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박원종묘역 종목 : 시도기념물 제170호 (경기) 조선 초기의 무신이며 반정공신(反正功臣)인 박원종(1467∼1510) 묘소이다.
석물(石物)로는 묘표(墓表)·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장명등(長明燈) 각 1기(基), 망주석(望柱石) 및 문관석(文官石) 각 2기, 계체석 등이 있다. 그리고 묘역의 앞쪽 아래에는 신도비(神道碑) 1기가 세워져 있다. 봉분(封墳) 앞의 묘표는 월두형(月頭形) 비신(碑身)과 비대(碑臺)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비신 51.5×14.5×130㎝, 비대 101×60×39㎝이다. 비신 전면에는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이라는 예서체(隸書體)가 횡서로 기록되어 있고, "병충구의결책익운정국추성보(秉忠舊義決策翊運靖國推誠保)사(社)우세정난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의(祐世定難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정부령의정겸령(政府領議政兼領)경연홍문관예문(經筵弘文館藝文)관춘추관관상감사평성부원군(館春秋館觀象監事平城府院君)증(贈) 시충렬박공원종지묘(諡忠烈朴公元宗之墓)"라는 5행의 종서가 행서체(行書體)로 씌어 있다. 기록이 없어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묘표 앞의 상석은 190×121×30㎝의 규모로 비교적 큰 편이며 4개의 고석(鼓石)으로 받쳐져 있다. 지름 44㎝, 높이 86㎝의 팔각 향로석은 상석 앞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각기법에 있어서도 나무로 된 향탁(香卓)의 문양을 비교적 정교하게 묘사한 수작(秀作)이다. 상석 앞 장명등의 크기는 옥개석(屋蓋石) 90.5×90.5×75㎝, 몸체 58×57×138㎝이다. 화창(火窓)에는 등잔을 놓을 수 있는 홈이 패어 있고, 화창 밑에는 안상문(眼象紋) 내에 꽃모양을 조각해 놓았으며 그 밑으로는 사방에 기린(麒麟)이 조각되어 있다. 장명등의 좌우에는 대형 팔각 망주석이 1쌍 있는데 높이 211㎝이며, 규모 및 형태에 있어서 화표(華表)에 가깝다. 하단에는 연판문(蓮瓣紋)과 안상문, 상단에는 연화무늬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망주석의 앞쪽 좌우에는 83×68×245㎝ 되는 문관석이 1쌍 배치되어 있는데, 복두가 세밀하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복두의 착용방법을 확실하게 고증할 수 있는 자료이며, 또한 복두 후면의 깃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함에 따라 복두 복원에도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공복(公服)의 표현도 정교하며, 후면의 띠와 후수(後綬)의 조각도 뛰어나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감을 갖고 있으며, 얼굴의 표현도 매우 사실적이다. 봉분은 1기로, 묘표의 기록으로 미루어 합장(合葬)이 아닌 단독장(單獨葬)으로 보인다. 순천박씨 문숙공파 도산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출처: 혁거세와 한국사 원문보기 글쓴이: 하나뿐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