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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ㄱ. 해마다 설을 쇠고 나면 둘 또는 세 명씩 조를 짠 듯한 여인들이 몰려오곤 했었다. ㄴ. 하지만 이후 불어 닥친 매서운 추위는 아직 설도 쇠지 않았음을 일깨워 줬다. ⑵ㄱ. 자네 덕에 생일을 잘 쇠어서/쇄서 고맙네./ ㄴ. 쇤네는 설을 쇠었으니/쇘으니 스물이옵고 대불이 놈은 열일곱이옵니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
⑴은 어간 ‘쇠-’가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고’나 ‘-지’와 결합한 것이고, ⑵는 ‘쇠-’가 모음 ‘-어’로 시작하는 어미 ‘-어서’나 ‘-었-’과 결합한 것이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용형들 가운데 ⑵의 ‘쇠어서’, ‘쇠었으니’는 우리말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준말 형성 규칙에 의해서 ‘쇄서’, ‘쇘으니’로 줄어들 수 있는데, 이러한 유형의 준말 형성은 ‘-어서’나 ‘-었-’뿐만 아니라 ‘-어’로 시작하는 모든 어미들과의 결합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⑶ㄱ. 설은 나가서 쇠어도/쇄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쇄야 한다. ㄴ. 우리나라에서 설 명절은 고조선 시기부터 크게 쇠어/쇄 오던 명절이다. ㄷ. 지난 6일 오후 7시쯤 정보계장이 인사하러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추석 잘 쇠어라/쇄라.”며 봉투를 놓고 간 것이 문제였다. |
흥미로운 사실은 ⑵와 ⑶의 예에서와 같은 준말 형성 규칙은 ‘쇠-’뿐만 아니라 동일한 음절 구조로 이루어진 어간들, 곧 ‘괴-’, ‘되-’, ‘뵈-’, ‘쐬-’, ‘죄-’, ‘쬐-’ 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이 그 예들입니다.
⑷ㄱ.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품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흡사히 괴어/괘 놓은 차례탑과 같다.≪정비석, 비석과 금강산의 대화≫ ㄴ. 통조림에는 내용물의 품종, 제조 공장 및 제조 연월일 등을 뚜껑 중앙에 표시하도록 되어/돼 있다. ㄷ. 조금 있다 뵈어요./봬요. ㄹ. 나는 선실로 들어갈 생각도 없이 으스름한 갑판 위에 찬 바람을 쐬어/쐐 가며 웅숭그리고 섰었다.≪염상섭, 만세전≫ ㅁ. 일본의 5만 군사는 남원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바짝바짝 죄어/좨 왔다.≪문순태, 피아골≫ ㅂ. 해수욕장에서 햇볕을 너무 많이 쬐어/쫴 피부에 화상을 입었다 |
문제는 이러한 준말 형성 규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⑸ㄱ. 설은 나가서 쇠도 보름은 집에서 쇠야 한다. ㄴ. 통조림에는 내용물의 품종, 제조 공장 및 제조 연월일 등을 뚜껑 중앙에 표시하도록 되 있다. ㄷ. 조금 있다 뵈요. |
요컨대, 이러한 활용형들은 ‘쇠어도, 쇠어야, 되어, 뵈어요’를 본말로 하며, 올바른 준말형은 ‘쇄도, 쇄야, 돼, 봬요’가 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어’로 시작하는 어미와 결합하는 경우에만 사용될 수 있는 준말형들로서 만일 ‘-어’로 시작하지 않는 경우에 준말을 만들거나 ‘쇄어도, 쇄어야, 돼어, 봬어요’ 등의 경우처럼 준말이 형성된 뒤에 또 다시 ‘-어’ 계열의 어미를 결합하게 되면 모두 다 잘못된 활용형들인 셈입니다. 특히 “조금 있다 뵈요.”의 ‘뵈요’는 가장 자주 범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으니, 이번 설날 떡국 한 그릇을 맛있게 드신 후에는 영영 잊어 버리셔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