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서북미장로교회협의회에서 미주 한인교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헌금을 보내 몽골에 에덴교회를 건축하여 봉헌예배를 드리기 위해 목사님, 장로님, 전도사님, 집사님들 모두 12명이 몽골을 방문하게 되었다. 선물은 성경책과 옷 보따리 등 콘테이너로 하나 가득 수천 불을 들여 부쳤다고 한다.
9월 15일(수)
저녁 6시 몽골에어로 떠나려고 모두 모였는데 비행기가 날씨 관계로 연착해서 밤 9시에 떠나다. 모두들 일찍 공항에 왔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저녁을 사 먹었 는데 늦은 밤에 비행기에서 저녁식사를 주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새벽 1시에 몽골 울란바타르 공항에 도착하니 써늘한 공기가 확 밀려오고 마중 나온 목사
님과 사모님은 두꺼운 외투를 입고 계셨다. 우리는 모두 얇은 옷차림이었고 나는 일주일 먼저 서울에 와서 지내며 무척 더워서 계속 헐떡거렸는데 갑자기 이렇게 추워질 줄이야 … 낮에는 더워서 쩔쩔매다가 몽골에 와서 겨울을 만난 것이다. 이곳은 오늘 첫눈이 왔다고 한다. 아마 우리들을 환영하기 위한 것인가 보다라고…
공항의 여자 화장실은 담배 꽁초가 들어있고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얼른 나와야 했다. 짐을 찾는데 공항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워대어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 공항과 비슷하다.
깊은 밤 새벽에 예약했다는 호텔에 오니 방을 6개 예약했는데 3개밖에 없다고 해서 한참을 옥신각신 하다가 어떻게 해결이 되어 들어가 자게 되었다. 4층 우리 방은 특실인지 응접실까지 다 있고 소파, 카덴 등이 너무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샤워실이 문제였다. 물이 뻘건 흙탕물이 나와서 놀라 수건으로 닦으니 수건이 벌겋게 되었다.
화려한 가구보다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물이 더 필요했다. 인천 공항에서 회장 목사님이 물을 좀 사 갖고 가라고 해서 서너 병 사서 무겁게 갖고 왔는데 이해가 된다.
한국에서 짐을 들고 지하철을 오르내리며 걸어 다녀서인지 계속 너무 더워서 무척 고생했는데 이렇게 시원하게 해주시는 것을 감사하며 몽골의 첫 밤을 지냈다.
9월 16일(목)
아침에 박 목사님께서 너무 추워서 안 되겠다고 다른 호텔로 옮겨야 한다고 하시다가 결국 목사님은 그곳 선교사 목사님 댁으로 가시고 우리는 그 방이 이 호텔에서 제일 비싼 방(45불)이라고 아래층 초라한 방으로 내려왔다(20불).
호텔에서 아침식사로 달콤한 빵 하나와 크림과 설탕이 다 들어있는 봉지 커피를 하나씩을 주어 아침식사를 하고 거의 12시가 다 되어 12인승 미니 밴을 타고 에덴교회로 갔다.
오늘 서북미장로교회협의회가 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이곳에 에덴교회를 세워 봉헌예배를 드리려고, 목사님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장로님들이 선물을 증정하는 식을 하려고 미국에서 각자 회비를 내고 12명이 이렇게 온 것이다.
참으로 뜻깊은 날에 첫눈이 내렸는데 나는 집사님이 몽골인에게 주려고 갖고 온 외투를 빌려 입었다.
예배 시작 전에 몽골여자 성도가 나와 작은 성전을 가득 채운 성도들이 뜨겁게 찬양하고 율동을 하도록 인도했고 올리아스테교회(오효광 담임목사) 성가대가 화려한 까운을 입고 찬송을 올리며 성전 봉헌하는 감격적인 예배를 시작했다.
KPC 회장 김광훈 목사님의 사회로 한재신 목사님이 기도하셨고 말씀은 나균용 목사님이 은혜롭게 전하셨다. 모든 긴 통역을 을지라는 26세의 사랑스런 아가씨가 하는데 참 잘하는 것 같았다. 그곳의 유일한 울란바타르 한인교회를 담임하시고 연합신학교 이사장이시고 우리들을 다 안내하시는 안광표 목사님께서 건축경과 보고를 하면서 적은 돈으로 이렇게 잘 지을 수 있었던 고충을 이야기하셨다.
우리 일행 중 여 전도사님과 대학생 딸이 동참했었는데 에덴교회 마당을 잘 정리하고 길을 만들 수 있도록 2000불을 내었다고 하니 너무나 감사했다.
브레머튼 장로교회와 김창영 장로님이 앞으로 이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매달 300불씩 보내겠다는 약속도 하나님과 많은 성도들 앞에서 했다.
이번에 동행하신 세 장로님들이 나와 콘테이너로 선교물품 전달식을 가졌는데 물건이 아직 도착을 안 해서 좀 섭섭했다.
몽골에서 선교하시는 한국의 젊은 목사님내외가 축가를 불렀고 극동선교회 회장이시고 이렇게 몽골에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몇 번씩 다니시며 고생하시고 다리를 놓으신 박영희 목사님께서 축도를 하셨다.
참으로 몽골에 새 교회가 탄생하는 감격적인 시간이었고 앞으로 이 교회가 자립할 때까지 오효광처녀목사님(올리아스테교회 담임)께서 돌아보며 몽골여자 전도사님인 도르지람 전도사님이 맡아서 목회할 것이라고 한다.
모든 예배를 비디오로 찍고 예배 후에도 그곳 성도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며 오늘의 감격을 기념하려고 모두가 가지고 간 각자의 카메라들이 요란히 빛을 터트리며 영상을 담았고 모두들 장시간 웃으며 모델들이 되느라 즐거워하는 축제의 날이었다.
성전 뒤에 있는 친교 실에서 한식으로 잘 차린 식사를 하는데 우리가 먼저 떠오고 몽골 성도들은 모두 담당자가 갖다 줄 때까지 조용히 자리에서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후에 수흐바트라 광장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곳에 우뚝 세워진 동상은 중국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몽골의 영웅이라고 한다. 광장이 네모가 반듯하고 중국의 천안문과 러시아의 붉은 광장을 연상하게 한다. 주식이 빵과 양고기라고 하며 러시아 공산당 지배하여 오랜 세월을 살아서 모든 체제와 생활 방식이 그들을 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저녁 6시에 울란바타르의 자랑인 민속춤과 노래를 보러갔는데 알아듣지 못하므로 약간씩은 모두 졸며 재미있게 보았다. 사진을 찍으니 달려와서 한번 찍는데 돈을 1000원씩 내라고 한다. 가난과 추위의 고통 속에 살면서도 그들의 노래와 춤은 낙천적이고 빠른 편이었고 밝고 명랑하고 화려했다. 한국 고전 춤과 노래는 굉장히 느리고 슬프고 청승맞지 않은가?(죄송) 물론 밝은 것들도 많겠지만 대체로 한국인들은 나부터로 해서 눈물이 많은 백성들인 것 같다.
늦게 한국 식당에 가서 유명하다는 철갑상어 회를 먹었는데 배가 무척 고팠지만 처음 먹어보는 그 유명하다는 철갑상어 회가 나는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한국 식당에서 먹은 것들이 더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가시는 곳곳마다 주옥 같은 글들이 우리들의 영혼을 맑게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