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정문화재(무형문화재 제18호) 지정일 : 1987년 8월 25일 지정번호 :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예능 보유자 : 김길선,박강열,김관우 진도 북놀이는 삼현육각 및 시나위 가락과 사물이 받쳐주는 형태가 음악적 구성면에서도 차이가 남으로 즉흥적 춤사위와 북가락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독특한 북놀이다. 이 북놀이는 김행율이 명인이었고, 이 분에게서 사사한 임장수,박태주,김성남이 있으나 돌아가시고 김성남으로부터 북치는 법을 이어받은 박관용(2008년 작고), 장성천(93년 작고), 양태옥(2003년 작고)이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김길선과 박강열이 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양태옥은 김성남으로부터 북을 배웠고 1954년 진도민속 국악원을 창립하여 후진양성과 북놀이 계승에 전력해 왔으나 2003년 작고하고 그 뒤를 이어 박강열이 2006년 12월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장성천은 1984년 진도 북춤놀이 보존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으며 김성남으로부터 북놀이 가락과 장구,아쟁,피리,소리 등을 배워 활동을 열심히 하였으나 작고하고 그 뒤를 이어 김길선이 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받아 현재 보존회장을 맡고 있다 박관용은 호남농악경연대회 북춤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김성남의 가락과 몸짓바탕에 여러가지 즉흥적인 춤 사위를 곁들이고 있기 때문에 무척 세련된 감을 주는 춤사위를 보여 줬으나 2008년 7월 운명하였고 전수조교인 김관우를 비롯한 이희춘, 박흥일 등이 이수하여 활동 중이다. 진도 북놀이는 양손에 북채를 쥐고 장구처럼 치기 때문에 잔가락이 많으며 멈춤과 이어짐이 민첩하고 가락이 다양하다. 특히 북이 갖는 시간적 소리와 즉흥적 춤사위가 갖는 공간적 움직임이 어우러져 흥을 북돋운다.
박강열 보유자는 북을 어깨에 맨 채 양손에 채를 쥐고추는 ‘양북춤’의 전수자로 양태옥(1919~2003) 유파에 속해있다. ‘북을 칠려면 양태옥이만큼 쳐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태옥은 북춤에 일가를 이룬 이다. 양태옥 계열의 북놀이는 북을 비스듬히 뉘어서 메고 한 발을 안쪽 오금까지 오므려 들어 올리면서 치는 것이 특징인데,
박강열 보유자의 춤은 다른 유파에 비해 가장 남성적인 북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진도북놀이의 특징중 하나는 북채를 양손에 쥐고 북은 허리에 고정시키고 북을 친다.
다른 북놀이와 구별되는 양태옥 류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북채의 너설(북채 끝에 매단 색 천)을 많이 이용한다.
둘째, 오른손 까돌기와 손 까올리기를 많이 한다.
오른손 까돌리기는 4박 자진모리에서 하나에 오른발 힘있게 딛으면서 우회전 하는데 둘에 왼발 딛고 셋에서 오른발 두 번 뛰며 왼발을 들어 올리고 오른손은 왼손어깨 깊숙한 곳에서 까서 축 펴서 회전하는 것이다.
셋째, 첫 박에 오른발을 사용한다.(박관용류는 왼발)
넷째, 미리 발을 들었다가 하나에 내딛는다. 고법과 장구에 접궁(구궁)을 쓰는데 발의 예비동작이 접궁의 구와 같다.
진도북의 형태를 보면 소리북보다 약간 작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며 다른지역의 풍물북보다 매끄럽고 정교하다
珍島북놀이의 歷史
인류문명의 시작과 더불어 연희가 싹트고 각종 생활도구들이 만들어 지면서 악기 제작기술도 발달했을 것이다.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북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이고 우리나라는 고조선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다.
북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사용기능도 다양했으리라. 信號와 交信의 機能 呪術的, 宗敎的 機能, 協同과 團合의 機能, 遊戱와 娛樂의 機能, 伴奏와 演奏의 機能등 진도북놀이의 기원에 대하여 모내기 북(모방고, 못 북)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나 이것이 진도북이 다른 분야에 쓰였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진도 북의 특징적 요소들의 존재 이유는 허리에 북을 고정시키고 북채를 양손에 쥔다는 것에 있다. 두 손으로 북을 치기 때문에 가락이 다양하고 다듬이 가락이 발달 했으며, 북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춤사위를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도에서 북이 발달했던 이유, 양 북을 사용했던 연유에 대하여는 장구보다는 싸다는 것, 장구보다 자가 제작이 쉽다는 것, 농경 시 장구보다 북이 편리했다는 점들을 들고 있다. 모내기나 농악이 보름이상 지속될 때 힘을 덜어주는 지혜가 바로 양북에 있다. 진도북놀이의 역사규명은 북의 기능만큼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진도북놀이가 끝나고 다시 진도씻김굿 중 한대목을 들을 수 있었다.
진도에서 행해지고 있는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있는 한을 풀어주어서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을 말한다. 타지방에서 하는 굿은 무당이 북 위나 작두 위에서 걷는 등 사술적이고 의상은 무복을 입는 것이 보통이며 무당 자신이 망자의 말을 전한다. 그러나 진도 씻김굿은 춤과 노래로서 신에게 빌며 의상은 흰옷 차림으로 죽은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죽은 자와 접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진도 씻김굿은 진도에서 전승되는 망자 천도굿으로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으며
도지정문화재(무형문화재 제18호) 지정일 : 1987년 8월 25일 지정번호 :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예능 보유자 : 김길선,박강열,김관우 진도 북놀이는 삼현육각 및 시나위 가락과 사물이 받쳐주는 형태가 음악적 구성면에서도 차이가 남으로 즉흥적 춤사위와 북가락이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면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독특한 북놀이다. 이 북놀이는 김행율이 명인이었고, 이 분에게서 사사한 임장수,박태주,김성남이 있으나 돌아가시고 김성남으로부터 북치는 법을 이어받은 박관용(2008년 작고), 장성천(93년 작고), 양태옥(2003년 작고)이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김길선과 박강열이 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양태옥은 김성남으로부터 북을 배웠고 1954년 진도민속 국악원을 창립하여 후진양성과 북놀이 계승에 전력해 왔으나 2003년 작고하고 그 뒤를 이어 박강열이 2006년 12월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장성천은 1984년 진도 북춤놀이 보존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으며 김성남으로부터 북놀이 가락과 장구,아쟁,피리,소리 등을 배워 활동을 열심히 하였으나 작고하고 그 뒤를 이어 김길선이 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받아 현재 보존회장을 맡고 있다 박관용은 호남농악경연대회 북춤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김성남의 가락과 몸짓바탕에 여러가지 즉흥적인 춤 사위를 곁들이고 있기 때문에 무척 세련된 감을 주는 춤사위를 보여 줬으나 2008년 7월 운명하였고 전수조교인 김관우를 비롯한 이희춘, 박흥일 등이 이수하여 활동 중이다. 진도 북놀이는 양손에 북채를 쥐고 장구처럼 치기 때문에 잔가락이 많으며 멈춤과 이어짐이 민첩하고 가락이 다양하다. 특히 북이 갖는 시간적 소리와 즉흥적 춤사위가 갖는 공간적 움직임이 어우러져 흥을 북돋운다.
박강열 보유자는 북을 어깨에 맨 채 양손에 채를 쥐고추는 ‘양북춤’의 전수자로 양태옥(1919~2003) 유파에 속해있다. ‘북을 칠려면 양태옥이만큼 쳐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태옥은 북춤에 일가를 이룬 이다. 양태옥 계열의 북놀이는 북을 비스듬히 뉘어서 메고 한 발을 안쪽 오금까지 오므려 들어 올리면서 치는 것이 특징인데,
박강열 보유자의 춤은 다른 유파에 비해 가장 남성적인 북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진도북놀이의 특징중 하나는 북채를 양손에 쥐고 북은 허리에 고정시키고 북을 친다.
다른 북놀이와 구별되는 양태옥 류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북채의 너설(북채 끝에 매단 색 천)을 많이 이용한다.
둘째, 오른손 까돌기와 손 까올리기를 많이 한다.
오른손 까돌리기는 4박 자진모리에서 하나에 오른발 힘있게 딛으면서 우회전 하는데 둘에 왼발 딛고 셋에서 오른발 두 번 뛰며 왼발을 들어 올리고 오른손은 왼손어깨 깊숙한 곳에서 까서 축 펴서 회전하는 것이다.
셋째, 첫 박에 오른발을 사용한다.(박관용류는 왼발)
넷째, 미리 발을 들었다가 하나에 내딛는다. 고법과 장구에 접궁(구궁)을 쓰는데 발의 예비동작이 접궁의 구와 같다.
진도북의 형태를 보면 소리북보다 약간 작고 가벼운 것이 특징이며 다른지역의 풍물북보다 매끄럽고 정교하다
珍島북놀이의 歷史
인류문명의 시작과 더불어 연희가 싹트고 각종 생활도구들이 만들어 지면서 악기 제작기술도 발달했을 것이다.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북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이고 우리나라는 고조선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다.
북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사용기능도 다양했으리라. 信號와 交信의 機能 呪術的, 宗敎的 機能, 協同과 團合의 機能, 遊戱와 娛樂의 機能, 伴奏와 演奏의 機能등 진도북놀이의 기원에 대하여 모내기 북(모방고, 못 북)에서 기원을 찾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나 이것이 진도북이 다른 분야에 쓰였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진도 북의 특징적 요소들의 존재 이유는 허리에 북을 고정시키고 북채를 양손에 쥔다는 것에 있다. 두 손으로 북을 치기 때문에 가락이 다양하고 다듬이 가락이 발달 했으며, 북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춤사위를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도에서 북이 발달했던 이유, 양 북을 사용했던 연유에 대하여는 장구보다는 싸다는 것, 장구보다 자가 제작이 쉽다는 것, 농경 시 장구보다 북이 편리했다는 점들을 들고 있다. 모내기나 농악이 보름이상 지속될 때 힘을 덜어주는 지혜가 바로 양북에 있다. 진도북놀이의 역사규명은 북의 기능만큼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진도북놀이가 끝나고 다시 진도씻김굿 중 한대목을 들을 수 있었다.
진도에서 행해지고 있는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있는 한을 풀어주어서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을 말한다. 타지방에서 하는 굿은 무당이 북 위나 작두 위에서 걷는 등 사술적이고 의상은 무복을 입는 것이 보통이며 무당 자신이 망자의 말을 전한다. 그러나 진도 씻김굿은 춤과 노래로서 신에게 빌며 의상은 흰옷 차림으로 죽은자의 후손으로 하여금 죽은 자와 접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진도 씻김굿은 진도에서 전승되는 망자 천도굿으로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