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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준비원고
시집 준비원고 1
月亭김승영
2021. 9. 1. 23:23
새벽 기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네
지난해 가을
충청도 어느 호숫가
밤새 울던 갈잎 소리 들려오네
그 밤은
너를 두고 쫓기듯 떠난 자리에
달은 곤두박질로 수면에 가라앉고
별도 그저 싸래기 눈처럼
흩어지고 있을 뿐이었네
생존의 벽을 마주해서
기도하고 싶네
어머니의 것
너의 것
나의 것
사랑함으로 슬픈 것
연민으로 가 없는 것
우리 모든 것들
평화로
향기로
잠깐만 쉬었다 가세
잠깐만 쉬었다 가세
멈추지 못하고 흘러온 세월
이 겨울 산길에
언 듯 할퀴며 지나는 소리
지나간 세월의 마당에
낙엽처럼 깔린 회한
잠깐만 쉬었다 가세
틈틈이 눈물은 반짝이고
타다만 불꽃의 잿더미엔
죽순처럼 한이 자라는데
이것도 저것도 잠시 덮어두고
잠깐만 쉬었다 가세
눈뜨면 고갯마루
감았다 다시 떠도 고갯마루
무아의 징검다리 쯤에서
잠깐만 쉬었다 가세
버린다는 건
자유며 평화라네
잠깐만 쉬었다 가세
겨울새
沒落하는 도시의 빈 밭에
일렁이는 憤怒를 묻고
立冬이 지난 겨울에 비가 내린다
生을 조롱하는 너의 발톱은
겨울을 맞을 적마다 더
큰 소용돌이로 파고들었다
번 번히 도망질치며
絶望으로 숨막혀
歎息하는 나의 기도는
찢어진 깃발처럼 空虛하게
하늘 끝에서 펄럭였고
내내 수면 부족으로
아침을 맞곤 하였다
놓여난 자가
서야하는 겨울 빈 들에
겨울새가
빗속을 나는
오늘도
가시로 돋아나는
憤怒를 잘라내야한다
그것은 허상이었음을
발을 적시며 걷던
새벽 들판이
한 때 푸르렀음을
기억해 냈을 때
바람은 사납게 불고 있었다
서걱이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신음하며 달리다 만난 강가에서
별빛이 부서지며
오열하는 소리를 듣고
강물로 녹아들고 싶은
슬픔을 감추었다
그것은 허상임을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마른 풀잎과 바람은
낮은 소리로 말한다
한때 현란한 풀꽃이
피어 있었음을 기억해 냈을 때도
바람은
사납게 불었는데
내 가을은 다 어디로 갔나
내 가을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 있나 내 가을은
늘상 한구석 비워두고
기다린 가을
위태롭게 매달려 여무는
뒤뜰 수세미처럼
가슴속 한 자리
노여움으로 기다린
내 빈곤한 계절이여
기다림 속에서
내 가을은 얼마나
아름답게 애처롭던가
여름밤의 밀어처럼
하마
밤마다 가시로 돋아나
나를 깨우던 가을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나
죽었던 그리움
살려 내리라
우수로 기다린 가을
실날같은 緣에 매달려
한 구석 비워놓고
기다린 가을
다 어디로 갔나
어디에 있나 내 가을들은
잔영(殘影) 1.
내가 지금도 서러워
잠에서 깨어
다시 목이 메이는 것은
어머니가 이제 정말 떠나셔서가 아니라
아직 어머니가
내 안에 남아 계신 까닭이다.
아직 버릴 수 없는
이승에서의 잔영이
아직 남아 있는 까닭이다
내가 놓지 못하는 것들과
어머니가 놓을 수 없는 것들이
허공에서 표류하며 너울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춤이
끝나지 않은 까닭이다.
굿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 있는 혼과 저기 있는 혼이
마주해 손잡고 추는 춤이
달 그림자 아래서
원혼의 주술을 노래하며
눈처럼 하얀 옷자락을 끌고 있다
哭은 끝나지 않았다
지울 수 없는 환영들과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들이
내 밤을 막막하게 하는
그 이유를 난 모르겠다.
哭은 끝나야한다
哭은 끝나지 않았다
2006. 8 . 어머님 小喪에.
잔영(殘影) 2.
내가 아직도 서러워
시름에 겨운 것은
놓을 수 없는
실 날 같은 인연의 끈 하나
내 안에 남아
잔영으로 자리해 있는 까닭이다
이제 지쳐 더 견디지 못하는
잔인한 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까닭이다.
자고 나면 머리맡에 쌓이던
하얀 우수와
어머니의 가냘픈 넋이
함께 부르는 천상의 노래를
끝내지 못한 까닭이다
떠나지 못한 혼과 보낼 수 없는 혼이
불꽃으로 타는 소지(燒紙) 아래
잡은 손 놓을 수 없어
목 놓아 부르는 노래가
허공을 가르고 있다
원혼은 여전히 가슴을 쓸고
끝내 차갑던 기침소리
오래 환청으로 들리는 밤
내 통한도 소지로 불사르고
노래도 끝나야한다
이제 노래는 끝내야한다
2007. 8월 어머님 大喪에.
燒紙(소지):신령 앞에서 비는 뜻으로 종이를 태워서 공중으로 올리는 일, 또는 그 종이.
울지 않게하라
이 진창길에서
무엇을 찾고 있나
거기서 건져낸건
탄식과 어두움 뿐이다
소리치며 무너져 내리던
핏빛 눈물방울과
덧없이 바스러지던
병든 잎들뿐이다
이 겨울 바닷가에서
무얼 찾고 있나
거기서 건져낸 건
남루한 영혼과 타오르던 所望의
폭풍뿐이다
이 주점 탁자에서
무얼 찾고 있나
쉰 목소리로 부르던
고달픈 넋의 노래뿐이다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는
사람의 외침뿐이다
울지 않게 하라
다만
그리움에 울게 하라
포구는 죽었다
아직은 바다에
바람이 분다
어느날엔가 이 포구에
미명의 어둠 깊은 날에
바다에 주검으로 떠서
너를 노래하지 못해도
새들은 부르리라
늘 떠돌던 것들
부르며 손짓하리라
언제쯤
이 냄새나는 갯벌에
파도가 넘치나
포구는 죽었다
남아 있는 건
우리 가슴 저린
술잔뿐이네
바다에 바람이 분다
그 언제인가 이 포구에 다시
미명의 어둠이 찰지라도
포구는 죽었다
겨울 강
아린 가슴
어쩌지 못해
뒤척이던 많은
밤
강가에 서면
수면에 흔들리던
겨울 달빛
거기서 건저 올린
꿈들은 언제나
파랗게
질려 있곤 하였지
이제 그 꿈은
전설이 되었다
내 서러운 그리움처럼
먼 날의 애달픈
전설이 되었다.
구십 구년 가을 성묘
사십년 날들이 어제처럼
지나갔다 해도
그 때 그 구름
그 바람이 아닐 지라도
그 해 겨울은 끝도 없는
추락의 시작이었는데
매번 내 성묘는
추위에 시달렸으며
넝마로 남루했다네
아직 역사를 부여잡은
어머니 마른 어깨위론
세월의 무게만큼
근심이 내려 앉고 있었지
아까운 것들을 다 잃은 후에야
외할머니 손길이 그리웠듯이
다시 그만큼을 더 버린 후에야
내 내 어머니가 그리울 날이
반듯이 올 거라는
어무찬 마음으로
사십년 세월이 찢기우는
묘지의 바람이라네
젖어 내리네
그와도 같이 우리 가슴
젖어 내리는 뜰에서
오랜 포옹을 한 채
아침을 맞는
石燈이고 싶네
젖어 내리네
하염없는 서러움도
사랑의 열기도
그저 이 밤엔
젖어 내릴 뿐이네
젖어 내리네
이와도 같이
그 모든 우리 것
젖어 내리는 뜰에서
늘 모자라는 우리 말들을 두고
새벽을 맞는
한 그루 동백이고 싶네
갈곳이 없다는것
아무리 생각을 해도
갈 곳이 없었지
빗속에 멈추어 서서
문득 어데고
갈곳이 없다는 사실에
망연해 졌었지
거리 한 켠에서
주검으로 눕혀지고 싶었지
갈 곳 없는 봄밤을
눈물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지
달리는 차의 불빛들이
웃고 있었지
깔. 깔. 깔.....
비 뿌리는 보도에
나를 팽개치고 싶었지
목마른 者
배고픈 者
마음이 가난한 者
내게로 오라고 한 者는 누구인가
왜 갈곳을 준비하지 않았나
불빛은 영롱히 빛났으며
저문 거리에
그대로 갈 곳이 없었지
剝製의 눈빛으로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다
약탈과 파괴의 輓歌 속에서
만발한 살의의 毒牙로
서서히 침몰하고 있었다
영원한 목마름으로
빈곤하던 영혼이 마침내
어둠 속에서 비틀대고 있었다
사나운 짐승의 발톱에
심장을 찢기우며
벌거숭이로 피에 잠겨
숙연히 아끼던 생의 중간에서
부서져 조각나고 있었다
찬연한 아름다움으로 아끼던 생을 두고
스러지고 있었다
오랜 방황의 쓸쓸한 길에서
투명한 색깔로 피어나던 넋을 두고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다
패배의 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스러져 가고 있었다
상실의 밤 그 허공 속에서
일렁이는 불꽃으로 타오르다
스스로 失明되고 있었다
밤이 와서 어둠이 내리면
오래 기도하던 것들
겨울 바다에 버리고 온 것들이
머리 위를 서성이며
울어댈 거다
소용돌이치며 짖어댈 거다
弔旗를 울려라
弔旗를 울려라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다
서먹하게 마주해온 세월이
조금씩 퇴색해 가고 있었다
탐색과 포격의 능선에서
수세로 엎데여 중얼대고 있었다
내가 나팔수였지
나팔이여
피에로의 목줄기를 타고
섧게 울어라
스스로 죽어가며
애써 手信을 하고있었다
剝製로 남아있게하라
한 개 물질로 남아있게하라
내 앞에 주어진 생 앞에서
한번도 웃을 수가 없었다
剝製의 눈은 하늘이다
하늘이게 하라
剝製의 눈빛으로 보게하라
저 겨울산에 나를
저 웅크린 겨울 산에
나를 묻고 싶다
내 가녀린 영혼을 여위게 하던
창백한 너를 두고 가는 날은
산처럼 무거운 가슴을
하늘에 토해 내리라
마른 가지 위에 언 눈이
녹아 내리는 어느 봄날에
너는 소생하여라
쌓인 눈이
내 마음 서러운 눈물처럼
녹아 내리는 어느 날엔가
너는 새 잎으로 돋아나라
겨울 산에 묻혀
네가 사랑이라고 말한 것과
네가 아픔이라고 말한 것과
내가 눈물이라고 말한 것과
내가 다시 절망이라고 한 것들이
어느 숲속에서 잡초로 자라
바람에 흔들리는지
먼 날까지 가슴 저리게 보리라
아지랑이 들녘에 피어오르는
햇살 속에서
너는 새초롬히 반짝이어라
너의 고은 손으로 장식해준
꽃상여에 누어
이제사 가슴에찬 평화를 안고
겨울 산에 묻히고 싶다
멍들고 찢기며 내 달리던
슬픈 눈망울에서
한 목숨 홀로 베어내던
고통이던걸 잊기 위하여
다시 오열하리라
저 공허의 겨울 산에 묻히고 싶다
먼 옛날 아득한 날에
우리가 나눈 빛 더미에서
이슬처럼 떨어져 내리던
꿈의 조각들은
순백의 염원으로 망연한 마음을 묻고
어느 전설처럼이나
긴 세월을 한으로 노래하리라
버들꽃 달빛에 젖는 어느 봄밤에
너는
옥피리 불며 춤을 추어라
찢어진 깃발을 생존처럼 펄럭이며
가슴 언저리 아프게 꽂히는
빗줄기 속을 잡은 손이 시리던
그 자리에도
언 눈은 쌓였을 텐데
너의 기도를 부여잡고
저 찬 겨울 산에 묻히고 싶다
빈 잔처럼 공허한 후회를
쓴 풀잎처럼 씹으며 자주 나를 죽이곤 했지
화사한 어느 봄날에 너는
깊은 수령을 기어 나와
자줏빛 새옷을 갈아입고
봄 나드릴 하여라
헛된 염원의 노래는
언제나 고뇌의 곡으로 떨렸으며
침전하며 소멸하였지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아낸 것들은
아직 나의 밤을 불면으로
시달리게 한다.
차갑게 차갑게 바람이 분다
짐스런 목숨을
저 웅크린 겨울 산에 묻고 싶다
언 눈 녹아 내리는 어느 봄날에
너는 고운 꽃으로 다시 피어나
바람을 노래하여라
산을 노래하여라
바다는 늘 무엇이 그립다
갈매기 우는 바다
뱃고동 길게 울던 이 바다
어제 같은 이별도 없는 이 바다
이 바다는 이제 항구가 아니다
사팔뜨기 눈으로 보던 바다에
곱던 노을도 없는데
지금도 내가 바다이고 싶다
바다는 늘 저 혼자 외롭다
바다는 오늘도 무엇이 그립다
이 가을
아직도 저 혼자 쓸쓸하다
흐르는 세월 내 고독처럼
혼자서 세월을 간다
긴밤 바다에 바람 불면
잠에서 깨어 춤을 춘다
무엇이고 싶던 것들
천길 바닥에 숨겨두고
떠 올라 춤을 춘다
주검으로 바다에 떠서
내가 바다이고 싶다.
이 가을 바다는 너무 적막하다
아득한 내 소망의 빈들처럼
바다는 늘 무엇이 그립다
염 부두 1
범람한다.
넘치고 또 넘치고
꿈도 절망도
함께 넘치던 염 부두
그러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다시
메마른 가슴처럼
드러내던 갯벌
달빛도 덩달아 넘치다 스러지면
어두운 그늘
오래 묵은
이제 화장(火葬)이라도 해야 할
소금창고 한 구석
나는 다시 넘치고
겨울 내내 마른 풀잎
가녀린 뿌리 송두리
저 아래 어쩌면 있을지 모를
물길 찾아 조급한 밤
봄이 그렇게 여물어
한 송이씩 꽃을 피워도
이 봄 내내
다시 서럽고
(오래전 인천 화수동 작고 허름한 부두<염부두>에 수 많은 소금배가 드나들었고
스므살 그 해 겨울 내내 소금 더미 아래서 나를 죽이고 있었다
염 부두 2
살아남으려는
사내들의 절박한 욕망은
천 구백 육십 일년 겨울의 혹한을
달아 올리고
육지를 잇는 긴 송판은
소금가마를 나르는
벅찬 노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출렁이며
비명을 질러 대곤 하였지
가대기꾼 등을 흐르는 땀방울은
고단한 욕구로 끓어올라
분처럼 고운 소금으로 달라붙고
이윽고 염 부두에 노을 지면
하루를 견뎌낸 등판도
숨겨둔 작은 꿈도
한 사발 가득한 막걸리에
온통 붉게 물들어 타오르고
바다는 여전히 넘치고
(가대기:창고나 부두따위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따위의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해 지고 일 끝나면 근처에 즐비하던 싸구려 주막에서 가대기꾼들의 고단한 마음과 몸이 취기로 달아올라 고함과 싸움이 난무하곤 했다.)
염 부두 3
갯바람에 실려 오는
달콤한 바다 내음도 없던
곰삭은 부두
부두를 덮은 소금 냄새와
짐꾼들이 뿜어내는
숨찬 고함 소리
흐르다 얼어버린 하수구
피부 속까지 배어드는
생선 비린내
그런 것들도 내게는
낭만이라고 우기던 부두
허기진 꿈들이
파도 되어 공허로
밀려오고 밀려가고
어느 순간 길을 잃었던
오늘은 아무래도
그 부두엘 가봐야겠다
유월의 바다
바다엔
그리움이
새로운 모습으로
끝도 없이 몸을 떨며
반짝이고 있었고
사랑은 언제나 아픈 거라고
바다를 지나는 바람은
아득한 어느 날의
동화를 말하고 있었다
어제의 행복은 어디에 숨어서
오늘 다시 쓸쓸한가
바다엔
다시 어둔 그리움이
아픈 다리로 절며
우울을 감추고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먼 날의 메마른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다시 쓸쓸하다.
울게 되리라
바다 한 가운데서
시체로 떠 있고 싶다
그때는 서럽지 않으리라
서툴게 이어온 생존
그때는 아주 편안하리라
달리고 싶던 빈들도
타오르던 우리 사랑도
수면을 지나는 바람처럼
물 속에 잠기리라
홀로 속 상해하던 벌레의 몸짓도
별처럼 빛나는 영혼에
恨을 쏟아 붓고
끝없는 나락으로 무너져 내리던 너도
지금은 날아가 버린 물새처럼
사라지리라
어느 날의 바다 한가운데서
시체로 떠서 출렁이다 만나는
바람과 하늘은
오열을 감춘 나를 안아주리라
때로 타는 노을을 안고
붉게 물들어
꽃처럼 예쁘게 피어나는
나를 웃어주리라
시체로 떠있고 싶다
남루한 그늘만 남기고 쫓겨온 생존
노래하리라
바다를 떠돌며 바다가 되어
크게 노래하리라
바람 세찬 밤엔 파도 되어
외쳐대리라
너를 울게 하던 것들
나를 아프게 하던 것들
무참한 것들에게
큰 소리로 덤벼들리라
소리치며 토해내리라
바다 한가운데서
시체로 떠 있고 싶다
언제나 떨며 가엾던 우리
그 때는 아주 편안하리라
쏟아지는 달빛을 안고
웃을 수 있으리라
쓸쓸한 고요의 바다에서
스처가는 고기비늘이
별빛아래 반짝이는 날
울게되리라
그 모든 우리 것
아무래도
다시 울게되리라
소래 다리
달이 내려앉는다
갯벌에 내리는 달은
늘 포근하다
어린 날에 저 포구는
나를 언제나 설레게 하였지
오늘은 딸아이 손을 잡고
다릴 건너고 싶다
외할머니 품 같던
달빛 내려 앉은 갯벌에서
뒹굴고 싶어진다
미끄러져 넘어지며
온통 몸을 적시며
달리고도 싶어진다
피난길에
다리아래 보이던
갯벌을
산 모퉁이 돌며
돌아보곤 하였지
오늘도 다리아래 갯벌에
달이 내려 앉는다
곱게 곱게
다시 겨을 바다에
내 가슴 유리창엔
여전히 서리꽃 만발인데
시냇가 나뭇가지마다
물오르는 소리 들리고
맑은 햇살 눈부신 들에
꽃향기 지천이라고
이제 봄이 와서
봄비 내리듯
기다리던 그가 온다고
마중 가자 보채는
이제 넝마 되버린 내 그리움 달래려
다시 그가 떠난 바다에 섯다.
내 바다는 아직 겨울이다.
꽃 피고 잔설 녹아 바위틈을 흐르는
물소리 그리움으로 들리는
봄이
파도 처럼 천만 겹으로 와도
지나간 전설처럼
이 바다에 이제 올 사람은 없다.
어서 구차한 넝마는 벗어야지.
낮술을 마신 날은
그 언제던가 술 한잔 남기고 온
주점으로 이차를 하러 가고 싶어진다
두고 온 것들
만나러 가고 싶어진다
낮술을 마신 날은
너를 데불고
지옥에 가고 싶어진다
죽은 자의 영혼과
살아있는 자의 고통이
함께 끓어오르는
연옥의 문턱에서
숨 막혀 쓰러지고 싶어진다
나 혼자 타오르다
나 혼자 쓰러지는
불꽃으로 일렁이며
끝도 없이 달리고 싶어진다
모르겠다
세월은 회한의 그늘아래
돌고 또 돌고
이 순간을
지나가는
연약한 우리 삶
아스라한 심연 속에서도
劫은 찰라를 포식하고 있다
어느 때
꿈을 심을 적이 있었지
지금은 먼 과거에서
존재할 뿐이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주어진 시간만은
꼭히 살아야 한다는 걸
의무의 場으로라도
마껴진 시간만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그리고
이 진창에 발을 빠뜨리고
온몸을 끝도 없이
떨고 있어야 하는
이유도
나는 아직 모르겠다
실존
역 광장에 바람 부는 날
줍다 남은 허상들은 아직도
스산한 얼굴인 채로 구르고있다
가지에 걸린 잎이 흔들린다
실존 하는 것만 인정하자
지난날의 말들은 어느
골목 전주아래서 배설을 하고 있나
한세상 살다 가는 게 아닌가
자네
"얼마를 더 살수 있을까 우리'
쓴술을 마시듯 나를 마신다
아직 바람이 분다
다만 실존하는 것만 인정하자
한 마음 닫고 잊어버리자고
낙엽 줍던 밤들
자네
" 한 오백년 살려나"
오늘은 나를 마시듯 이 홀로를
마시며 웃는 그런 밤이다
다만
남루한 뒷모습만 인정하자
밤
시간의 공포는 잊어야 한다
저문 계절 보도에
낙엽이 깔리고
사위어가는 한 年代에
가는 것들
남아있는 것들
다시 소생하는 것들
그 안에 감추어 두고 있는 것들
이 가을
생각의 끝에
밟히는 낙엽
시간의 공포는 잊어야 한다
소멸해 가며 새벽을 여는
인간의 소리
잊어버리고 싶은 밤이 있다.
상처
무엇을 줄 수 있나
검은 보자기로 복면을 하라
지하 일천미터의 우울
안개를 주워담자
무엇을 줄 수있나
迷路를 헤매다 길이 막힌
한 마리 속 상한
벌레의 몸짓으로 말하라
아직 존재하는 건 무언가
고향마을 어귀에 피어나던
노오란 배추꽃
기억으로만
잠깐 남아 있게 하라
무엇을 줄 수 있나
승녀의 옷자락으로 눈을 닦아라
無謀를 비웃자
한번도 저 꽃은
향기를 주지 못했다
산 울음을 누가 들었나
잡지 않게 하라
놓쳐버린 풍선이게 하라
전설처럼 빛바랜
꿈을 꾸게 하라
말하지 않게 하라
어디쯤인가
네가 울다 돌아서던
추운 거리에서
숨차게 질주해 오던
한 마리 사슴을 만난 곳은
어디쯤인가
찢긴 가슴으로 쫒기며
몸부림으로 외쳐대던
차가운 별을 만난 곳은
어디쯤인가
아까운 한해 겨울을 다 보내고
만난 바닷가에서
다시 겹치는 노여움에
영혼을 울게 하던 곳은
어디쯤인가
우리 마음 빈터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곳은
그 어디쯤인가
소멸의 한밤에
지금은 머언 꽃 내음 스며드는
어느 거리에서도
그 정결한 눈물은 감추고
보내는 고요의 밤이란다
어느 山寺 僧房에서
墨을 갈며
그 무량한 아픔은 감추고
보내는 너의 밤이란다
소망의 언덕을 오르며 자주
눈물 짖던 네게 지금은 손을 흔들어
구름 사이로 내 비치는 달빛 만큼만
웃어야하는 밤이란다
지금은 축축한 안개 속을 신음하던
우리 영혼의 헤매임은
그 언제던가로 감추며
보내는 너와 나 그 허망의 밤이란다
밤을 사위어 墨을 갈며
그 어디에서 들려오는
이별의 인사를 피해
旗를 내려야 하는
우리
소멸의 한 밤이란다
省墓
얼마나 많은 세월인가
내 자리 찾아
헤매고
다시 헤매 돈 세월은
끝도 없는 迷路를 더듬어
부딪는 암흑의 벽에 기대어
흘린 눈물이 남긴 얼룩이
지금은 無色의 幻影 으로
숨죽인 밤인데 어둠에 묻혀
떠나는 죽은 세월은
이제는 돌아서
보내야 한다
그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지
찢긴 시간의 한구석에
버려진 날개처럼
이제는 墓域의 흙으로
보내야 한다
해인사 오르는 길
나에게도 어느 때
봄이 있었던가
눈 녹아 내리는 山寺엔 내가
움츠린 그림자로 겨울 바람인 채
흔들리고 있었다
나의 가슴에 어느 때
봄이 있었던가
흘러내린 눈물이 온통
들과 산을 적실 때 너는
머언 구름 사이를
상처난 겨울 새 되어
힘겹게 날며 꺼이 꺼이
알 수 없는 소리로 울고 있었다
새하얀 마음으로 숨죽인
너를 데불고 오르는 산길
우주 공간 훠이 훠이
너를 안고 날고 싶은
아린 소망 끝에서
흙바람이 분다
하늘 가까이 닥아든 자리에
가고 없는 者.
남아 있는 者.
石塔 그늘 아래서
허망한 인간의 佛心과 언제나
무량한 어둠의 사랑을
너는 이야기한다
언 듯
천년을 미동도 없는
부처 아래 떠도는 魂을 본다
이승과 저승사이
그저 길손일 뿐인 우리
산다는 건
잠깐 머물다 가는 것
순간으로 살다가는 우리
노을을 지고 떠나는 산길에
마음 빈자리
우주로도 채울 수 없이
더 큰 슬픔이 있음을
겨울새는 날며 소리쳐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십년
허무를 줍던 어린 날
아직은
허무를 모르던 어린 날
나는 그저 열심히
허무를 줍고 있었다
호주머니에
허무를 꽈악 채우고
나 혼자 슬퍼서
텅빈 교실에 남아
목이 메였다
그리고 오십년
지금도 나는
열심히 허무를 줍고 있다
채워도 채워도 모자라는
큰 주머니를 달고
客인 것을
내가 너에게 客이듯이
너도 나에게 客이다.
생존한다는 게
허망한 것처럼
너도 나도 客인거야
잠시 쉬었다 가는
여행지의 숙박으로
몸을 누이고
밤을 마시는 客인 거야
내가 나 자신에게 客이란 걸
알려주기가 어려웠듯이
네가 나에게 客이란 걸
내가 아는게 쉽지 않았지
생을 손님처럼
주춤대고 살아온 客인 거야
뜬 구름인거야
낯선 방 첫 밤을 뒤척이며
백팔 번뇌 중 몇 번 째 인가
밤을 마신다
우리 모두 들꽃인데
그날이 오면
소리 없이 이름도 없이
지고 말아야 하는
지금도
쉬임 없이 흔들리는 들꽃인데
비 내리는 한 밤에도
들꽃은 지고
낮달이 구름을 지나는
그날에도 들꽃은 지고
얼마를 더 용서하고
다하지 못한 恨을
말해야 하나
놓친 소망의 바다에서
덧없는 미소를 뿌리던
너에게
아픔까지도 아끼며
무엇을 줄 수 있나
그날이 오면
한 잎 허망의 꽃으로
스러져야 하는
우리 모두 들꽃인데
낙 엽
영혼의 한켠에서
낙엽이 진다네
황폐한 대지엔
아직
노을 빛 고운데
가을은 빠르게 도망질
치고 있다네
내가 이제껏 잡고있는건
다만
허상이라네
누가 말했지
낙엽 주우러 가고 싶다고
나는 꿈속에서
밤마다
바구니에 낙엽을 주워 담았지
그 옛날
허무를 호주머니에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아직
큰 주머니를 지닌채.
이 가을 꿈마다
낙엽을
가득히 채운다네
국화
허리를 잘린 채
수반에 꽂혀
시드는 너
크게 울어나 보렴
가을 소리
힘겹게 가을을 지나는 永劫의 한밤에
소리쳐 말하는 시냇물 소리를 아는가
不毛의 땅에서 한 포기 蘭을 키우는
永遠한 무모와 한잔 술을 따르며
생각하는 오늘의 그늘을 아는가
바람에 흔들리며 밤새하여도 모자라는
갈잎의 목쉰 소리를 아는가
섧게 외치며 울어대는 그 소리들을 아는가
이 가을의 초상
잃어버린 가을이
흔적으로 남은 자리에
고추잠자리가 그려 놓은
수채화 한점 거기 있었네
<이 가을은
저토록
우아했어라.>
침몰하는 너절한
추억 하나와
자투리 노여움을
마른 가슴 서걱 이며
갈잎은 오래토록
노래하고
하냥 숨죽인 그리움은
아직 눈부신 환상을
꿈꾸고 있다지
저 산자락 어디쯤
바람에 가려진 가을이
혹시 수면에 비쳐질까
찾은 바다에
노을만 타고 있었네
낙엽 하나
내 가을을
혹시
만날까
오른 산길에
바위에 내려 앉은
잎 하나
만나고
그게 다였네
온통 가을을
모두 껴안고
붉어진
여인 하나
만나고
그게 다였네
내 가을은
그렇게
가고 있었네
낙엽은 없을 지라도
황폐한 영혼을
낙엽이라고 어쩌겠어
번뇌의
그 길에도
낙엽은 있었지
저 만치 가 있는
가을이
나를 웃네
누가
낙엽을 주우러 가고 싶다고 햇지
이제
낙엽은 없다
마른 잎이 있을 뿐이다
가을은 미련도 없이
돌아서 간다
다 버리며
고통의 통로에서
상처를 부여안고
내 영혼은
아직 주춤대고 있는데
낙엽은 없을지라도
가을에 비 내리면
가을에 비 내리면
무더기로 꽃 진다는걸
저 비는 모를거야
들을 쓸고 지나는
바람은 알까
세상 꽃 다 진대도
모른체 하렴
차마
안다고야
혼자만 모른채로
내리렴
바람 불고 비 내리면
지는게 꽃 뿐이랴
세상 꽃 다 진대도
혼자만 모른채
아까웠지요
사잇길에 내려앉는 희미한
별빛도 아까웠지요
무성한 아픔의 마른 잎을
스쳐 지나는 작은 바람도
소중한 기억만큼
저리게 아까웠지요
겨울밤 달 그림자
서리 빛으로 내리는
산길을 걸으며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내 그리움
다시 아까웠지요
한번도 보여주지 못한
내 눈빛 만큼 아까웠지요.
아픔에게
늦가을 내내 울던 갈잎
별도 숨어버린 겨울밤
다시 우는 건
함께 울어줄 누이 같은
강바람이 있기 때문이야
그리움이 쌓여
눈물이 된다는 걸 알면서
사랑을 하는 건
그게 아픔이기도 하다는 걸
일러줄 님이 있어서야
어둔밤
겨운 마음 숨겨 무엇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일에
행복하기만을 바라지 말아야지
갈대 저 혼자 우는 게 아니라면
내게 눈물을 배워줄 님이 있음이니
별을 저토록
빛나게 하는 밤에게 감사해야지
절망의 아픔 까지도
벅찬 그리움인 것임을.
어느 봄날
낙화로 누운 꽃잎
한 움큼씩
밤하늘 향해 뿌리던
창백한 손가락 사이로
다시
그 만큼의 노여움
별빛 되어 쏟아져 내리는
서러운 소망을 보았네
지울 수 없는
갈등은 상처로 남아
여전히 잔혹한 봄날은 가고
바람 없이도
꽃잎 지던걸
이제 알겠네
오래인 염원으로
기다린 봄날이 아까워
차마 돌아서지 못해
타는 가슴을 저 꽃은 알까
낙화로 누운 꽃잎
허공 향해 뿌리는 설음을
지나는 바람은 알까
월미도
내 사랑이 그 바다에 있었네.
내내 꿈속에 웅크리고 숨었던
겨울 바다
밤마다
설음을 내려 놓고 떠나던
상실의 바다
바다에 오면
왜 매번 취하고 싶었을까
견뎌내기 어렵던
좌절의 바다
오늘은 기쁨의 섬으로 떠서
낙조로
저 먼저 설레고 있었네
바람도 덩달아 술렁이고 있었지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사랑이 그 바다에 있었네
수줍은 한 사내
타는 노을이었네.
나를 보았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는
겨울날의 저녁 무렵
문득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나를 보았네
너를 향해
무더기로 떼 지어 가는
내 그리움과
내게 남은 한 잎 그리움에게
적막으로 주저앉아
생애 한번
귀한 사랑에 영혼을 담그고
물었네
“ 감추어진 열망의 그늘을
너는 알까 ”
어찌할 수 없는 사랑에
목 메이는 내가 그리워
내 그리움에게도
물었네
“아득한 기다림을 아는지”
박꽃
묻노니 그대여
나는 몽상가인가
그리움의 상처
생애 한번쯤
공허한 사랑에
모든 걸 던질 때가 있지요
삭막한 세상은
아프지만
사랑은 젖어 있으니
묻노니 그대여
생애 한번쯤
박꽃 같은 사랑을
해도 되는 게 아닌지요
돌 한점에 대한 戀歌
어제도 밤새
강물은 울고 있었다
내 슬픈 연정처럼
긴 세월
안고 어루만저
다듬어온 돌하나
정들여 한 세상
살아 보렸던 돌 하나
돌려다오
돌려다오
봄비 내리는 어둔 밤 창가에
밤새 두드려 우는 소리
눈물 겨운 정이 깊어
돌려주지 못한단다
밤새워 나도 울고 있었다
소녀의 봄
봄은 숨어서 오더라
들녘에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어느 날의
아득한 그리움으로
그렇게 오더라
봄은 숨어서 오더라
새벽 햇살을 향해
물안개 안겨들던 그 날의
적막한 우수로
그렇게 오더라
수줍은 댕기머리 소녀의
여린 기다림으로
하냥 안타까이 오더라
깊고 추운 겨울잠에서
긴 꿈에 빠진 어느 밤에도
봄은 그렇게
아픈 날의 추억처럼
숨어서 오더라
새해 인사는 이렇게 하자
마음 모두어 사랑하고
마음 모두어 안고 살자
때로
섭섭했거나
한번쯤 아쉬웠을
우리 가난한 가슴들
아침이면
어김 없이 떠 오르는 태양처럼
따뜻하게
마음 보듬고 살자
그대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가
꽃피고 새들 노래하고
사랑이 있고
무엇보다 귀한
우리 삶이 있지 않은가
마음 모두어 사랑하고
마음 모두어 깊히 안고살자
저작자표시 동일조건
김승영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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