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아이의 어미 루미네 수녀
정양모 신부 / 신약학
부산진구 범천2동 산마루, 무허가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안창마을 ‘우리들의 집.’ 초로의 루미네 수녀(1941년 독일 오스나브뤼크 출생)가 열두 아이를 키우는 보금자리다.
루미네 수녀는 십 년 가까이(1970~1979년) 부산에서 일하다가 독일로 돌아가서 십 년(1979~1989년)을 보낸 다음, 오매불방 그리워하던 부산으로 다시 돌아와 곧장 안창마을에 자리 잡았다. 1989년 두 평짜리 연탄 아궁이방을 구해 살면서 ‘동구사회 복지회관’ 가정복지사업을 돕다가, 1992년부터는 판잣집 한 채를 구해서 동네 아이들의 공부방을 만들고, 1994년 12월에는 판잣집을 한 채 더 구해서 어린이집을 열었다. 공부방에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동네 초등학생과 중등학생 40명을 열성으로 가르친다. 어린이집에는 루미네 수녀가 수련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1997년 1월 현재 초등학생 5명, 유치원생 3명, 3~4세 어린애 4명을 돌보고 있다. 이 아이들의 엄마는 가출했거나 수감 중이고 아버지는 실직자이거나 술주정뱅이다.
1997년 1월 12일 일요일 점심 때, 서강대학교에서 시편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전봉순 수녀와 함께 ‘우리들의 집’을 찾아갔더니, 어린애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어린애들은 하나같이 명랑하고 활달하다. 단지 세 살바기만은 칭얼거리면서 잠시도 루미네 수녀의 등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소란스레 설치던 아이들도 밥상을 마주하자 쥐죽은 듯 조용히 먹는 데만 정신을 쏟았다. 밥이고 반찬이고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 한 아이가 밥을 네 공기나 먹는 것을 루미네 수녀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지금 한창 크는가 봐요.” 한다. 다행히 그날은 식사 중에 일을 벌이는 아이가 없었다. 전봉순 수녀가 언젠가 여기서 밥을 먹는데 어린애 하나가 똥을 싸는 바람에 도저히 식사를 계속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오직 루미네 수녀만은 똥을 치우고 아이를 보살핀 다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식사를 계속하더란다.
포교 잡지 「Kontinente」(Nov.-Dez., 1996)에 실린 대담 몇 토막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1996년 여름 루미네 수녀가 독일에 들른 기회에 포교 잡지 기자와 나눈 대담이다.
기 자: 어디서 아이들을 데려옵니까?
루미네: 주변 마을에서 데려옵니다. 네 살, 여섯 살 난 자매를 데려오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지요.
아이들의 엄마는 술주정뱅이 남편에게 매를 맞고 살아오다 결국은 달아났습니다. 아이
들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술집 창고에서 살았는데 아버지는 아이들도 때리곤 했지요. 성
당에 다니는 한 여교우가 이런 참상을 제게 알려 주었어요. 저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아
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들을 곤경에서 구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심한 충격을 받으
면서 살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찾아오면 한 달에 한 번 유치원
에서 자기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면회 왔을 때 아
이들은 잔뜩 겁을 먹고 제게 달라붙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울
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군요. 가겠습니다.” 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아버지는 나름대
로 자식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기 자:아이들이 사는 모습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루미네: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못해 온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다해 받아들이고 돌봅니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안온한 분위기를 맛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곧 적응합니다. 큰 아이
들은 오전에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닙니다. 오후에는 대학생 봉사자들이 와서 과외 공부
를 지도합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기 자:생활비와 교육비는 어떻게 충당합니까?
루미네:거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해결합니다. 매월 일정액을 내는 한국 후원자들이 상당수에
달합니다. 아이들의 부모에게선 어쩌다 몇 푼 들어옵니다. 독일에서 도와주는 은인들도
더러 있구요.
기 자: 잠시 동안이나마 아이들과 떨어져 독일에 체류하고 있는데, 지금의 심정을 말씀해 주십
시오.
루미네:동료 수녀들이 잘 돌보고 있으니 다행스럽지만, 잠시나마 아이들을 떠난 게 섭섭해요. 저
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저들의 엄마라는 느낌입니다. 제 아이들입니다. 그렇구 말구
요. 아이들이 저를 몹시 기다릴 것입니다. 저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1997년 1월 12일 점심을 먹고 나서 루미네 수녀와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녀님의 존함 루미네는 ‘빛’을 뜻하는데, 빛나는 분과 나눈 대담이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정양모:어린이들을 썩 잘 돌보십니다.
루미네:제가 장녀로서 남동생 세 명을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고아원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구요.
정양모:어떻게 해서 어린이집을 만들 생각을 하셨습니까?
루미네: 안창마을에서 살면서 꼭 필요한 일을 찾다보니까 어린이집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이
를 낳지 못했으니 기르기라도 해야지요.
정양모:세 살바기 들이 서로 응석을 부리고 칭얼대면서 잠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 제 시간
에 성무일도를 바치기 어렵겠는데요?
루미네:어린애 둘을 데리고 자는데, 저아이들이 잠들면 비로소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양모:수녀님은 사는 게 기도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루미네:동감입니다.
정양모:아이들이 입은 옷이 퍽 좋은데요.
루미네:은인들이 가져오기도 하고 제가 사서 입히기도 합니다. 시장에 가서 예쁜 옷을 보면 사서
아이들에게 입히고 싶어요.
정양모:1989년 재차 한국으로 오시기 전에 독일 퀼른 시의 최신식 엘리사벳 병원 원장으로 재직
하셨는데, 한국에 오려고 병원장직을 사직하셨다구요?
루미네:독일에서 사는 십 년 동안 저는 일구월심 부산으로 돌아가서 가난한 이들과 살고 싶은 마
음뿐이었습니다.
정양모:저는 한평생 예수 공부만 하는데, 수녀님께서는 예수님처럼 사십니다. 앎보다 삶이 앞서
지요. 퍽 부럽고 부끄럽습니다.
루미네:예수 공부, 신학 공부도 필요하지요.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잖아요.
‘우리들의 집’을 나서면서 예수께서 각별히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강복하셨다는 단화(短話)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어루만지게 하려고 했다. 그러자 제자들이 저들을 나무랐다. 예수께서 보시고는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도록 그대로 두시오. 그들을 가로막지 마시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강복하셨다(마르 10,13-4.16).
‘우리들의 집’은 불우한 어린이 12명이 함께 살고, 안창마을 학생 40명이 공부하며 소년소녀 가장들이 즐겨 찾는 보금자리인 만큼 구원이 이룩되는 구원 자리다. 그 옛날 예수께서 이룩하신 구원과 들려주신 복음이 생생하게 재현되는 성스러운 곳이다. 역사의 예수에게 감복되고 현존하는 그리스도에게 매료된 참 그리스도인이 사는 복된 곳이다.
복되어라, 갸륵한 누이여! 그대는 좋은 몫을 택했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리니. 복되어라 이름값을 하는 누이여! 그대 있으니 안창마을이 환히 밝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