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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6)
구덩이에 빠진 양(안식일 논쟁)
본문 : 마12:1-13 (신 18) (막3:1-6, 녹6:6-11)
유명한 주석가 ..메토 헨리의 아버지.... 필립 헨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평민이었습니다.
그가 신분이 높은 여인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높은 신분에 속하는 그녀의 부모는
딸에게 충고하면서
“이 사람 필립 헨리는 어디 출신이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딸은 불후의 명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어디 출신인지 몰라요.
그러나 제가 아는 확실한 사실은,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미래는
황홀할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알고 나면,
즉 영 안이 열리면 삶이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고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아직 영 안이 안 열려서 이런 축복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짜증나는 일도 많고 ...
좌절하는 일도 많고.... 원망 불평도 많게 ...사는 것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의 영안이 열려.... 주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축복을 바라보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식일 논쟁>.....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은....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특히 그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 중의 하나가....
안식일 문제였습니다.
이 안식일 문제로 한두 번 부딪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이 문제가
논쟁의 주제로 등장합니다.
한 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길을 헤치며 지나갔을 뿐만 아니라....
이삭을 자르고.... 더욱이 그 이삭을 먹었습니다.
이유는....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법 위반으로
예수의 제자들을 비난하였습니다.
2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그들은 제자들의 그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스승인 예수님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두 가지 예를
들어가며 반박하셨습니다.
첫째는 다윗이 시장할 때 한 일입니다(삼상21:1-6).
3-4절 읽어라
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절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모세의 율법(레24:5-9)에 의하면.....
하나님의 전에 진열되었던 12개의 떡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제사장뿐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요나단의 도움으로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을 피하여 호위병 몇 명과 함께 도망하다가
놉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사장 아히멜렉이 주는 거룩한 떡으로 .....
그들의 주린 배를 간신히 채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일로 인해 정죄 받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제사장이 먹는
진설병이라 하더라도.... 굶주린 자를 먹이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율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두 가지 예를 들어가며 반박하셨습니다.
첫째는 다윗이 시장할 때 한 일입니다(삼상21:1-6).
둘째는 제사장들의 행위입니다.
5절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민 28;9,10)
제사장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안식일 규례에도 불구하고 .....
성전 안에서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
- 진설병을 대체시키는 것(레24:8)....
- 수 양 둘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
(민28:9-10) 등의 직무를 행합니다.
성전법이 안식일 법보다 우선이었습니다.
안식일 예배를 집례하기 위해... 제사장들에게
안식일 법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처럼.....
‘안식일의 주인’(8)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돕는 제자들의 행동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 .....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이란 무엇입니까?....
본래 안식일을 주신 뜻은 무엇입니까? ...
구약성경은 안식일의 신학적 동기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창조 신학적 동기입니다.
창1장과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
그의 창조물들을 바라보시면서 기쁨 속에
안식하셨습니다(참조: 출20:8-11).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날을 거룩히 지키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구약성경은 안식일의 신학적 동기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창조 신학적 동기입니다.
둘째는 사회적 동기입니다.
신명기 5:12-15에 의하면 안식일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십계명 중 4계명).
12절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절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절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절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연약한 자들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동기가 들어 있습니다.
즉 안식일이란 종, 나그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연약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관심을 표명하고
실천하는 날입니다(참조: 출23:1-12).
안식일 제도를 통해서... 약자들이, 심지어는
객이나 동물들까지 쉴 권리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의
완성의 기쁨 속에 들어가 안식하는 날인 동시에....
인간의 참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정신을 되살리려 말씀을 통해 책망합니다.
7절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호 6:6인용).
그러므로 예수님도 안식일 준수의 폐지를
원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폐지를 원하셨다는 구절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완전케 하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직화되고 형식화된,
그리고 잘못 해석되고 사람이 덧붙인 안식일
규정으로부터 순수한 ‘안식일의 의미’(정신)를
되찾으려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바로 지켜지길 바라셨습니다.
안식일의 참 정신이 구현되는 안식일이
지켜지기를 바라셨습니다.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
이 안식일 논쟁을 마치시고 거기를 떠나 회당으로
들어가시니 거기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보시고 고쳐주시려고 하자
또 바리새인들이 곁에서 또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비난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송사하기 위해,
법정에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10절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 사람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대답하십니다.
11-12절 읽어라
1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절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가의 보도에 의하면 예수님은 보다 구체적인
반대 질문을 던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3: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이 질문은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본래적 의미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있다”(막2:27)는
말씀을 보다 분명히 증거하기 위한 질문인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은 ..
.아마도 예수님께서 그 손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면....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고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바리새인의 법에서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안식일 법의 적용을 보류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편 손 마른 사람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병자의 생명이 위급한 상태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생명에 위협을 줄 정도로 중병도 아니며....., 다음날까지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시급한 병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마치 오늘 아니면 ....
못 고칠 것처럼 급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전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동안 앓고 있던 환자를 고치신 적도 있습니다(요5).
그때도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비난했었습니다.
왜냐하면 38년이나 묶은 병이 당장 급사할 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당히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눅13:10-17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들려 허리가 꼬부라져 펴지지
않게 된 여자의 몸을 안수하심으로 고쳐주셨습니다.
회당장이 이를 비난하자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13:15-16)고 되물으셨습니다.
눅14:1-6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거기에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3). 저희가 대답을 못하고 잠잠하니 ...
예수님께서 아무 말 없이 그 사람을 고쳐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5).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도(비난을 감수해 가면서)
치유 활동을 계속 하셨습니다.
마치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안식일에
연연해하지 않으시고 치유활동을 계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셨던 것일까 ?
첫째, 아마도 안식일의 분명한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계명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가장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외적인 표시였습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영광의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는 쉼의 자리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안식일 계명은 다른 계명보다
더욱 엄격히 지켜야 할 당위성이 있었고....
이것을 지킴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케 하는
구원의 방법(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특히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본래적 의미인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역할을 망각하고
이의 외적(형식적) 준수에만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지향하는 참다운 뜻, 곧 안식일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하려는 참뜻을 가르치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 그 정신을 망각한 채 ...
형식만 남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자유케 하려는 안식일이.....
도리어 사람을 얽어매고 정죄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참 안식일의 정신을 일깨워주기 위해 아마
고의적으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셨던 것일까 ?
첫째, 아마도 안식일의 분명한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둘째, 안식일 치유를 통해서 사랑의 확대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랑’의
동기에서 였습니다. 즉 사회적 동기입니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연약한 자들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동기가 들어 있습니다.
즉 안식일이란 종, 나그네,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연약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관심을
표명하고 실천하는 날입니다(참조: 출23:1-12).
예수님의 안식일 치유행위도 ‘생명을 구하는 일’이
안식일에 허용되었다면....
원칙적으로 그 법정신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사랑을 행하는 일)
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치유 행위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구약의 법 정신은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와
자비를 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출23:4-5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신22:1-4).
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 과도한 보복을
금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복.
그러므로 참다운 안식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안하고 무조건 쉬는 것이 안식이 아닙니다.
이는 안식일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나아가 안식일을 죽이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사랑하는 날입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셨던 것일까 ?
첫째, 아마도 안식일의 분명한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둘째, 안식일 치유를 통해서 사랑의 확대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셋째, 안식일에 치유행위를 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권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6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8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성전법이 안식일 법에 우선하듯이....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활동은....
성전법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동기는 영혼구원의 동기요 사랑의 동기이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구덩이에 빠진 양의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1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이것이 어찌 양을 두고 한 말이겠습니까?
12절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고통과 죽음의 위기에 처한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보여 주시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막을 만한 고귀한 법은 없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귀한 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법은 결국 인간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율법도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가리는데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님들 !
안식일의 참된 정신이 인간이 덧붙인 그 어떤
형식이나 규칙에 의해 제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의를 드러내는 통로로 취급되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룩한 의식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거룩한 안식일은 바로 영혼구원의 날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날짜로서의 안식일(토요일)은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안식일의 정신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주일로 지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염려해야 할 것은...
주일이 율법화되고 형식화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주일성수는 성도의 기본일 뿐입니다.
최소한의 의무이지 이것이 신앙의 완성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으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예배에서 힘을 얻어 한 주간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 7일 24시간이 다 주의 날이요 시간입니다.
매일을 주일성수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구덩이에 빠진 양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인 진정한 안식일 정신이요 오늘 우리가
준수해야 할 주일성수의 정신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
이번 한 주간도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