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이 워낙 빼어난 명산이라 우리나라에서 경치가 조금만 좋다고 하면 금강이란 이름을 차용한 곳이 많다. 그냥 금강이라고 하면 진짜 금강산과 헷갈리니 그 앞에 소(小)자를 붙이거나 지역명을 붙이는 것이다. 이 오대산 아래의 소금강은 율곡 선생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이 선생이 식당암에 쓴 글씨를 탁본하여 다시 음각한 커다란 바위가 입장객을 반긴다. 이제 막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 초여름이라 산에는 양기가 넘친다. 날씨도 맑고 청랑하다. 나무와 풀들이 한껏 성장을 하고 있다. 계곡의 물이 맑은데 약간은 노란색을 띤다. 약간 오염된 물 같다. 그러나 오를수록 물은 맑아지고 빛깔도 투명해진다. 주중의 휴일이지만 등산객이 제법 많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에는 곳곳에 자연생태계를 학습할 수 있도록 나무에는 이름표를 달아놓고, 쉴 만한 곳에는 곤충, 나무, 새, 숲 등에 대한 해설을 써 붙인 글들이 많이 보인다. 오늘은 매우 더운 날인데도 나무가 우거진 계곡 안은 시원하다. 곳곳에 물이 고인 소(沼)가 있고 소에는 낙엽이 많이 쌓여있다. 그래도 물이 맑아 웬만큼 깊은 곳이라도 밑바닥이 다 들여다 보인다. 맑은 물에만 산다는 버들치, 간혹 커다란 산천어도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많은 이름의 소(沼)와 담(潭), 그리고 크고 작은 수많은 폭포가 산재해 있는 이 계곡은 그리 넓지는 않은데, 바위들이 깨끗하여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랜 세월 물결과 풍우에 시달려 둥글둥글해진 바위들이 6월의 태양 아래 하얗게 빛난다. 널찍한 너럭바위가 곳곳에서 쉬어가라고 유혹하고 깊게 패인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은 맑은 가락의 노래로 등산객의 귀를 즐겁게 한다. 금강사란 절에 당도하니 길가에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을 마련해 놓았다. 잠시 쉬며 절 마당으로 올라서니 홍단풍이 요염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절의 마당이 단풍나무의 강렬한 빛으로 가을이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쳐다보니 산의 능선과 절의 건물, 나무들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길로 내려서니 알처럼 둥근 바위를 3분의 1 조금 남짓 윗부분을 잘라 놓은 모양의 바위가 있다. 평평한 윗부분의 우측 상단에는 소금강(小金剛)이란 글씨가 커다랗게 음각되어 있는데, 율곡 선생이 쓴 글씨란다. 입구에 세워놓은 바위의 글씨는 이 글씨를 탁본하여 옮겨 새긴 것이라고 하는데 글씨가 힘차고 정직하게 느껴진다. 바위 중앙에는 이능계(二能契)란 글씨와 함께 계원(係員)들의 이름이 죽 열거되어 있다. 오르는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것이 많이 있는데, 그런 바위의 이름을 보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이렇게 바위에 이름을 새긴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달랑 이름 하나 새겨 놓고 무엇을 기대했을까? 바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 후세에 길이 남기를 바라서 새겨놓았을 것이다. 새겨진 이름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름 하나만으로는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단순히 이름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름보다 업적을 남겼기에 그에 따른 이름이 남은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그래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 자신도 과연 남에게 어떤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얼굴과 이름만으로 기억될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뭔가 의미가 있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이 당대로 끝나버리면 의미가 없다. 이 지구상에 태어났다 사라진 사람이 과연 얼마이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몇 개의 이름이 100년을 갈까? 바위에 새겨진 의미 없는 이름은 자연을 훼손시키는 글자일 뿐이다. 내 이름도 의미 없는 이름으로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수많은 의미 없는 이름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니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아예 생각도 말아야할 일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오르다 개울가 그늘에서 잠시 쉬며 점심을 먹었다. 물가에 고기가 노니는 모습이 아름답다. 빵 조각을 던져주니 많은 고기들이 모여든다. 큰 덩이를 물고 가는 고기를 다른 놈이 쫓아간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기보다는 내가 먹이를 던져주는 것이 장난인 것처럼 고기들도 나의 장난에 응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몇 번 더 던져주다 심술이 발동하여 고기들이 모이는 곳에 조약돌을 던져 보았다. 돌땅을 맞아 죽은 고기는 보았어도 아직까지 던진 조약돌에 맞아 죽는 고기를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돌이 입수하는 순간에는 도망가던 고기들이 조금 후 먹이가 떨어진 줄 알고 다시 모여든다. 이쯤 되면 고기들이 맹목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장난도 무의미한 것이지만 자칫 돌에 맞아 죽는 고기가 있을까봐 돌 던지기를 그만두었다. 또한 버마재비를 중심으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과정을 바라보는 장자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고기를 두고 희롱하는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만물상에 다다를 즈음 기암괴석이 눈을 즐겁게 할 줄 알고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몹시 실망하고 말았다. 금강산의 만물상에서 너무 눈이 높아진 까닭인가 보다. 작년 겨울에 본 금강산의 만물상은 그야말로 기암괴석의 전시장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고작 바위가 5-6개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특이한 모습도 없었다. 우거진 녹음에 가려진 것일까? 잎이 솜털처럼 피어날 때나 차라리 벌거벗은 겨울에 와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노인봉까지 오르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고, 이미 벌써 지쳐 있어 그만 발길을 돌렸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 달리 무릎에 무리가 간다. 빨리 내려갈 사람들에게 길 양보를 하며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에 아내와 참나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내려왔는데 이곳에도 많은 나무가 있지만 눈의 띄는 것은 소나무와 참나무다. 특히 다른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신갈나무, 굴참나무는 이곳에도 많았다. 간혹 졸참나무, 상수리나무도 보이는데 이들은 줄기만 보아서는 갈참나무와 헷갈릴 때가 있다. 쪽동백과 서어나무란 이름도 이번에 새로 익혔으며 고로쇠나무가 단풍나무의 일종이라는 것도 길가에 붙여 놓은 안내판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비록 대금강이나 진금강이 되지 못해 소금강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금강산과 같은 구룡폭포, 만물상, 비로봉이란 이름이 이곳에도 있었다. 연화담이란 이름도 금강산에 혹 있는지 모르겠다. 등산로 입구에 북한의 금강산과 이곳의 경치 중 비슷한 두 곳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한 곳이 있었다. 귀면암과 구룡폭포였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비슷하게 보인다. 이 두가지로 미루어 이곳도 금강산의 아류는 된다고 우기는 것 같다. 견강부회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 금강산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이 아쉬운 마음에 이곳을 소금강이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대산에는 1,000m 넘는 봉우리가 5-6개는 되는 모양이다. 비로봉이 최고봉으로 이곳에는 10여년 전 안개 낀 날 올라보아 아쉬움이 컸는데, 다음에는 전망 좋은 노인봉부터 올라본 후 다시 비로봉에 올라 백두대간을 굽어보고 싶다. 2007. 6
첫댓글 피노키오님이 작품과 제가 쓴 무릉계곡의 품에 안겨, 작품은 여성과 남성과의 차이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