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제 3 편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여 동물(의 각혼)과 크게 다름을 논함
(第三篇 : 論人魂不滅, 大異禽獸)
조광 역
3-1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吾觀天地萬物之間 惟人最貴 非鳥獸比
오관천지만물지간 유인최귀 비조수비
제가 보건대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만이 가장 존귀하며 동물과는 비교가 되지 아니합니다.
故謂人參天地 又謂之小天地
고위인삼천지 우위지소천지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과 땅과 셋을 이룬다(人參天地).”라고 하고, 또 사람을 가리켜 “소천지(小天地)”라고 합니다.
然吾復察鳥獸 其情較人 反爲自適 何者?
연오복찰조수 기정교인 반위자적 하자?
그러나 제가 동물을 다시 살펴보니 그, 실상은 사람과 비교하여 도리어 자적(自適)하니 이것은 웬일입니까?
其方生也 忻忻自能行動 就其所養 避其所傷
기방생야 흔흔자능행동 취기소양 피기소상
동물은 갓 태어나면 즐거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살 만한 곳으로 나아가고 해로운 곳을 피합니다.
身具毛羽瓜甲 不俟衣屢 不待稼穡
신구모우과갑 불사의루 불대가색
몸에는 털이나 깃, 그리고 발톱이나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의복이나 신발이 필요 없고 농사일도 하지 않습니다.
無倉廩之積藏 無供爨之工器 隨食可以育生 隨便可以休息
무창름지적장 무공찬지공기 수식가이육생 수편가이휴식
창고에 쌓아 둘 저장물이 없으며, 취사의 도구들이 없습니다. 먹이에 따라서 새끼들을 낳아 기를 수 있으며, 편한 대로 쉴 수 있습니다.
嬉遊大造 而嘗有餘閑
희유대조 이상유여한
자연의 조화에서 즐겁게 노니니 언제나 넉넉한 한가로움이 있습니다.
其間 豈有彼我貧富尊卑之殊?
기간 개유피아빈부존비지수?
그들 중에 ‘저네들’과 ‘우리들’,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그리고 ‘높은 이’와 ‘낮은 이’의 차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豈有可否先後?
개유가부선후?
그들 중에 누가 옳고 그르며 누가 앞서는 것이요 뒤서는 것이겠습니까?
功名之慮 操其心哉?
공명지려 조기심재?
공리와 명예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자기 마음을 조일 일이 있겠습니까?
熙熙逐逐 日從其所欲爾矣
희희축축 일종기소욕이의
그들은 기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날마다 자기 욕구를 좇을 뿐입니다.
人之生也 母嘗痛苦 出胎赤身 開口先哭 似已自知生世之難
인지생야 모상통고 출태적신 개구선곡 사이자지생세지난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어머니가 일찍이 고통을 당합니다. 모태에서 나온 알몸은 입을 열어 먼저 우니, 세상에 태어남의 어려움을 이미 스스로 아는 듯합니다.
初生而弱 步不能移 三春之後 方免懷抱
초생이약 보불능이 삼춘지후 방면회포
사람들은 처음 태어나면 약하여 걸음을 옮길 수 없고, 삼 년이 지나야 비로소 어머니의 품을 벗어납니다.
壯則各有所役 無不苦勞
장칙각유소역 무불고노
장년이 되어서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괴롭고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農夫四時 反土于畎畝 客旅經秊 徧度于山海 百工勤動手足
농부사시 반토우견무 객여경년 편도우산해 백공근동수족
농부는 사시사철 이랑에서 흙을 뒤적입니다. 장사꾼들은 해를 넘기며 산이든 바다든 모든 곳을 두루 지나다닙니다. 수많은 장인들은 팔다리를 부지런히 놀립니다.
士人晝夜劇神殫思焉 所謂“君子勞心 小人勞力” 者也
사인주야극신탄사언 소위“군자노심 소인오력” 자야
지식인들은 밤낮으로 정신을 다그치고 생각을 다해야 합니다. 이른바 “군자는 마음을 수고스럽게 하고, 소인은 몸을 수고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五旬之壽 五旬之苦 至如一身疾病 何啻百端? 嘗觀醫家之書 一目之病三百餘名
오순지수 오순지고 지여일신질병 하시백단? 상관의가지서 일목지병삼백여명
50세의 나이는 50년의 고통입니다. 한 몸에 생기는 질병과 같은 것이 어찌 백 가지뿐이겠습니까? 일찍이 의학책을 보니 눈 하나의 병에 300여개의 병명이 있습니다.
況罄此全體 又可勝計乎? 其治病之藥 大都苦口
황경차전체 우가승계호? 기치병지약 대도고구
하물며 이 몸 전체를 통틀어 보면 또한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병들을 다스리는 약들은 대부분 입에 씁니다.
卽宇宙之間 不拘大小虫畜 肆其毒具 能爲人害 如相盟詛
즉우주지간 불구대소충축 사기독구 능위인해 여상맹저
곧 우주 사이에 크고 작은 벌레나 짐승들은 어느 것을 가릴 것 없이, 자기의 독이 든 신체 기관을 멋대로 써서 사람을 해칠 수 있음을 서로 혈맹으로 다짐하듯이 합니다.
不過一寸之虫 足殘九尺之虫 人類之中 又有想害
불과일촌지충 족잔구척지충 인류지중 우유상해
한 치에 지나지 않은 작은 벌레도 아홉 자나 되는 거구를 충분히 해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또한 서로 해치는 일이 있습니다.
作爲凶器 斷人手足 截人肢體 非命之死 多是人戕
작위흉기 단인수족 절인지체 비명지사 다시인장
흉악한 무기를 만들어 다른 사람의 팔다리를 자르고 다른 사람의 몸뚱이를 끊어버립니다. 비명에 간 죽음은 대부분 사람이 해친 것입니다.
今人猶嫌古之武器不利 則更謀新者益凶
금인유혐고지무기불리 즉경모신자익흉
그럼에도 오늘날의 사람들은 오히려 옛날의 무기가 예리하지 못함을 꺼려서 더욱 흉악한 새 무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故甚至盈野盈城 殺伐不已
고심지영야영성 살벌불이
그러므로 심지어는 죽은 자들이 “들판에 가득 차고 도성 안에 가득 차니”사람을 죽이고 남의 나라를 징벌하는 일이 그치지 아니합니다.
縱遇太平之世 何家成全無缺
종우태평지세 하가성전무결
우리가 설령 태평한 시대를 만났다 해도, 어느 집안인들 완전무결 하겠습니까?
有財貨而無子孫 有子孫而無才能 有才能而身無安逸 有安逸而無權勢
유재화이무자손 유자손이무재능 유재능이신무안일 유안일이무권세
재화는 있으나 자손이 없고, 자손은 있으나 재능이 없고, 재능은 있으나 몸이 편안하지 못하고, 편안은 하지만 권세가 없습니다.
則每自謂虧醜
즉매자위휴추
그러하니 어느 경우든 사람들은 부족하고 못났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極大喜樂而爲小不幸所泯 盖屢有之
극대희락이위소불행소민 개누유지
지극히 큰 기쁨이나 즐거움이라도 아주 작은 불행 때문에 없어져 버리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終身多愁 終爲大愁承結 以至于死 身入土中 莫之能逃
종신다수 종위대수승결 이지우사 신입토중 막지능도
사람은 종신토록 걱정이 많으니 마침내는 큰 걱정이 이어지고 결말이 나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몸이 흙 속에 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故古賢有戒其子者 曰
고고현유계기자자 왈
그러므로 옛 현인이 그 아들에게 경계를 주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爾勿欺己 爾勿昧心 人所競往 惟于墳墓
이물기기 이물미심 인소경왕 유우분묘
“너는 자신을 속이지 말고, 너는 마음을 몽매하게 하지 말라. 사람들이 앞 다투어 가는 곳이란 오직 무덤일진저!”
吾曹非生 是乃常死 入世始起死
오조비생 시내상사 입세시기사
이 말씀처럼 우리들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바로 늘 상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온 처음에 죽음은 시작됩니다.
曰 死則了畢已
왈 사즉료필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月過一日 吾少一日 近墓一步
월과일일 오소일일 근묘일보
한 달에 하루가 지나가면 우리의 삶은 하루가 줄어드니 무덤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夫此只訴其外苦耳 其內苦 誰能當之?
부차지소기외고이 기내고 수능당지?
이들은 다만 대저 육신의 고통만 하소연한 것뿐입니다. 마음의 고통은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凡世界之苦行爲眞苦行 其快樂爲僞快樂 其勞煩爲常事 其娛樂爲有數
범세계지고행위진고행 기쾌락위위쾌락 기노번위상사 기오락위유수
무릇 현세의 고통은 실제의 고통이지만 그 쾌락은 거짓된 쾌락입니다. 현세의 수고로움과 번뇌는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그 즐거움은 한정된 수량입니다.
一日之患 十載訴不盡 則一生之憂事 豈一生所盡述乎?
일일지환 십재소부진 즉일생지우사 개일생소진술호?
하루의 근심을 10년이나 호소해도 다 끝나지 않는 것인데 한 평생의 근심을 어찌 다 술회할 수 있겠습니까?
人心有此 友愛惡忿懼(惧) 四情所伐
인심유차 우애악분구(구) 사정소벌
사람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사랑과 미움과 분노와 두려움의 네 가지 감정에 침해당합니다.
譬樹在高山 爲四方之風所鼓 胡時得靜?
비수재고산 위사방지풍소고 호시득정?
비유하자면 높은 산에 있는 나무가 사방의 바람에 두들겨 맞는 것 같으니 어느 때에 고요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或溺酒色 或惑功名 或迷財貨 各爲欲擾 誰有安本分而不求外者?
혹익주색 혹혹공명 혹미재화 각위욕요 수유안본분이불구외자?
술과 여색에 빠지거나 공리나 명예에 현혹되거나 재물이나 돈에 미혹되어 각자가 욕망에 마음이 어지럽게 되니 어느 누가 자신의 본분에 안존하며 밖의 것을 추구하지 않겠습니까?
誰與之四海之廣 兆民之衆 不止足也 愚矣!
수여지사해지광 조민지중 부지족야 우의!
누가 그들에게 넓은 천하와 만백성을 준다고 해도 만족을 멈추게 할 수 없으니 어리석은 것입니다!
然則人之道 人猶未曉 況于他道?
연즉인지도 인유미효 황우타도?
이렇다면 우리들은 아직 사람의 도리도 미처 깨닫지 못한 셈입니다. 하물며 다른 도리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而或從釋氏 或由老氏 或師孔氏 而折斷天下之心于三道也乎?
이혹종석씨 혹유노씨 혹사공씨 이절단천하지심우삼도야호?
어떤 이는 석가모니를 따르고 어떤 이는 노자에 연유하며, 어떤 이는 공자를 스승으로 삼기도 하는데 어찌 천하의 인심을 이 세 가지 도리에로 결단 지을 수 있겠습니까?
又有好事者 另立門戶 載以新說 不久而三敎之岐 必至于三千敎而不止矣
우유호사자 영립문호 재이신설 불구이삼교지기 필지우삼천교이부지의
또한 어느 호사가가 교파를 별도로 만들고 새로운 이론을 내놓으면 오래지 아니하여 삼교의 갈래는 틀림없이 3천개의 가르침에 이르게 되어도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雖自曰 正道 正道! 而天下之道日益乘亂
수자왈 정도 정도! 이천하지도일익승란
비록 스스로 이르기를 ‘옳은 도리다, 옳은 도리다’라고 말하지만 세상의 도리는 날마다 더욱더 어긋나고 혼란스럽습니다.
上者陵下 下者侮上 父暴子逆 君臣相忌 兄弟相賊 夫婦相離 朋友相欺
상자능하 하자매상 부폭자역 군신상기 형제상적 부부상이 붕우상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능멸하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며, 아비는 난포하고 자식은 부모를 거스르며, 군주와 신하가 서로 질시하고, 형과 아우가 서로 해치며, 지아비와 지어미의 사이가 서로 갈리고 벗들이 서로를 속입니다.
滿世皆許遜騰誕而無復眞心
만세개허손등탄이무복진심
온 세상 사람들 모두가 속이고 아첨하며 거짓되고 허탄하게 되어서 진실한 마음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嗚呼! 誠視世民 如 大洋間著風浪 舟舶壞溺 而其人蕩漾波心 沈浮海角 且各急于己難
오호! 성시세민 여 대양간저풍랑 주박괴익 이기인탕양피심 심부해각 차각급우기난
莫肯相顧
막긍상고
아아, 슬픕니다. 진실로 세상 사람들을 보면 마치 큰 바다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배가 부서져 침몰되는데 사람들이 파도 속에서 떠밀려 돌아다니고, 바다의 한 귀퉁이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지만 서로가 자신의 어려움에만 급급하여 서로 남을 돌보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或執碎板 或乘朽蓬 或持敗籠 隨手所値 緊操不捨 而相繼以死 良可惜也!
혹집졸판 혹승후봉 혹지패롱 수수소치 긴조불사 이상계이사 양가석야!
어떤 이는 부서진 널빤지를 잡고 있거나 썩은 돛대를 타고 있거나 부서진 바구니를 끌어안고 있거나 손에 닥치는 대로 꼭 쥐고서 버리지 않은 채 서로 잇달아서 죽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不知天主何故生人于此患難之處 則其愛人 反似不如禽獸焉!
부지천주하고생인우차환난지처 즉기애인 반사불여금수언!
천주께서는 어떤 까닭으로 이 환난의 처소에 인간을 생겨나게 하셨습니까? 이렇다면 천주께서 사람을 사랑하심이 도리어 동물만도 못한 것 같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世上有如此患難 而吾癡心猶變愛之 不能割
세상유여차환난 이오치심유변애지 불능할
세상에는 이와 같이 환난들이 있지만 우리들의 바보 같은 마음은 오히려 이 세상을 연모하고 사랑하여 마음에서 떼어내 버리지 못합니다.
使有寧泰 當何如耶?
사유녕태 당하여야?
만약 이 세상이 편안하고 태평스럽다면 응당 어떻게 대할 것이겠습니까?
世態苦酷 至如此極 而世人昏愚 欲于是爲大業
세태고혹 지여차극 이세인혼우 욕우시위대업
세상살이의 괴로움과 누추함이 이와 같이 극에 이르렀지만 세상 사람들은 혼미하고 어리석어서 여기에서 큰일을 이루고자 합니다.
闢田地 圖名聲 禱長壽 謀子孫 簒弑攻倂 無所不爲 豈不殆哉?
벽전지 도명성 수장수 모자손 찬시공병 무소불위 개부태재?
농토를 개간하고 명성을 도모하며 오래살기를 바라고 자손이 잘 되기를 꾀하고 윗자리를 빼앗고 사람을 죽이며 남의 나라를 공격하여 합병하는 등 하지 못하는 짓이 없으니 어찌 위태롭지 않습니까?
古西國有二聞賢 一名黑蠟 一名德牧
고서국유이문현 일명흑납 일명덕목
옛날에 서양의 두 나라에 유명한 현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헤라클리토스(黑蠟,흑납, BC 540-480)라 불렸고, 한 사람은 데모크리토스(德牧,덕목, BC 460-370)라 불렸습니다.
黑蠟恒笑 德牧恒哭 皆因視世人之遂虛物也
흑납항소 덕목항곡 개인시세인지수허물야
헤라클리토스는 항상 웃었고, 데모크리토스는 항상 울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세상 사람들이 헛된 사물을 좇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笑因譏之 哭因憐之耳
소인기지 곡인련지이
웃는 것은 그들을 비웃는 까닭이고, 우는 것은 그것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又聞近古一國之禮 不知今尙存否
우문근고일국지례 부지금상존부
또한 멀지 않은 옛날의 어떤 나라의 풍습을 들은 적이 있는데 오늘날에도 아직 남아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凡有産者 親友共至其門 哭而弔之 爲其人之生于苦勞世也
범유산자 친우공지기문 곡이조지 위기인지생우고노세야
무릇 자식을 낳은 사람이 있으면 친우들이 함께 그 집 문 앞에 이르러 그 사람이 고통스럽고 수고스러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울면서 조문했다고 합니다.
凡有喪者 至其門 作樂賀之 爲其人之去勞苦世也
범유상자 지기문 작낙하지 위기인지거노고세야
(또한) 무릇 상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그 집 문에 이르러 그 사람이 고통스럽고 그 사람이 고통스럽고 수고스러운 세상을 떠난 것을 풍악을 올리며 축하했다고 합니다.
則又以生爲凶 以死爲吉焉 夫夫也太甚矣
칙우이생위흉 이사위길언 부부야태심의
그렇다면 태어남이 흉사가 되고, 죽음이 길사가 됩니다. 무릇 이런 것들이야 너무 심한 것이겠습니다.
然而可爲達現世之情者也
연이가위달현세지정자야
그러나 현세의 실상을 잘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現世者 非人世也 禽獸之本處所也 所以于是反自得有餘也
현세자 비인세야 금수지본처소야 소이우시반자득유여야
현세라는 것은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동물들이 본래 거처하는 곳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곳에서 도리어 스스로 흡족해 하며 넉넉해 합니다.
人之在世過暫次寄居也 所以于是不寧不足也
인지재세과잠차기거야 소이우시불녕부족야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잠시 기거하여 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이곳에서 사람들은 평안하지 못하고 만족하지도 못합니다.
賢友儒也 請以儒喩
현우유야 청이유유
선비님은 현명하신 벗이요 학자시니 선비를 예로 들어서 비유해 보고자 합니다.
今大比選試 是日士子似勞 徒隸似逸
금대비선시 시일사자사노 도예사일
지금 커다란 과거 시험이 있다고 합시다. 그 날 선비들은 매우 고되어 보이고 시중꾼들은 편안 듯합니다.
有司豈厚徒隸 而薄士子乎?
유사개후도예 이박사자호?
담당 관리들이 어찌 시중꾼들에게는 후하고 선비들만 박대하겠습니까?
盖不越一日之事 而以定厥才品耳 試畢 則尊自尊 卑自卑也
개불월일일지사 이이정궐재품이 시필 즉존자존 비자비야
대개 하루를 넘기지 아니하여 그들의 재주에 대한 품계가 정해집니다. 시험이 끝나면 존귀한 이는 자연히 존귀해지고 천한 이는 자연히 천해집니다.
吾觀天主亦置人于本世 以試其心 而定德行之等也
오관천주역치인우본세 이시기심 이정덕행지등야
제가 보건대 천주께서 또한 사람들을 이 세상에 두신 것은 이들의 마음을 시험하여 그들의 덕행에 등급을 정하려는 것입니다.
故現世者 吾所僑寓 非長久居也
고현세자 오소교우 비장구거야
그러므로 현세는 우리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요, 오래 사는 곳이 아닙니다.
吾本家室 不在今世 在後世 不在人 在天
오본가실 부재금세 재후세 부재인 재천
우리 인간들의 본집은 현세에 있지 않고 내세에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 세계에 있습니다.
當于彼創本業焉 今世也 禽獸之世也
당우피창본업언 금세야 금수지세야
우리들은 마땅히 그 곳에서 본업을 이루어야 합니다. 현세는 짐승들의 세계입니다.
故鳥獸各類之像 俯向於地
고조수각류지상 부향어지
따라서 짐승들 각각의 부류들의 모습은 땅으로 향하여 엎드려 있습니다.
人爲天民 則昻首向順于天
인위천민 즉앙수향순우천
사람은 하늘의 백성이기에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하여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以今世爲本處所者 禽獸之徒也 以天主爲薄於人 固無怪耳
이금세위본처소자 금수지도야 이천주위박어인 고무괴이
현세를 본래의 삶의 처소로 여기는 것은 짐승의 무리들입니다. 천주께서 사람들을 각박하게 대하시는 것은 진실로 괴상한 일이 아닙니다.
3-2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如言後世天堂地獄 便是佛敎
여언후세천당지옥 편시불교
일 내세의 천당과 지옥을 말씀하신다면 바로 불교입니다.
吾儒不信
오유불신
우리 유가에서는 믿지 아니합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是何語乎? 佛氏戒殺人 儒者亦禁人亂法殺人 則儒佛同歟?
시하어호? 불씨계살인 유자역금인란법살인 칙유불동여?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불교에서 살인을 경계하고 유교 역시 사람들이 법도를 어지럽히고 살인하는 것을 금합니다. 그렇다면 유교와 불교가 같습니까?
鳳凰飛 蝙蝠亦飛 則鳳凰蝙蝠同歟?
봉황비 편복역비 칙봉황편복동여?
봉황도 날고 박쥐도 날아다닙니다. 그렇다면 봉황과 박쥐가 같습니까?
事物有一二情相似 而其實大異不同者
사물유일이정상사 이기실대이부동자
사물은 한 두 개의 실상이 서로 비슷하더라도 그 실체는 크게 다르며 같지 아니합니다.
天主敎 古敎也 釋氏西民 必竊聞其說矣
천주교 고교야 석씨서민 필절문기설의
천주교는 오래된 종교이고, 석가모니는 서방 사람이니 반드시 그 천주교의 이론을 훔쳐서 들었을 것입니다.
凡欲傳私道者 不以三四正語雜人 其誰信之?
범욕전사도자 불이삼사정어잡인 기수신지?
무릇 사특한 도리를 전하고자 하는데 서너 개의 바른 말을 섞어 넣지 아니하면 누가 그것을 믿겠습니까?
釋氏借天主天堂地獄之義 以傳己私意邪道
석씨차천주천당지옥지의 이전기사의사도
석가모니는 천주와 천당 지옥에 관한 뜻을(천주교로부터)빌려 가짐으로써 자기의 사사로운 뜻과 사특한 도리를 전했습니다.
吾傳正道 豈反置弗講乎?
오전정도 개반치불강호?
우리(서양 선교사)들이 올바른 도리를 전하는데 어찌 (저들이 빌려간 그것을) 도리어 제쳐 두고 강론하지 않겠습니까?
釋氏未生 天主敎人 已有其說
석씨미생 천주교인 이유기설
석가모니가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 천주교인들은 이미 그런 이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修道者 後世必登天堂 受無窮之樂 免墮地獄受不息之殃
수도자 후세필등천당 수무궁지락 면타지옥수불식지앙
도리를 닦은 사람은 내세에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서 끊임없는 재앙을 받는 일을 면하게 됩니다.
故知人之精靈 常生不滅
고지인지정령 상생불멸
그러므로 우리들은 사람의 순수한 영혼은 언제나 살아 있고 소멸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3-3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夫常生而受無窮之樂 人所欲無大於是者 但未深明其理
부상생이수무궁지락 인소욕무대어시자 단미심명기리
대저 영원히 살면서 끝없는 복락을 누린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 중에 이 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로서는 그런 이치를 아직 깊게 알고 있지 못합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人有魂魄 兩者全而生焉 死則其魄化散歸土 而魂常在不滅
인유혼백 양자전이생언 사즉기백화산귀토 이혼상재불멸
사람은 혼(魂)과 백(魄)이 있습니다. 이 둘이 온전하면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魄은 흩어지고 변화하여 흙으로 돌아가고, 魂은 늘 있으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吾人中國 嘗聞 有以魂爲可滅而等之禽獸者
오인중국 상문 유이혼위가멸이등지금수자
제가 중국에 들어와서 일찍이 사람의 혼이 소멸하여 동물과 같아 질 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其餘天下 名敎名邦 皆省人魂不滅而大殊於禽獸者也
기여천하 명교명방 개성인혼불멸이대수어금수자야
그러나 그 밖의 중국과 다른 세상의 유명한 가르침들과 유명한 나라들은 모두가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여 동물과는 크게 다름을 성찰하고 있습니다.
吾言此理 子試虛心聽之!
오언차리 자시허심청지!
제가 이제 그 이치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선비께서는 마음을 비우고 들어 주십시오!
彼世界之魂 有三品
피세계지혼 유삼품
저들, 이 세상의 혼에는 세 가지의 품격이 있습니다.
下品名曰 生魂 卽草木之魂是也 此魂扶草木以生長 草木枯萎 魂亦消滅
하품명왈 생혼 즉초목지혼시야 차혼부초목이생장 초목고자 혼역소멸
하품의 이름은 생혼(生魂)이니 곧 초목의 혼이 그것입니다. 이 혼은 초목을 도와 낳고 자라게 하며, 초목이 말라비틀어지면 혼도 소멸합니다.
中品名曰 覺魂 則禽獸之魂也
중품명왈 각혼 즉금수지혼야
중품의 이름은 각혼(覺魂)이니 곧 동물의 혼입니다.
此能附禽獸長育 而又使之以耳目視聽 以口鼻啖嗅 以肢體覺物情
차능부금수장육 이우사지이이목시청 이구비담후 이지체각물정
이는 동물에 붙어 있어서 성장과 발육을 돕고, 또한 동물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게 하며, 사지와 몸체로 사물의 실정을 지각하게 합니다.
但不能推論道理 至死而魂亦滅焉
단불능추론도리 지사이혼역멸언
그러나 이치를 추론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게 되면 각혼도 역시 소멸합니다.
上品名曰 靈魂 卽人魂也 此兼生魂覺魂
상품명왈 영혼 즉인혼야 차겸생혼각혼
상품의 이름은 영혼(靈魂)이니 곧 사람의 혼입니다. 이는 생혼과 각혼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能扶人長養 及使人知覺物情 而又使之能推論事物 明辨義理
능부인장양 급사인지각물정 이우사지능추론사물 명변의리
사람의 성장과 발육을 돕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의 실상을 지각하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물들을 추론하게 하여, 이치와 의리를 명백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합니다.
人身雖死 而魂非死 盖永存不滅者焉
인신수사 이혼비사 개영존불멸자언
사람의 몸이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대개 영원히 존재하며 소멸하지 않습니다.
凡知覺之事 倚賴于身形 身形死散 則覺魂無所用之
범지각지사 의뢰우신형 신형사산 즉각혼무소용지
무릇 지각하는 일은 몸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몸의 형체가 죽어서 흩어지면 각혼이 작동할 장소도 없어지게 됩니다.
故草木禽獸之魂 依身以爲本情 身歿 而情 魂隨之以殞
고초목금수지혼 의신이위본정 신몰 이정 혼수지이운
그러므로 초목이나 금수의 혼은 몸에 의존함이 본래의 실정이니, 몸이 죽고 나면 이들의 실정이나 혼도 함께 없어집니다.
若推論明辨之事 則不必倚據于身形 而其靈自在
약추론명변지사 즉불필의거우신형 이기영자재
추론하고 분명하게 따지는 일과 같은 것은 반드시 몸에 의거하지 않으니 그 영혼은 독자적으로 존재합니다.
身雖歿 形雖渙 其靈魂 仍復能用之也 故人與草木禽獸不同也
신수몰 형수환 기영혼 내복능용지야 고인여초목금수부동야
몸이 비록 죽고 형체가 비록 흩어진다 하도라도 그 영혼은 그대로 다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식물이나 동물과 같지 아니합니다.
3-4 ◈ 중국 선비가 말한다.
何謂賴身與否?
하위뢰신여부?
혼이 몸에 의지하고 있는가, 아닌가? 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長育 身體之事 無身體 則無所長育矣
장육 신체지사 무신체 즉무소장육의
기르고 발육시키는 것은 몸이 할 일입니다. 몸이 없다면 기르고 발육시킬 것이 없습니다.
視之以目司焉 聽之以耳司焉 嗅之以鼻司焉 啖之以口司焉 知覺物情之 以四肢知覺焉
시지이목사언 청지이이사언 후지이비사언 담지이구사언 지각물정지 이사지지각언
보는 것은 눈이 주관합니다. 듣기는 귀가 주관합니다. 냄새 맡는 것은 코가 주관합니다. 맛보는 것은 입이 주관합니다. 사물의 실태를 지각하려면 몸통으로 알게 됩니다.
然而色不置目前 則不見色矣 聲不近于耳 則聲不聞矣
연이색불치목전 칙불견색의 성불근우이 칙성불문의
그러나 색깔이 눈앞에 있지 아니하면 눈은 색깔을 볼 수 없습니다. 소리가 귀에 가까이 있지 아니하면 소리는 들리지 아니합니다.
臭近于鼻 則能辨 遠則不辨也 味之鹹酸甘苦 入口則知 不入則不知也
취근우비 칙능변 원칙불변야 미지함산감고 입구칙지 불입칙불지야
냄새가 코에 가까워야 분별해 낼 수가 있습니다. 멀면 분별되지 아니합니다. 맛의 짜고 시고 달고 씀은 입에 들어오면 알게 되고 들어오지 아니하면 모릅니다.
冷熱硬愞 合於身 我方覺之 遠之則不覺也
냉열경연 합어신 아방각지 원지칙불각야
차가움과 뜨거움,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몸에 닿아야 비로소 우리들은 그것을 느낍니다. 멀리 두게 되면 느끼지 못합니다.
況聲同一耳也 聾者不聞 色同一目也 瞽者不見
황성동일이야 농자불문 색동일목야 고자불견
하물며 소리가 귀마다 똑같이 들린다 해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며, 색깔이 눈마다 똑같이 보인다 해도 장님은 보지 못합니다.
故曰 覺魂賴乎身 身死而隨熄也
고왈 각혼뢰호신 신사이수식야
그러므로 “각혼은 몸에 의지하고 있으며, 몸이 죽으면 따라서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若夫靈魂之本用 則不恃乎身焉 盖恃身則爲身所役 不能擇其是非
약부영혼지본용 즉불시호신언 개시신칙위신소역 불능택기시비
그러나 영혼의 고유한 작용은 몸에 의지해 있지 않습니다. 대개 몸에 의지해 있으면 몸의 지배를 받아서 그 몸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릴 수 없습니다.
如禽獸見可食之物 卽欲食不能自已 豈復明其是非?
여금수견가식지물 즉욕식불능자이 개복명기시비?
예컨대 새내 짐승들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을 보게 되면 바로 먹고자 하며, 스스로 그만둘 수 없으니 어찌 다시 그것의 옳고 그름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人當饑餓之時 若義不可食 立志不食 雖有美味列前 不層食矣
인당기아지시 약의불가식 입지불식 수유미미열전 불층식의
그러나 사람은 배고플 때에라도 만약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도의라면 뜻을 세워서 먹지 않습니다. 비록 맛있는 음식이 앞에 차려져있다 하더라도 먹는 것을 하찮게 봅니다.
又如人身雖出遊在外 而此心一點猶念家中 常有歸思
우여인신수출유재외 이차심일점유념가중 상유귀사
또한 비록 사람의 몸이 밖에 나가서 놀고 있는 경우라도 그 마음의 한 구석은 오히려 집안을 생각하고 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則此明理之魂 賴身爲用者哉?
즉차명리지혼 뢰신위용자재?
그렇다면 이치를 밝게 추리하는 혼이 어찌 몸에 의지하여 작용하는 것이겠습니까?
子欲之人魂不滅之緣 須悟世界之物
자욕지인혼불멸지연 수오세계지물
선비께서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는 이유를 알고자 하신다면 모름지기 세상 사물의 본성을 알아야 합니다.
凡見殘滅 必有殘滅之者 殘滅之因 從相悖起 物無相悖 決無相滅
범견잔멸 필유잔멸지자 잔멸지인 종상패기 물무상패 결무상멸
무릇 소멸당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소멸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소멸의 원인은 서로 어긋남(모순)에서 일어납니다. 사물이 서로 모순됨이 없으면 결코 서로 소멸됨도 없습니다.
日月星辰麗于天 何所繫屬 而卒無殘滅者? 因無相悖故也
일월성신려우천 하소계속 이졸무잔멸자? 인무상패고야
해와 달과 별들은 하늘에 벌려져 있는데 어느 곳에 매달려 있기에 끝내 소멸됨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서로 모순됨이 없는 까닭입니다.
凡天下之物 莫不以火氣水土 四行相結以成
범천하지물 막불이화기수토 사행상결이성
세상의 모든 사물은 불, 공기, 물, 흙이라는 네 원소(四行)가 서로 결합하여 생성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然火性熱乾 則背于水 水性冷濕也
연화성열건 즉배우수 수성냉습야
그런데 불의 성질은 뜨겁고 마르게 하는 것이니 물과는 배치됩니다. 물의 성질은 차고 습합니다.
氣性濕熱 則背于土 土性乾冷也
기성습열 즉배우토 토성건냉야
공기의 성질은 습하고 뜨거워서 흙과는 배치됩니다. 흙의 성질은 마르고 차갑습니다.
兩者相對相敵 自必相賊
양자상대상적 자필상적
(물과 불, 공기와 흙은) 둘이 서로 배치되고 맞서게 되면 자연히 필연적으로 서로를 해치게 됩니다.
旣同在相結一物之內 其物豈得長久和平?
기동재상결일물지내 기물개득장구화평?
(四行이) 일단 한 사물 속에 함께 결합되어 있으면 그, 사물이 어찌 오랫동안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其間未免時相伐競 但有一者偏勝 其物必致壞亡
기간미면시상벌경 단유일자편승 기물필치괴망
그 사이에 때때로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을 면하지 못하며 단지 한쪽으로 승(勝)하게 되면 그 사물은 필연적으로 부서져서 없어집니다.
故此有四行之物 無有不泯滅者
고차유사행지물 무유불민멸자
그러므로 이 네 원소를 가진 사물은 소멸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夫靈魂則神也 於四行無關焉 執從而悖滅之?
부영혼칙신야 어사행무관언 집종이패멸지?
그러나 무릇 영혼은 물질이 아닌 정신 이어서 물질적인 네 원소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은 어느 원소를 좇아서 모순이 생겨나 소멸되겠습니까?
3-5 ◈ 중국 선비가 말한다.
神誠無悖也 然吾烏之人魂爲神 而禽獸則否耶?
신성무패야 연오오지인혼위신 이금수칙부야?
정신이라면 진실로 오행의 물질처럼 서로 모순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정신이지만 동물의 혼은 그렇지 아니함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徵其實 何有乎? 理有數端 自悟則可釋疑也
징기실 하유호? 이유수단 자오칙가석의야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그것을 증거 하는 이치에는 몇 가지 실마리가 있으니 스스로 깨닫게 되면 의심을 풀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其一曰 有形之魂 不能爲身之主 而恒爲身之所役 以就墮落
기일왈 유형지혼 불능위신지주 이항위신지소역 이취타락
형체가 있는 혼(material soul, 즉 생혼이나 각혼)은 몸의 주재자가 될 수 없으며 항상 몸에 의해서 부림을 당하여 결국 몸처럼 떨어져 나가 소멸하게 됩니다.
是以禽獸常行 本欲之役 狥其情之所導 而不能自檢
시이금수상행 본욕지역 순기정지소도 이불능자검
이렇게 때문에 동물의 일상적 행위는 욕망의 부림에 바탕을 두고서 자기의 정욕이 이끄는 대로 좇아가는 것이기에 스스로 자기 행위를 검속하지 못합니다.
獨人之魂能爲身主 而隨吾志之所從止
독인지혼능위신주 이수오지지소종지
유독 사람의 혼만이 육신의 주재자가 되어 우리 인간의 자유 의지자 선택하느냐 그만두느냐에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故志有專向 力卽從焉
고지유전향 역즉종언
그러므로 의지가 지향을 오롯이 하면 힘은 바로 그것을 따릅니다.
雖有私欲 豈能爲公理所令乎?
수유사욕 개능위공리소령호?
비록 사사로운 욕망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라면 어찌 공리가 명령하는 바를 어길 수 있겠습니까?
則靈魂信專一身之權 屬于神者也 與有形者異也
즉영혼신전일신지권 속우신자야 여유형자이야
그렇다면 영혼은 진실로 한 몸을 부리는 권리를 전유하는 정신에 속하는 것이기에 형체가 있는 것(物體)들과는 다릅니다.
2) 두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其二曰 一物之生 惟得一心 若人則兼有二心 獸心人心是也
기이왈 이물지생 유득일심 약인즉겸유이심 수심인심시야
한 생명체는 오직 하나의 마음만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두 마음을 겸하고 있습니다. 수심(獸心)과 人心이 그것입니다.
則亦有二性 一乃形性 一乃神性也
즉역유이성 일내형성 일내신성야
그렇다면 사람은 또한 두 가지의 본성을 가진 것입니다. 그 하나는 곧 물질성(形性)이고, 다른 하나는 곧 정신성(神性)입니다.
故擧凡情之相背 亦由所發之性相背焉
고거범정지상배 역유소발지성상배언
따라서 무릇 서로 모순되는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또한 일으킨 본성이 서로 모순됨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人之遇一事也 且同一時也 而有兩念並與 屢覺兩逆
인지우일사야 차동일시야 이유양념병여 루각양역
사람이 한 가지 일을 당했을 때에, 또한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이 함께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 둘이 서로 반대됨을 자주 느낍니다.
如吾或惑酒色 旣似迷戀欲從 又復慮其非理
여오혹혹주색 기사미련욕종 우복려기비리
마치 우리들이 술이나 여색에 혹시 미혹되게 되면 일단 그것에 미련을 두고 따르고자 하지만 그것이 도리가 아님을 또한 다시 반성하게 됩니다.
從彼謂之獸心 與禽獸無別 從此謂之人心 與天神相同也
종피위지수심 여금수무별 종차위지인심 여천신상동야
전자를 따르는 것을 ‘짐승 같은 마음(獸心)’이라 하니 짐승들의 마음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후자를 따르는 것을 ‘사람의 마음(人心)’이라 하니 천신의 마음과 서로 같습니다.
人于一心一時一事 不得兩情相背並立
인우일심일시일사 부득양정상배병립
같은 마음으로 같은 시간에 같은 일에 대하여 사람은 두 가지 서로 모순되는 사태를 동시에 함께 존립시킬 수 없습니다.
如目也不能一時覩一物 而並不覩之也 如耳也不能一時聽一聲 而並不聽之也
여목야불능일시도일물 이병불도지야 여이야불능일시청일성 이병불청지야
마치 눈과 같은 시간에 한 물건을 보며 그것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귀는 같은 시간에 하나의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그것을 듣지 않을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是以兩相悖之情 必由兩相背之心 兩相悖之心 必由兩相背之性也
시이양상패지정 필유양상배지심 양상패지심 필유양상배지성야
이렇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감정은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두 마음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두 마음은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본성에서 말미암는 것입니다.
試嘗二江之水 一鹹一淡 則雖未見源泉 亦證所發不一矣
시상이강지수 일함일담 즉수미견원천 역증소발불일의
두 개의 강물을 시험 삼아 맛보니 하나는 짠물이고 하나는 단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비록 우리들이 아직 발원한 샘(源泉)을 보지 못했다 하여도 그 연원이 또한 하나가 아님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其三曰 物類之所好惡 恒與其性相稱焉
기삼왈 물류지소호악 항여기성상칭언
사물의 종류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항상 그 사물의 본성과 서로 걸맞습니다.
故着形之性 惟着形之事爲好惡 而超形之性 而無形之事爲愛惡
고착형지성 유착형지사위호악 이초형지성 이무형지사위애악
그러므로 형체를 가진 것(material things)의 본성은 오직 형체를 가진 사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합니다. 그리고 형체를 초월하는 것(immaterial things)의 본성은 형체가 없는 사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합니다.
吾察萬生之情 凡禽獸所貪娛 惟味色四肢安逸耳已
오찰만생지정 범금수소탐오 유미색사지안일이이
제가 만물의 욕구를 살펴보니 무릇 동물들이 탐하고 즐기는 것은 오직 음식(味, 食慾)과 성욕(性, 色慾)과 몸(四肢)의 편안함뿐이었습니다.
所驚駭 惟饑勞 四肢相殘耳已
소경해 유기노 사지상잔이이
동물들이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은 오직 배고픔과 수고로움과 몸을 다치거나 망치게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是以斷曰 此諸類之性不神 乃着形之性也
시이단왈 차제류지성불신 내착형지성야
이러므로 저는 단언합니다. “이러한 여러 부류(동물)들의 본성은 정신적인 것이 아닙니다(不神). 그것은 바로 형체를 가진 것(差形)들의 본성입니다.”
若人至所喜惡 雖亦有形之事 然德善罪惡之事爲甚 皆無形者也
약인지소희악 수역유형지사 연덕선죄악지사위심 개무형자야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싫어하는 것들에는 비록 유형한 사물들이 있으나 사람은 선을 덕으로 여기고 악을 죄스러워하는 일에 더욱 신중하니 모두 무형한 것들입니다.
是以斷曰 人之性兼得有形無形兩端者也 此靈魂之爲神也
시이단왈 인지성겸득유형무형양단자야 차영혼지위신야
이러므로 저는 단언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유형한 것과 무형한 것, 양쪽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인간의 영혼은 정신인 것입니다.
4) 네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其四曰 凡受事物者 必以受者之態受焉
기사왈 범수사물자 필이수자지태수언
무릇(유형한, material)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반드시 수용자의 모습(態)대로 수용됩니다.
譬如瓦器受水 器圓則所受之水圓 器方則所受之水方 世間所受 無不如是
비여와기수수 기원칙소수지수원 기방칙소수지수방 세간소수 무불여시
비유하자면 질그릇이 물을 받아들일 때에 그릇이 둥글면 받아들인 물도 둥글고, 그릇이 모나면 받아들인 물도 모납니다. 세상에서 유형한 물질을 받아들이는 것 가운데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則人魂之神 何以疑乎?
즉인혼지신 하이의호?
그렇다면 사람의 영혼은 정신임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我欲明物 如以己心受其物焉
아욕명물 여이기심수기물언
우리들이 사물을 분명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그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其物有形 吾必脫形而神之 然後能納之于心
기물유형 오필탈형이신지 연후능납지우심
그 사물의 형체가 있으면 우리는 반드시 형체를 벗어나서 그것을 관념화(정신화) 하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것을 마음속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如有黃牛于此 吾欲明其性體 則視其黃曰 非牛也 乃牛色耳
여유황우우차 오욕명기성체 칙시기황왈 비우야 내우색이
만일 여기에 누런 소가 있다고 합시다. 우리들이 그 ‘소’의 관념(性體, ousia, idee)을 명백히 알려고 한다면 그 누런색을 보고는 그것은 소가 아니라 소의 색깔이라고 합니다.
聽其聲曰 非牛也 乃牛聲耳 啖其肉味 曰 非牛也 乃牛肉味耳
청기성왈 비우야 내우성이 담기육미 왈 비우야 내우육미이
그 소리를 듣고는 그것은 소가 아니라 소의 소리라고 합니다. 그 고기의 맛을 보고는 그것은 소가 아니라 쇠고기의 맛이라고 합니다.
則知 夫牛自有可以脫其聲色味等形者之情而神焉者
즉지 부우자유가이탈기성색미등형자지정이신언자
그렇다면 무릇 ‘소란 그 소리와 색과 맛과 같은 형체를 초탈할 수 있는 실재(情)를 관념화(정신화)하여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又如人觀百雉之性 可置之于方寸之心
우여인관백치지성 가치지우방촌지심
또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백치(百雉)의 성곽을 보고서 사방 한 치(方寸)의 아주 작은 마음속에 이를 가져다 둘 수 있음과 같습니다.
非人心之神 何以方寸之地 能容百雉之城乎?
비인심지신 하이방촌지지 능용백치지성호?
사람의 마음이 지극히 신묘한 정신이 아니라면 어찌 사방 한 치의 조그마한 곳(地)에 백치(百雉)의 성곽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能神所受者 自非神也未之有也
능신소수자 자비신야미지유야
받아들이는 사물을 관념화(神, 정신화)할 수 있는 것(즉 마음의 작용)은 스스로 정신(神)이 아닌 적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5) 다섯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其五曰 天主生人 使之有所司官者 固與其所屬之物 相稱者也
기오왈 천주생인 사지유소사관자 고여기소속지물 상칭자야
천주께서 사람을 내시어(生人) 이들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시는 감각 기관들은 진실로 그것들에 소속된 것들과 서로 걸맞게 만들어졌습니다.
目司視 則所屬者色相 耳司聽 則所屬者音聲 鼻口臭司嗜 則所屬者臭味
목사시 즉소속자색상 이사청 즉소속자음성 비구취사기 즉소속자취미
눈은 보는 것을 관장하니 눈에 소속된 것은 색깔(色)과 모습(相)들입니다. 귀는 듣는 것을 관장하니 귀에 소속된 것은 소리들입니다. 코와 입은 냄새를 주관하고 맛을 관장하니 코와 입에 소속되는 것은 냄새와 맛입니다.
耳目口鼻有形 則倂色音臭味之類 均有形焉
이목구비유형 칙병색음취미지류 균유형언
귀, 눈, 입, 코는 형체가 있으나 이들은 색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의 종류들과 서로 맞물리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형체가 있는 것들입니다.
吾人一心 乃有司欲司悟二官
오인일심 내유사욕사오이관
우리 인간들의 마음 하나에는 의지와 이성이라는 두 개의 직분(官)이 있습니다.
欲之所屬 善者耳 悟之所屬 眞者耳
욕지소속 선자이 오지소속 진자이
‘의지(欲)’가 귀속할 곳은 ‘착함(善)’뿐이며, ‘이성(悟)’이 귀속할 곳은 ‘참(眞)’뿐입니다.
善與眞無形 則司欲 司欲 之爲其官者 亦無形矣 所爲神也
선여진무형 칙사욕 사욕 지위기관자 역무형의 소위신야
‘착함’과 ‘참’이 물리적인 형체가 없다면 ‘의지’와 ‘이성’이라는 직분 또한 형체가 없으니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神之性能達形之性
신지성능달형지성
‘정신’의 본성은 형체들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而有形者固未能通無形之性也
이유형자고미능통무형지성야
그러나 형체가 있는 것들은 진실로 형체가 없는 것들의 ‘본성’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夫人能明達鬼神及諸無形之性 非神而何?
부인능명달귀신급제무형지성 비신이하?
무릇 사람들이 귀신들이나 여러 가지 무형한 것들의 ‘본성’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정신’의 덕분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3-6 ◈ 중국 선비가 말한다.
設使吾言 世無鬼神 則亦言無 無形之性
설사오언 세무귀신 즉역언무 무형지성
만약 우리 중국 문인들이 “세상에 귀신은 없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또한 세상 만물에는 형체
없는 무형한 본성이란 도대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而人豈能據明之乎? 則此五理事無的據
이인개능거명지호? 칙차오리사무적거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정신, 또는 무형적 본성)을 재빨리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까지 선생께서 설명하신 이 다섯 가지 이치는 적어도 우리 중국 문인들에게는 적확(的確)한 근거가 없는 듯이 보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雖人有言 無鬼神 無無形之性 然此人必先明鬼神無形之情性 方可定之曰 有無焉
수인유언 무귀신 무무형지성 연차인필선명귀신무형지정성 방가정지왈 유무언
비록 어떤 사람이 “귀신도 없고 무형한 본성도 없다.”고 말했다 하여도 이 사람은 반드시 귀신이나 무형한 것의 실제의 본성을 먼저 명백히 파악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들이 ‘있다’ ‘없다’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苟弗明曉其性之態 安知其有無哉?
구불명효기성지태 안지기유무재?
만일 그 본성(性)의 모습(態)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것의 있음과 없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如曰 雪白非黑者 必其明黑白之情 然後可以辨雪之爲白 而非黑
여왈 설백비흑자 필기명흑백지정 연후가이변설지위백 이비흑
만약 “눈은 희지 검지는 않다”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그 검거나 흰 실정(情)을 알고 난 다음에야 눈이 흰색이고 검은 색이 아님을 변별할 수 있습니다.
則人心能通無形之性 益著矣
즉인심능통무형지성 익저의
이렇다면 사람의 마음이란 무형한 본성(性)과 본성들과 소통할 수 있음이 더욱 명백히 드러납니다.
6) 여섯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其六曰 肉心之知 猶如小器有限不廣 如以線繫雀于木 不能展翅高飛 線之阻也
기육왈 육심지지 유여소기유한불광 여이선계작우목 불능전시고비 선지조야
감각적 지각(肉心之知)은 작은 그릇과 같아서 한계가 있고 넓지 아니합니다. 이는 마치 참새를 끈으로 나무에 매어 놓으면 날개를 펴고 높이 날 수가 없는 것으로 끈이 방애(妨礙)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是以禽獸得知覺 有形之外貞 不能通 又弗能諸己而知其本性之態
시이금수득지각 유형지외정 불능통 우불능제기이지기본성지태
이러므로 동물은 비록 지각을 얻어 가지고 있으나 유형한 것 밖의 실정에 통달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동물은 사물들을 자기 자신에게 돌이켜보아서 사물의 본성의 모습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若無形之心 最恢最宏 非小器所限 直通乎無碍之境
약무형지심 최회최굉 비소기소한 직통호무애지경
무형한 마음은 아주 크고 아주 광활하여 작은 그릇(감각기관)에 제한을 받지 않고 바로 아무런 장애도 없는 지경에까지 통달합니다.
如雀斷其所束之線 則高飛戾天 誰得而禦之
여작단기소속지선 칙고비려천 수득지어지
마치 참새가 자신을 얽어매던 끈을 끊어버리고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날음과 같습니다. 무엇이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故人之靈非惟知其物外形情 且暢曉其隱體
고인지영비유지기물외형정 차창효기은체
그러므로 사람의 추리력(靈)은 사물의 밖으로 드러난 모습(物外形情)을 알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안에 숨겨진 실체(추상적 이치)까지도 훤히 알고 있습니다.
而又能反觀諸己 明己本姓之態焉 非此非屬有形 益可審矣
이우능반관제기 명기본성지태언 비차비속유형 익가심의
그리고 또한 이런 것들을 자기 자신에게 돌이켜보아서 자기 본성의 모습을 명백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의 마음이 유형한 것에 속하지 않음을 우리들이 더욱더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所以言 人魂爲神 不容泯滅者也
소이언 인혼위신 불용민멸자야
그래서 사람의 영혼은 정신이며 소멸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因有此理 實爲修道其焉 又試擖三四理以明徵之
인유차리 실위수도기언 우시갈삼사리이명징지
이런 영혼불멸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이 도리를 닦아야 하는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서너 가지 이치를 들어서 또한 이런 점을 명백하게 증명하고자 합니다.
1) 첫 번째는 이렇습니다.
其一曰 人心皆欲傳播善名 而忌有惡聲 殆如還生不伴
기일왈 인심개욕전파선명 이기유악성 태여환생부반
사람의 마음은 모두 좋은 이름을 전파하고자 하며 죽고 난 다음에 나쁜 평판을 남기는 것을 꺼리나 이런 심리는 아마도 환생의 논리와는 걸맞지 않는 듯합니다.
是故行事期協公評以邀人稱賞 或立功業 或緝書冊 或謀術藝 或致身命
시고행사기협공평이요인칭상 혹립공업 혹집서책 혹모술예 혹치신명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세에서 자기가 한 일들이 공정한 평가에 부합됨으로써 남들로부터의 칭찬이나 상급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이는 업적을 세우고 어떤 이는 책을 저술하고, 어떤 이는 기술이나 예술을 도모하고, 어떤 이는 義를 위하여 한 몸의 생명을 바치기도 합니다.
凡以求令聞廣譽 顯名于世 雖緝生不惜 此心人大槩皆有之 而愚者則無 愈愚則愈無焉
범이구령문광예 현명우세 수집생부석 차심인대개개유지 이우자칙무 유우칙유무언
무릇 좋은 평판이나 광범한 영예를 구함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고 비록 생명을 버리더라도 아까워하지 않는 그러한 마음은 사람들이 대체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이러한 마음이 없으며 어리석을수록 이러한 마음이 더욱더 없습니다,.
試問 死後 吾聞知吾所遺聲名否? 如以形論 則骨肉歸土 未免朽化 何爲能聞?
시문 사후 오문지오소유성명부? 여이형론 칙골육귀토 미면후화 하위능문?
시험 삼아 물어봅시다. 죽은 다음에 우리 인간들이 남긴 평판을 우리가 직접 들어서 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신을 가지고 말한다면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가서 썩음을 면하지 못하니 어떻게 평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然靈魂常在不滅 所遺聲名善惡 寔如我生無異
연영혼상재불멸 소유성명선악 식여아생무이
그러나 영혼은 항상 존재하며 불멸하기에 남겨 놓은 명성의 좋고 나쁨(선악을 아는 것)은 실제로 우리 인간들이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若爲靈魂隨死銷滅 尙勞心以求休譽 非或置妙畵 以己旣盲時 看焉 或非美樂
약위영혼수사소멸 상노심이구휴예 비혹치묘화 이기기맹시 간언 혹비미락
以己旣聾時 聽焉
이기기농시 청언
만일 영혼이 죽음과 동시에 따라서 녹아서 없어져 버린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마음을 수고롭게 하면서 아름다운 명예를 추구하는 일이란 마치 어떤 이가 신묘한 그림을 두고도 일단 자기가 눈이 멀었을 때에 그것을 보겠다고 하는 것과 같으며, 어떤 이가 아름다운 음악을 갖추어 놓고도 일단 자기가 귀가 먹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듣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此聲名可與于我 而人人求之 至死不休?
차성명가여우아 이인인구지 지사불휴?
죽어서 알 수 없는 그런 명성이 우리 인간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기에 사람들마다 그것을 찾으면서 죽기까지 쉼이 없는 것입니까?
彼孝子子孫 中國之古禮 四季修其祖廟 設其裳衣 薦其時食 以說考妣
피효자자손 중국지고례 사계수기조묘 설기상의 천기시식 이설고비
저들 효성스런 아들과 사랑스런 자손들이 중국 고례에 따라서 네 계절마다 그 조상의 사당을 보수하고 그 의복을 차려놓고 그 계절의 음식을 오려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쁘게 합니다.
使其形神盡亡 不能 聽吾告哀 視吾稽顙 知吾 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之心
사기형신진망 불능 청오고애 시오계상 지오 사사여사생 사망여사존지심
則固非自國君至於庶人大禮 乃童子空戱耳!
즉고비자국군지어서인대례 내동자공희이!
만약 그 부모의 육신과 정신이 모두 없어져서 그 혼령들이 우리 인간들이 고하는 애도의 말도 들을 수 없고 우리 인간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하는 것도 볼 수 없고 우리 인간들이 ‘죽은 이를 섬기는 것을 산 것처럼 하고, 없는 이를 섬기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한다.’라는 효성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조상 제례는 진실로 나라의 임금으로부터 庶人에 이르는 ‘중대한 의례(大禮)’가 아니라 바로 어린아이들의 공허한 놀이일 뿐입니다!
2) 두 번째는 이렇습니다.
其二曰 上帝降生萬品 有物有則 無徒物 無空則
기이왈 상제강생만품 유물유칙 무도물 무공칙
하느님께서 만물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습니다.” 법칙이 없이 그저 사물만 있을 수 없으며 사물이 없이 공허한 법칙만 있을 수도 없습니다.
且歷擧名品之情 皆求遂其性所願欲 而不外求其勢之所難獲
차력거명품지정 개구수기성소원욕 이불외구기세지소난획
또한 각각(各品)의 성정(情)을 두루 돌아보면 모두가 그 본성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완수하려고 하고, 그 본성의 형세로 얻기 어려운 것들을 본성 밖에서 구하지 아니합니다.
是以魚鰲 樂潛川淵 而不冀遊于山嶺 兎鹿性喜走山嶺 而不欲潛于水中
시이어오 낙잠천연 이불기유우산령 토록성희주산령 이불욕잠우수중
이렇기 때문에 물고기와 자라는 시내와 연못에서 잠수하기는 즐기지만 산이나 산마루에서 놀기를 바라지 아니하고, 토끼나 사슴의 본성은 산이나 산마루에서 달리기를 즐겨 하나 물속에서 잠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합니다.
故鳥獸之欲 非在常生 不在 後世之躋天堂 受無窮之樂
고조수지욕 비재상생 부재 후세지제천당 수무궁지락
그러므로 새나 짐승이 바라는 것은 영생하는데 있지도 않고 내세에 천당에 올라가서 무궁한 복락을 받는 데에 있지도 않습니다.
其下情所願 部踰本世之事
기하정소원 부유본세지사
이런 동물들의 하급 성정들이 원하는 것들은 이 현세(本世)의 일들을 넘어서지 아니합니다.
獨吾人 雖習聞異論 有神身均滅之勢 亦無不冀愛長生顯居樂地 亨無疆之福者
독오인 수습문이론 유신신균멸지세 역무불기애장생현거낙지 형무강지복자
오직 우리 인간들만 비록 이단적인 논의를 듣는데 익숙하여서 “영혼과 육신은 함께 소멸된다(神身均滅)”는 학설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역시 오래 사는 것을 바라고 애착하며 ‘즐거운 곳(樂地)’에서 살기를 원하고 무궁한 행복을 누리고자 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設使無人可得以盡實其情 豈天主徒賊之于衆人心哉?
설사무인가득이진실기정 개천주도적지우중인심재?
만약 아무도 그런 성정을 다 채울 수 없다고 한다면 어찌 천주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런 것(희망)들을 그저 헛되이 부여해 주셨겠습니까?
何不見 普天之下 多有施別家産 離棄骨肉 而往深山窮谷 誠心修行
하불견 보천지하 다유시별가산 이기골육 이왕심산궁곡 성심수행
선비께서는 하늘 아래 이 넓은 세상에는 가산을 버리며 집을 떠나서 부모형제들과 이별하여 깊은 산 궁벽한 골짜기에서 성심으로 수행하는 이들이 많음을 어찌 보지 못하십니까?
此輩俱不以今世爲重 祈望來世眞福 若吾魂隨身而歿 詎不杜非其意乎?
차배구불이금세위중 기망내세진복 약오혼수신이몰 거불두비기의호?
이런 이들은 모두 현세를 귀중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내세의 진복을 바라고 기구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인간들의 영혼이 몸을 따라서 소멸된다면 내세의 진복을 바라는 이들의 의지가 잘못 허비되는 것이 어찌 아니겠습니까?
3) 세 번째는 이렇습니다.
其三曰 天下萬物 惟人心廣大 窮本世之事物 弗克充滿
기삼왈 천하만물 유인심광대 궁본세지사물 불극충만
세상의 모든 사물가운데 사람의 마음만이 넓고 큽니다. 이 세상의 사물을 다 궁구한다 하더라도 마음을 다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則其所以充滿之者 在後世可曉矣
즉기소이충만지자 재후세가효의
그렇다면 마음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내세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盖天主至智至人 凡厥所爲 人不能更有非議 彼各依其世態 以生其物之態
개천주지지지인 범궐소위 인불능경유비의 피각의기세태 이생기물지태
대개 천주는 가장 지혜롭고 가장 인자하니 무릇 천주께서 행하신 것을 우리 인간들은 다시 비난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저 천주께서는 만물들 각각이 속해 있는 ‘세상의 모습(世態)’에 따라서 그 사물의 사는 모습을 창조하셨습니다.
故欲使禽獸止于今世 則所付之顯 不越此一世墮落事 求飽而飽則已耳
고욕사금수지우금세 즉소부지현 부월차일세타락사 구포이포칙이이
따라서 천주께서는 동물들로 하여금 현세에만 그치게 하고자 했으니 (동물들에게) 부여한 욕구들이란 이 한세상의 타락한 짓들을 넘지 아니하니 배불리 먹기를 구하다가 배가 부르면 그만둘 뿐입니다.
欲使人類生乎千萬世 則所賊之願 不徒在一世須臾之欲
욕사인류생호천만세 즉소적지원 부도재일세수유지욕
(그렇지만 천주께서는) 영원(萬世)토록 살게끔 하고자 하셨으니 이들 사람에게 부여한 바람도 그저 ‘한 세상’의 순간적 욕망의 축구에만 있지 아니합니다.
於是不圖止求一飽 而求之必莫得者焉
어시부도지구일포 이구지필막득자언
이에 사람은 한 번 배부르기의 추구만을 도모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는 기필코 얻을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試觀商買殖貨之人 雖金玉盈箱 富甲洲縣 心無慊足
시관상매식화지인 수금옥영상 부갑주현 심무겸족
시험 삼아 장사를 하여 재화를 늘리는 사람들을 봅시다. 그들은 비록 금이나 옥이 상자를 가득 채워도 그리고 부가 자기가 살고 있는 주나 현에서 첫째를 가도 마음에 흡족함이 없습니다.
又如仕者 躐身世之浮名 趨明時之逮徑 惟圖軒冕華袞爲榮
우여사자 엽신세지부명 추명시지체경 유도헌면화곤의영
또한 벼슬하는 사람들의 경우 몸담고 있는 세상(身世)의 뜬구름 같은 헛된 명성을 쟁취하고 당대의 약삭빠른 지름길로 좇아 나가서 오직 귀인의 수레와 모자와 화려한 도포(軒冕華袞,헌면화곤)을 도모하는 것을 영광으로 삼고 있습니다.
卽至于垂紳朝階 晋職台階 心猶未滿
즉지우수신조계 진직태계 심유미만
그들이 곧 조정의 높은 관리가 되고 벼슬이 올라 황제 곁에 있게 된다 하여도 마음은 오히려 만족하지 못합니다.
甚且極之 奄有四海 臨長百姓 福胎子孫 其心亦無低極
심차극지 엄유사해 임장백성 복태자손 기심역무저극
심지어 극에 달하여 홀연히 천하를 차지하고 황제로서 만백성들의 우두머리로 임하게 되고, 복록이 자손만대에까지 미친다 하여도 그 마음의 욕심에는 또한 밑바닥의 끝이 없습니다.
此不足怪 皆綠 天主所稟情欲 原乃無疆之壽 無限之樂
차부족괴 개록 천주소품정욕 원내무강지수 무한지락
이러한 것들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천주께서 부여해 준 성정이나 욕구들이 원래무수한 수명과 끝없는 쾌락의 추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豈可以今世幾微之樂 姑爲饜足者 一蚊之小 不可飽龍象 一粒之微 弗極寔太倉
개가이금세기미지락 고위염족자 일문지소 불가포룡상 일립지미 불극식태창
어찌 현세의 미미한 쾌락 때문에 잠시나마 사람의 마음이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리 모기처럼 작은 것이 용이나 코끼리를 배부르게 할 수 없으며 미세한 낱알 하나가 큰 창고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西士古聖曾悟此理 聸天嘆曰
서사고성증오차리 담천탄왈
서양의 옛 성인은 일찍이 이 이치를 깨닫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하였습니다.
上帝公父 爾寔生吾人輩于爾 惟爾能滿吾心也 人間歸爾 其心不能安足也
상제공부 이식생오인배우이 유이능만오심야 인간귀이 기심불능안족야
“공번된 아버지 하느님이시여, 당신은 참으로 당신 안에서 우리를 창조하셨으니, 오직 당신만이 우리 마음을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께 귀의하지 아니하면 그 마음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4) 네 번째는 이렇습니다.
其四曰 人性皆懼死者 雖親戚朋友 旣死 則莫肯安意近其屍 然而 猛獸之死弗懼者
기사왈 인성개구사자 수친척붕우 기사 칙막긍안의근기시 연이 맹수지사불수자
사람은 본성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비록 친척이나 친구라 하더라도 일단 죽었으면 아무도 편안한 마음으로 그 시체에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맹수가 죽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則人性之靈 自有良覺 自覺 人死之後 尙有魂在可懼 而獸魂全散 無所留以驚我也
칙인성지영 자유양각 자각 인사지후 상유혼재가구 이수혼전산 무소류이경아야
사람의 본성인 영혼은 스스로 양각(良覺)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이 죽고 난 뒤에도 아직 두려워할 만큼 남아 있으나 동물의 혼은 전부 흩어져서 우리를 놀라게 할 만큼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다섯 번째는 이렇습니다.
其五曰 天主報應無私 善者必賞 惡者必罰
기오왈 천주보응무사 선자필상 악자필벌
천주의 인과응보에는 사사로움이 없습니다. 천주는 착한 사람을 반드시 상주고 악한 사람을 반드시 벌합니다.
如今世之人 亦有爲惡者 富貴安樂 爲善者貧賤苦難 天主古待其旣死
여금세지인 역유위악자 부귀안락 위선자빈천고난 천주고대기기사
然後取其善魂而賞之 取其惡魂而罰之
연후취기선혼이상지 취기악혼이벌지
만약 금세의 사람가운데 악을 행하면서도 부귀를 누리고 평안히 사는 사람이 있으며, 선을 행하면서도 가난하고 천하게 지내며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주께서는 진실로 그가 일단 죽기를 기다렸다가 그 다음에 착한 영혼을 택하여 상을 주고, 그 악한 영혼을 택하여 벌을 주십니다.
若魂因身終而滅 天主安得而賞罰之哉?
약혼인신종이멸 천주안득이상벌지재?
만일 영혼이 육신의 마침(죽음)으로 인해서 사라진다면 천주께서 어떻게 이들에게 상아니 벌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3-7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君子平生 異于小人 則身後亦宜異于小人 死生同也 則所以異者 必在于魂也
군자평생 이우소인 칙신후역의이우소인 사생동야 칙소이이자 필재우혼야
군자의 일생은 소인과 다릅니다. 그렇다면 군자는 죽은 다음에도 마땅히 소인과 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육신이 주고 사는 것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차이가 나는 까닭은 반드시 영혼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이가 나는 까닭은 반드시 영혼에 있는 것입니다.
故儒有一種言
고유유일종언
그러므로 유가에서는 이와 같은 한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善者 能爾存聚本心 是以身死而不散滅 惡者以罪敗懷本心 是以身死而心之散滅隨焉
선자 능이도존취본심 시이신사이불산멸 악자이죄패회본심 시이신사이심지산멸수언
“착한 사람은 본심 속에 도를 모아 간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이 죽더라도 마음은 흩어져 소멸하지 아니한다. 악한 사람은 죄로써 본심을 파괴하여 무너뜨린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죽으면 마음이 흩어져서 소멸함이 뒤따르게 된다.”
此亦可誘人於善焉
차역가유인어선언
이런 유가의 말씀도 또한 사람들을 선으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人之靈魂不拘 善惡 皆不隨身後而滅
인지영혼불구 선악 개불수신후이멸
사람의 영혼은 ‘선하냐 악하냐’에 구애됨이 없이 모두가 몸이 죽고 난 뒤에도 따라서 소멸되지 않습니다.
萬國之士信之 天主正經載之 余以數端寔理證之矣
만국지사신지 천주정경재지 여이수단식이증지의
온 세상 만국의 학자들이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천주의 성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저는 몇 가지 단서의 실제적인 이치를 가지고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此分善惡之殊 則不載于經 不據于理
차분선악지수 칙불재우경 불거우리
(선비께서 방금 말씀하신) 그런 선과 악의 차이에 대한 구분은 유교의 경서에도 실려 있지 않고 정당한 도리에 근거하고 있지도 아니합니다.
未敢以世之重事 輕爲新說 而簧鼓滋惑也
미감이세지중사 경위신설 이황고자혹야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은) 세상의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저는 감히 가볍게 새로운 해석을 함부로 지어 내어서 망령된 말로 여러 사람을 현혹하여 더욱더 혼란을 조장하는 일(簧鼓滋惑)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勸善沮惡 有賞罰之正道 奚損此而求他詭遇
권선저악 유상벌지정도 해손차이구타궤우
선을 권하고 악을 막으려 함에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상벌의 正道가 있을 뿐이니 어찌 이 정도를 버리고 그 밖의 다른 속임수로 시류에 영합하는 일을 추구하겠습니까?
魂乃神也 一身之主 四肢之勤宗焉
혼내신야 일신지주 사지지근종언
사람의 영혼은 모이고 흩어질 수 있는 모래나 물이 아닙니다. 영혼은 바로 정신(神)입니다. 한 몸의 주인이며, 육신의 활동의 근원입니다.
以神散身 猶之可也 以身散神 如之何可哉?
이신산신 유지가야 이신산신 여지하가재?
정신으로 육신을 흩뜨리는 것은 오히려 가능하지만 육신으로 정신을 흩뜨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使惡行能散本心 則是小人必不壽矣 然有自少至老爲惡不止
사악행능산본심 칙시소인필불수의 연유자소지노위악부지
가령 악행의 본심을 흩어지게 할 수 있다면 그런 소인배들은 반드시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악행을 저지르며 그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何以 散其心 有能生耶?
하이 산기심 유능생야?
(악행이 본심을 흩어지게 할 수 있다면) 그의 마음을 이미 다 흩어 놓았을 터인데 어떻게 하여 이직도 살아있을 수 있겠습니까?
心之于身 重乎血 血其散 身且不能立 則心其散 身于焉能行?
심지우신 중호혈 혈기산 신차불능립 칙심기산 신우언능행?
육신에 있어서 마음은 피보다 중요합니다. 피가 흩어지면 육신 또한 존립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일단 흩어졌다면 육신 또한 어찌 다닐 수 있겠습니까?
況 心堅乎身 積惡于己 不能散身 何獨能散其心乎? 若生時心已散 何待死後乎?
황 심견호신 적악우기 불능산신 하독능산기심호? 약생시심이산 하대사후호?
하물며 마음은 육신보다 더 굳건합니다. 자기 속에 악이 쌓였어도 그 악덕은 육신을 흩어지게 할 수 없는데 그 악덕이 어찌 육신보다 더 굳은 마음만을 홀로 흩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살아있을 때에 마음이 이미 흩어졌다고 한다면 어찌 죽은 다음에 흩어지기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造物者 因其善否 不易其性
조물자 인기선부 부역기성
조물주는 어떤 것이 선하냐 그렇지 않느냐에 근거하여 그것의 본성을 바꾸지 않습니다.
如鳥獸之性 非常生之性 則雖其間有善 未綠俾鳥獸常生
여조수지성 비상생지성 칙수기간유선 미록비조수상생
만약 동물들의 본성이 영구히 사는 본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들 동물 중에 비록 착한 것이 있다 해도 그것 때문에 본성을 바꾸어서 영원히 살게 하지 못합니다.
魔鬼之性 乃常生之性 縱其爲惡 未綠俾魔鬼殄滅 則惡人之心 豈能因其惡而散滅焉?
마귀지성 내상생지성 종기위악 미록비마귀진멸 칙악인지심 개능인기악이산멸언?
그러나 마귀의 본성은 바로 영구히 사는 것입니다. 마귀들이 아무리 악행을 저질러도 그것 때문에 마귀를 사멸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악인의 마음이 어찌 그 악함 때문에 흩어져 없어지겠습니까?
使惡人之魂 槩受滅亡之刑 則其刑亦未公 固非天主所出 盖重罪有等 豈宜一切罰以滅亡哉?
사악인지혼 개수멸망지형 칙기형역미공 고비천주소출 개중죄유등 개의일절벌이멸망재?
설령 악인의 영혼이 대개 소멸당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면 그러한 형벌은 또한 공정한 것이 못 됩니다. 따라서 참으로 천주께서 내리시는 벌이 아닙니다. 대개 무거운 죄에도 차등이 있으니 모든 벌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만하는 것이 어찌 합당하겠습니까?
況 被滅者 旣歸于無 則亦必無患難 無苦行 無所受刑 而其罪反脫(耶)?
황 피멸자 기귀우무 칙역필무환난 무고행 무소수형 이기죄반탈(야)?
하물며 소멸 당함이 일단 존재 없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또한 틀림없이 환난도, 고통도, 형벌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니, 그는 죄에서 도리어 해방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則是人導世人 以無懼爲惡 引導爲惡者 以無懼增其惡也 聖賢所爲 心散 心亡 乃是非詞
칙시인도세인 이무구위악 인도위악자 이무구증기악야 성현소위 심산 심망 내시비사
그렇다면 이것은 세상 사람들을 이끌어서 두려움 없이 악행을 하게 되는 것이며 악행을 하는 사람들을 이끌어서 두려움 없이 그들의 악행을 증폭시키는 것입니다. 성현들이 말하는 ‘마음의 흩어짐(心散), 마음의 없어짐(心亡)’이란 바로 비유하는 말들입니다.
如吾汎濫遂于外事而不專一 卽爲心散 如吾所務不在本性乃事 而在外逸 卽爲心亡
여오범람수우외사이부전일 즉위심산 여오소무부재본성내사 이재외일 즉위심망
만약 우리들의 마음이 범범하게 들떠서 밖의 일을 쫓아다니면서 하나에 전심하지 못하면 이를 곧 마음의 흩어짐 이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힘쓰는 것이 사람의 본성 안의 일에 있지 아니하고 본성 밖으로 일탕해 있으면 이를 곧 마음이 없어짐이라고 합니다.
非必眞散眞亡也 善者藏心以德 似美飾之 惡者藏心以罪 似醜汚之
비필진산진망야 선자장심이덕 사미식지 악자장심이죄 사추오지
이는 마음이 정말로 흩어지거나 정말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마음속에 덕을 갈무리해 두는 것은 마치 마음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과 같습니다. 악한 사람이 마음속에 죄를 갈무리해두는 것은 마치 마음을 추악하게 더럽히는 것과 같습니다.
此本性之體 兼身與神 非我結聚 乃天主賦之 以使我爲人
차본성지체 겸신여신 비아결취 내천주부지 이사아위인
이런 사람의 본성 자체는 육신과 정신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우리 인간들이 결합해서 모아 놓은 것이 아니고 바로 천주께서 이것들을 부여하여서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其散亡之機 亦非由我 常由天主
기산망지기 역비유아 상유천주
이것들이 흩어져 없어지는 계기는 또한 우리 인간에 의해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늘상 천주에 의해 말미암은 것입니다.
天主命其身期年而散 則其年以散 而吾不能永久
천주명기신기년이산 칙기년이산 이오불능영구
천주께서 그 육신에게 몇 년을 기한하여 흩어지라고 명하셨다면 그해를 기한하여 흩어지게 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영구히 살 수 없는 것입니다.
命其靈魂常生不滅 而吾焉能滅之耶? 顧我所用何如!善用之 則安泰 悞用之 則險危云耳
명기영혼상생불멸 이오언능멸지야? 고아소용하여!선용지 칙안태 오용지 칙험위운이
(천주께서) 우리의 영혼은 늘 살아 있고 불멸하라고 명하셨다면 우리 인간들이 어찌 그것을 소멸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들이 품수 받은 본성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돌이켜봅시다. 이를 잘 사용했으면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태평합니다. 이를 잘못 사용했으면 몸이 위태로워지고 마음이 불안해질 뿐입니다.
吾稟本性 如得兼金 吾或以之造祭神之爵 或以之造藏穢之盤 皆我自爲之
오품본성 여득겸금 오혹이지조제신지작 혹이지조장예지반 개아자위지
우리가 본성을 품수 받는 것은 마치 값 좋은 순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술잔을 만들 수도 있고, 오물을 담는 쟁반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우리 스스로 그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然其藏穢盤 獨非兼金乎? 增光于心 則卒騰天上之大光
연기장예반 독비겸금호? 증광우심 칙졸등천상지대광
그렇다면 오물 담는 그 쟁반만이 어찌 유독 값 좋은 순금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빛이 더 많아지면 마침내는 천상의 큰 광명으로 뛰어 오르게 됩니다.
增暝于心 則卒降地下之大暝 雖能排此理之大端哉?
증명우심 칙졸강지하지대명 수능배차리지대단재?
사람의 마음에 어둠이 더해지면 마침내 지하의 큰 어둠에 떨어지게 됩니다. 누가 이 대단한 도리를 배격할 수 있겠습니까?
3-8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吁! 今吾方知人所異於禽獸者 非幾希也 靈魂不滅之理 甚正也 心明也
우! 금오방지인소이어금수자 비기희야 영혼불멸지리 심정야 심명야
아아! 지금 저는 이제야 비로소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거의 없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이치는 매우 올바르고 또한 매우 분명한 것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期已行于禽獸 不聞二城之殊者 頑也
기이행우금수 불문이성지수자 완야
자기 행동이 동물의 그것과 같기를 기약하고 사람과 동물의 두 본성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미련한 자입니다.
高士志浮 人品之上 詎願等己乎非類者哉?
고사지부 인품지상 거원등기호비류자재?
뜻이 넘치는 고명한 선비로서 인품이 뛰어난 사람이 어찌 동물과 같은 비천한 부류와 자신이 동등하게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賢友得契尊旨 言必躍如 然性假異矣 行宜勿邇焉!
현우득계존지 언필약여 연성가이의 행의물이언!
저의 현명한 벗인 선비께서 이제 높은 뜻을 터득하셨으니 앞으로의 말씀은 반드시 판이하게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동물의 본성은 상당히 다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사람의 행동은 의당 동물의 그것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3편 끝 -
|
출처: 비공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