2개월 뒤에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 등지를 가출소년이 되어 떠돌아다녔습니다. 독서실에서 웅크리고 잤지만 그래도 혜초에 비하면 백배는 포실한 여행이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심각하게 길눈이 어두워 운전을 하지 않고 사는데, 약속 장소 근처에 가서 뺑뺑이를 도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길을 물어 가면서도 2만 킬로미터 40개국을 답파한 혜초는 언제부터인가 제 우상이 되었습니다. 혜초의 시 5편을 연구하여 학계에 발표도 했었고요.
임애월:작년에 나온 열한 번째 시집 불의 설법은 네팔과 인도에 다녀온 후 쓰신 작품들이지요? 고뇌하는 싯다르타는 어쩌면 혜초와 만나는 그 순간부터 선생님이 잉태한 또 다른 시 소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싯다르타의 마음을 빌어 표현하고, 싯다르타의 마음에 기대어 위로받는 시적 화자의 모습에서 바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난 수많은 길 위에서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더구나 싯다르타의 고뇌는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것이었기에 시 한 편 한 편이 우리의 고뇌에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가톨릭 신자이신 선생님이 이 시집을 쓰시게 된 동기입니다.
이승하:혜초는 길에서 도를 깨쳤는데 저는 사막의 링반데룽처럼 길도 못 찾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네팔과 인도 여행을 하고 와서는 붓다의 생애를 연작시로 형상화, 불의 설법을 내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하고 와서 붓다의 각종 행적기와 전기를 살펴보니 제자들을 데리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설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왕자인 싯다르타 시절에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큰 고민에 빠져 있다가 가출, 고행의 수도승으로 살아가다가 큰 깨달음을 얻은 이후 붓다로 살아가면서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전도여행을 한 것이 제게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도 알고 보니 길에서 돈을 구하고(탁발) 도를 찾은 이였던 것입니다. 예수도 그랬지요. 열두 제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전도여행을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불의 설법이라는 시집을 낸 이유를 이 한 편의 시 안에 다 얘기해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인 구상을 대부님으로 모시고 1985년에 영세를 받은 천주교인이지만 붓다의 보시의 정신과 예수의 사랑의 정신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붓다는 참선과 호혜를, 예수는 참회와 희생을 강조했는데 다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 살아가자, 즉 이타주의를 실천하자는 것이 교리의 근본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가족만, 우리 종교단체만 위해 살아가기를 붓다와 예수가 원했을까요? 어차피 때가 되면 숨을 거두게 될 공동운명체인 우리에게 붓다와 예수는 살아갈 길을 제시한 구도자(붓다)이고 구원자(예수)였던 것입니다.
임애월:서정시학에서 나온 두 권의 시집은 우리 출판계가 장기불황이고, 특히 시집이 안 팔리는 시대에 드물게 금방 여러 판을 찍은 시집이라고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시집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 무척 고무적인 일이지요. 선생님의 시들은 우리 전통시의 운율과 쉬운 시어들로 씌어져서 독자들에게 거부감이 없지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서 선생님의 시론을 듣고 싶군요. 요즘 점점 산문화되고 난해해지는 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승하:전혀 많이 나간 시집이 아닌데, 그런 헛소문이 왜 돌고 있는지 놀랍네요.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이 4쇄를, 불의 설법이 3쇄를 찍었을 뿐이니까 1만 권 안쪽이죠. 저는 제 은사님인 서정주 선생님의 삼국유사를 읽어보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실천한 제자입니다. 시는 가슴으로만 써서도 안 되고 머리로만 써서도 안 된다는 가르침은 서정성과 지성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자아도취적인 서정성과 신변잡기적인 일상성, 지나친 참여의식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줄곧 꾸짖었던 구상, 서정주 선생님의 수업내용은 결국 시는 시다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의 등단작을 보면 이 작품들 가운데 과연 10년 뒤에도 읽힐 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년배 여성시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20~30대 시인들은 ‘난해하게 쓰는 것이 대세다’라는 생각에 일단 시를 완성한 뒤에 세 차례 정도 뜻이 안 통하게끔 비틀기를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다며 개탄해 마지않는 것이었습니다. 엉뚱한 표현 집어넣기, 문법에 맞지 않게 쓰기, 2편 이상의 시를 뒤섞어 쓰기, 횡설수설, 중구난방 등 구체적인 비틀기 수법까지 나열하며 우리 시가 이렇게 되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어야 하느냐고 성토하기에 저는 “서구의 초현실주의 시나 우리나라 후반기 동인들의 시가 지금 어디 읽히고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실험정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소통을 무시하는 실험, 공감을 외면하는 실험은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임애월:선생님 블로그에서 「설문대할망에게」 「제주무무(濟州巫舞)」 등 제주도의 신화와 굿마당을 노래한 시편을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첫 시집에서부터 우리의 신화와 민담ㆍ전설 등을 모티브로 많은 시를 쓰셨더군요. 불과 20대에 말이지요. 이러한 시도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이자 우리의 전통을 현대감각으로 되살려내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이승하:사랑의 탐구의 제2부의 시, 박수를 찾아서와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같은 시집이 제 나름대로 시도해 본 전통문화의 현대화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溫故而知新’이란 것이 있습니다. ‘法古創新’도 좋아하는 말입니다. 옛것을 숭상하지만 말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시인 서정주는 신라로, 질마재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저는 스승과 달리 이상하게도 옛것을 현대화하고 싶었습니다.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바랑이 가볍더라 바스락바스락 내 발 밑에서 낙엽이 몸 뒤척일 뿐, 떠나야 할 새들 다 떠나 숲길이 어찌 그리 조용하던지 조용히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다 커다란 산 하나 따라오기에 뒤돌아보니 멈추고 뒤돌아보니 멈추고…… 거기서도 보이는가, 아침저녁 낙엽을 쓸다 고개 들면 가까운 듯 먼 산 제 모습 반만 드러내는 영묘한 산 하나를 어쩌지 못하여 자네는, 긴 밤을 등불로 밝히는가 저 산 뒤에는 더 큰 산이다 업(業)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세상 내려다봄세 우리 함께 집 떠나 머리를 깎았지 길러주신 에미를 버려 낳은 자식을 버려 모은 땅을 버려 배운 앎을 버려 자네 다 버렸다고 생각했겠지 버리리라 하나씩 하나씩 끝내는 다 버리고 빈 마음에, 하나씩 하나씩 다시 채우리라 능히 채울 수 있으리라 자네는 생각했겠지 나는 버리지 못한다 산 아래 저잣거리엔 시방도 아우성이다 사람들이 정처 없이 떠나는 광경을 그제도 나는 보았다네
성한 몸보다 상한 마음들이 더욱 많더라 아홉 개의 구멍으로 오물을 쏟는 고깃덩이, 사람들은 남의 마음 갈가리 찢으며 스스로 찢어지고 자기를 못 죽여 남을 죽이고…… 정각(正覺)은 멀고도 먼 곳에 있는가 기실 바로 우리들 곁에 있다 마음이 똥이 되고 송장이 되고 마음이 능히 불(佛)을 이룬다네 자네는 다 알겠지 나를 깨치고 남을 못 깨친다면 우리 죽어서도 다시 못 태어나리 혼자 입고 경 외고 싸고 잠자는 일이 다 부질없으리
오늘 나는 주린 혼 하나 찾아왔기에 거두어주었다네 편히 자고 가라고 아아 수줍게, 한 여인에게 수줍게 나는 베풀었다네 아기를 받아내고 목욕을 같이 하고…… 나는 나부터 죽여야 한다 마땅히 죽여야 한다 이루었으나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 없다 나는 버리지 못한다, 못한다, 여래여
—「노힐부득이 달달박박에게」 전문
이 시도 삼국유사를 읽다가 힌트를 얻어 쓰게 된 시입니다. 제가 정말 큰 감동을 받은 설화입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처자를 데리고 살면서도 스님이 되기를 염원했다고 하지요. 금빛 팔이 이마를 쓰다듬는 꿈을 꾸고 함께 처자를 버리고 입산했습니다. 달달박박은 북쪽 고개의 판방(板房)에서 미타불을, 노힐부득은 동쪽 고개의 뇌방(磊房)에서 미륵불을 간구하며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3년쯤 되었을 때, 스무 살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이 북쪽 암자에 이르러 “노여워 마시고 하룻밤 재워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달달박박은 청정한 곳을 범하지 말라면서 거절합니다. 여인은 동쪽 암자에 가서 숙박을 청합니다. 노힐부득은 중생의 사정을 들어주는 것도 보살행이라고 생각하여 들어오게 하고 자신은 밤새 염불을 외웁니다. 날이 샐 즈음, 산기가 있다면서 여인은 자리를 깔아달라고 하지요. 출산을 도와주자 이번에는 목욕을 시켜달라고 조릅니다. 노힐부득이 부끄럼을 무릅쓰고 요청을 다 들어주었더니, 문득 욕조의 물이 금빛으로 변하는 게 아닙니까. 여인은 노힐부득에게 욕조에서 목욕하고 연화대에 앉으라고 권하고 자신은 관음보살이라 하고는 사라집니다. 달달박박은 노힐부득이 계율을 범했으리라 짐작하고 가보니 성불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 된 내력을 듣고 자기도 성불의 길로 이끌어 달라고 친구에게 부탁하자 노힐부득은 욕조에 남아 있는 물을 몸에 바르라고 합니다. 그러자 달달박박도 미타불을 이룹니다. 두 존자가 성불했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에게 설법하고 둘은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고 합니다. 후에 경덕왕이 여기에 절을 세우게 하고 미륵불과 미타불을 안치했는데 미타불은 도금하는 액체가 부족하여 얼룩이 남게 되었다는 설화, 재미있지 않습니까. 고대가요, 향가, 민속, 무속 외에 많은 광대와 예인도 종종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았습니다.
임애월: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워낙 다층적이고 넓어서 이 자리에서 모두 거론하기는 어렵습니다. 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듣기로 하고, 지금부터는 다른 이야기도 듣고 싶군요. 산문집 피어 있는 꽃을 읽어봤어요.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시가 있는 편지를 쓰신 것도 있는데, 저 같은 사람에게 쓰신 것도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편지를 쓰지 않는 그대에게」라는 글인데요, 저도 근래에 편지를 써본 적이 없거든요. 그 동안 출간하신 산문집들은 선생님의 시들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들인 것 같습니다.
이승하:산문집은 지금껏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 헌 책방에 얽힌 추억 빠져들다 피어 있는 꽃 등 네 권을 냈는데 헌 책방에 얽힌 추억을 제외하고는 다 절판되었습니다. 신변잡기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별 애착이 안 가는 책들입니다. 책이란 책 나름의 운명이 있는데 출판사가 금방 망하거나, 의학전문 출판사를 하는 친구가 우정으로 내주거나, 출판사 사정이라며 저자에게 남은 책을 넘기고 자체적으로 절판을 단행하기도 하더군요. 새 판을 찍을 때마다 인세 대신 책을 몇 박스씩 부쳐주는 출판사도 있지요. 날로 어려워지는 우리나라 출판계 사정을 이 네 권의 책이 말해주어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임애월:‘한국문단의 4대 비극’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문제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사람이지요. 어느 집단이든 이기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다 보니 타 집단에는 상당히 배타적이고요. 그러다 보니 파벌을 만들 수밖에 없고, 그 파벌에서 권력이 태어납니다. 우리의 문단이 앞으로 건강해지려면 문인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이승하:우리 문학의 발전과 문단의 정화를 위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인과 문예지, 문학평론가, 독자 모두에게 문제가 있으니 다 같이 반성하자는 뜻에서 쓴 글이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간 그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에 대한 부연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등단장사도 부끄러운 일이고 사재기도 부끄러운 일이지요.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시고자 출판사들이 출혈경쟁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 글이 유효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임애월:선생님께서 독자들과 시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아세요?
이승하 : 제가 인기가 많은 편인가요?(고개 갸웃)
임애월 : 물론입니다. 그 이유는요, 작품은 물론이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성에 다 열정……. 특히 겸손함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리 작품이 좋고 능력이 뛰어난 시인이라 해도 불손하고 오만하다면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웃음)
입하가 멀지 않았습니다. 여름은 푸르른 생명을 품고 있고, 그 속에 열매를 숨기고 있는 풍성한 계절이지요. 앞으로도 더욱 풍성한 시의 열매를 보여주기 바랍니다.
오늘,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신 가운데 좋은 글로 다시 만나길 고대합니다. 끝으로 여름 시 한 편 소개해 주세요.
이승하:제 책을 여러 권 읽고 질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졸시 한 수 낭송해 볼까요.
새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21세기까지 살아남은 새들이
지금 어디서 이 비를 피하고 있을까
장맛비를 보며 오늘도 나는 저작한다
독감에 걸려 죽지 않은 닭의 다리와 날개를
벌써 며칠째 오는 비인가 범람하는 강들
시가지가 또 물에 잠기고 드넓은 들판
수확기의 과수들, 비닐하우스들, 밭들……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수천 마리의 닭과 오리……
가금이 다 가출해버리면 집의 금고는 텅텅 비리라
계절이 바뀔 때면 겨울을 나러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동하는 새들이
지친 날개 쉴 수 있던 이 곳
물에 잠겨 있지 않으면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다 발라버렸다
하늘이 아닌 하늘에서 아직도 비 내리고
땅이 아닌 땅은 온통 물의 길, 물의 벽
숲이 아닌 숲에서 독감을 앓고 있는
우기의 새여 울기라도 하렴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올 필요는 없다
—「우기의 새」 전문
시인은 시로써 말을 한다. 이승하 시인이 현란한 수사에 의지하지 않는 이유는, 두 분 스승의 가르침을 늘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아껴 눈물과 웃음, 아픔으로 직조한 그의 언어는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덮어준다. 아픔과 슬픔이 밤잠을 몰아내는 날에 시인은 홀로 깨어, 길을 찾아가는 외톨이별을 만난다. 어둠 속에서도 좌표를 놓치지 않는 별, 그에게 별은 바로 詩였다. 시와 문학이 있었기에 방랑의 날에도 그는 자신이 장차 닿을 곳까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의 눈물과 아픔을 그가 따뜻한 인간애로 보듬어줄 수 있는 것은 그가 바로 아프고 슬픈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앓아봤던 이만이 앓는 자를 위로할 수 있다. 그의 시가 지닌 치유의 힘은 바로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소년처럼 해맑은 그의 미소가 오월의 캠퍼스에 신록처럼 싱그럽게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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