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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교파사 스크랩 통합측과 분열의 역사적 배경(2)
한아름 추천 0 조회 163 12.08.15 15: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통합측과 분열의 역사적 배경(2)| 신학 자료실
쉐퍼 | 조회 3 | 09.09.05 15:13 http://cafe.daum.net/CPI2002/5lnD/285
 
 
 

통합측과 분열의 역사적 배경(2)
1958년 통합한 미국연합장로교회(UPCUSA)의 영향
 
소재열
통합측과 분열된지 50년이 되었다. 당시 분열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배경이 있지만 신학적인 문제는 중요한 분열의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신학적인 문제인 W.C.C. 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해 박형룡 박사 3천만환 사건이 분열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 통합측 역사신학자들의 주장은 합동측의 역사신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아 왔다. 이 신학적인 문제가 얼마나 컸으면 합동측은 헌법에다 이 문제를 삽입하고 있겠는가? "1959년 제44회 본 총회가 의결한 본 총회의 원칙 및 정책을 시인하며 이러한 조치는 W.C.C.  및 W.C.C.적 에큐메니칼 운동이 비성경적이고 위태로운 것"(헌법, 정치 제18장제2조 5항)이며, 이를 배격하고 멀리하는 것이 "순수한 복음 신앙을 수호하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 글은 필자의 장로회 분열사 논문에 대한 일부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통합측과 강단교류가 거부되는 것이 총회의 결의정신이다.


1958년 미국의 북장로교회(PCUSA)와 북미연합장로교회(UPCNUS)의 통합이 1959년 한국장로교회의 분열을 유발한 원인중에 하나가 되었다. 미국 장로교회 총무 유진 블레이크(Eugene Carson Blake)의 에큐메니칼 혁명과 한국복음주의 세력의 대응은 한국장로교 안에서 대립과 분열을 가져 온 한 원인이었음을 조동진 박사는 지적한다. 다음은 그가 발표한 논문인 “1959년 분열과 한국 장로교 내부 대립”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장로교회가 1959년 제44회 대전총회에서 통합측이 분열해 나가기 한 해 전인 1958년, 미국장로교회의 제170회 총회는 북미연합장로교회(UPCNUS)와 통합하여 미국연합장로교회(UPCUSA)가 되었다. 이 총회는 UPCUSA로 변하는 동시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대신할 새로운 신앙고백의 제정을 결의하였다. 미국장로교회가 에큐메니칼 교회 중심으로 이동하여 가는 이 거대한 두 가지 작업을 한 사람은 당시 총회 총무(Stated Clerk) 였던 유진 칼슨 블레이크(Eugene Carson Blake)였다.
 
유진 블레이크는 이어서 1960 년 미국의 여덟 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연합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서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의 재통합의 장기 계획을 이끌어냈다. 유진 블레이크는 연합장로교회 총회가 작정한 새 신앙고백 제정 작업을 1967년에 마무리 지음으로 미국장로교회로 하여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파괴하는 혁명을 이루어 내고 W.C.C. 총무가 되어 그 본부가 있는 스위스로 옮겨갔다.

l958년부터 유진 블레이크가 주도한 이러한 미국장로교회의 에큐메니칼 혁명은 곧 그의 지휘를 받는 미국연합장로교 선교사들을 통하여 한국장로교회를 뒤흔들게 된다. 연합장로교회의 선교본부가 있는 뉴욕 사무실은 그 이름이 “에큐메니칼 사업부(Ecumenical Ministries)로 바꾸고 한국 주재 연합장로교회 선교사 마포삼락 (Samuel Maffett, Jr.) 으로 하여금 “에큐메니칼 운동이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을 작성하여 한국 NCC를 통하여 출판케 하였다. 이것은 1958년 12월 12일의 일이다.

1953년 7월 이래 “한국복음주의협회”(NAE) 총무였던 조동진은 “이러한 미국장로교회의 급진적 에큐메니칼 혁명을 감지하였다”라고 말한다. 미국 에반스톤에서 모인 제2회 W.C.C. 총회에 한국장로교 총회가 정식 대표를 파송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운동을 한국장로교회가 받아들일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그는 1955년 4월 28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장로교회의 박형룡, 감리교회의 변홍규, 성결교회의 이명직과 이성봉 등을 강사로 “한국NAE” 특별집회를 개최하는데 주도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인 4월 29일 서울 무교동에 있는 성결교중앙교회에서 “한국NAE” 제2회 총회를 소집하여 한국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각성과 단결을 호소하였다. 총회는 초대 회장 정규오에 이어 제2대 회장에 승동교회 목사 이대영을, 부회장에 감리교회 감독 변홍규와 성결교회 총회 김창근을 선임하고 조동진을 총무로 계속 연임하게 하였다. “한국NAE”는 1956년 8월 세계복음주의협회(WEF) 총회에 회장 이대영, 부회장 김찬근과 총무인 조동진을 포함한 5명을 파송하여 세계복음주의 지도자들과의 협력과 유대를 강화해 나갔다.

제44회 총회 분열의 배후 조정 세력으로서의 미국북장로교회(PCUSA)는 주도면밀했다. 조동진 박사는 그 증거로서 미국연합장로교회 에큐메니칼 선교부 한국선교부 대표 안두화(Adams)를 필두로 선교사 전원 명의로 11월 24일까지 정회하기로 한 총회의 결의가 불법이라고 한 성명서로 보고 있다. 이 성명서는 9월 29일 연동교회에서 속회한 총회가 ‘합법적 제44회 총회’라고 주장하고 “이후 11월 24일 모이려는 회의를 합법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속회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선교부의 조정 증거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 역시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결론적으로 분열에 대한 역사적 배경으로 1958년 통합된 미국연합장로교회가 한국의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를 WCC에 속한 총회로 만들기 위해 미국의 한국선교지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총회 내 WCC 찬성하는 세력들과 연합하여 WCC를 반대하는 세력과 교권싸움을 주도함으로 생긴 결과가 분열사건이었다. 여기에 신앙동지회 소속 NAE 측이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역사적 신학적 전통과 정체성을 지킨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사입력: 2009/09/03 [05:28]  최종편집: ⓒ 리폼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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