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 옵나이다 아멘)(마태복음 6:9~13)
오늘은 본문 가운데 12절의 말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 말씀에 담겨 있는 교훈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죄’란 말이 두 번 나오는 데요, 죄의 문제, 참 중요합니다. 전도할 때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라는 말로 시작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면 당장 “내가 왜 죄인이야? 내가 깨끗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기분 나쁜 소리 하고 있네.” 이런 반발에 부딪히게 됩니다. 죄의 문제를 조직신학에서 “죄론”이라고 하는데 죄론, 복잡합니다. 죄의 종류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지니고 태어나는 죄, 아담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죄, 원죄라고 하지요. 고의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고범죄라고 하지요. 자범죄도 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짓는 죄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이런 기도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12절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 주어야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거, 잘못된 것 아닌가? 죄를 사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인데, 어떻게 우리가 죄를 사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 말씀이 정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제가 지난 번 설교에서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것이 우리 마음에 드는 구절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12절은 반대입니다.
어느 신학교 채플에 외부 강사가 오셔서 설교를 하는데 주기도문을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 강사는 “우리는 주기도문을 너무 쉽게 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기도문을 소리내어 드리는데 뜻을 하나, 하나 생각하면서 외우세요. 그렇게 외워나가다가 자신이 없는 부분은 소리를 내지 마세요.” 했다고 합니다. 신학생들이 주기도문을 힘차게 외워나가다가 12절에 와서는 조용해지더랍니다. 그 자리에 제가 있었어도 이 대목에서는 입을 다물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새로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준비하는 일이 굉장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설교자가 자기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라고 설교하는 것은 위선이지요.
더구나 이 말씀은 12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4절과 15절에서 반복이 됩니다. 14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28절에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문서들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문서들을 ‘외경’이라고 부릅니다. 천주교에서는 이 문서들도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성경이 66권이 아니고 그보다 많습니다. 여덟 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외경들 가운데 “집회서”가 있습니다. 집회서 28장 2절에는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네가 기도할 때에 네 죄도 사해질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래서 더 부담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부른 주기도문, 찬송가 635장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가 빠져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들의 큰 죄 다 용서하옵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 마음에 들어요. 그러나 여러분, 마음에 드는 말씀만 좋아하다가는 잘못되기 쉽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 편식하다가 건강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설교준비 노트에 메모도 많이 했고 인터넷에서 이 말씀과 관련된 글들을 거의 모두 복사해서 설교준비 파일에 옮겨 놓았습니다. 너무 복잡하더군요. 한참 살피다가 다 지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힘쓰십시오.” 이 한마디로 요약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용서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손양원 목사님을 잘 압니다. 1948년 10월에 여수 순천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14연대 장병들 가운데 좌익이 반란을 을으켰습니다. 그 때 좌익 학생들이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살해했습니다. 반란이 진압되고 그 범인이 체포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계엄사령관에게 그 범인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풀려난 그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자기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안재선입니다. 참 감동적인 이야기이지요. 목사님 한 분이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책으로 쓰고 제목을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 손양원 목사님 참 대단한 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끝내기 쉽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용서,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일기장이 남아 있습니다. 여수의 애양원에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이 있는데 지금도 거기에 전시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일기장에 “재선이와 같이 밥을 먹으려면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6.25때 순교 당하셨는데 세상 떠나실 때까지 안재선을 용서하려고 계속해서 애쓰신 것 같습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조카 가운데 손동아 목사님이 계십니다. 손 목사님은 기독교방송 PD로 오래 일하셨고 목사가 되어 인왕장로교회를 담임하다가 은퇴하셨는데요, 이 분이 어느 집회에서 밝힌 이야기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은 안재선을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안재선을 보면 늘 고개를 돌이키셨고, 밥상을 들고 오다가 안재선이 있는 것을 보고 밥상을 놓치고 넘어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손동아 목사님이 기독교방송 PD로 있을 때 사모님에게서, 그러니까 숙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나 지금 부산복음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얼마 못 산다고 한다. 너 안재선을 데리고 내려와다오.” 그 때 안재선은 이태원 외국인 아파트 경비원으로 있는 것을 찾아내서 같이 부산에 내려갔다고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모님은 그 자리에서 안재선을 용서하고, 화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주일 뒤로 천국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용서라는 것은 이렇게 힘든 것이지만, 우리는 용서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저도 더욱 힘쓰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죄의 문제는 참 복잡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모두 ‘죄’라고 되어 있는데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말에는 이 말이 여럿으로 나옵니다. 12절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하고 그 다음에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죄” 앞에 “2)” 어깨 번호가 붙어 있습니다. 이럴 때는 본문 밖을 보아야 합니다. 본문 밖을 보면 “2) 헬,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죄”는 “오페이레마타”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빚을 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설명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 복잡한 문제는 덮어두고, 죄의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것을 강조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들은 사죄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 기본적인 죄, 큰 죄는 용서 받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인데요, 원로목사님 한 분이(고명균 목사님) 은퇴하신 다음에 개척교회, 미자립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설교로 봉사하시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 분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설교가 미자립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전도사님들, 젊은 교역자들, 교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도 그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 목사님은 속죄에 대해 말씀하실 때 “우리들은 자수한 간첩입니다”라는 말로 설명하셨습니다. 무슨 뜻일 것 같습니까? 예전에 간첩들이 많았는데요, 정부는 간첩들에게 자수를 권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자수하여 광명 찾자”는 표어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는 간첩은 잡히면,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 등, 무거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국가보안법, 무서운 법이지요. 간첩은 좋은 옷을 입고 점잖은 척하면서 살아도, 사실은 죽음을 이고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나 사실은 간첩입니다’ 자수를 하면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정착지원금도 받고 보호와 후원 조치가 따랐습니다. 그 목사님은 우리는 모두 죄인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위에 알고 짓는 죄, 알지 못하고 짓는 죄가 쌓이는 존재들인데, 그래서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데 하나님께 “저는 죄인입니다” 고백을 해서 용서를 받은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수한 간첩은 대한민국 백성이 됩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해서 사죄를 받은 우리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죄인이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존재기 된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납니다.
감리교인들은 특별히 이 확신이 더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난 월요일, 5월 24일은 요한 웨슬리 회심일이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30대 중반에 미국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 때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성공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번민에 싸여 지냈습니다. 그 때 쓴 일기에는 “나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그 곳에 갔었다. 그러니 내 영혼을 구원할 자는 누구란 말인가?”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러나가 1738년 5월 24일에 회심을 합니다. 그 날 웨슬리 목사님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모임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 경에(이것이 “9시 15분 전에”라고 나오는 기록이 많아서, 조사를 많이 해서 9시 15분으로 못을 밖었습니다)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감리교인들은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요, 지난 주일에 제가 다른 교회의 설교를 맡아서 나오지 못했는데, 혹시 담임목사님께서 이 내용을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회심을 체험한 웨슬리 목사님이 “세계는 나의 교구다” 외치며 나가서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감리교입니다. 웨슬리의 후예인 감리교인들은 웨슬리 목사님의 체험,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런 체험을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말을 바꾸면 이런 체험을 가지고 있어야 감리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용산교회 교인들은 특별히 이런 확신이 더 필요합니다. 왜 그럴까요?
용산교회 아주 가까운 곳에 구원파가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모이지 않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부터 모이지 않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구원파가 세월호 사건과 관계가 좀 있거든요. 이제 다시 모이기 시작하는지 오늘 교회에 올 때 보니까 안내 명찰을 단 분들이 입구에 서 있더군요. 이 구원파가 어떻게 사람을 끌어들이는지 아십니까? 사람을 만나면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묻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우물쭈물 하면 당신 구원 받아야 한다고 빈방 같은데 찾아가서 옆자리에 앉히고 성경 여기저기를 들춰가며 자기들의 교리를 설명합니다. 듣다가 그런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면 시계를 보면서, 아, 당신 구원 받았다고,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 “예 구원 받았습니다” “언제 구원 받았습니까?”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구원 받았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눕니다. 여러분 가운데 구원파의 꼬임에 넘어갈 분은 안계시겠지만,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이단이 그런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아셔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사죄의 확신이 없으면 이단의 밥이 되기 쉽습니다. 여러분, 웨슬리 목사님의 체험, 사죄의 체험을 확실히 나눠갖기 바랍니디.
자수한 간첩은 용서해 준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대한민국의 법을 잘 지키며 살아야합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하늘나라의 법을 잘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사죄의 확신을 갖는 것, ‘내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저는 신학교 1학년을 마치고 공군에 입대해서 3년 동안 군복무를 하고 복학을 했습니다. 복학수속을 마치고 좋아서 교실에 들어갔더니 맨 앞자리에 해군대위 한 분이 노트를 펼쳐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기분이 언짢아졌습니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장교들에게 혼이 많이 났는데 이 사람은 또 뭐야?’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분이 좀 특별한 내력이 있는 분입니다. 이름이 이필은인데 북한군 해군 대위였다가 1년 4개월 전에, 그러니까 1965년 12월 1일에 서해상으로 해서 귀순한 분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런 분들을 귀순용사라고 부르며 크게 환영을 했습니다. 이 분도 큰 환영을 받고 대한민국 해군대위로 임관한 분이었습니다. 더 궁금해졌습니다. ‘아니 1년 4개월 전까지 북한해군 장교였던 분이 왜 신학교에 들어왔나?’ 얼마 뒤에 그 분의 간증을 듣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귀순을 한 뒤 큰 환영을 받았지만 외롭기도 하고, 마음에는 괴로움이 있고,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 괴로워서 매일 술에 빠져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때 중앙정보부, 지금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자기를 보호했는데 자기를 담당하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담당직원이면 술상대를 해 주어야 하는데 너무 술을 많이 마시니까 감당하기 어려워 담당직원이 자주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교회에 가서 반공강연을 하기도 하고, 전도를 하는 분도 있고, 여러 일들을 거쳐 교회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상관이 영락교회 교인이었는데 그 분의 권유로 영락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앙의 문제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특히 자기를 왜 죄인이라고 하는지 알고 싶어서 수유리에 있는 영락기도원에 들어가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다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눈물을 쏟으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 때 일을 그 분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의 이 무자비한 마음의 어디서 그런 그칠줄 모르는 눈물이 나오는지 나의 답답하고 불안에 안정마저 잊어버린 마음에 넘쳐흐르는 힘과 형언할 수 없었던 그 기쁨 또 용기와 용맹, 나는 처음으로 이러한 기쁨을 체험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비로소 북한 공산주의 치하에서 몸에 엉겼던 붉은 쇠사슬의 멍에를 벗어던졌을 뿐만 아니라 참된 자유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분이 탈북수기가 「선수를 남으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 부분의 제목이 “참된 자유를 찾다!”입니다. 우리도 이런 기쁨을 체험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이필은 대위, 남한에 왔으니 공부를 좀 더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조선항공과라는 학과가 있었습니다. 줄여서 조항과라고 했는데 배 만들고 비행기에 대해서 공부하는 학과였습니다. 그 때 들어가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지금도 서울 공대에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학과가 있나?’ 서울공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런 학과는 없고 ‘조선해양공학과’와 ‘항공우주공학과’가 있더군요. ‘우리나라, 참 많이 발전했다’ 하는 것을 여기서도 느꼈습니다. 정부에서 “이 대위는 북한의 해군에서 남한의 해군이 되었으니 조항과에 가서 배의 기관에 대해서 더 연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필은 대위는 “저는 북한의 해군에서 남한의 해군이 된 것도 변화이지만, 무신론자, 유물론자에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 된 것이 더 큰 변화입니다. 나는 신학과에 가겠습니다.”, 그래서 신학과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 분이 계속 진급해서 해군 대령이 되었고, 정훈감이 되었습니다. 북한군인이었다가 귀순한 분들이 국군의 대령까지 진급한 분들은 몇 분 있는데 이렇게 부서의 책임자가 된 일은 이필은 대령 한 분뿐입니다. 착실하게 근무해서 주변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이 분의 사모님이 춘천분인데 믿음이 아주 좋으셨습니다. 이필은 대령은 장로 직분으로 교회를 섬겼는데 그만 간이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귀순 초기에 술을 너무 마신 것이 원인이라고 동창들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점점 악화되어 이제 임종이 가까워졌습니다. 군목이 병실에 들어가서 마지막 문답을 했습니다. 군목(성결교 안광춘 목사)이 “이 대령님, 이 대령님은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날 텐데 하늘나라에 들어가실 자신이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이필은 장로는 “군목님, 염려마세요” 대답하고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장례식에 저도 참석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해서 참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어야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종말과 재림, 심판에 대한 설교가 많아지고, 그와 함께 사죄에 대한 설교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죄의 확신을 가져야 하고요, 둘째는 매일 매일의 잘못을 회개해서 용서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요 13:10) 이 말에는 목욕을 했더라도 발은 자주 씻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교실 풍경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예전에는 한 시간 수업이 끝나면 다음 시간이 되기 전에 칠판을 닦았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시간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때 주번 제도가 있었지요. 주번은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 칠판을 지워서 깨끗하게 하고 칠판지우개를 터는 것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우리는 하루, 하루 우리의 잘못을 털어내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말씀이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며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잘 알려진 사업가가 한 분 있습니다. 장로님입니다. 이 분이 하루 아침에 폭삭 망했습니다. 망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의 말씀입니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성경말씀에 따라 용서하려고 애썼습니다. 3년 동안을 그렇게 하니까 용서는 되지 않더라도 마음은 편해졌습니다.” 모두, 우선 나부터 마음이 편해져야 하겠습니다.
사죄의 확신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283장의 가사를 생각합니다.
나 속죄함을 받은 후 한 없는 기쁨을 다 헤아릴 수 없어서 늘 찬송합니다. 나 속죄 받은 후 나 속죄 받은 후 주를 찬미하겠네 나 속죄 받은 후 주의 이름 찬미하겠네
속죄의 확신을 가지므로 한 없는 기쁨이 여러분과 저에게 넘쳐 주의 이름을 찬미하게 되기 바랍니다.
2절입니다.
나 속죄함을 받은 후 내 맘이 새로워 주 뜻을 준행하면서 죄길을 버리네 나 속죄 받은 후 나 속죄 받은 후 주를 찬미하겠네 나 속죄 받은 후 주의 이름 찬미하겠네
속죄의 확신 위에 새로운 마음으로 주 뜻을 준행하면서 매일 매일 죄길을 버리며 살기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다하여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주님, 저희에게 이 말을 잘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평안과 기쁨 가운데에서 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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