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소재(폴리우레탄) 도입 60년사(6) -자동차 용 PU 폼의 전개
폴리우레탄의 발명은 세계 자동차 분야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57년 동신화학(도입자 임호 회장)이 우리나라 최초 PU를 생산했을 때 주로 방석, 삼단요와 의류 소재로 공급하였다. 그러나 1955년에 도입한 일본 INOAC(회장, 쇼이치 이노우에)은 토요다 소형 화물차와 Honda 삼륜차에 Seat Cushion을 PU 폼으로 적용하였다. 일본 자동차 발전은 PU 소재를 개발, 적용함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는 요인이 되었다. 가장 안락하고 정숙하며 연비가 좋은 안전한 차를 PU소재 등으로 개발하였기에,
세계 자동차산업은 지구 환경보호와 에너지 절감, 안전화를 위해 경량화 소재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개발이 급속히 이루어져 자동차 대당 100Kg이상을 적용하고 있다. 플라스틱 소재 중 폴리우레탄은 2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현대, 기아등 자동차회사의 국내외 총생산대수 8백만 대로 보면 자동차 용 PU사용은 연간 16만 톤을 넘고 있다.
자동차 용 PU소재의 중심은 Seat Cushion이다. 물성, 일체성형, Cost, 생산성과 안락감에 있어서 PU를 대체할 만한 다른 소재는 현재까지는 없다. 자동차 Seat Cushion의 발전 과정을 보면 고무 Latex폼이나 열대야자 섬유로 만든 과정을 거쳐 연질 슬라브 폼을 재단하여 Seat로 만들기도 하였다. PU Mould Foam 개발은 가구뿐만 아니라 자동차 분야에 일대 혁신을 이루었다. Cost가 높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무나 야자섬유 등 타 소재에 비하여 월등히 우수한 생산성, Cost Down 그리고 쾌적함과 안락감으로 자동차 소재에 대 변혁을 가져왔다. 이 Mould폼 생산 방식은 Hot Cure와 Cold Cure방식이 있다.
1960년 대 말 초기의 자동차에는 고무 스폰지를 적용하였으나 1970년 대 초 부산의 동양특수고무의 김의창 공장장이 그리고 서울에서는 대한스폰지가 Hot Cure Foam을 생산하여 현대와 기아자동차에 납품하였다.
초기 단계에는 기계발포가 아닌 간이식 라인에 철판으로 만든 조잡한 Mould에 Hand Mixing(수작업)으로 소량 생산하였다. 1975년 용인의 진양우레탄(공장장, 김의창)은 일본의 MTP화성(현 INOAC)의 기술지원과 Maruka 발포시스템으로 Cold Cure Line을 설치하고 품질이 양호한 Seat Cushion을 생산하여 대우자동차 Rekord, 기아의 타이탄, 이륜자동차, 현대의 포니에 공급하였다.
이렇게 계속 공급했다면 진양우레탄은 그후 엄청난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지만 짧은 안목으로 이런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였다.
자동차 업계에 잘 공급하던 진양우레탄은 1977년 군 막사용 Mattress에 기존 면 메티레스를 제치고 PU Mattress로 대체 수주하였다. 앞뒤를 재지 않고 군과의 납품계약을 채결해보니 자동차 Seat Foam 생산을 중단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납품 일자를 조정해 보았지만 수십 만 군인의 잠자리 용이라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할 수없이 자동차 Seat Foam 생산 중단을 각사에 통보하였다. 자동차 3사는 비상이 걸렸다.
부랴부랴 자동차 3사는 자체 계획으로 Seat Foam 수급방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자동차는 회사 내 Seat Foam 생산부(후에 효문산업으로 독립)에 일본 난바프레스와 기술 제휴, 기아자동차는 대원산업이 일본 東名(도메이)화성과 기술제휴로 Hot Cure line을 설치, 대우자동차에 Spring을 납품하는 대원강업이 자체기술로 Cold line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혹시 독자들은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977년부터 2년간 출시된 자동차의 Seat Cushion이 출시된 지 2-3개월도 안돼 Seat Foam이 완전히 갈아 앉아 버린 현상 특히 영업용으로 출시된 Pony의 Seat가 이런 현상이 많았다. 소비자의 불만이 고조로 올랐다.
2년 간 당시 가구 의자Seat에 납품하던 소규모 가내공업의 Hot Cure Foam공장에서 긴급 납품받았으나 절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Mould로 제대로 생산 Process를 거치지 않은 Hot Cure Foam은 2-3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갈아 앉었던 것이다.
자동차 3사는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로서 PU연질폼회사는 자동차 PU소재 생산에 영원히 배제되었다. 1977년 당시 10만대 정도 생산하던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8백만 대이상을 생산하는 큰 시장이 되었음에도 자동차 시장에 참여할 수 없게 됀 것은 비극이 아닌가!
그후 연질 슬라브 폼 업계는 계속 어려운 경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 미원, 한비, 삼영화학등 연질 슬라브 폼 업계도 메트리스 라인을 설치하여 군납 계약에 참여함에 따라 수익도 떨어지고 각사 수주량도 떨어져 별로 회사 발전에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연질 슬라브 폼 업계는 PU에 관한 한 가장 많은 기술을 축적하고 있어서 자동차 시장에 참여했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슬라브 폼 업계는 2-3차 Vender로 Seat Cover나 head Liner등의 소재만을 공급하고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1982년 우리 정부는 자동차 3사의 World Car 생산 계획을 발표하였다. 각사가 30만대의 소형 승용차 생산라인을 갖춰야 한다. 물론 PU소재 생산 협력업체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자동차 기술제휴선이 제시하는 각 부품의 규격에 맞아야한다, PU소재도 이 규격에 맞아야함은 당연한 것이다.
Seat Cushon에 관해 설명하면 현대자동차 기술제휴선에서는 일본 난바프레스에 로얄티로 약 5달러/대당를 지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아 자동차도 도메이에게 일정액의 기술료를 지불하였다. 다만 대우자동차 협력업체인 대원강업만 자체기술로 개발한 HR Mould foam이 대우 르망의 기술제휴선 Opel의 test에 합격하여 seat Cushion 생산에 기술료나 로얄티없이 납품하였다. 1981년 9월 PU Engineering회사를 설립한 필자는 당시 미국의 유명한 Union Carbide의 Polyurethane 원료와 기술을 한국에 공급하였다. 이 기술을 국내 PU산업과 같이 공유하며 개척하였다.
그 중 대원강업의 이성종 연구실장과 박명혁 생산과장(현 한국 아이소 대표)은 UCC의 HR Mould Foam을 연구실에서 필자와 같이 개발해 놓았다. 따라서 World car 생산 발표가 있을 때 각 협력회사는 해외 업체와 기술제휴를 해야 했지만 대원강업은 기술제휴선의 승인을 받을 수 있어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앞선 기술의 개발은 이렇게 중요한 것 아닌가?
PU폼은 자동차 부품 소재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안락함을 위한 Seat Cushion, head Rest, Arm Rest등, 소음방지를 위한 천정재, PU충전재, Foot Underlay등, 안전성과 경량성을 위한 RIM Bumper, 외장 카바, Stearing Wheel, Air Spoiler, Instrument Panel,, Door Trim 등 수많은 PU소재가 외국과의 기술 제휴와 자체 개발로 50여 개 이상의 PU 소재회사가 세계 기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음은 자랑스럽다.
대부분의 기업이 선진국의 자동차 부품 회사와의 기술도입, 합작 투자로 우리나라 자동차 수준의 선진화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Woodbridge,
Lear, Johnson and Jojnson등 세계적인 PU 부품 majors들도 한국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발전에 일조를 하고 있다.(끝)
표민웅(초대 한국폴리우레탄학회 회장, 폴리우레탄세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