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④
* 백제 성왕의 업적
백제 성왕(523~554)은 무령왕(501~523)의 아들로 수도를 비좁은 웅진성에서 넓은 벌판인 사비성(부여)으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538). 이 때, 중앙에 22개의 실무 관청을 두고, 수도에 5부, 지방에 5방을 두어 왕권의 강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불교를 장려하고, 중국과 문물을 교류하였으며, 왜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을 전해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성왕은 신라와 힘을 합하여. 이전에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551). 이리하여 백제는 오랜 숙원을 한때 이루었으나, 곧 동맹국인 신라의 공격을 받아 한강 유역의 땅을 신라에 빼앗겼다(553).
이에 성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하여 중흥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554).
① 익산 미륵사는 서동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600~641)이 그 부인 선화공주(신라 진평왕의 딸)의 기원에 따라 창건되었다고 전해졌었다(601). 그러나 2009년 미륵사지 서탑 해체 과정 중 발견된 봉안 기록에 따르면 좌평 사택적덕의 딸 출신인 백제인 왕비가 건립을 발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② 백제는 침류왕 때에 중국 남조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중앙 집권 체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하였다(384).
③ 백제 의자왕(641~660)이 즉위하면서부터 신라와의 싸움이 보다 격렬해져 신라의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다(642).
⑤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룬 근초고왕(346~375) 때에 박사 고흥이 역사서인 ‘서기(書記)’를 편찬하였으나(375),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