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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문화유산
금정시니어클럽
범어사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는 금정시니어 클럽 소속 문화유산 해설 사 홍 길동 입니다.
먼저, 범어사 창건과 유래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 서기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중 하나로 창건하였으며 산내11개의 암자와 2백여
개의 산외 말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원효대사 표훈대사 낭백선사 명학스님
경허선사 용성선사 성월선사 만해 한용훈선사 동산대종사 등
많은 고승들이 수행정진 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리적 환경을 보면 Y 자형계곡 중앙에 위치하여 물을 얻기가 용이하며 자연적 배수가 잘되는 곳이며 뒷산이 높아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을 수 있으며 앞으로는 휼융한 전망을 얻을 수 있어 외부의 낮선 사람이나, 침입자로부터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입지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사찰내부에서는 외부를 조망할 수 있는 폐쇄성과 개방성을 동시에 지닌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가람형상이 행주형배 모양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범어사에 오시는 분들은 범어사라는 큰 배를 타고 부처님이 계신 부처님 나라로 간다고 합니다.
금정산 범어사의 유래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국(東國)의 남쪽에 명산이 있어 그 산정에 높이50(16.6M)여척의 거암이 있고 바위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깊이는 7촌(21cm)쯤 되며 그 바위 둘레는 10여척(3M)이며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빛은 황금빛이다,
한 마리의 금 빛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金井)이라는 산 이름과 하늘나라의고기 범어(梵魚)라고 하는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범어사에는 범어3기와 금정팔경 이있습니다
1,원효석대 2,자웅석계 3,암상금정
1,어산노송 2,계명추월 3,청련야우 4,내원모종
5,대성은수 6,금강만풍 7,의상망해 8,고당귀운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선찰대본산은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는 수행도량 이라는 뜻으로
참선을 통하여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자신의 내면 세게 의 참다운 불성을 깨닫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1912년10월15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선찰대본산이란 종지 인가를 받음.
조계문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존자 달마대사 육조혜능대사의 법맥을 이은 조계종의 사찰임을 나타내는 일주문의 명패이다.
조계란 육조혜능대사의 별명이다.
금정총림은 2012년11월 총림으로 지정되었고 당시 지우대종사를 모시고 부산 영남은 물론 우리나라불교의 중심 선찰대본산 금정총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총림이란,~~~
강원, 선원, 율원, 염불원을 모두 갖춘 사찰을 의미하며
8대 총림이 있다,(영축총림 통도사, 해인총림 해인사, 조계총림송광사, 덕숭총림 수덕사, 고불총림 백양사, 금정총림 범어사, 팔공총림 동화사, 쌍계총림 쌍계사,)
강원 ~ 스님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한 공간,
선원 ~ 참선을 할 수 있도록 한 공간,
율원 ~ 불교의 전문교육기관을 의미 하는데 율사를 양성하며 총림에 해당하는 큰 절에 설치되는 기관이며,
염불원은 ~ 율사가 머무르는 사원입니다
오늘현재 방장은 지우스님 주지는 경선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지금까지 범어사에 대하여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가람 내에 있는 구조물을 보고 구조물에 대한 해설을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곳은 어산교(漁山橋)입니다
다른 사찰에서는 세심교 라고 하는데 범어사는 고기 魚자를 사용하여 어산교 라고 합니다, 즉 마음을 씻는 교량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기 전 속세의 번뇌와 모든 알음알이를 깨끗이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어산교 아래에 잇는 구조물은
1, 산문(山門)
2012년 지장암 입구에 건립 하였고, 사바세계(俗界)에서
부처님세계(眞界)로 들어오는 첫 번째 문입니다.
2, 금어동천(金魚洞天)
동천은 도교사상 사전에 의하면 신선이 사는 장소로서 명산의 동부(洞府) 가운데 있다, 아름다운 경승지 또는 신선들이 사는 곳 이라고 한다, 금정산엔 백록동천<장전동>,과 금어동천이 있습니다,
지장암 아래 100m 지점에 있습니다.
3, 비석거리(碑石距離)
사찰의 구제와 보시로 은덕을 베푼 지방관의 공로를 새긴 다섯 기의 비석<정현덕, 홍우길, 조엄, 정헌교, 장호진>이 있다, 그중 <순상국조공엄혁거사폐영세불망단>비는 낭백스님의 설화가 담겨있습니다, 자신의 쓰든 방을 봉해두었다가 스님스스로가 열 것이며 사찰의 어려움을 물어서 해결 것을 약속하리라, 하고 뒷산으로 가시어 입적하시고 자신의 몸까지도 호랑이에게 보시 하였다고한다,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 순상국(경상도 관찰사 조엄<1719~1777> 이라는 중앙의 높은 벼슬을 지내는 분이 온다는 전갈을 받고 주지스님이하 모든 대중들이 어산교 까지 나가 부복하고 기다렸다,
이 사람은 일주문까지 말을 타고 가지 아니하고 어산교 앞에서 말에서 내려 사찰을 둘러본 뒤 수십 년 동안 봉해둔 낭백스님 의 방문을 열라하여 봉함을 뜯고 열어보니 개문자시폐문인<開門者是閉門人> 즉 이 문을 연자가 이문을 닫은자 이다, 라는 스님 친필유목이 몇 십년의 세월 속에 얼룩져 있었든 것이다, 그리고 주지스님으로부터 어려움을 묻고 36종의
부역을 혁파해줄 것을 약속하고 돌아가서 동래부사에게 명하여 시행하였다고 전 한다.
매표소에서 약400m 아래에 비석거리가 있습니다.
이제 부터는 구조물을 보면서 설명 하겠습니다.
4, 등나무군락지
여기는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등나무 군락지입니다,
이곳은 약6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자생하는 곳으로 해마다 늦은 봄
보라색 등나무 꽃이 필 무렵에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 연출된다, 그래서 예부터 이 계곡을 꽃이 피울 때 그 경치가 아름다워 등운곡(藤雲谷)이라고 했다.
2016년 태풍으로 많은 나무들이 훼손되었다.
5, 어산계보사유공비 (魚山禊 補寺 有功碑)
조선후기 숭유억불 정책으로 사찰의 경제에 어려움이 많아,
사찰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사찰에서는
각종 계(契)가 조직되어 사찰 경제에 중요한 기능을 하였고,
각종 불사의 경비를 충당하여 보사(補寺)하였다,
갑계는 동갑내기 승려들로 구성되는 것이 원칙이나
범어사 갑계는 자(자축인묘진사) 오(오미신유술해) 6년차의 동갑승려들로 이루어 졌다,
현재 범어사 경내에는 1860년(철종11)에 세운 갑자갑원보사비 부터 1947년에 세운 갑오갑보사단비, 무자갑보사단비,까지
자연석에 새긴 총14기의 비가 남아있다,
이들 보사비는 계원들이 모은 재화를 헌납한일이나 사찰의
전각을 중수하거나 불경을 인출(印出)하는 등 불사를 마치고 세운 기념물이다, 자연석에 새긴 개인 이름들은 사찰에 헌납이나 불사 또는 사찰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의 이름이다.
6, 비림(碑林)
비석이 숲을 이루었다 하여 비림이라 고 한다.
수많은 고승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들이다, 비석 뒷면에 새겨져있는 비문들은 범어사 사적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7, 석제수조 (石製水槽)
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돌로 만들어 진 큰 통 이다,
대략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만들었다고 전한다, 특이한 것은 배 와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야용선(피안으로 가는 배, 용이 이끄는 지혜의 배, 지장보살 인로왕보살이 정법의 길로 인도)을 떠올리게 한다, 범어사 가람도 행주 형 베 모양을 하고 있다.
(범어사 가람이 행주 형 배 모양임으로 우물을 파면 배가 침몰함으로 우물을 파지 아니하고 수조를 만들어 물을 저장하여 사용 하였다한다.)
8, 당간지주 (幢竿支柱)
부산시 지방유형 문화재 제15호
사찰입구에 설치하여 도량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사찰에 행사가 있을 때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둔다.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기단(基檀)부와 당간의 받침돌(간석 竿石)부분은 모두 사라지고 두 기둥(당간)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9, 하마비 (下馬碑)
사찰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마나 말에서 내려 걷도록 하는 비석으로 “대소인원 개하마” 혹은 “하마” 라는 글이 새겨져있다
10, 동산당 혜일 대종사 사리탑비명 (東山堂 慧日大宗師舍利塔碑銘).
불기 2546년(2002년)건립
범어사 주지로 계시든 1954년5월20일 이승만 대통령이 대처승은 사찰을 떠나라는 정화유시 발표이후 대처승과 비구승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불교계정화라는 종교적 정치적 사건으로
전개되고, 1955년8월12일 한국불교계 정화운동은 종막을 고 한다 이때 정화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한 분이다.
11, 7층석탑 (7層石塔)
이 칠층석탑은 대웅전 옆 현 지장전 자리에 있었으나 1984년 성보박물관 광장으로 옮겼다가 2012년1월29일 현재자리에 옮김, 이 칠층석탑은 조성당시 인도 달라파라 스님이 1938년4월15일 한국에 오며 모셔온 부처님 진신 사리를 봉안했다고 기록되어있다.
12, 성보 박물관 (聖寶博物館)
범어사의 창건에서부터 중창과 중건을 거치면서 범어사 내에 산재한
문화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종합적으로 연구, 전시 하기 위하여 1999년12월20일 건립을 시작하여 2003년 3월 26일 개관하였다.
전시 및 소장물로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비롯하여 보물4종 (삼국유사<보물제419-3호> 불조삼경<보물제1224-2호> 금강요집경<보물제1525호> 주범망경<보물제894-2호> 및 부산시 유형 문화재 다수와 역사적 가치가 높은 1,000여종의 불교서적과 책판류를 소장하고 있으며, 불상20여구와 의상대사를 비롯한 영정40여점도 전시되고 있으며 또한 불교 공예와 불교미술품들도 전시되어있다.
13, 조계문 (曹溪門)
보물 1461호이며
1614년 묘전화상이 창건 1718년(숙종44년) 명흡스님이 석주로 개조하였으며, 1781년 이 석주위에 짧은 두리나무 기둥을 세우고 다포식의공포위에 겹처마 맞배 지봉을 얹어 중건하였으며 1983년에 현 건물로 해체 보수 하였다,(육중한 처마의 무계<약60톤>를 분산시키기 위해 공포를 기둥위에만하는 주심포4개와 기둥사이 평방위에 3개를 합처 다포가 일곱 개 나있다) 이 건물은 구조상 가장 불안한 역 삼각형 구조로 세워졌다, 400여년동안 태풍이나 세찬 바람에 견디어 온 것은 이지역이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장풍 지역이라고 합니다, (장풍지역이란 감출藏 바람을 감추는 지역 이라고 합니다.)
조계문(일주문)은 법당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이 일직선상에 한 줄로 되어있어 일주문이라 하며 이는 수행자의 일념(일심)을 상징한다, 우리가 사는 중생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계를 구분 짓는 곳으로 문밖의 세계(사바세계) 문 안의세계(진계,또는 부처님세계)라하며, 조계문 을 들어서는 순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여의고 깨달음을 향한 일념(일심)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이 문 앞에서는 합장 반배를 한다.
조계문 -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존자 달마대사 육조 혜능대사의 법맥을 이은 조계종 사찰임을 나타내는 일주문의 명패이다
선찰대본산 - 범어사가 선종의 으뜸 사찰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범어사는 선을 중시하는 한국의 화엄십찰 중의 하나이다,
1912년10월15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선찰대본산 이란 종지 인가를 받음.
금정산범어사 -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동국(東國)의 남쪽에 명산이 있어 그 산정에 높이50(5.4M)여척의 거암이 있고 바위한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깊이는 7촌(21cm)쯤 되며 그 바위 둘레는 10여척(3M)이며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빛은 황금빛이다,
한 마리의 금 빛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金井)이라는 산 이름과 하늘나라의고기 범어(梵魚)라고 하는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좌우 두 편액은 해사 김성근(1835~1919) 선생의 필적이며,
서재필 박사의 외숙이고, 任子小春下浣 이란 임자년(1912년) 소춘은 음력10월 하완은 하순을 뜻한다, 七十八翁海鹵堂은 78세때 관서했음을 말한다, 원래 호는 해사 였으나 국권을 침탈당한 1910년 이후는 해로(소금鹵)당으로 바꾸어 낙관하였다.
조계문 지붕의 무계분석.
<흙,적심,석회, 10톤 기와1장5kg×2000장=10톤 나무 등 부재 무계29톤 목조구조물<공포,장혀,도리,등>9톤을 합하면 60톤에 가깝다.>
14, 천왕문 (天王門)
1699년(숙종25년)에 건립 여러 차례 중수를 거처 1964년 다시 재건하였으며 1989년 전면 재 보수 하였으나 2010년12월15일 방화로 전소되었다가, 2012년 3월23일 복원불사 하였다,
원래는 고대 인도의토속신 왕들이었으나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불법에 귀의하였다, 수미산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위로는 제석천을 모시고 아래는 팔부중을 거느리고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호법신들이다, 사찰의 두 번째 문이며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네 방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곳으로 구도자들이 지녔던 일심이 수많은 역경과 유혹 등에 의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져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수미산 정상까지 포기하지 말고 오를 수 있도록 격려하며
선을 정려하고 악을(아귀,악마)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남방 증장천왕은 용을 들고 있고
북방 다문천왕은 비파를
동방 지국천왕은 검을
서방 광목천왕은 탑을 들고 있음.
천왕문주련
제석천왕혜감명(帝釋天王慧鑑明) 제석천왕의 지혜로운 영감이여
사주인사일념지(四州人事一念知) 세상 모든 일 한생각에 헤아려 아시고
애민중생여적자(哀愍衆生如赤子) 중생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하시니
시고아금공경례(是故我今恭敬禮) 이제 제가 공경의 예를 올립니다
15, 불이문 (不二門)
1694년(숙종20년) 자수장로가 창건 2012년 보제루를 중창할 때 철거 후 다시 지었다가 2010년12월15일 방화로 천왕문 화재 당시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허물었다가, 2012년 3월23일 복원불사 하였다,
주 법당에 도달하기 전 통과해야할 사찰의 마지막 문 (불이문은 해탈문,안양문,자하문,진여문,이라고도한다)이다.
불이란 있음과없음, 삶과죽음, 선과악, 세간과출세간,등 법계의 실상이 둘이 아니며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관점을 뜻한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관련되어 있으니 존재하는 모든 법은 실체가 없는
제법무아를 의미한다,
어칸 좌우 기동에는 서산대사가 지어 신 선가귀감에 나오는 구절을 동산대종사가 직접 쓰신 神光不昧萬古徽猷 (신광불매만고휘유)신묘한 빛은 어둡지 않고 만고에 빛나노니, 入此門來莫存知解 (입차문래막존지혜)
이 문안에 들어서면 모든 알음알이를 던져버려라, 산사에 들어서는 마음자세를 지적한 것이다 이문을 통과 함 으로서 명실 공히 사파를 떠나 정토애로 통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16, 보제루 (普濟樓)
1700년(숙종26년)자수장노가 별서식 누각으로 창건 1812년(순조12년)중건때 단층으로 바뀌었고 2012년에 전통 법식으로 대대적인 중창공사로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普濟 란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많은 대중들을 위한 법회용 건물로 사용된다.
17, 금강계단 (金剛戒壇)
보제루는 보살계, 사미계, 비구계,등 수계하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금강계단 주련
佛說一切法(불설일체법)부처님이 모든 법을 설하심은.
爲度一切心(위도일체심)모든 중생의 마음을 제도하려 하심이라.
若無一切心(약무일체심)만일 사람이 한 생각도 없다면.
何用一切法(하용일체법)모든 일체의 법 어디에 쓸 것인가.
(금강경 사구계중)
18, 삼층석탑 (三層石塔)
보물제250호이다.
의상대사가 건립 하였다고 하나 범어사 사적기에 따르면 통일신라 흥덕왕(826~836)때 세웠다고 한다 2010년4월23일 해체복원 완료하였다, 새로 봉안한 사리함(29cm×29cm×13.5cm)에는 부처님진신사리6과와 삼층석탑의 역사자료 대중명단,
탑다라니, 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 금강경, 법화경,
각종경전과 오색천, 오색실, 오보(금 은 수정 유리 산호)오향(침향 백단향 정향 울금향 용뇌향)오약 오곡 등이 봉안 되었다,
석탑은 불사리(佛舍利) 신앙을 바탕으로 발생한 특유의 조형물로서 대웅전 앞마당의 자오선상에 일탑또는 쌍탑으로 배치된다, 범어사 삼층석탑은 높이가 4M 에이르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옥계석과 받침, 면석과우주등이 간소화 되었고 이중 기단위에 돌로 만든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19, 석등 (石燈)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6호
의상대사가 건립 하였다고 하나 범어사 사적기에 따르면 통일신라
흥덕왕(826~836)때 세웠다고 한다. 본래 미륵전 앞에 있든 것을 일제 때
심검당 앞의 종루를 옭길 때 현 위치로 옮겨졌다.
불전 앞마당에 등불을 안치하는 일종의 공양구이다 불교에서의 등불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지혜의 상징이다.
범어사 석등은 연꽃잎을 새긴 상,하 대석위에 화사석(火舍石)과
옥계석(屋蓋石)을 올린 팔각당 형식이다. 석등의4개의 창은
사성제의 진리를 팔각은 팔정도를 의미 한다.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
바른 견해, 의사, 언어, 행위, 생활 법, 노력, 의식, 정신통일,
20, 괘불대 (掛佛帶)
고려 말 이나 조선 초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의 큰 마당에서 불교의식을 거행할 때 걸어 놓는 예배용 걸개그림(괘불)을 걸어 두는 곳이다, 범어사에 소장되어 잇는 괘불은 광무9년(1905년)의 작품으로 화면 중앙에 입상형의 아미타본존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이 있고 보살 뒤편에 가섭과 아난존자가 묘사 되어있다.
21, 종루 (鍾樓)
숙종26년(1700년) 명학대사가 보제루 를 지으면서 대웅전 앞 왼편으로 옮겨지었다가 일제 강점기 때 현재 위치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범어사 동종은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90호로지정 1728년에 김성원 김선봉이 만들었다.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에게 전하고 교화하기 위해서 소리와 관련된 불전사물(佛殿四物) 1,범종 2,법고 3,목어 4,운판 을 봉안한 전각이다.
범종은 조석예불과 사찰의 큰 행사가 있을 때 울리는 것으로,
지옥과 천상에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며 새벽에는 28번(1대조사마하가섭존자로부터 28대조사 보리달마대사까지, 또는 욕계(6욕천), 색계(18천), 무색계4處),의 28천을 상징)
저녁에33번 (수미산(상상의산) 정상은 정 입방체로 되어 잇는데, 그 중심에는 선견천(善見天)이 있고 주위의 사방에는 각각의 방위마다 8개의 하늘 궁전이 있어 32개의 궁전이 있으므로 도합 33천이라고 합니다. 도리천의 하루는 인간세상의 백년)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소리가 축생들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치게 하는 것으로 북의 가죽은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양면으로 부착하여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목어는 물에 사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치는 것이며 또한 수행자들로 하여금 물고기처럼 늘 깨어있는 상태에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는 의미도 가진다.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조류나 허공에 떠도는 영혼들을 천도하기 위해 치며 청동으로 된 운판을 구름모양으로 만들었다.
아침에는 운판을 치고, 목어를 울리고, 법고를 울린 다음, 범종을 28번을 울리며.
저녁에는 범종을 먼저 33번을 울리고, 법고를 울리고, 목어를 친 다음 운판을 맨 끝에 친다고 합니다.
22, 심검당(尋劍堂)
지혜를 찾는 집, 지금은 원주실로 사용하고 있다.
2017년 6월에 보수하였다.
23,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梵魚寺 律學僧伽大學院)
기본교육기관을 이수한 비구가 진학하는 전문교육기관으로써
계율 관련 표준교과목을 학습하며, 율학과 종법 등 종단이
필요로 하는 율사 및 율학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법상의 종단 전문교육기관입니다.
24, 영주선제(瀛州禪齊)
금정산은 산세가 좋아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그 경치와 절경을 자랑해왔다. 그래서 금정산을 영주라 했으며 신선들이 사는 곳 이라했다, 영주선제도 신선사상과 불교의 만남을 의미하며
대문을 들어서면 금어선원이라는 선원이 있으며 스님들의 마음을 깨닫고자 정진하는 수행 처 로 경허스님 동산스님께서도 오랫동안 주석하시면서 선풍을 진작 시킨 곳이다, 금어선원 뒤편
대나무 숲 앞에는 동산대종사의 부도 탑이 있다.
문손잡이 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토끼와 거북이 우화처럼 선 수행은 끊임없이 정진함을 의미하기 위해서이다.
25, 미륵전(彌勒殿)
목조미륵불상(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72호) 석조연화좌대하대석(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73호)
의상대사 창건 때부터 있었던 건물로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숙종9년(1683년)해민대사가 중창했고, 경종 원년(1721년)진열스님이 중수 했다.
미륵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미래 세상에 출현할 부처님인 미륵불(미륵은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모신 전각으로 미륵불은 56억7천만년 후 용화수나무아래에서 성불하여 중생들을 널리 구제할 부처다 그르므로 미륵전은
용화전(龍華殿)또는 자씨전(慈氏殿)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협시보살로는 아미타수인을 한 목조미륵불상 한분만 모셨으며 후불탱화는 아미타삼존불도이다.
부처님이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까닭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든 미륵전 밑을 파보니 미륵부처님께서 일본을 등지고 앉아있어 그대로 안치 하였다고 한다.
범어사에 현존하는 불상 중 가장 큰 불상이다.
26, 비로전(毘盧殿)
2015년 7월 15일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 155호
비로자나삼존불상(1638년 제작 부산시지정 유형문화재 제71호)
비로자나불(태양처럼 널리 비추는 분이라는 뜻) 좌 문수보살 우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있다,
수인은 지권인(智拳印)이며 이는 이(理)와지(智), 중생과 부처, 생과 사, 어리석음과 깨달음, 이 본래 둘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한다, 후불탱화는 화엄경변상도이다,
지권인 좌우 두 손의 엄지를 손에 넣고 주먹을 쥔 다음 왼손의 검지를 펴서 바른손으로 감싸 쥐고 바른손의 엄지와 왼손의
검지 끝을 서로 맞대는 손 모양으로 이때 바른손은 불계 왼손은 중생계를 상징한다, 즉 중생의 무명과 번뇌를 부처님의 지혜로써 감싸는 형국으로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요 미흑과 깨달음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의 중도, 연기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27, 설법전 (說法殿)
주존 불인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다, 매주일요일 범어사 포교사회가 주관하는 일요법회를 봉행하는 곳이며 각종 행사 및 재를 올리는 법당이다, 설법전 아래는 공양간이다.
28, 조사전(祖師殿)
조사전은 금정총림 범어사의 역대 조사 스님들을 모시는 공간으로 현재 10분의 조사를 모시고 있다.
(2015년8월27일 전각편액제막 주지 수불스님)
(좌측으로부터 동산대종사, 일전선사, 성우선사, 묘전대사, 원효대사.
의상대사, 유정(사명)대사, 지안선사, 덕기선사, 진종(용성)선사.)
조사전 주련
法性圓融無二相(법성원융무이상)
원융한 법의성품 두 모습이 아니로다.
諸法不動本來寂(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법은 변함없어 본래가 고요한데.
無名無相絶一切(무명무상절일제)
이름 없고 모습 없어 일체가 끊어지니.
證智所知非餘境 ( 증지소지비여경)
깨닫는 지혜일뿐 지식으론 알수 없네.
窮坐實際中道床(궁좌실제중도상)
마침내 실다운 중도 자리 앉게 되면.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예로부터 변함없어 이름하여 부처로다.
(의상조사 법성계)
29, 관음전 (觀音殿)
목조관음보살좌상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 70호)1772년 조성 봉안됨.
후불탱화, 백의관음보살도(부산시유형문화재 제53호)1882년3월에 조성 봉안 된 것, 광해군6년(1614년)에 묘전화상이 중창하였으나 지금의 건물은 양식으로 보아 뒤에 크게 개조된 것으로 보인다, 정면5칸, 측면3칸에 주심포식으로 공포를 짜 올린 맞배지붕이다,
관세음보살을 모신전각이며, 원통전(圓通殿)또는 보타전(補陀殿 보타는 관음보살이 거주하는 곳인 보타낙가를 줄인 말)이 라고도 부른다,
관세음보살(관세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고 관조하는 분이라는 뜻)은 고난에 빠진 중생들이 일심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을 구제한다고 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에서는 관세음보살은 고통 받는 온갖 중생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33가지의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중생을 구제 한다고 한다,
관음은 관세음을 줄인 말이며 관자재(세상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관조한다)라고도 한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보관의 정수리에 아미타불의화현을 모시고 계시다, 왼손에는 연꽃 오른손에는 감로수병을 들고 계신다, 왼손에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을 표시하고,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 한다는 뜻을 그 봉우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나타낸다,
관세음보살은 보통6관음(성,천수천안,마두,십일면,준제,여의륜,)을 일컫는다, 그중 성관음은 본신이고 다른 것은 보문시현의 변화신이다.
관음전 편액은 성파 하 동주(1873~1944)선생이 추사체로 씀
30, 대웅전 (大雄殿)
대웅전 건물 (보물 제434호)
대웅전 석가여래삼존불좌상 (보물 제1526호)
후불탱화 석가영산회상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67호)
“ 제석신중탱화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69호)
“ 삼장보살탱화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68호)
위의 후불탱화들은 1882년3월에 조성된 것이다.
정면계단 양쪽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있다
광해군6년(1614년) 건립하고 숙종39년(1713년)다시 건축한
것으로 간박하고 힘찬 다포식 가구와 소박한 맞배지붕 양식이다, 협시전 으로는 관음전과 지장전이 배열 되어있다,
대웅전주련
마하대법왕 摩訶大法王 : 거룩하고 위대하신 법왕이여!
무단역무장 無短亦無長 : 짧지도 또한 길지도 않으며
본래비조백 本來非牲白 :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고
수처현청황 隨處現靑黃 : 인연 따라 청황으로 나타나네
삼존불좌상은 과거(제화갈라보살) 현재(석가모니부처님)
미래(미륵보살)을 한자리에 모시고 있다,
대웅전 상단에 업경대 2개 가있다,(염라대왕이 가지고 있다는 거울로 여기에 비추어 보면 죽은 이가 생전에 지었던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난다,)
화광대 또는 정료대 낮에는 물그릇을 두어 불전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도록 하기 도하고, 불전에 올릴 공양물을 잠시 내려놓는 장소로 로도밤에는 관솔로 불을 피워 법당 앞을 밝히는데 이용하기도 하였다.
금고란 금구 또는 반자라고도하며 사찰에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이나 의식을 알리는데 두드리는 도구로서 쇠북이라는 뜻이다.
31, 지장전 (地藏殿)
현 독성전 앞에 명부전으로 대웅전을 마주보고 있었으나 1988년에 소실되고 1990년에 7층 석탑이 있던 자리에 지장전 으로 새롭게 지었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육도중생을 모두 해탈케 할 때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대원을 세우고 지옥에서 중생들을 구제하고 계시는 지장보살을 모신전각이다.
지장보살을 주불로 좌 ~ 도명존자 우 ~무득귀왕을 협시로 봉안하고 그 좌우에 명부 시왕상을 안치하고 시왕상 앞에 시봉을 드는 동자상을 배치하였다.
지옥계의 심판관인 시왕중 일곱왕 들에게는 7일째 되는 날마다 붙잡혀가서 혹독한 심문을 당하고(이때 잘 봐달라고 후손들이 기원한다, 7×7이면 49일이니 49제 라고 한다) 여덟 번째 왕에게는 100일 만에 가고 아홉 번째 왕에게는 일 년이 지나면
가고, 마지막 열 번째 왕에게는 3년이 지나 죄를 심판받고
죄질에 따라서 육도 윤회를 하게 된다.
지장보살은 비구의 모습 이거나 머리에 두건을 쓰고 육환장이나 보주를 들고 있다, (여섯 개의 고리가 달려있는데 육도를 나타내며 육도중생을 모두 제도하려는 보살의서원이 담겨있다.
지장전의 주련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대성위신력
지장성인의 위신력(자성)은,
恒河沙劫說難盡 항하사겁설난진
항하사 모래알만큼 많은 법문으로도 전할 수 없으니,
見聞瞻禮一念間 견문첨례일념간
다만 보고 듣는 일상에서 한 생각 돌이킴 만 못하다!
利益人天無量事 이익인천무량사
한 생각 돌이키는 공덕이 인간 과 천상에 무량하다!
불교에서는 업보의 전개로서 누릴 수 있는 생명형태를 여섯 갈래로 설명한다.
지옥 (地獄) : 가장 고통 받는 삶의 형태
아귀 (餓鬼) ;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 생존 형태
축생 (畜生) : 짐승들의 세계 난폭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삶
아수라(阿修羅) : 폭력만이 존재하는 삶의 형태
인간 (人間) ; 인간들의 삶
천상(天上) : 하늘나라의 신적인 존재 이별의 아픔이 남는 세계
앞의 셋을 삼악도(三惡道) 뒤의 셋을 삼선도(三善道)라하며
통틀어 육도윤회(六道輪廻)라 말한다
32, 산령각 (山靈閣)
불교가 전래의 토속신앙과 습합(褶合)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당우이다, 가람터 와 산악을 수호하는 산신과 호랑이를
그린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천룡팔부와 함께 도량을 수호하고 불법을 보호하는 신이다, 산신을 산왕대신(山王大神)이라부른다
33, 청룡암 (靑龍巖)
거북 모양을 한 큰 바위이다,
조선중기 대표적인 시인 중의 하나인 동악 이안눌(1571~1637)의 시가 전면에 새겨져있다
(五言律詩)
德水李居士 (덕수이거사),덕수 사람 이 거사
萊山晶上人 (내산정상인),동래 사람 혜정상인
烟霞一古寺 (연하일고사),안개 속 한 옛 절에
丘壑兩閑身 (구학양한신),산수 즐기는 한가한 두 사람
掃石苔粘屐 (소석태점극),바위 밟으니 신발에 이끼 푸르고
觀松露塾巾 (관송로숙건),소나무 보느라 두건에 이슬 젖는다
蒼崖百千劫 (창애백천겁),수만 겁 내려온 푸른 바위에
新什是傳神 (신십시전신),이제 새로이 문장을 새기네
萬曆己酉六月 (만력기유육월,만력기유년은 1609년이다)
東岳(동악) 아,이안눌의 호 동악(東岳)
혜정큰스님과 이별을 앞둔 애틋한 마음을 담은 시
34, 나한전 (羅漢殿)
나한 독성 팔상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63호)
1613년 묘전화상이 창건
석가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불로 모셨으며 삼존불 모두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성자이다, 아라한은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추고 진리로 사람들을 충분히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로 부처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500나한을 모신 곳도 있다,
35, 독성전 (獨聖殿)
1905년 학암스님이 나한전과 팔상전이 별도의 건물이던 것을 중앙에 독성전을 중창하여 한 건물로 이어지게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불멸후에 미륵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중생을 제도하기위해여 남인도 천태산에서 선정을 닦고 있는 나반존자를 모신전각이다,
독성이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깨달았다고 하여
독성이라 하며, 나반존자님은 남인도 천축산 에서 해가 뜨고
지는것 잎이지는것 봄에꽃이피는것 가을에열매가맺는것 등 변함없이 운행하는 우주의 법칙을 보고 깨달았다 고하며 삼명의능력을 지녔다, 삼명은 전생을 꿰뚫어보는 숙명명 미래를 보는 천안명 현재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명이다.
솟을벗매화꽃살문
모란꽃살문 목각상 한쌍(보살처사상은 현실에서는 삶에무계에짓눌려 힘들어 하지만 즐거이 불법을 믿고 따르면 복된 삶을 맞을 것이라는 선남선녀 민중의 소망을 표현
36, 팔상전 (捌相殿)
부처님 일대기를 모신전각이다, 석가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불로 모셨으며 삼존불 모두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석가여래후불탱화는 광무9년(1905년)에 조성한 것이다, 팔상전에 봉안하는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의 생애를 주요사건에 따라 8단계로 압축하여 묘사한 일대기인 팔상도를 모시는데 좌우에 각기4폭씩 부처님 일대기를 그린팔상도를 배하였다, 팔상도는 1978년에 제작되었다,
팔상도의 명칭과 뜻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 시키는 장면,
7)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성불 후 녹야원에서 초전설법하는 장면,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37, 정 희조 박덕운화 부부전각
정 희조는 근대 범어사 대 시주이다. 1865년8월 부산 좌천동에서 출생한 정희조는 1938년4월 범어사 주지 운호 (雲湖)선사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시는 7층석탑을 조성할 때 대 시주로 참여하였다. 육영사업에도 힘을 쏟아 1920년대 동래 온천리와 당감리에 야학을 건축하고 교사 임금도 전담하였으며 그 외에도 사회활동 방면에서 보시와 덕행를 베풀었다. 지금도 음력 3월 15일 이면 그 후손들이 제를 지낸다고 합니다.(성보박물관 원주실 에서 자료 얻음)
38, 약사전 (藥師殿)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이다, 좌,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있다, 약사여래는 과거불로 약병을 들고 있으며 병을 치료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찾는 부처입니다.
39, 화엄전 (華嚴殿)
화엄전은 원래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전각이지만 현재 무비 큰스님의 처소로 사용되고 있다. 범어사엔 비로전이 따로 있다.
40, 휴휴정사 (休休靜舍)
마음에 조그만 한 그 어떤 것도 두지 말고 편안하게 쉬고 쉬어라는 뜻에서 지어진 말이다, 지금은 사찰문화체험(Templestay)공간으로 이용 되고 있다. 일상에서 잊어버린 나 자신과 자연의 향유를 찾게 한다,
그래서 마음의 행복과 평안함을 느끼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생활의 전환점이 된다고 한다,
41, 휴휴정사 입구의 나라연금강과 밀적금강 (那羅延金剛 密迹金剛)
불교의 수호신,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구실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이 신은 여래의 온갖 비밀된 사적(事迹)을 알고 5백 야차신(夜叉神)을 거느리면서 천불의 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왼쪽에는 밀적금강(密迹金剛)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서있다.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 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 이라한다,
이들 머리 뒤엔 커다란 원형의 두광이 있다, 이것은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 한다,
입을 벌리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다물고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 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 는 범어의 첫째글자이고 “훔” 은 끝 글자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42, 부도전 (浮屠田)
부도전은 스님이 돌아가신 후 스님들의 사리나 유물을 안치하는 곳으로 총 34기의 석종형부도 가있다.
43, 범어사 신목 (梵魚寺 神木)
느티나무 ~ 수령 천년으로 추정 대성암 지장전 뒤편에 있습니다, 높이 18m 밑둥치 둘레 7.5m 둥치둘레 5m 인 거목이다,
밑둥치 에 구멍이 가로 1m 세로 2m10cm 크기의 아치형으로 맞뚫려 있어 인상적이다, 느티나무에 대한구전 청룡동에서 구포로 가는 스님과 구포에서 청룡동 으로 가는 도인이 범어천이 흐르는 대성암 앞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봇짐에서 나뭇가지를 꺼내어 맞추어 보고 남는 나뭇가지 하나를 기념으로 그 자리에 꽃아 놓고 각각 헤어져 길을 떠났다, 그 들이 꽃아 놓고 간 나뭇가지가 뿌리가 내리고 잎이 돋아 커다란 느티나무가 되었다, 역사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보람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때 그 삶이 값진 것이 된다.
임진왜란 당시 범어사에 불을 질러 범어사가 불에 탄 직후
느티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려고 노거수에 톱질을 하는 순간
천둥과 번개 및 벼락이 떨어져 이거창한 거목이 쓰러짐과
동시에 나무 주위에 있던 왜놈20여명이 즉사하였다고 전한다,
상처를 입은 이 나무는 그 후 둥치가 썩어가다가 1945년8월15일 광복과 함께 수간에 새로운 움이 돋아나 지금에 이르고 있다.
44, 은행나무 (銀杏나무)
보호수
지정번호 1-11-16-0-1
지정일자 1980.12.08.
수령580년 수고25m 나무둘레 6.6m
동서남북 수관폭 16m×16m 설법전 앞에 있다.
성보박물관 광장엔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있다.
이상으로 범어사에 대한 해설을 마치 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삼보륜 조계종 문양(로고)
(타 종파는 卍를 로고로 쓴다)
1,부처님
2,부처님의 가르침
3,스님을 상징.
2017년10월21일 1339주년 개산대제 (범어사 생일날)
범어사 금석문 연표
1609 이안눌시
1808 순상국조 공엄 혁거사폐 영세불망단
1858 나무아미타불비
1860 갑자갑원보사비
부백정공헌교 영현 폐막만세불망단
순상국흥공우길 영혁고막만세 불망단
1863 병자 갑계 보사단
1872 부사 정공현덕 영세 불망비
1874 무자 갑보사단
1880 갑오 갑보 사유공단
1891 경자 갑보사단
1897 임자 갑보사단
1898 남파당 채우서상비
1903 통정대부 참서관 장공호진 영세불망비
1905 무오 갑보사단
1913 어산계 보사유공비
1915 갑자갑보 사유공단
1916 경오 갑보사단
1921 선찰 대본산 범어사자선 불망비
1923 범어사 사적비명
1927 대장경 시주질비
1928 병자 갑보사단
1934 남해당 대선사비
1937 정희조 박덕운화 공덕비
1938 석가여래 사리탑비
1940 봉산 구로회원
1941 임오 갑보사단
1947 무자 갑보사단 갑오 갑보사단
1950 김태원 김상품행 공덕비
1964 금정산 선찰대본산 범어사 중수기
1966 동산대종사 원명적조탑 시주방명
1967 동산대종사 사리탑비
1987 세존 사리탑 이건 공덕비
세존사리탑 이건시주방명
1988 성월당 일전대사비
1991 남전환규 대선사비
1997 이산당 원오 대선사비
1999 금화당 공덕 대선사비
2001 용성 대선사 비명
2002 동산당 혜일 대종사 사리탑비명 동주당벽파대선사비
2011 덕진당 여환 대선사비
연대미상
대각동계 황봉당
대사대영 보사 불망단
전승 통가선대부
성백견 역보사 불망단
가선대부 윤행보사은
가선대부 묘심보사은
선정인(禪定印)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에 수인으로, 왼쪽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놓아 그 위에 겹치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수인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가 마왕을 항복시키고 성도하신 뒤, 당신의 깨달음을 지신에게 증명해 보라고 말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수인으로 선정인에서 왼손을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양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가 성도하신 후 다섯 비구니에게 첫 설법을 하며 취한 수인으로, 시대에 다라 약간씩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다.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
시무외인은 중생에게 무외를 베풀어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덕을 보이는 수인으로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상이다. 여원인은 부처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고 손가락을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이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부처마다 두루 취하는 수인으로 통인이라고 하며, 부처상(입상)의 경우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속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부처의 수인으로 오른손으로 왼손의 둘 째 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오른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와 같은 수인은 중생과 부처가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다.
합장인(合掌印)
보통 예배를 드리거나 제자와 문답할 때 취하는 수인으로, 두 손을 가슴 앞에 올리고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인도의 부조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방어산 마애삼존불의 오른쪽 협시보살상, 안압지 금동판보살좌상 등에서 나타난다.
중생에게 있는 108가지 번뇌를 108번뇌라고 합니다.
중생에게는 6가지 신체 기관을 통해 감정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을 6근이라고 합니다.
6 근(六根) : 안(眼, 눈), 이(耳, 귀), 비(鼻, 코), 설(舌, 혀), 신(身, 몸), 의(意, 뜻)
6근에는 3가지 감정이 있습니다 : 호(好, 좋음), 오(惡, 싫음), 평등(平等, 좋지도 싫지도 않음)
이러한 6근이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를 경계라고 하는데 그것을 6경이라고 합니다.
6 경(六境) : 색(色, 색깔), 성(聲 소리), 향(香, 냄새), 미(味, 맛), 촉(觸, 촉감), 법(法, 법)
6경을 받아들일때 3가지 형태가 있는데
3수(三受) : 고(苦, 괴로움), 락(樂, 즐거움), 사(捨, 不苦不樂,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
그리고 시간을 분류할때 3세(三世) : 과거, 현재, 미래 로 하게 됩니다.
6근(안이비설신의)에 각각 3수(고락사)가 있어 6 x 3 =18번뇌가 되고요,
6근(안이비설신의)에 각각 3가지 감정(호오평)이 있어 6 x 3 = 18번뇌가 되지요.
위의 둘을 합치면 총 36번뇌인데
이 각각의 번뇌가 3세(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일어나므로 36 x 3 = 108번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